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은 피가 잔뜩 묻은 남자. 망연 자실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인다. 주변은 온통 시체들이 즐비하다. 불꺼진 무대마냥 헉 헉 

거친 숨을 쉰 그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었다. 저 어둠속부터 이 빛 무더기까지 호랑나비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아온다. 

곧이어 암전되고, 스텝롤이 올라간다. 만든 이들의 이름이 뜨고 빈 하늘 위에는 하나의 문장이 떠오른다. 


 -The end-  인상이 찡그려지는 남자. 이렇게 했는데도 Finn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이야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 빌어먹을 짓거리를 대체 얼마나 더 해야 엔딩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쉽게보았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하는것엔 다들 

이유가 있었던 것인데..... 전임자가,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는 말을 그냥 흘려 듣는게 아니었었는데.


 과거의 기억에 대해 남자가 독백하고,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시작은, 어느 작은 극단에서 부터. 이제는 정말로 고전이 되어버린 소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 10명도 채 안되고, 그나마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세명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무대 위의 남자, 혼신을 다 하여 연극을 이어간다. 그런 남자를 유심깊게 

보는 다른 남자. 익숙한 얼굴이다. 


 연기를 끝마치고 무대 밑으로 내려온 그에게 박수를치며 웃음 짓고 맞이하는 다른 남자, 유성.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 하며 

근처에 어디 카페나 가서 말하자고 남자에게 제안했고 둘은 카페로 간다.  


 차가운 얼음이 잔뜩 들어있는 음료수를 천천히 빨아마시며 대답하는 남자. 그러니까.....일자리 알선이라 그거지? 그렇지. 마침

전임자가 뭐 좀 안좋은 일이 있어서 자리가 비는데 페이도 나쁘지 않아 기간도 뭐 일년 단위고 금액도 아까 말한 정도. 몸쓰는일

전혀 아니고 그냥 게임일 뿐이야. 위험한 일도 아니니까 걱정 할 필요 없고. 옛날 일 때문에 그래? 에이 그게 벌써 몇년전 이야긴데

정화 시집 갔잖아. 진짜 그냥 니가 연기를 잘 해서 쓰는 것일 뿐이야.  너가 평소에 해 오던것 처럼. 연기만 하면 그만이야. 


 유성이 요구한 역할은 그것. 최신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에 필요한 역할군으로 들어가, 요구하는 바 대로 연기하며 상대하는 npc들

의 반응을 원하는 상황에 제대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


  최신 유행하는 이 온라인 게임은 그간의 온라인게임과는 진행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 해당 시즌에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고 다시 되돌리는 과정에서 무수한 엔딩으로 점수를 모으고, 끝끝내는 해당 시나리오의 게임 디자이너가 숨겨둔 진 엔딩을 최대한 먼저 보는것을 두고 경쟁하는 온라인 게임. 해당 세션 사람들은 랭킹권에 도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로서 

최대한 효과적이고 빠르게 진 엔딩을 보기위해 엑팅 파트의 맴버가 필요해 그를 섭외 했던 것.      


 원래대로라면 거절해야 했을 제안. 유성과는 이전에 극단에 있던 맴버 정화를 두고 싸운 좋지 않은 과거가 있었기에 썩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듣고 생각 해 보겠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유성은 뒤에서 웃으며, 한번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잘 생각해보라 말 한다.  뒤로 닫히는 문. 카페 문꼬리에 달린 종소리. 무심하게 남자는 극단으로 향한다.  


 소극장에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낡은 소품들과 해진 의상들. 기어코 그거라도 기워 입어 보겠답

시고 몇번이고 재봉틀을 두드리며 수선하는 후배들을 보고 있자 하니, 또 핸드폰으로 건너오는 대출 상환 독촉 문자를 보고 있자 하니 계속해서 유성의 제한이 걸리기만 한다. 


 자기 선배들에 의해 이어진 이 극단이 재정의 악화로 자기대에 곧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유성의 말에 호응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금 전화를 걸어 하겠다 말 하는 남자.  웃으며, 주소를 찍어 줄 테니 찾아 오라 말 하는 유성. 남자는 핸드폰에 적힌 주소를 따라, 남자에게 갔다.  


 의외로 찍힌 주소지는 고급 주택가. 으리으리한 문을 두드리자 나오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생긴 집사와 엄격해보이는 하녀 몇. 남자는 그 사람들에게 안내받아 응접실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응접실에는, 기계를 뒤집어 쓰고 이미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노인들과 

젊은 남자들 몇 몇.   


 잠을 자는 것 같으면서도 깨어있는듯이 말하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진 그의 뒷편에서 등장하는 유성. 

뭘 그렇게 놀라냐 물어보며 설명 할 테니 자리에 앉으라 말하는 유성.  


 너에게 해당 시나리오상의 중요 인물 몇명의 소울을 인 게임에서 집어 넣어 해당 인물의 역할을 맡길 샘이다. 우리가 현재까지

구한 것은 국왕, 이발사, 젊은 남편과 키다리 아저씨. 상황에 따라 네명을 연기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서포트 해 줘야 겠다. 

