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대대! 제 2중대! 제 3소대에 입대하였음을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우리의 경례소리가 끝나고 작게 소대장이 경례했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트럭을 타고 이제야 멀미가 끝나겠구나 싶어 땅을 밟자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꼭 인민군을 죽어서라도 죽이겠다는 표정을 한 이는 없었다. 모두는 마냥 죽은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모두 미쳐보였다. 나는 나의 집이 될지 무덤이 될지 모를 장소에 도착했다.


"따라와." 소대장이 말했다.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소대장을 따라갔다. 소대장은 대충 참호와 막사로 대충 만든 소대 진지를 돌며 설명을 해주고는 우릴 각각 어느어느 천막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우리는 모두 흩어져 각각 다른 천막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천막에서는 4명, 아니 3명이 있었다. 뾰족하고 검은 수염이 무성히 자란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 쭈그려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 있었다. 


"어 새로 들어왔냐?, 너 이름이 뭐냐?" 수염이 무성히 자란 이가 말했다.

"예, 이등병 최 준 이라고 합니다." 대답했다.

"어이 최준이, 너 어디 출신이노?" 글을 쓰던이가 물었다.

"예 저 서울에서 왔습니다." 답했다.

"어어 거 서울놈인가, 거 어? 니는 여기 있어봤자 몇일 못버틸것 같은 상인데? 너 뭐하다 여기왔노? 글을 쓰던이가 재차 물었다.

"저 장삿일 하다 왔습니다."

"장삿일? 니 총은 잡을줄 아는거 맞제?"

"뭔 나라는 장사꾼도 이리 부르는고" 담배를 조용히 피던 이가 말했다.

"어이 최준이, 여기 수염난 아재는 제물포에서 온 김혁이고, 여기 이 앙반은 부산서 온 서영학이여. 나 홍현철이가 여기 분대장이고 김 혁은 상병, 서영학도 상병. 아 한명 곧 올건데 걔는 일등병이야."

"대체로 분대장은 하사님이 맡지 않나요?" 물었다.

"그 하사양반 어제 죽었어. 그래도 가슴에 총맞아 죽었으니 곱게 죽었지." 김상병이 대답했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사람이 죽다니. 


"야 잘들어, 여기는 죽는 방법도 총맞아 죽는 방법만 있는게 아니라 포탄때문에 팔터져 발터져 머리터져죽고 따발총 맞고 십 보도 못 나가 넘어져 죽고 총칼에 가슴 찢어 죽는곳이 이곳이야. 정신 빠짝 차려라." 홍 분대장이 말했다.


"가져왔어유." 어떤이가 천막문을 올리며 말했다.

"어 그래" 홍 분대장이 답했다.

(양동이를 내려놓으며)"물 구하려고 꽤나 멀리 나갔시라." 그가 말했다.

"어어 최준이, 얘가 성준이여." 서상병이 말했다.

"거거 가만보니 둘이 이름이 같구만, 거 둘 나이 비슷해 보이는데 누가 더 많냐?" 김상병이 물었다

"저 이십여섯.."

"저 스물여섯."


"가만보자 둘이 동갑내기인가?"

"아 그렇네" "둘이 말 놓지그래? 어?"


"아닙니다." 내가 답했다.

"안녕하세요 성일병님."

"그래요 반가워요. 얼마나 같이 있을줄은 모르겠지만 반가워요."


아마 여기 오기 전이라면 저 말은 그냥 편하게 넘겼겠지만, 이제 우리 둘중 1명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속에서 저 말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박격포!!!!!!!!"

<쾅!>

<쾅!>


"모두 숨어!" "엎드려!"

"으악!!!!" "굴로 들어가!"


수발의 폭탄소리가 멈쳤을 때였을까, 밖으로 급히 나가보니 진지가 별로 파괴되진 않았는데 팔 한쪽하고 머리 한쪽이 짧고 빨갛게 물든 사람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걸었다.

(1보, 2보, 3보. 털썩.)


그는 분명 아까 같은 트럭에 타고온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병사임이 틀림없다.


"야 치워" 소대장의 말이 들렸다.

소대장이 말을 하자 곧바로 병사 몇명이 삽을들고 달려가더니 땅을 겨우 몇초만에 줄곧 파고는 그 안에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게된 병사의 몸을 넣고는 덮으려 했다.

