돈의 달큼한 향내와 에로틱한 유혹의 미래

네르비와 바타유의 정신이 아득해질 만한 사상 아래 세워진 두 국가는 다른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이나 비정상적이고 괴리감이 느껴지는 국가입니다. 구조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면서도 기하학적인 정치구조와 비틀거리는 취객과 같은 국가의 운영은 다소 무정부적이고 혼란스럽지만, 그 피학적인 국가체제를 탄생시킨 두 거장의 꿈은 아직 붕괴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네르비-르아바브르 공화국


네르비-르아바브르는 범죄의 온상으로부터 탄생한 부패와 뒷거래의 암묵적인 허용 국가입니다. 과거 콩퓨사이온 서쪽 끝자락에 위치했던 아름다운 공화국은 정권의 붕괴와 반대로 강대해져가는 마약 카르텔과 마피아, 조직폭력배들이 군권을 보유하게 되면서 들끓는 범죄 조직들의 토너먼트가 되었습니다. 지배 세력의 비확립에서 발생한 무정부와 혼란은 해외 조직들에게 좋은 기회로 여겨졌고 세상의 수많은 핍박받는 자들, 도망자들, 그리고 국제적인 범죄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타이미르 대제국에게도, 해상의 지배자들에게도, 전염병같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포악한 독재자에게도 파괴되지 않았던 르아바브르는 자본주의적인 폐해와 썩어들어가는 시궁참과도 같은 뒷세계와 정계의 유착 관계 속에서 무너지고, 파괴되었습니다.


네르비는 이 초범죄적인 국가의 시작을 알린 인물입니다. 앙리 네르비가 등장하기 이전 르아바브르 공화국은 부유했습니다. 바로 옆의 강력한 이웃인 타이미르 제국은 대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대륙 건너편의 끈질긴 악마들과 여러 해 동안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전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던 르아비브르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히려 군수물자 판매를 바탕으로 비상 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전쟁이 끝나고 모든 국가가 폭삭 주저앉자, 예상치 못한 재앙은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쪽의 공화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망명자들은 길거리에 쌓여만 갔고, 판매하지 못한 군수물자들은 그대로 창고에서 썩어갔습니다. 실업률은 난민들의 증가와 함께 급속히 증가했고, 시민들은 이러한 재앙의 근원을 외국인들이라 생각하고 창고 안의 무기들로 무장한 채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잔존한 군수물자, 그것은 파멸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앙리 네르비는 이 혼돈을 바로잡고 남은 무기들을 모두 압수하며 르아바브르 최악의 무기 카르텔 겸 독재자가 되었으며 마쿠트 카르텔이라는 그의 고유 카르텔 집단을 바탕으로 친위대를 건설, 공포정치를 일삼았고 부두교를 이용한 우상화,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선거들로 정권을 연장하며 직접 정적들을 고문하는 등 잔혹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그가 죽은 이후로도 정권은 세습되어 이어졌고 결국 마쿠트 카르텔이 무너지고 나서야 다른 범죄조직들의 지원을 받는 이가 다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쿠데타의 굴레는 네르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돌아가고 돌아가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죽음의 단두대는 르아바브르 대통령의 자리에 설치되고야 말았습니다.


네르비-르아바브르 공화국에서는 현재 8개의 거대 범죄 조직들과 그 산하로 수천개에 이르는 중소 집단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옛 네르비의 복수를 이룩하려는 세력들의 집단인 벤데타 마피아, 유괴와 마약, 그리고 요식업, 건설업 같은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서 세력을 확장 시키는 르드르게타, 옹프레 남부에 위치한 사형수 전용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들이 만든 쿠톨로가, 담배 밀수와 마약 거래, 그 외 여러 집단 폭력 범죄를 일으킨 누오바 파밀리아, 갱단 간의 용병업을 주로 일삼는 크라임 멀세너리, 혁명주의적인 동부에서 몰려든 난민 출신 불량배들의 대규모 폭력 단체인 파트롱 미네트, 해안가에서 헤로인과 같은 마약을 가공해 밀수하고 성매매 지대를 장악한 유니온 커넥션, 서해안에서 국제 밀수등을 일삼으며 성산업, 도박산업, 그리고 청부살인을 반복하는 페노제스가 바로 르아바브르의 썩은 고름들입니다. 


만약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가원수와 정부, 그리고 국방군은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해 범국가적인 범죄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적들의 움직임을 보다 온건적이게 변모시킬 수 있겠지만 르아바브르는 다릅니다. 정부의 모든 당들은 각자의 세력들과 유착관계에 가까운 동맹이며 이들의 끈끈한 연대는 공공의 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르아바브르의 군은 나약하고 부패했습니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병사들, 무기들은 전부 다 사라져 있으며, 장부에 적혀있는 할당된 예산은 소멸한 지 오래입니다. 르아바브르 내에서는 그 누구도 마피아들과 카르텔들에게 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밀 수는 있을 지 몰라도 말입니다.


거대한 마약 카르텔들을 차치하더라도 네르비-르아바브르 공화국의 치안은 매우 심각합니다. 소규모 범죄집단이나 골목길에 무장한 불량청소년들 마저도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무기들 때문에 화끈하게 무장한 상태로 길가를 횡보하며 단순한 도둑들이나 강도들조차도 불법무기를 소지한데 비해 이를 단속할 경찰들은 부패해 제 할 일을 하지 않기 일수이고 역량이나 수 또한 너무 모자라 수습이 불가능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콩퓨사이온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이곳이 초자본주의적 성향을 바탕으로 큰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과잉은 파멸을 낳았습니다. 잉여는 멸망을 맺었습니다. 



