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우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숲, 비쩍 마른 나무들 사이로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일찍이 사람의 왕래가 끊긴 저주받은 숲으로, 한 아이가 연신 주변을 살피며 걸어오고 있었다.


부우- 부우-


잔뜩 겁에 질린 소년은 숲 속 가득 울리는 부엉이 소리에도 두려워 하면서도 계속해서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자기가 밟은 나뭇가지에 깜짝 놀라며 울먹거린 횟수가 열 자리를 넘어갈 만큼 겁이 많았지만, 소년은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부엉-


"히익! 까, 깜짝이야."


소년은 머리 위에서 들린 부엉이 울음소리에 몸을 움찔하며 나무 위를 올려다 보았다.


나무 위에는 부엉이 한 마리가 비쩍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부엉이를 올려다보며 쫓아내기 위해 손을 내저었다.


"왜 그렇게 쳐다 봐. 다른 곳으로 가벼려, 훠이."


소년의 손짓에도 가만히 앉아 소년을 내려다보던 부엉이는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부우우-!


기지개를 펴듯 날개를 펄럭이던 부엉이는 자리에서 날아 갑자기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 으아아악!!"


부엉이가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자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머리를 감싸며 오들오들 떨던 소년은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자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발?"


분명 자신 밖에 없을 숲 속일텐데, 거무죽죽한 흙바닥과 대비되는 하얀 맨발을 본 소년은 머리에서 손을 때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앞에는 기다란 갈색 후드를 쓰고 있는 소녀가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떠한 표정도 없이, 마치 순백의 눈으로 뒤덮인 것만 같은 소녀는 천천히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괜찮아. 이제. 일어 나."


"으, 으응……."


마치 아까 들었던 부엉이의 울음소리 처럼 몽환스러운 소녀의 목소리에 소년은 멍하니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소년을 자리에서 일으킨 소녀는 아무 말도 없이 소년은 빤히 바라만 보았다.


"으으, 왜 쳐다보는 거야."


소녀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 소녀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하던 소년은 소녀가 자신의 손을 잡자 화뜰짝 놀랐다.


"왜, 왜 그래? 손은 왜 잡는 거야?"


"따라 와."


소녀는 소년을 이끌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왜 그래? 갑자기 어딜 가는 거야? 이거 놔!"


갑작스래 숲으로 끌려가는 소년은 다급히 소녀의 손을 풀려고 하였지만, 소녀의 손은 단단히 붙잡아 놓아지지가 않았다.


소녀의 손이 풀리지 않자 당황한 소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 내뱉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넌 누구야?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는 저주받은 숲이잖아!"


소년의 말에 소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너는 왜?"


"나? 나는 왜 여기로 들어 온 거냐고 묻는 거야?"


소녀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엄마가 맨날 화낼 때 말했어. 도움도 안 될거면 차라리 저주받은 숲에 가서 살라고. 거기라면 나같은 녀석이 살기 딱 좋은 곳일 거라고 해서…… 흑…."


말을 할 수록 가슴 속에서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자 결국 소년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보면서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쳐다보기만 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울음을 그치자 소녀는 다시 소년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을 이끌고 안개를 헤치며 숲 속 깊숙히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 소년의 발이 소년에게 그만 걸어야 된다고 말할 즈음, 소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야."


소녀의 말과 함께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거치며 푸르른 청록빛의 풍경이 펼쳐졌다.


안개가 잔뜩 끼고 나뭇가지는 말라비틀어진, 저주받은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량했던 숲의 초입과 달리 안 쪽에는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가 가득 있었다.


소년은 신기하다는 듯이 눈 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부우우우-


소년이 숲 안으로 들어오자 가지에 앉아 있던 수많은 부엉이들이, 마치 소년을 환영하기라도 하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와아아아~ 부엉이가 엄청 많아!!"


수많은 부엉이들이 숲 속을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며 소년은 감탄을 터뜨렸다.


소년의 반응에 소녀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들. 반가워해."


"그래? 얘들아아~ 나도 반가워어~!!"


부엉이들을 향해 양 팔을 흔들며 인사하던 소년은 문득 소녀가 왜 자신을 여기로 데리고 온 건지 궁금해져 소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날 왜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내가. 사는 곳."


"여기서 산다고? 집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전부 부엉이들 뿐인데?"


"맞아. 부엉이들. 내 가족."


소녀는 잠깐 동안 부엉이들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살려고. 숲으로. 왔다."


"아아. 맞아, 그랬지. 난 여기 살려고 왔었어."


잠깐 동안 자신이 저주받은 숲으로 온 이유를 잊고 있었던 소년은 다시 풀이 죽어 버렸다.


소녀는 침울해진 소년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살아. 같이. 원한다면."


"우으으…… 고마워, 히잉."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자 소녀는 처음으로, 아주 살짝이지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리로."


소녀는 소년을 이끌고 숲 한 쪽에 있는 나무 둥치로 갔다.


소년을 나무 둥치에 앉히 소녀는 자리에 쭈그려 앉아 나무 둥치 밑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뭘 찾고 있는 거야?"