"야 저기 눈깔 굴러다닌거 안보여?" 소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눈치를 보고는 새로온 병사를 시켜선 흙묻은 눈알을 집어선 구덩이에 넣게 했다. 그러곤 그들은 흙으로 무덤을 덮었다.

병사들이 벙쪄있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기자 소대장이 외쳤다. "모두 무장하고 집합!"

병사들이 모두 달려가 짐과 총을 챙기고는 중앙으로 모였다. 난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그냥 따라했다. 중앙에 모인 사람들중에는 인민군 군복을 입고있거나 들고 있는 총이 PP따발총인 사람들도 있었다.


소대장이 외쳤다. "야 이 무식한 새끼들아! 니들이 그렇게 사기가 떨어지면 빨갱이놈들 소탕할수는 있겠냐?! 늬들 전우가 죽었으면 어서 잊어! 그리고 그 분노를 모두 인민군에게 풀란말이야! 쟤가 죽은게 늬들 탓이냐? 앞으로 그런식으로 멍때리고 있을거면 전부 꺼져! 여긴 놀이터가 아니야!"


"모두 소대 구호 제창 실시!"

"인민! 군대! 처단! 하자! 김일성! 목을! 따버! 리자!"

"빨갱이!들을!모두!죽이자! 싸우러 나가자!"

"목소리가 그것 뿐이야? 다시 제창!"

난 그게 뭔지 몰라서 대충 옆사람을 보며 따라했다. 정말 빨갱이를 죽이고 싶긴 했다.


"좋아. 여기서 동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걔네들이 파놓은 땅굴 입구가 있다고 들었다. 자원자들은 손을 들어라. 겁이 나는 자는 이곳에 남아라. 모두 전우의 복수를 하러 가지 않겠느냐?"


모두가 망설임 없이 번쩍 손을 들었다. 나같은 신병들은 빼고 말이다. 그러다 난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다들 가겠댜고? 좋다. 4분대하고 3분대는 여길 지켜야 되니 남고, 1분대하고 2분대는 나와 같이 간다."

어라. 내가 속한 분대가 2분대였나..?

이런 젠장. 오자마자 전투라니.


"1.2분대는 모두 모여서 날 따라와."

난 나의 M1 칼빈 소총을 들고 무작정 분대원들을 따라갔다.

몇리정도 걸었을까. 정말로 황토색 굴 입구가 나왔다.

"전부 조용히 나를 따라 들어간다. 실시!"

소대장이 허리춤에서 45구경 꼴트 권총을 꺼내며 조용히 말했다. 


소대장은 앞으로 조금 걸어갔다. 덩달아 우리도 조금씩 걸어갔다. 굴은 꽤나 좁아서 고개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수 있었다.


"쉿!'

앞에 쿨쿨 졸면서 의자에 앉아있던 인민군 병사가 있었다.

소대장은 살금살금 걸어가서는 칼집에서 대검을 뽑아 인민군 병사의 목에 찔렀다. 

(컥ㄱㄱ..)

인민군 병사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대장은 처치하고는 다시 권총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따라갔다. 소대장은 조용히 속닥거렸다.

".....모두 착검....."

앞은 거실처럼 천장이 꽤 높고 큰것 같았다. 한 대여섯에서 십몇정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전등도 있었다. 또 김일성의 사진도 벽에 붙어있었다.

"3......2....1....."

어?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벌써 모두가 귀를 막았다.


<"쾅!!>

수류탄이 터졌다.


"으악!"

"모두 공격!" 소대장이 권총을 쏘며 외쳤다.

병사들은 비좁은 굴속을 쥐때가 몰아 닥치듯이 신속히

움직이며 보이는 인간이란 족족 총검으로 찔렀다. 나도 뒤를 따라가긴 했으나 당황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소대장이 나에게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야 이새끼야. 넌 도대체 어느 편이냐? 총이 장식이야!?"

너때문에 저기 쓰러진 사람 안보여!"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방금까지 내 앞에 있었던 성준 일병의 시체와 인민군의 시체가 같이 있었다.. 순간 내 뇌는 멈췄다. 나는 가만히 멍때리고 서있었다. "너이새끼 정체가 뭐냐? 뭐냐고 묻잖아!"


"저기다!" 달려오는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런 씨발." 소대장이 말했다.

"모두 엄폐!, 섵불리 행동하지 마!"


<팅.>


"엎드려!"


<쾅!>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우리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전방 수류탄 투척!"


<쾅>


모두 사격!


