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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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성스러운 빛


잔이 지하실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바닥에서 얼음 가시가 솟구쳐올라와 미쳐 피하지 못한 혈마법사들을 찔러 죽여버렸다. 알루카드가 소리쳤다.


“빨리 의식을 완료해라! 놈만 지배할 수 있으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네 명의 혈마법사들이 계속 주문을 읊자 아인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는 동안 알루카드는 혈마법사들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 치며 말 그대로 학살극을 벌이던 잔에게 달려들었다.


“네년도 보통 기세가 아니구나! 네 피를 내놔라!”


잔이 재빨리 거대한 불덩이리를 집어 던졌다. 불덩이를 제대로 얻어맞은 알루카드의 상체가 뜯겨 나갔으나, 그는 순식간에 하체에서 멀쩡한 상체를 복구하더니 칼을 뽑아 경악한 잔에게 휘둘렀다.


“죽어라!”


칼날이 잔의 목에 닿기 직전, 노린 빛의 방어막이 잔을 보호했다.


“아슬아슬했어, 마리.”


알루카드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의식을 빨리 끝마쳐라!”


잔은 온 힘을 다해 알루카드와 싸웠다. 하지만 그 어떠한 공격도 알루카드를 죽일 수 없었다. 얼린 뒤 산산조각을 내면 그 조각들이 다시 합쳐지고, 베어버리면 잘려 나간 곳이 다시 붙었으며, 불태워 버리면 연기가 다시 알루카드로 변했다. 옆에서 마리가 빛의 힘으로 정화를 시도했으나 그조차 통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던 잔이 의문을 표했다.


“왜 빛조차 통하지 않는 거지?”


“빛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썩어빠진 놈이라는 거지!”


알루카드가 다시 몸을 완벽히 재생시키며 말했다.


“난 1000년도 넘게 살아오며 수많은 위기에 처했고 또 그만큼 죽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생명을 얻었지… 네깟 놈들은 그 중 단 하나의 위기에 불과하다!!”


알루카드가 손을 뻗는 순간, 벽과 천장, 바닥에서 수십 갈래의 붉은 밧줄이 잔과 마리를 휘감았다.


“너희는 두 번째다! 저놈이 나의 종이 되면 그 다음은 네녀석들 차례일 것이다. 의식은 어떻게 됐나!”


“거의 다 됐습니다!”


그리고, 혈마법이 구체 안에 갇힌 아인의 정신을 침입하기 시작했다. 고통에 신음하던 아인의 눈 앞에 두 남녀가 나타나더니 몽환적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인…”


“누구냐?!”


“아인…”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아인의 눈앞에 나타난 이들은 아인의 부모였다.


“어머니… 아버지…”


“아인, 여기까지 잘 싸워줬다.”


“아니요, 아버지… 전 보다시피 이런 꼴입니다. 적에게 붙들려서 꼭두각시가 되기 직전이지요.”


“아인, 내 아들아. 네가 목숨을 걸고 지킨 네 검을 믿어라. 그 검은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게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전혀 진정되지 않아요. 도저히 놈들을 상대로는 검에서 빛이 일지 않는다고요!”


이번엔 이자벨이 아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인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가볍게 쥐었다.


“잊은거니? ‘언제나 우리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단다.’ 마음을 굳게 먹으렴.”


칼도 다가와 아인의 등에 매인 방패를 건드렸다.


“분노를 담아두지 말고 적에게 쏟아내라!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단다.”


그 순간, 칼과 이자벨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을 찾던 순간, 붉은 기운이 아인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아인을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 넣었다. 아인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자기도 모르게 검을 움켜쥐었다.


