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나란차는 자동차 뒷자리에 트리시가 요구한 것을 비롯해 각종 식료품들을 잔뜩 실었다.


“장보기 끝. 주변 이상 없음.”


나란차는 팬을 들더니 지도를 펼쳤다.


“어디…보자. 여길 지나서… 여기서 꺾고 이 길로 돌아오다가… 반대쪽으로 가는 거야.”


나란차는 차를 몰며 몇 시간 전 푸고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건 식료품이랑 그밖에 이것저것 사와야 할 것들 리스트예요. 그리고 이게 자동차 열쇠고요. 나란차,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나란차라면 무사히 해낼 수 있다니까요!”


나란차가 고개를 끄덕이자 푸고는 은신처 너머 포도밭을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나란차! 이 ‘은신처’에 지금 사람이 있다는 건 저기 저 앞쪽 밭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와인 농가조차도 모르는 비밀이에요… 장보기가 끝나면 먼저 차로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빙빙 돌아봐요… 그러다 갑자기 ‘유턴’하는 거예요… 나란차를 미행하는 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봐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마을 주차장에 미리 준비해둔 다른 차로 갈아타고 와요. 우리가 2층에 있는 ‘보스의 딸’을 호위 중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누가 우릴 찾고 있을 경우 무어보다 놈에게 허용해선 안 될 게 바로 미행이에요. 내 말 잘 들어요… 살 건 다 사와야 해요. 그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은신처’가 탄로나는 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지해야 해요…”


“알았다니까~ 그놈의 잔소리~ 나만 믿어!”


“좋아요… 방금 말한 ‘순서’를 처음부터 반복해봐요…”


“…살 건 다 산 다음 와인 밭에서 빙빙 돌다가…”


푸고는 차 키로 나란차의 배를 찔렀다.


“아파! 뭐 하는 거야!”


“그게 아니잖아! 자꾸 장난칠래! 다시 한번! 처음부터 똑바로 말해봐!”


“빙글빙글 눈 돌아가지 않게 운전…”


푸고는 또 나란차의 배를 찔렀다.


“뭐냐고 진짜아아! 아바키오, 푸고한테 ‘차 키’로 찌르지 말라고 말 좀 해줘! 내가 나이도 더 많은데!”


“전 역시 이 멍청이한테 장을 봐 오라고 시키는 게 걱정이에요!”


“’찌르든 안 찌르든’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할 문제야… 하지만…! 나란차의 ‘스탠드 능력’이라면 만에 하나 미행자가 있다 해도 저지하는데 안심이니까 부차라티도 나란차를 보내라고 지시했던 거야.”


“요컨대 미행만 당하지 않고 돌아오면 되는 거지? ‘미행’만!”


다시 현재, 나란차는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돈 다음 차에서 내렸다.


“이상하다… 어쩐지 이상해… 딱히 쫓아오는 차 같은 건 안 보이지만…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

‘이래선 푸고가 준비해둔 다른 차로 갈아타기도 영 그런데…’


그때, 나란차는 인기척을 느꼈다. 어디선가 능글맞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답이 없군 그래~ 한도 끝도 없이 빙빙 돌기만 하고 말이야…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지? 응? 나란차?!”


나란차는 자동차 밑을 살폈다.


“밑에서 목소리가?”


나란차는 다급히 차 안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 탄 것인지 웬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나란차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가르마를 이상하게 낸 파란 스포츠 머리, 징이 잔뜩 박힌 주황색 반팔 겉옷과 배가 훤히 뚫려 있는 초록색 망사… 남자는 원래부터 동승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응? 나란차…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냐고…? 아까부터 계속 말이야… 누가 미행이라도 하나? 널?”


나란차는 잭나이프를 펼쳐 남자의 목에 들이밀었다.


“뭐야, 너 이 자식!”


“이거, 이거, 살벌히가도 하지…”


“어디에 있었어?! 당장 못 내려?!”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답이 없군 그래~ 지금 질문하는 건 난데 말이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법이 어딨어… 예의에 어긋나는 짓 아니냐?”


“닥쳐! 뭐 하는 놈이 냐니까, 너 이 자식!”

‘위험해, 이 자식 위험한 놈이야… 우릴 쫓고 있어… 분명 탄로난 건 아닐 텐데 우리 뒤를 캐고 있어! 스… 스탠드 유저인가?’


“답이 없군 그래… 대답을 안 하니 내가 먼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지. 내 이름은 ‘포르마조’. 조직의 멤버다. 설은 어제 ‘폴포’가 죽은 것 같던데 부차라티, 푸고, 아바키오, 미스타가 다같이 어디로 모습을 감춰버렸어.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더리고. 나란차 넌 겨우 찾긴 했는데, 무슨 일이지? 다들 어디 있는지 혹시 넌 알고 있나?”


나란차는 표정변화 없이 말했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내가 무슨 호출기도 아니고 말이야… 어디 있겠지. 레스토랑 같은 데 가서 찾아보지?”


“이 차~ 렌터카 맞지? 빌린 게 부차라티더군. 그래서 이 차를 쫓아왔는데 말이야. 그런데 왜 네가 이 차에 타고 있지?”


“나… 난 맨날 부차라티 차 끌고 다니거든. 난 17살이라 차가 없으니까… 그래서 빌리는 거고.”


포르마조는 표정을 싹 바꿨다.


“들었나? ‘폴포’의 시체 말이야… 화장하는데 장의사가 무슨 수로 그걸 태우나하고 머릴 싸맸다더군! 그 ‘거구’를 무슨 수로 아궁이에 처넣나 하고… 우히히! ‘동강동강 썰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안 들어가게 생겼으니 말이야아아아!”


포르마조는 뜬금없이 마구 웃었다. 마치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 같았다. 나란차가 덤비려는 순간, 포르마조는 곧바로 웃음기를 싹 지웠다.

“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말에 나란차는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그 순간, ‘포르마조의 스탠드’가 튀어나왔다.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 자그마한 보라색 우주복을 입은 듯한 모습에 키가 작은 인간형 스탠드가 초록색 눈을 반짝이더니 그 찡그린 얼굴을 들이밀며 검지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란차의 뺨을 갈라버렸다. 상처에서 피가 튀고 나란차가 비명을 지르면서 상처를 부여잡자 포르마조는 표정을 싹 굳히며 소리쳤다.


“답이 없군 그래! 왜 ‘간부’의 장례식에 코빼기도 안 비추는 거냐? 네놈들! 바른 대로 불지 못해! 나란차! 미행이 불가능하면 이것저것 네놈이 바른 대로 불어줘야겠다!”


“이 새끼… 이 망할… 새끼가… 뒈져버려!”


그 순간, 잔뜩 독이 오른 나란차의 뒤에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빨갛고 자그마한 전투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역갈매기 형 날개를 단 붉은 전투기가 난데없이 나타나자 포르마조는 당황했다.


“뭐냐… 뭐냐, 그게?”


“에어로스미스!”


“스탠드 유저였냐… ‘리틀 피트’!”


그 순간, 에어로스미스는 ‘리틀 피트’의 공격을 피해 공중에서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앞유리로 날아가 날개 아래에 달린 기관총을 갈겼다. 순식간에 앞유리가 산산조각나고 앞좌석에 바람구멍이 났다. 


“이… 이거, 위험할 것 같은데…!”

‘이제 막 뺨을 벴는데… 제때 발휘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