말만 들어서는 모르겠지? 그러면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보자. 한번도 안 해봤으면, 해 보면서 설명하는게 맞겠지.

일단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먼저 들어갈 꺼고 그건 너의 모습이겠지만, npc의 소울로 들어간 npc의 모습은 해당 npc와 동기된 

상태라서 조금 다를수도 있어.


 그러고 나서 들어간 vr기기. 가상 현실. 분명 자신은 쇼파에 누워 있었는데 어느세 도착한 것은 북적이는 도시의 한 복판.  

유성은 이 곳이 현실과 얼마나 유사한지,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한참을 설명한다.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 할 것인데 괜찮겠냐 묻는다. 뭐,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데.....바로 시작하지. 라고 말하자마자 유성은 씨익 웃으며 그에게 딱봐도 비범해보이는 무구 하나를 던져준다. 그러고 나선 본인 또한 비슷한 무장을

꺼내어들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난사하기 시작한다.


뭐해 죽여, 지금 당장. 보이는 사람들 전부 다. 한번 쓸어내야 이게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거든?


 죽이는 이유는 그것. 게임이 고이다보니까 한 시즌이 통쨰로 난수 고정인 경우도 있고, 난수 고정이 아닌 경우도 있었는데 제작년 시즌 부터는 선택적 난수 고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확실히 어느 부분의 난수가 고정인지 변동 확률이 있는것인지 알기 위해 

처음 몇 회차 동안은 볼 수 있는 종류의 배드엔딩은 다 보는것이 먼저라는 것. 


 무구를 들고 유쾌하게 휫파람을 불며 양민들을 학살하는 유성의 모습. 광기 그 자체. 하지만 남자는 쉽게 유성처럼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유성과 동맹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유성을 향해 공격하는 다른 병사들이 그 또한 같은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게되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어 공격을 막아내고 피하다가 푹, 사람을 죽이게 된다. 


 꿰뚫린 폐에서 축축한 숨을 내뱉다 곧 숨이 먿는 병사. 병사의 모습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컨디션이 매우 나빠진 것인지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기기의 바이탈 사인으로 인해 강제로, 남자는 로그아웃 된다. 


 뭐 그렇게 무서워하고 겁내냐. 그냥 게임일 뿐인데.  그리고, 너는 게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 하러 온거 아니냐? 너 뭐 그래서 

일년 채울 수 있겠어?  


냉수를 건내며 남자에게 그리 말하는 유성. 남자는 찬 물을 마시며 머릿속에 보았던 병사의 모습을 지워나가려 했다.  


 몇일이 지나고 살육이 무덤덤해 질 쯤 파악한 난수. 해당 작업이 전부 끝나고 난 후 이제부터 시작이라 말하는 유성. 남자는 돈을

벌기위해 작업을 이어나간다.  


 연속되는 비 인간적인 행동과 비 정상적인 연기들. 거기서 남자가 맡은 캐릭터들은 사건의 중심이 되어가는 캐릭터의 멘탈을 터뜨리는 것에 있다.  완전이 정신을 잃어 미친사람으로 만들거나, 목을 메달아 죽게 만들거나. 남자는 너무도 리얼한 npc들의 모습에 괴로워 하면서도, 분기별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다발을 보며  전전긍긍한다 


 끝끝내 오랫동안 정 들었고 가장 친해진 npc라 부를 법한 여인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죽임으로서 완전히 인간성이 무너져내린 남자는 그제서야 전임자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지 알게된다. 진영이라 했나? 전임자의 이름. 그 이름이 얼마나 힘든 삶을 이어

왔는지를 공감하며 남자는 시즌의 끝에서 진 엔딩, Finn을 보고 돈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 한 이후 전임자와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목이 부서져 기이하게 꺾여 매달린 방 안. 발 밑에 둔 의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써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이었어.


 그의 유서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유성. 그와 함께 들어 온 또 다른 중년남성 하나.  씁쓸하게 시체를 치우며 유성을 향해

말한다. 진짜 앵간하다. 이렇게 까지 스토리를 암울하게 짤 필요가 있었을까? 그새끼들은. 뭐, 안그러면 너무 엔딩을 쉽게 보니까

그런가 보죠. 겹중세계로 얼개를 짠 것도 다 그렇게 하기 힘들게 하라고 짠 거 같은데. 


 야 그래도 이번엔 너 때문에 진 엔딩 빨리 보겠다.   야 이런식으로 저 캐릭터 자살 시키는건 진짜  다른 공대는 상상도 못 할꺼야?

안그래? 


 진영아. 


.....뭐 오래 했으니까요. 갑시다. 시신도 다 치웠는데.  


 땅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당기며 뒤돌아 나아가는 유성, 아니 진영. 불은 활활 타오르고 방 안의 모습들은 하나씩 불타 없어져

픽셀 쪼가리로 녹아든다.  불이 타 오르는 방 안에서, 호랑나비 한마리가 날아 와 섶불 위를 날아다닌다.

 

 ------------------------------------------------------------------------------

술을 마시면서 싸질러보는 망상. 내일 봐서 부끄러우면 걍 지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