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남자에겐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아주 짧은 기간 그건 그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는 대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서 꾸는 꿈 속에서도 남자는 경찰이 되진 않는다. 이제는 매일 소주를 마시고 잠드는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소녀는 그런 그의 삶을 처음부터 지켜 봐 온 존재였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어느 교실에, 어린 소년이 일어나 "저는 커서 도둑을 잡는 경찰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선생과 다른 여러 아이들이 함께 박수를 치는 모습을. 소녀는 교실 뒤편에서 그 소년과 함께 미소지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남자에게서 그런 모습은 사라졌고 소녀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그를 도울 수 있을지를. 하지만 한낱 하급 천사에겐 수많은 제약이 걸려있었다. 소녀는 변해가는 그를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그를 지킬 뿐.


 하지만 소녀는 오늘 남자의 꿈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 


 눈을 뜨자 눈 앞에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등에는 작고 하얀 깃털날개가 달려있었다.

 남자는 꿈 속에서도 취한 듯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머리를 흔들었다. 소녀는 그런 그를 보며 자애롭게 미소지으며 양 팔을 벌렸다. 그녀는 노래하듯이 고백했다.


 나는 당신을 지켜봤어요.


 나만은 당신을 지켜왔어요.


 그녀가 남자의 수호천사였음을. 살아가는 순간 순간에 남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를 수없이 지켜왔음을.


 남자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소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저벅저벅 걸어가 소녀의 하얀 옷을 잡아 뜯듯 멱살을 잡아올렸다. 터질 듯이 눈을 치켜뜬 채로 남자가 외쳤다.


 "지금까지 뭐 했어!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뭐 한 거냐고!"


 "하, 하지만 신님은 인간의 뜻을 존중하라고 하셨는 걸요."


 날개 달린 소녀는 버둥거리며 새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이고, 천사는 그저 그를 지킬 뿐이라는 걸.


 남자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소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얘기했다.


 예를 들면 남자의 어린 시절. 그가 화풀이로 때린 어떤 소년이 그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가방 안에 식칼까지 담아왔지만 소녀는 그 애가 혼자 남은 어머니를 떠올리도록 했다. 그 애는 점심시간에 깊은 잠을 잤고 소년을 죽이지 않았다.


 "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 밖에 없어요..."


 "그러지 말았어야지!" 남자는 눈을 부릅뜬 채 절규했다.


 "아아아, 그러지 말았어야지!"


 모두 네 잘못이라고. 그렇게 외치며 얼굴을 쥐어뜯는 남자를 보면서 소녀는 뒷걸음질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고 소녀는 그제야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공간에서 남자는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 울고 있었다.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남자의 흐느끼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 


 잠을 깨기 전 남자의 눈에서 옆으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여전히 그의 방이었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묶인 채 굴러다니고, 빈 소주병과 반 쯤 남은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익숙한 지옥이었다. 아직 점심이었고 그나마 내일은 휴일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에는 새빨간 피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잠시 천장을 보며 꿈에서 본 무언가를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눈에 낀 검은 기미처럼 남자는 체념할 뿐이었다.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소주를 찾아 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의 눈앞에는 날개가 달린 사자가 서 있었다.


 황금빛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사자는 하나밖에 없는 창문의 빛을 받으며,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자세로 그의 더러운 방 위에 서 있었다. 노란색 눈동자가 소주를 쥔 채 굳어있는 남자의 앉은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남자는 손을 뻗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자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어딘가 슬픔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아, 하고 남자는 기억했다. 꿈 속에서 보았던 하얀 머리칼을 지닌 작은 소녀의 모습을.


 다음 순간 날개 달린 사자는 하얀 물새처럼 달려들어 거칠게 남자의 목을 물어 뜯었다. 남자의 좁은 방에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가 앉은 자리를 두르고 있던 소주병과 쓰레기 더미에 새빨간 피가 피어올랐다. 생명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고통이 사라지자 남자는 아주 오랜만의 평온을 맛봤다. 그러면서 어쩐지 그는 어릴 적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교실에서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기엔 마음씨가 좋은 여선생이 있었다. 자신과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남자의 시꺼먼 눈에 담겨있던 빛이 꺼지고, 사자는 혼자 남아 고개를 늘어뜨린 채 남자의 죽은 목덜미를 물고 있었다. 사자의 자애롭고 커다란 눈동자 아래에 눈물이 맺혔다. 누구를 위한 눈물이었을까.


 순간 남자의 방바닥이 갈라지며 아래의 시뻘건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천사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끝



 * 소설 쓰는 과정 해체 용 예시용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