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굳이 힘들게 저럴 필요 있어?"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

두꺼운 양장책에서 눈을 떼고 주인이 손님을 돌아본다.

손님은 한쪽 책장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거기에는 사서가 책장에서 책장으로 힘겹게 넘나들며 하나하나 책을 정리하고 있다.

주인이 고개를 기울이며 손님에게 묻는다.


"어떤 의미?"


마법책이 가득한 대도서관의 주인인 마녀와 

마법과는 무관한 그저 도서관에 방문했을 뿐인 손님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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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란걸 이용하면 책같은거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지 않아? 주문 한번 외우면 이 넓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한번에 불러오고, 또 주문 한번에 원래자리로 되돌리고. 굳이 저 사서가 이 무거운 책을 고생하면서 하나하나 옮길 필요가 있냐는거지."


손님의 의문은 얼핏 그럴싸해 보였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법 하지. 일반인에게 마법이란 뭔가 신비한 분위기를 내면서 주문 한번에 뭐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만능의 것이었으니.

그러니 화내지는 않는다.

다만 불쌍한 수강생에게 이 학자가 특별강사로서 가르침을 전수할 뿐.

그렇게 도서관은 학문의 장(場)의 역할을 수행한다.


"먼저 물어볼게, 다른 평범한 도서관은 어때? 거기에도 사서가 있어? 아니면 그 과학의 힘으로 자동으로 책을 찾고 정리해주는 기계를 활용해?"


"음, 규모는 여기보다 작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지. 컴퓨터 덕에 대출이나 재고현황 관리는 도움받지만, 책을 직접 나르는건 사람을 이용할 수 밖에 없지. 자동으로 다 해주는 그런 기계를 만드는건 너무 힘드니까 말이야."


"왜? 컨베이어벨트가 있잖아, 바코드도 있잖아, 로봇팔도 있고, 카메라와 CV(Computer Vision) 등등 기술과 이론은 넘치도록 있잖아."


"그 정도면 이미 도서관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가깝겠지. 개별 기술이야 있지만, 아직 극도로 제한적이고, 그걸 이런 범주에서 사용하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론을 확립해야하고, 이 모든걸 이뤄내려면 돈과 시간과 부피 등등 자원제약도 있고, 또 단순 구현하는것과 그걸 실제 적용해서 운영하는건 또 다른 큰일이니 결국 일개 도서관에 적용하기에는 수지타산이 안맞지. 아, 마법도 비슷한 이유야?"


"정확해. 사람들이 보면 그냥 주문한번 외우고 끝나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몇년의 피나는 노력이 들었는지 상상도 못할거야."


그냥 피나는 노력이라고 압축해서 그렇지, 일일히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 자체로 맹독인 수은을 다루고, 애초에 수은을 얻기 위해 주사(朱沙, 황화수은)을 정제하는 위험천만한 공정을 거치고, 애초에 그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사와 설비가 있었고…


이렇게 힘들게 정제한 수은이 의도한 작용을 하기 위해 정확한 공식을 구성하고, 하나의 공식을 위해 수십가지 공식을 조합하고, 수십가지의 공식의 제반을 이루는 수백가지의 이론을 탐구하고, 그 이론들을 찾기 위해 수천권의 책들을 넘나들고, 그나마도 옳은 정보, 잘못된 정보를 해독해야하고…


심지어 그걸 행하는 술자 역시도, 조금만 흐트러져도 180도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는 마나를 세심하게 조절하기 위해 수년간의 지루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훈련을 거듭하고, 온갖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항상 보유하고 다니며, 신과 악마, 환수(幻獣) 등등 온갖 마(魔)적인 존재와 마주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정신단련까지...


그러니 하나의 주문은 그야말로 피와 살과 땀을 먹고(정말로 피땀를 재료로 하는 마법도 있지만) 완성되어 행해지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오묘한 예술적인 기예(state-of-the-art)다.


마도(魔道)를 걷는 입장에서, 여기까지의 과정을 그저 신비하게 분위기잡고 뭔가 신비한 말 한마디면 뭐든지 가능할거라 여기는 비전문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리가 없다.


"어라? 그러면 마법은 과학이랑 다를게 없잖아. 근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그리고 어김없는 클리셰(cliché). 지금까지도, 지금부터도.


"과학이 뭐라고 생각해?"


아니, 지금부터는 수강생에 따라 다르려나?



"음… 뭔가 계산적이고, 딱딱하고, 조금만 다르게 말해도 그건 틀렸다고 불같이 덤벼들며 정확하게 고치려드는것?"


"과학자의 편견도 조금 들어간것 같지만, 뭐 그렇게 보이지. 그런데 왜 그럴까?"


