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15일 베이핑 성 안의 시가지. 한 무리의 일본군들이 지우산차오(베이징시 동부의 지역)의 작은 건물들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처음 베이핑을 공격한 7월 13일부터, 성문 방위를 위해 배치된 약 1만명의 중국군은 거세게 일본군에 저항했으나, 밀려드는 수천 수만명의 일본군을 기관총 몇개와 박격포같은 것만으로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7월 15일 이른 새벽 일본군의 공세에 성문이 뚫리고 말았다.


"하야오 오장! 오장의 병사들 4명을 이끌고 들어가 저 집을 수색하라! 물건은 마음껏 갖되 값 나가는 건 본 소대장에게 보고하라!"


"하잇!"


하야오의 담당으로 배정받은 집은 2층으로 된 기와집이었는데, 문 위에 '홍루상회'라고 써진 작은 현판이 있는 걸 보아 전쟁 전에는 상인이 살았을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1층에는 가판대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 위에 물건들이 난잡하게 올려진 걸 보아 미처 물건을 챙기지 못한 채 급히 몸만 챙겨 피난한 것 같았다.

가판대의 잡동사니를 챙기며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이곳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이 집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평화롭게 장사를 하며 계속 살아갔겠지?


집의 원래 주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곧 지나(일본제국이 중국을 불렀던 명칭)군이 먼저 아군을 공격해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고, 같은 지나인인 이들의 집이 털려도 할 말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합리화했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중국풍으로 된 평범한 가정집이 있었는데, 1층과 마찬가지로 가구들 대다수는 그대로 있었다.


"오장님! 저기 큰 도자기가 있습니다!"


하야오가 이끌고 간 병사 중 한 명이 상당히 값비싸보이는 도자기를 발견했고, 곧이어 모든 병사들이 그 도자기를 가지러 뛰어갔다.


"먼저 가진 사람이 임자다!"


"바카야로! 어서 도자기를 줘라! 일단 소대장에게 보고해야..."


라고 말하던 하야오 오장은, 별안간 발 밑에 무슨 실 같은게 걸리는 걸 느꼈다. 밑을 보니 하얀 실이 대략 종아리 높이 정도로 양쪽 벽에 걸려있었는데, 굳이 이런 걸 왜 이렇게 놨는지 하야오는 의문이 생겼다.


'이런 실을 왜 여기에 걸리게 놓은 거야?"


라고 생각하던 하야오는, 실에 걸려있던 수류탄 비슷해보이는 물체가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것을 보았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안전핀은 실에 그대로 걸려있었다.


"함정이다! 엎드ㄹ"


----쾅!


하야오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수류탄 부비트랩이 폭발하며 그를 포함해 5명의 일본군을 그대로 폭사시켰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집이 무너지며 밖에서 엄호하던 병사 몇명도 집에 깔리며 목숨을 잃었다.


하야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이 베이핑 시가지에 진입한 이후로 중국군이 설치한 함정에 당하는 사례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고급스러워보이는 서랍을 열어보다 서랍이 열리면 터지게 설계된 폭탄에 소대의 절반이 희생되는가 하면, 주택을 수색하러 들어간 일본군 6명이 장롱에 숨어있던 중국군 1명의 난사에 모조리 당하고, 미처 피난가지못한 듯 보이는 젊은 여자를 겁간하던 일본군 4명이 여자가 자폭하려 터뜨린 수류탄에 벌집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함정에 당한 일본군의 사상자 수가 4자릿수에 육박하자, 결국 보다 못한 지나주둔군 사령관 가츠키가 "함부로 집 안의 물건을 약탈하거나 여자를 겁간하려 하지말고, 사람이 다가오면 비무장 민간인이어도 무조건 사살해라."

라는 명령을 내리고서야 사상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건물 안에 틀어박혀 버티는 중국군들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기관총 세례에 수십의 일본군이 사살 당하고, 갑작스럽게 날아온 박격포에 관동군 5사단장이 중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했고, 그런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일본군은 베이핑 점령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중국군의 저항도 일본군이 증원으로 만주에서 2개 사단을 더 보내고 보이는 모든 건물을 포격으로 삭제하는 등 극약 처방을 하자 서서히 잦아들었다. 


베이핑 사수전을 지휘하던 장자충은 7월 20일 밤을 틈타 일본군 몰래 베이핑 성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해 후방의 다퉁-바오딩-창저우 방어선으로 이동, 드디어 일본군은 베이핑을 완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원 역사의 600명을 훨씬 넘는 5600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에 항전하던 중국군들은 장자충의 탈출 소식을 듣고 개별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천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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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고 용맹한 황군은 7월 21일부로 지나의 저항을 물리치고 북경 완전 점령, 지나군 방어부대를 전멸시켰습니다! 황군이 입은 피해는 미미하며..."