“으으으… 어, 어머니… 아버지…”


그 순간, 아인은 한 여인의 환영을 보았다. 프레야? 아니, 그 여인은 프레야와 달리 긴 흑발을 가졌고 무엇보다 아인과 정말 닮은 얼굴을 한데다 양 손엔 아인의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여인이 아인을 바라보자, 아인은 자기도 모르게 칼을 뽑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인은 기합을 내질렀고, 눈 앞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인은 눈을 떴다. 빛이 옅게 들어오는 지하실, 눈 앞에 혈마법사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아인을 바라보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돌제단에는 피가 흥건했다. 저 멀리서는 마리와 잔이 알루카드를 상대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인은 이전과 달리 그를 보고도 분노가 솟구쳐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냉정한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어,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죽여라! 빨리!!”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을 바라보며, 아인은 크게 쉼 호흡을 했다. 지금 아인의 마음은 마치 바람 한점 불지 않아 잔잔한 바다와도 같았다.


“와라.”


그와 동시에, 아인의 검이 신비로운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당황한 혈마법사들이 그 자리에 멈춰섰으나 아인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윽고 몇 몇 혈마법사들이 다시 아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아인의 검이 푸른 빛으로 밝게 빛나더니 그 혈마법사들은 순식간에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다른 혈마법사들이 혼란에 빠지자 그제야 알루카드도 아인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아인은 천천히 제단에서 내려와 혈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잦아들기는커녕 폭포수처럼 더욱더 강해졌고, 끝내 빛에 스치기만 해도 혈마법사들이 소멸해버릴 정도로 강해졌다. 전의를 상실한 혈마법사들이 모세의 기적마냥 아인의 앞에서 사라지자, 이제 아인의 눈 앞에는 역시나 경악에 가득 찬 눈을 번뜩이는 알루카드만이 남아 있었다. 가만히 두 사람이 대치하는 것을 지켜보던 마리가 물었다.


“도대체 저 빛은 뭐지?”


“나도 모르겠어…”


알루카드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 눈을 부라렸다.


“결국 ‘각성’해버린 건가… 상관 없다. 여기서 죽어라!”


알루카드의 붉은 대검과 아인의 푸른 검이 서로 맞붙는 순간, 알루카드의 검은 맥없이 두동강이 나 바닥에 뒹굴었다. 알루카드는 부서진 검의 날을 슬쩍 바라보더니 재빨리 마법을 난사했으나, 그 어떠한 마법도 아인의 검에서 나오는 빛에 가로막혀 사라질 뿐이었다.


“이 자식… 죽어라!”


아인의 검이 한순간 번뜩이더니 알루카드의 오른팔이 바닥을 굴렀다. 알루카드는 잘려 나간 오른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때? 생전 처음으로 팔이 잘려 나간 느낌은?”


“마, 말도 안 돼…! 재생이 되야 하는데!”


“살아남는 것은 이 세상의 진실뿐이다. 진실로부터 비롯된 ‘선’은 무너질지언정 결코 스러지지 않아. 네가 집어 삼켜온 그 생명은 진정한 네 목숨인가? 아니면 그저 겉보기에 그럴듯한 가면에 불가한가? 그건 이미 드러난 것 같아… 알루카드, 여기서 끝이다.”


알루카드는 격노했다. 


“입 닥쳐!! 한낱 필멸자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알루카드는 또다시 아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발악에 불과했다. 아인의 가벼운 몸놀림이 일자 알루카드의 오른쪽 다리가 잘려나갔다.


“어떤가, 알루카드? 번데기처럼 뒤집어쓴 허울뿐인 영생을 벗기니… 그 안에는 너무나도 추한 꼬락서니의 필멸자 밖에 없구나.”


아인은 천천히 알루카드에게 다가와 칼을 치켜들었다. 끝내 전의를 잃은 알루카드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오, 오지마… 다가오지 마…! 나에게 다가오지마!!”


아인의 칼이 알루카드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라버리자 잘려나간 단면에서 그가 지난 1200년여간 빼앗은 수많은 영혼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모든 영혼이 사라진 알루카드의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식탐의 알루카드 백작은 그렇게 죽었다. 수장의 죽음을 눈 앞에서 바라보던 혈마법사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파리의 날개짓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가, 이내 엄청난 혼란과 함께 도망치려 들었다. 물론, 그 몸짓은 잔의 마법에 저지당하며 한낱 고깃덩이가 될 뿐이었다. 혈마법사들까지 전멸하자, 아인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잔과 마리가 다급히 다가오는 모습이 점점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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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