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말이 전해지지 않을 걸 압니다. 연모하는 마음이 닿지 못하고 스러질 것을 압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곱씹을수록 홀로 더 서글퍼자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얼거려 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석의 서로 다른 극이 서로 이끌리듯,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사랑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아쉽습니다. 저는 작은 자석이도 쉽게 이끌리는 조그마한 쇠붙이일 뿐이지만, 당신은 끌려오기에는 너무 무거운 쇳덩이라는 것이. 결국 제 작은 마음은 이끌려 날아가 당신의 마음에 철썩 달라붙습니다.


당신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손끝이 닿는 순간 우리가 하나로 이어진 것을 느낍니다. 전기가 통하는 듯, 온 세상이 하얗게 번쩍거리다가 저는 실에 꿰인 나비가 되어 천장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금세 추락할 덧없는 비행이라는 건 알아도, 아주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납땜이 식고 회로가 타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시선이 머물도록 저를 가장 화려하게 불사르겠습니다.


2.


모두 당신이 정해 주었지요. 제가 처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디로 다리를 뻗을지. 어떤 색으로 빛날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모두 당신이 정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입으로 빛을 말하는 당신의 주변은 온통 어둠투성이라,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당신을 연민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릅니다. 


뺨을 간지럽히는 봄바람. 반쯤 걷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이유 없이 짓는 우유향기 나는 미소. 그런 것들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물론 나는 모릅니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제 스스로 일어설 수조차 없는 다리를 가진 내게 행복이란 너무나 먼 단어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런 나보다도 행복에 무지해 보여서, 내가 아무리 밝은 빛을 드리워도 당신의 얼굴에서 그림자를 걷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배우고 싶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행복들을. 나도 알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배우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내게 행복을 학습케 하는 것은. 당신이 떠날 때가 되면 온 세상이 차갑게 식고, 내 몸 안에서 타오르던 빛도 시드는데. 투명한 얼굴을 가진지라, 당신이 왔다 하면 안에서 홧홧하게 일어나는 불빛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나와 함께 발그레해지면, 그제서야 당신은 또 책을 집어드는 것입니다.


바로 옆장에 놓인 온갖 서정소설은 내버려 둔 채 또 수식이니 회로니 하는 당신의 모습마저 사랑스럽습니다. 나는 기억합니다. 우리의 첫 날. 빛이 들어왔다며 무구한 얼굴로 웃던 당신의 모습을. 당신은 그 때와 같이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는 그 손짓마저도.


당신의 처음인 것만으로 분에 넘치는 영광일진대 당신의 마지막이까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요.

내가 이렇게 녹아내리는 것도 벌을 받고 있는 걸까요.


도망쳐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나는 당신의 손에 의해 끼워진 작은 전구일 뿐. 사랑하고, 기뻐하고, 공유하고, 연민하고, 모두 나의 역할은 아닐진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자그마한. 아주 작은 빛으로 당신의 앞을 조금 더 밝게 비추는 것 뿐인데.


너무 많은 걸 탐냈던가요. 여전히 책장을 넘기느라 바쁜 당신의 손 뒤에서, 기계장치의 화신인 나는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는데. 타는 냄새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조금씩 튀는 불똥이 책장에 옮겨붙고, 아. 가장 먼저 타들어가는 건 당신이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먼지 쌓인 서정소설들.


내가 당신의 마지막이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