"철학은 이렇게 말해도 맞다, 저렇게 말해도 맞다 그렇잖아, 문학은 맞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신학은 나만 맞고 너는 다 틀렸다 그러고. 근데 과학이나 수학은 이건 맞았다 저건 틀렸다 어떨때는 자기 스스로 지금까지 틀리게 알았고 실제로는 이게 맞다 그러기까지 하는데, 스스로 잘못을 밝히면서까지 맞다 틀리다에 집착하는것 같아."


자기 주관과 편견적 표현이 많이 들어간 편이지만, 이 수강생은 우수한 편이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야. 철학적 방법론에서도 가장 엄격한것만을 빌려 모순없이 논리적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수치화, 공식화시키는 학문이지. 그리고 더 중요한건 이것이 의미하는 바야."


<어떤 아름답고 완벽해보이는 이론이라도 자연현상과 모순이 일어난다면, 그 이론은 틀렸다.>


과학자는 자연에 목숨을 건다.

자연에 자신의 생사 여탈을 맡긴다.

지금까지 알려진 공식을 조합해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 그것을 자연에 묻는다.

그러면 자연이 판결한다.

그 공식은 맞았다. 

그 공식은 틀렸다.

합격한 공식과 그 설계자는 고전이 된다.

낙방한 공식은 폐기되고 그 설계자는 지난날의 노력을 되돌아본다.

누군가는 지난 노력이 휴짓조각이었음을 깨닫고

누군가는 노력의 오류를 찾아내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다른 공식과 협력하여 전혀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자연에 묻고,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 판결을 내린다.

그것이 과학의 모든것이다.


위대한 대학자 아이작 뉴턴경이 프린키피아(Principia,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통해 열어제낀 현대적 의미의 과학은 다른 학문에 비하면 짧지만 굵고도 찬란한 역사를 일궈냈다.


"자, 여기까지는 과학이고. 그렇다면 마법은?"


뉴턴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시조라 부를만 하다. 그렇다면 마법의 시조라 부를만한 이는 누굴까?


"음… 옛 동화속 마녀들? 마녀사냥? 멀린?"


"시몬 마구스, 그리스도, 솔로몬, 앙그라 마이뉴, 복희, 로키, 토트, 미네르바, 케찰코아틀 이외에 잊혀진 세계 각지의 신화속 신과 마신들. 더 나아가면 이들의 이야기를 경전과 구전에 새겨냈을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의 주술사들. 더 나아가면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마(魔)를 다뤘을 이제는 알 수 없는 생물들."


"아무리 마녀가 신을 모욕한다는 이미지가 있다지만, 너무 대담하고도 신성모독적인거 아니야?"


"자, 이게 마학 이론을 말하고, 마도를 걷는다는 마녀(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야. 근데, 이렇게 신성성을 깨부수는게 뭔가 닮지 않았어?"


"흔히 강경한 과학자가 내보이는 이미지같은데?"


"왜냐하면 마학은 당시로는 계량할 수 없었던 자연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다루려 했던 시도들이었기 때문이야."


당시에는 수학이라는 도구가 발명되기도 전이다.

그렇기에 사원소와 에테르, 기, 음양오행, 룬문자, 차크라, 영혼과 정령 등등 여러 체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마학의 마나(Mana, 魔力)와 통합되었다. 거기에 연금술과 그 후계인 화학기호, 화학과 협력한 물리학의 영향으로 수학공식까지 받아들인 상태.


"즉, 단순히 오래되었고, 수백세대를 거듭하여 상속된 지식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기술과 마법이라는 형태만 다를 뿐, 기본 원리는 과학이나 마학이나 똑같다는 의미야. 그리고 이는 신학과도 통하는 바가 있지. 하지만 신학과 마법 사이의 관계는 현대 마학조차도 첨단의 영역이니 넘어가자고."


여기까지.


수강생의 요구에 의해 강사의 준비된 강연은 여기까지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수강생의 차례.

훌륭한 강연은 논리적 정합성, 지루하지 않을 흡인력,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수강생들의 공감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여기 수강생은 어디까지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내 강연은 어떤 평점을 매길까? 

그걸 알 방법은 단 한가지. 강연이 끝난 뒤의 질의시간. 이 시간만큼은 강사가 스스로의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수강생을 동료 학자로 대우해주는 시간이다. 

한창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은 강사의 권위로 강단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일단 강연을 끝마쳤다면, 그때까지 남아있던 수강생은 지금 이 주제에서만큼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해줘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학자로서의 겸손. 무지(無知)의 인정.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평가. 그리고 지성의 확장을 위한 시도. 


지금까지 지식의 일방적인 전달을 통한 학문의 전파 시간에서, 

지금부터는 지식의 쌍방향 공유를 통한 학문의 발전 시간으로 이어진다.