"준비."


"준비? 뭘 준비하는데?"


소년의 질문에 소녀는 대답이라도 하듯이 낡은 찻잔 두 개를 꺼내어 나무 둥치 위에 올려두었다.


"잠깐. 기다려."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찻잔과 세트로 보이는 주전자를 꺼내들었다.


나무 둥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소녀는 주변에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를 모은 뒤 낙엽뭉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 ."


소년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데도 소년은 소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소녀의 입이 멈추자 낙엽 뭉치에서 연기가 솟아 오르더니, 작은 불씨가 낙엽 속에서 피어났다.


소년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에 눈을 희둥그래 떴다.


"뭐야? 지금 불을 지핀 거야? 어떻게 한 거야?"


"차. 끓여야 해."


소년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돌려 준 소녀는 낙엽을 태우며 커진 불 앞에 쪼그려 앉아 팔을 뻗어 주전자를 달구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어 잔뜩 들뜬 소년은 양 다리를 연신 위 아래로 흔들며 소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울창한 거야? 저주받은 숲은 옛날에 마녀가 건 저주 때문에 황폐해졌다고 들었었거든."


"……."


소년의 목소리는 들떠있던 탓에 무척이나 컸지만, 소녀는 소년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오로지 주전자만을 보고 있었다.


소녀에게서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소년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수 없이 주변으로 몰려 온 부엉이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전자에서 김이 흘러나오자 소녀는 주전자를 들고 나무 둥치로 돌아왔다.


나무 둥치에 올려 둔 찻잔에 정체 모를 차를 따른 소녀는 나무 둥치로 올라 가 찻잔을 들었다.


음미하듯 차를 한 모금 마신 소녀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소년에게 찻잔을 쥐어주며 말했다.


"됐다. 이제. 말해 줘."


"으, 응? 뭘 말해달라는 거야?"


"밖."


"밖? 아 마을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거야?"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으음, 어떤 것 부터 얘기해줄까?"


"아무거나."


"아무거나? 그러면 이번에 마을에 새로 들어 온 장난감부터 얘기해줄까?"


소년은 소녀에게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얘기해주었다.


마을의 잡화점에 새로 들어 온 장난감, 한 달 전에 마을에 왔었던 유랑 극단의 서커스, 친구들과 기사 놀이를 한 이야기 등등, 자신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소년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눈을 희둥그래 뜨며 경청하는 소녀를 본 소년은 이야기 중간중간 과장을 보태어 좀 더 재밌게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밤이 되었다.


소녀가 물을 끓인 모닥불도 사그라들고, 빛이라고는 나무 사이를 통해 비치는 달빛 뿐이었다.


"우으음, 이제 생각나는 게 없네."


자그마한 손가락을 접어가며 셈을 해본 소년은 안타까워하며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도 말도 없고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지만, 이야기 하는 동안 소녀의 표정 변화를 소년은 소녀가 아쉬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안해. 나중에 다시 오면 그 때 더 많은 이야기를……."


소년이 아쉬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소녀에게 손을 뻗었을 때, 갑자기 소녀의 표정이 변했다.


소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무 둥치에서 내려오자 소년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왜, 왜 그래. 이야기가 떨어져서 화가 난 거야? 하지만, 진짜 이야기가 떨어졌어."


소녀는 숲 안 쪽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나가자!!"


"어어? 나가자고? 갑자기?"


"빨리!"


뭐가 그리 다급한 건지 소녀는 억지로 소년을 끌어당기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부엉이들이 숲 안 쪽으로 날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부엉이들이 음영에 가려진 거대한 무언가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꿈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 처럼 소년과 소녀는 자신들이 지나 온 길을 뛰어갔다.


마침내 두 사람이 만난 그 장소에 도착하자 소녀는 소년의 손을 놓았다.


"가. 막아야 해."


"막아야 한다니, 아까 보였던 그 커다란 거?"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숲 속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 커다란 걸 네가 어떻게 막는다는 거야. 마을로 도망쳐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오자. 한스 아저씨는 거대한 곰도 도끼 한 자루로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소년은 어떻게든 소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소녀는 소년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인간. 지켜야 해. 그게. 나의 일."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녀의 표정에 소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소녀는 억지로 웃어보이며 조금씩, 조금씩 뒤로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또. 들려줘."


"또 들려달라니, 그게 무슨……."


"꼭, 다시 와 줘."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소년은 숲 속으로 뛰어가는 소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숲으로 날아가는 부엉이를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넌, 대체 누구인 거야?"


소년은 자신을 찾기 위해 몰려 온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될 때 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소녀가, 부엉이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자신을 끌어 안으며 서럽게 우는 엄마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소년의 머릿속에는 오직 소녀에 관한 것만이 가득하였다.


그 소녀는 대체 누구였을까, 왜 또 들려달라고 한 걸까, 아까 보았던 그 커다란 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린 아이의 머리로 열심히 생각하던 소년은 결국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든 소년이 다시 소녀를 만나기 위해 숲으로 돌아 간 건 훗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