베이핑 함락 보고가 올라온 다음날인 7월 22일 아침, 나는 집무실에서 일본군이 국민들에게 배포한 선전영상을 보며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당장 우리군이 본 사상자만해도 수천 단위라는데, 이게 미미하다고? 


"총통 각하, 장자충 장군은 휘하 잔여 병력 약 5000명을 데리고 베이핑을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며, 바오딩에 지금 막 도착했다고 합니다."


5000명이라... 장자충과 함께 베이핑을 지키러 남은 병력이 약 3만명인걸 생각하면, 약 2만 5천명이 이번 전투에서 사상당한 것이다. 원 역사에서 죽은 1만 6천명의 2배에 육박하는 숫자긴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가장 큰 차이는 원래 역사에서는 베이핑을 지키던 쑹저위안의 판단으로 베이핑에서는 저항을 하지 않고 모두 탈출했었다.


물론 지금은 베이핑을 그냥 '베이핑 평원' 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격하게 저항했고. 실제 아까 일본군 선전 영상에도 제대로 남아있는 2층 이상 건물이 거의 없긴 했다.


주변의 톈진이나 고려평 지역에서도 베이핑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맞서 추가로 천명 정도의 사상자를 일본에 발생시켰다. 결국 모두 일본에게 함락되긴 했지만. 


일본군들은 일단 베이핑 성에서 재정비를 하는 모양새고, 이른바 '장제스 라인' 이라 명명된 창저우-바오딩-장자커우 선도 빠르게 보강되고 있었다. 현재 그 지역에는 약 30만 정도의 중국군이 있고, 이 정도라면 베이핑 탈환도 노려볼만하지만, 기본적으로 무기도 차이나고 무엇보다 약 1달 뒤 상하이 사변도 지금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걸 위해서는 전국에 총동령원을 내리던지 해서 추가로 병력을 징집해 상하이-항저우 쪽에 배치할 필요가 있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앞선 베이핑에서의 대접전으로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어 나조차도 일본이 어디 상륙할지 제대로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역사대로 상하이랑 항저우 지역에만 상륙해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뜬금없이 웨이하이나 푸젠 같은 곳에 상륙할 수도 있는 거니까. 해상권을 일본이 절대적으로 장악하는 중이라 알본군이 상륙을 시도할 경우 그것을 해상에서 막을 힘은 없다. 그냥 상륙하는 족족 다시 해변으로 밀어버리는 것만이 답이지만, 이것조차도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정예 독일식 사단 87, 88사단을 배치하고 원래 장제스가 했던 대로 상하이 주둔군을 재개편해서 8 집단군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원 역사에서 이래도 뚫렸던 만큼 잘 될지는 모르겠다. 나도 중일전쟁은 많이 파본 편은 아니라 여기서 뭘 해야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실히 모른다.


"천더밍 국제연맹 대사에게 국제연맹 총회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발표를 하라고 지시하게. 이래도 서양 열강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최소한 항전 의지는 대외적으로 확실히 해야지."


실제 역사에서도 중일전쟁 초기 서양 열강들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제 연맹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정신적 지지' 라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거나 영국이 본인들의 상하이 이권이 위협받으니까 중재 시도나 했을 뿐이지.


"지금 영국 대사를 호출할 수 있겠나?"


"최대한 빨리 호출하겠습니다."


1시간 정도 기다리자, 휴 게센 영국대사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오늘도 건강이 좋아보이십니다. 총통 각하."


"대사도 그동안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오."


잠깐 의례적인 외교적 수사들이 오가다가. 대사가 먼저 본론을 제기했다.


"그래서, 저를 호출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대사도 지난 7월 8일 일본의 도발로 인해 전쟁이 벌어졌고, 현재 베이핑 인근 지역에서 일본과 전투 중인 건 알고 있을 것이오."


"중-일 양국간에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국에게 작금의 중-일간 분쟁에 대한 중재를 요청하고 싶소."


"일단 제 권한을 좀 벗어나는 일이라, 본국에 전보를 올려보겠습니다."


"고맙소. 우리 중국은 무엇보다 평화를 중시하지만, 작금의 일본제국이 계속 극동의 평화를 깨는 행동을 하고 우리 땅을 공격할 경우에는 우리도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전해주셨으면 하오."


"총통 각하와 귀국의 의중이 최대한 전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로 10분 정도 더 대사와 대화를 하고, 대사를 돌려보냈다.


"일단 영국애들 반응은 예상대로고... 미국도 뭐 비슷하겠지?"


이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이번 전쟁에 관해 추가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갔다. 앞으로 며칠간 꽤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