<콰광광쾅 탕탕탕 타다당>

전진!


비좁은 땅굴속에서 그렇게 몇분을 싸웠을까. 수 명이 죽고서야 땅굴의 맞은편 출구에 도달했다. 그곳으로 나오니 넓은 개활지가 있었다. 어라? 


"전방에! 적 땅크부대다!" 누군가가 외쳤다.

"소대장님, 후퇴해야 합니다. 어서.."

"소대장님! 통신병이 외쳤다."

"여기 무전좀 받아 보십시오"


"박소장, 나 연대장이야"

"예"

"지금 북쪽에서 땅크부대 하나가 내려오는데, 남하를 최대한 저지하도록 해"

"네? 지금 저희는 일개 2개 분대 뿐이고 적은 수십대의 차량이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아이 참. 그 바로 옆중대 얘등 중간에 부를 테니 빨리 해. 우리도 위에서 말이 참 많아"

(수화기를 던진다) "이런 젠장. 야 빨리 진지에 남아있는 2개 분대 불러"


"전대원은 들어라!"

"지금 우리 소대에 저기 남하하는 땅크부대를 저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진지에 남아있는 두 분대는 곧 올거고 1개 중대가 또 지원 나올것이다. 일단 돌격 해서 저놈들 땅크 위에 올라가면 끝인거야. 다들 알겠나? 개활지라 엄폐물 따윈 없다. 모두 전진이다! 곧 중대가 지원 나올테니 모두 전진해야 한다!"

"네!" 소대 전체가 외쳤다.


소대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 똑바로 대열을 갖추어 섰다.

연대장이 하늘로 꼴트 권총을 올리더니 외쳤다.

<탕!> 전원 돌격!

와아아아아아! 모두의 함성이 들렸다.

나와 소대장을 포함한 모두는 탱크들을 향해 전력질주 했다.

드디어 탱크들이 우리를 보았는지 포문을 돌리기 시작했다.


탱크에 거의 다 와갈 때쯤이었나, 그때 뒤에서 3.4소대 대원들도 나타나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사기가 생길때 쯔음 옆에 있던 병사의 머리가 사라졌다.

<탕>

그리곤 옆에 있던 홍 분대장의 다리가 사라졌다

<탕>


<탕탕탕탕탕>

소리가 들리기 전마다 주변을 돌아보니 병사들 머리가 보이지 않고 계속 넘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도모르게 넘어졌다.

'으윽....' 매우 아팠다. 옆을 바라보니 서영학 상병이 수류탄 묶음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그리곤 피가 확 보이고는 넘어졌다. 김 혁 상병이 그걸 집어서 달려가다가 탱크에 던지며 넘어졌다. 


<쾅!>


수류탄이 터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또한 쓰러지고 말았다. 뒤에서 따라오던 3.4소대원들도 결국 십자포화와 포탄 속에 전부 무너졌다. 땅크부대는 유유히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곧 온다던 중대 지원은 뭐였을까. 과연 땅크에 올라타는게 가능했을지라도 수류탄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일어서서 끝이 보이지도 않고, 남쪽인지 북쪽인지도 모르는 개활지를 걷기 시작했다. 발에 무언가가 걸려도 걷고, 또 걸었다. 난 가다가 군모를 벗어 던지고 군복도 벗어 전젔다. 그리곤 그저 쭉 걸었다.


-50년 후-


"아버지 이런곳은 왜 와.. 별로 볼거라고는 갈대뿐밖에 없는곳을. 그것도 손주까지 데리고요.."

"어.. 여기 철도 중단점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어.. 하"

"할아버지 무슨 생각이나?"

"어.. 그 옛날에 할아버지가 군인이었을때 생각이야.."

"오 진짜? 할아버지도 옛날에 스나들고 달리면서 싸웠어?"

"어...어? 그게 뭐야..?"

"아냐..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알리가 없지.."

"있잔아 경진아.. 저기 저거 보이지?.."

"한번 읽어보지 않겠니..?"

"철마는.. 달리고 싶다?"

"어 그래.."

"철마? 철마가 뭐야?"

"야 넌 뭐 그런것도 모르냐? 철마가 기차지 뭐야."

"아니 모를수도 있지.."


"나에게 철마란 기차가 아니야.. 그 용감하던.. 그 나라를 위해 싸우던.. 그 철같은 말같은 녀석들.. 그놈들이 철마였지.


-이름없는 용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