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달빛마저도 밤하늘의 구름에 가린 어느 날 밤이었다. 

낮에도 키 큰 가문비 나무들에 하늘이 가려 밑에는 뾰족한 가문비 나뭇잎 낙엽과 버섯만 채일 정도로 어둑한 숲 한가운데에 있던 

마탑에 어느 늙은 마법사가 살고 있었다. 


그 날, 곤히 자고 있던 늙은 마법사는 늦은 밤 몰래 

자신의 마탑에 찾아온 밤손님의 단검에 비명 한 번 못질러보고 명치를 관통당하고 말았다. 

암살자는 들어오기도 힘들게 탑 구조를 꼬아놓은 복수라 생각하며 마법사의 명치에 단검을 쑤셔박았다. 


마법사를 처리한 그는 이제 자신의 고용주가 가져오라고한 물건이 어디 있을까 하며 

피가 흩뿌려지고 기괴한 그림과 룬 문자만 가득한 스크롤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방을 둘러보려 몸을 돌렸다. 


사박,하는 소리가 나며 마법사의 책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가 바닥의 스크롤을 밟자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 순간이었다.

 분명 여러 사람을 해쳐본 기억이 있는 그에게 반쯤 불가능한 기척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뭐, 뭐야?" 목소리 마저 숨겨야할 암살자임에도 

그 상황에 당황하여 뇌에 떠오른 낱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자신의 단검이 명치에 제대로 꽃혀있음에도, 

멀쩡히 일어나서 자신을 응시하는 마법사의 은빛 눈동자는 수많은 죽음을 보아온 그마저도 기겁하게할 광경이었다. 


"이거, 니꺼냐?" 마법사는 자신의 명치에 박힌 

그의 단도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쑥 뽑고서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 광경에 그를 죽이러 왔던 암살자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의 단도가 박혀있던 상처에서 

어둠 속에서도 붉게 보이는 피가 쫙 터져나왔음에도, 마법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음걸이를 암살자의 곁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를 죽이러온 암살자는 생각했다. 이것은 환영일까? 

천천히 걸음걸이를 빨리하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저 마법사는 사실 늦게 작동한 침입자 방어용 마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왕국의 깨나 힘쓰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용주의 뒷배가 의뢰할 정도의 암살 대상이라면 명치가 뚫려 죽어가면서도 환영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언데드?


 그 순간이었다. 하늘을 찢을 거 같은 기합 소리가 들려온 것은. 

"내 연구물을! 밟지 말란 말이야!!" 


다음 순간에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머리가 새하얘졌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자신의 턱을 날카롭게 강타한 마법사의 매콤한 주먹맛을 본 그녀는 

그대로 마법사의 책상 위로 나둥그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암살자가 위로 쓰러지며 폭삭 주저앉은 

책상 위에 있던 수많은 연구 물품과 각종 스크롤, 책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떨어졌다. 


"쿠엑!"이라는 인상적인 비명을 지르며 자빠져 기절하고만 암살자를 내려다보며 늙은 마법사는 숨을 고르며 땀범벅이 된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크샨이 보낸건가." 저도 모르게 중얼댄 마법사는 어느새 아물어 흉터조차 남지 않은 자신의 명치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고통도, 상처도, 그 무엇도 그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런 상황에 절망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님, 실패했다고 합니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안뜰에서 제 자식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쉬던 크샨 공작은 집사가 말하는 실패했다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럴 줄은 이미 알고 있었어. 믿을 만 하대서 써봤더니, 3류 푼수떼기 였나보군."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콧방귀조차 뀌지 않은 공작은 접시째로 찻잔을 들어올려 스푼을 몇 번 

휘휘 젓고는 향과 맛을 음미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런 남들이 알면 우스울만한 전통을 가진 집안이 세상천지에 몇이나 될까?


벌써 5대째 내려져오는 전통이다. 약 500년 전에 있었던 대균열 사태때 홀연히 나타났던 용사가 승리하고서 10년 째되는 해부터 만들어졌다는 전통. 

그 누가 내렸는지 모를, 그러나 분명히 내려진 용사의 축복이자 저주, "용사와 마왕은 서로 이외에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용사는 인간으로써 참으로 많은 것을 마왕으로부터 빼았겼다. 가족, 친구, 첫사랑.. 

그럼에도 결국 그것은 오히려 마왕의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진짜 문제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용사의 아내가 사고로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은 일부터 시작이었다.


용사는 그 날 울부짖으며 하늘을 탓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 이런 시련만 내리냐며 하늘을 탓했겠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죽음에 미친 사람이진 않았을 것이다. 옆에서 위로해줄 사람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진짜 문제는 느린 자연사의 가위가 그를 

비껴가면서 부터였다.


사람은 수많은 인연의 실이 지탱해준다. 중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의 실은 굵고 그렇지 않으면 얇다. 

그 굵고 얇은 실들이 지탱해주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들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한 올 한 올 잘려져 나가는 것을 관망만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왜 그가 죽고 싶어하는지, 왜 그가 도저히 사람이 많은 곳이 싫다는지, 왜 그가 은둔해서 말도 안되는 연구에 

모든 것을 매진하는 지도 사람으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친구였던 자들이 죽기 전에 유언을

제각기 남긴 것이었다. 모두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되게 뜻은

"그를 편하게 해달라"는 뜻으로.


 ..우리 가문의 시조이신 그리츠 크샨께서 남기신 말은 

그에게 암살자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년마다, 

최소한 한번 씩은. 


"아빠! 공 좀 던져줘요!" 딸아이의 목소리다. 구두에 공이 

툭 닿았다가 멈춘다. 

"던질테니까 받아야한다!"

공을 줏어서 던져주자 그걸 받고는 

씩 웃어보이곤 다시 나에게 모르는 척 

다시 던져주는 딸아이,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공놀이하기로 넘어가는 법을  아는 똑똑한 내 자식, 

저 애에게도 이 전통을 물려줘야할 날이 올까?


제발, 나처럼 엉겹걸에 우리 가문이 더러운 뒷세계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는지, 그게 얼마나 오래된 전통이며

그걸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심사가 뒤틀리는지 아는 나는 그저 하늘에 빌어볼 뿐이다.

아, 제발 저 애에게 차례가 넘어가지 않도록, 그를 죽여주세요, 라고.


"이제 거의 알 것 같았는데, 너 때문에 다시 해야하잖아!"

성내는 포인트가 상당히 잘못되어있는 

이 전직 용사, 현직 은둔 마법사에게 천장에 샹들리에 처럼 매달리고 있는 치욕스런 형벌을 받는 경력 2년의 암살자 프린은 인생에 이렇게나 쪽팔리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데체 무슨 연구였길래 그렇게 성내고 그러는데!"

그러자 용사는 아예 목에 핏대를 세우고선 성을 냈다.

"내 인생 최대의 연구를 너하나 때문에 말아먹을 수도

있었단 말이다! 망할 것아!"

그가 입에서 불이라도 뿜을 것같이 구는 것 때문에 

프린은 질문하기를 그만두고 그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알 수없는 장치들이 가득하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힌 스크롤들이지만 드문드문 알아볼 수 있는 산퀘어들을

모아 그나마 해석 가능한 문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의뢰주가 왜 그를  암살하고 "보석으로 

인장이 되어있는 책"을 찾아 오랬는지에 대해 헤아렸다.

그리고 모은 정보를 종합해본 것을 머리 속에서

굴려보니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만 계속나와 

결국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만 들고 말았다.


/네크로멘서? 죽은 자의 부활? 그런 민담에나 떠도는 허구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 따위를 암살을 의뢰해?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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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