"네 말대로라면, 마법 역시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 하지만,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마법도 분명 존재해. 마법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 이 경우에 현대까지의 과학이론은 틀렸다는거야?"


"좋은 질문이야."


강사가 미처 강연에 끼어넣지 못한 부분. 제딴에는 스토리텔링의 완결성과 강연분량을 신경쓰겠다고 생략했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 강연의 내용과 배경지식만으로 도달할 수는 있지만, 오랜 숙고를 통해야 힘겹게 도달할 수 있는 부분. 이 경로를 단축시키는 촉매재가 바로 강사의 역할인데, 직무유기했던 부분을 놓지지 않고 짚어주었다. 그러니 이것은 좋은 질문.



그리고 이 자리의 문답을 굳이 글로 옮기는 저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네 말대로, 현대과학은 틀린게 맞아.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 진리에 대한 의미이지. 현대 과학기술의 결과물을 봐봐. 원자력 발전과 수소폭탄, 달과의 거리측정을 위한 반사경, GPS, 인터넷, 플래시메모리, 스마트폰, 전 지구에 걸친 항공교통시스템. 과학이 틀렸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영역이지. 뉴턴역학부터 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까지. 그런데, 과학은 언제나 틀려왔어.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지. 뉴턴은 수성의 세차운동을 설명하지 못했어. 그러니 현대 과학은 충분히 많은 것을 설명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아. 과학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언제나 기존 체계의 붕괴를 일단은 염두하고 있지. 그리고 뉴턴 이전까지 마법은 서로 이론을 공유하지 못하고 씨족단위로 제각각 발전해와야만 했지. 왜냐하면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가지는 의미는 만물을 설명하는 계량화된 공식을 떡하니 눈앞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이야. 이것은 마법을 통합시켜주었지만, 동시에 과학과 마법 사이에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었어."


마나(Mana)의 존재. 현대 마학에서는 마력(魔力)이라고 부르기를 권장하나, 여전히 고전 마학의 영향으로 꾸준히 병기되는 용어.


"물질세계는 표준이론, 즉 중력, 전자기력, 강한핵력, 약한핵력으로 설명되지. 그러나 마법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마력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해. 문제는 마력은 표준이론의 힘과는 달리 보편적이지 않다는거야."


마력의 분포는 물질분포와 무관하고 완전히 독립적이다. 심지어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가 존재하는 한편, 부모 모두 마법사임에도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력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반인도 있다. 분명히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기본힘이지만, 자연 보편적이지는 않다. 현대 과학은 아직 이것을 계량화하지 못했다. 완전히 똑같은 도구, 똑같은 절차로 진행하는 실험이 단순히 계측하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반대의 결과를 내는데, 현대 과학이 도대체 어떤 방법론으로 이를 계량하겠다는건가. 그 황당하다는 양자역학 실험조차 절차만 준수하면 지구 어디에서든 동일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법적 실험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현대 과학은 마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아직 교차검증이 가능한 보편계측조차 확인하지 못했거든. 일단 계측이라도 가능해야 경향성을 파악하고 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텐데, 그 전제조차 확인하지 못했으니 유사과학에 불과한거지. 하지만, 네 말대로 자연에 마법현상은 실재해. 적어도 우리 마법사들은 그렇게 믿어.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 과학은 불완전한 학문이야."


물론, 아직 학문의 확립조차 덜된 마학이 말할 처지는 못된다. 여전히 현대 마학은 고전 마도를 완전히 상속받이 못했다. 이론의 기초조차 모른채 마법을 행사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과학의 힘으로 마법사인양 행세하는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진짜 마법사들도 끊이질 않는다. 그나마 과학 내에서는 유사과학에 대한 검증이 대체로 잘 이뤄지기라도 하지만, 유사마학에 대한 검증을 사실상 손놓고 있는 마학도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언젠가 마력 역시 표준모형에 편입될거라고 믿어. 그렇게 과학과 마학은 하나로 통합될거야."


나같은 학파를 통일장마학파라 부른다.

이 외에,

마력으로 표준모형을 설명하려 하는 신고전마도파,

표준모형으로 마력을 설명하려 하는 계량적마학파,

마력과 표준모형 모두를 설명하거나 어디에도 끼지 않는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려는 재야학파 등이 있다.


사실 재야학파의 경우는 현대 마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존의 마법사들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수를 헤아리는게 불가능한 유사마학자도 포함된다.


"질문에 대답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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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면 수강생은 손님으로 돌아간다.

도서관장 역시 원래 읽던 책으로 눈을 돌린다.

수백년 살아온 마녀는 별안간 이 주제가 괜찮았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집필을 하였다.

책 제목은 위대한 현대물리학자의 저서를 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