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쓰러트린 용사는 공주와 결혼했고, 세계에는 평화ㄱ/


로빈은 책을 덮었다. 책을 휙하니 옆에 던져버리며 한숨을 내쉰 로빈은 그 책이 다시 발 옆으로 굴러 떨어진걸 보고는 시선을 돌리자 책을 던졌던 곳에는 이미 던져진 책들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더럽게 많네"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린 로빈은 자신이 있는 서재를 둘러보고는 구석에서 수레를 찾아 끌고와 쌓여있던 책들을 하나씩 실었다.


[마지막 전사] [마왕용사] [용자전설]


하나같이 용이던 마왕이던 하는게 나타나 깽판치고, 갑자기 어디서 온 자칭 용사가 그걸 쓰러뜨리는 희망 가득하고 멋있게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들이였다.


"퇬"


로빈은 책 위에 침을 뱉고나서 나머지 책을 모두 쑤셔넣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저택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가정집보다는 큰, 2층에 마당딸린 집이였다. 로빈은 자신이 혼자 이런 집에 살게 된 게 어느정도였는지 잠시 떠올리며 끌고 온 책들을 모두 마당에 붇고 나서 어디선가 기름을 잔뜩 묻힌 휴지를 구해왔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휴지에 불을 붙이고 그걸 책의 산에 던지며 로빈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화악 이라는 효과음이 들릴거같이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하는 종이쪼가리들은 어느새 멀리서 보면 큰 일이라도 난 것 처럼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먼지인지 재인지 모를 것들이 코와 눈을 괴롭혔다.


"아"


그걸 보다가 문득 아까의 생각에 답이 떠오른 로빈은 숨을 내뱉듯 소리를 냈다.
361일
1년이 조금 안 남은 날 수이다.
428일 전 그의 아버지는 북쪽으로 떠났고, 그로부터 67일 후인 361일 전, 마지막 가정부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로빈의 아버지는 몇 동료와 함께 마왕을 잡기 위해 떠났으며 1년 넘게, 정확히는 1년하고 2개월에 2일이 지났다.
로빈은 장갑에서 손을 빼며 손등으로 눈을 돌렸다. 대칭을 이룬 채 날카로우면서 견고한 모습의, 선명히 보이는 용사혈통의 문장.


로빈의 아버지는 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