바타유-르앙프라비양 공화국


인간은 인간 자체로서 아름다움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너, 나, 우리, 세계전체의 존엄, 자유, 질서, 권리, 모든 것은 자유롭습니다. 바타유와 르앙프라비양은 죄악과 타락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콩퓨사이온 대륙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이 공화국은 이 세상의 모든 실패한 사상들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단기적인 평화와 안정 따위는 뒤돌아보지 않는, 만연한 쾌락에 빠지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형제의 나라인 네르비-르아바브르와는 달리, 전초적인 애로티즘의 총본산으로 탄생한 르앙프라비양은 지도자인 조르주앙 바타유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조르주앙 바타유는 아프랑가르트의 아브르토가 이끌던 미래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잔혹적이고 광기적인 이상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바로 애로티즘과 신비주의롤 토대로 한 초현실이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환호하며 구 르앙프라비양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팔세아 정권을 설립하였습니다. 점진적인 쾌락자유주의를 신봉하며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라 할 정도로 더럽혀진 르앙과 주변 도시들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도 모욕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진정으로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바타유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독 인간만은 생식활동을 애로틱한 행위가 되게 합니다. 번식은 존재들을 불연속성으로 안내하며 존재들간의 연속성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번식은 죽음과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존재의 연속 또는 죽음은 둘 다 매혹적입니다. 그리고 애로티즘을 지배하는 것 역시 연속성 또는 죽음에 깃든 유혹입니다.


조르주앙 바타유에게 애로티즘은 그저 단순히 야하다, 흥분된다, 라는 것으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인식만을 남겨둘 뿐입니다. 그에게 애로티즘은 사회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적 사상이며 철학적이고 인생적인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세상은 과잉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세상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양이라는 존재는 에너지를 무상으로 보내주고 있었고 우리는 이를 온전히 소비하지 못하여 과잉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과잉적인 에너지는 계속해서 잉여 에너지를 탄생시켰고 이런 잉여 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하지 못하고 쌓이게 된다면 결국 쌓이고 쌓여 전쟁과 파멸, 더불어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바타유는 생각했습니다. 즉 인류 경제는 이런 과잉 에너지를 적절히 소비해야 완전한 평화를 지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소비하는 것 또한 적절해야 합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잉여를 축적하기만 하는 소비는 탐욕적인 자본주의이며, 과잉에너지를 특정 집단 조직에 강제적으로 귀속시키고자 하는 방식은 신을 모방하려 하는 오만한 파시즘, 공동의 생존을 위해 잉여를 축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공산주의로서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효율적이며 신성하고, 비생산적 소비는 무엇입니까? 바로 미지의 물체에게 우리의 것을 바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인신공양입니다. 바타유는 인신공양을 통해 모두가 춤추고 즐기며 이러한 냉혹한 현실적 질서와 냉혹한 계산에서 벗어나 초기 인간의 신성함을 되찾는 행위라고 주장했으며, 금기의 위반을 허용하는 비생산적 소비는 인간의 폭력적 특성과 숨겨진 욕망의 근원에 대한 과잉을 해소하며 인류 문명사 해석의 열쇠로 작용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신성함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에로티즘이었습니다. 그에게 에로티즘이란 과잉 에너지의 축적을 막고 적절한 소비를 주장하며 전쟁을 막고 아름다운 인간의 신성함을 되찾게 해줄 사상이었습니다. 어찌나 아름답습니까?


그에게 국가적 에로티즘은 하나의 해결방식이었습니다. 에로티즘은 그 자체로 소비면서도 생산이며 그렇기에 다시금 과잉에 휩싸이는 모순적인 존재이나 생명으로써의 에로티즘은 이러한 소비 (죽음)을 품음으로서 생산 (탄생)을 하며 이로인해 죽음과 탄생의 대립적인 이분법을 전복시키고 변증법적인 지속을 요구했습니다. 에로티즘에서 우리는 작은 죽음을 겪게 되고 순전히 자기자신만이 겪을 수 있는 체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로티즘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금기를 한 번 걷어올리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내제에 폭력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노동과 이성이라는 것을 통해 충동을 제제하고 집단을 이룹니다. 노동은 생산적인 바쁜 삶을 통해서, 이성은 마땅히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금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일상에서 이러한 폭력을 제제하는 것은 결국 성과 죽음으로 귀결됩니다.. 성과 죽음은 노동을 교란하고 과잉과 폭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금기로써 지정한 것은 동물적인 자유이면서도 인간이 인간들의 이상향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한계 없는 위반이 받아들여지는, 금기의 영역, 저주의 영역인 어둠을 통해서만 빛을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인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나키즘적 정서에서 기인한 탈법적, 쾌락주의적 사고는 광대한 비난과 매도를 받았지만 국가 집단화로서 도출된 조르주앙 바타유의 사상은 국민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사해주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쾌락과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전락한 바타유-르앙프라비양 공화국은 모든 종류의 마약, 매춘, 알코올 등과 같이 쾌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 합법화되며 이곳은 인류 그 자체의 유토피아가 될 것입니다.


바타유와 르앙프라비양의 나라에는 노예제도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나 바다 건너 루퍼트란트들과 같은 인종주의적인 이유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 불필요하고 소비적인 활동은 악한 영향력만을 세상에 뿌릴 뿐입니다. 극단으로 도출된 아나키즘적 정서답게도 인간의 자유로운 쾌락 분출을 위해 자연적으로 도태된 인간 자원의 노예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이런 국가적인 노예사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적인 세상의 순리이며 만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바타유의 쾌락은 자유롭고 영험합니다. 그의 이상은 완벽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오직 그가, 오직 그만이 이 혼돈의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