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그 말을 하던 너의 눈은 한없이 어두컴컴했다. 나를 보면서도 그 눈에는 웃음을 띠지 않았다. 마치 깨진 유리처럼 가까이 가면 내 심장을 찌를 듯했다. 

 

너가 사랑하는 상대는 내 친구. 우리의 관계는 사랑을 밑천으로 돌아갔지만 결코 그 사랑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세상의 눈을 속이는 가짜 연인. 그 대역으로 받는 대가는 없었다. 

 

아리따운 여인들의 사랑에 내가 낄 틈이 어디 있나 싶다가도 가끔은 이게 낫기도 싶어 그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가짜 연인 행세뿐. 언젠가 친구를 사랑했던 내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렇기에 난 너의 빈 사랑을 받아주었다. 

 

그래도 겉모습만이라도 연인이랄까 가끔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단칼에 거절하던 너의 목소리에는 독기까지 어려있었다. 그 뒤로는 난 더 이상 너와 친구 사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살벌하게 추운 어느 겨울이 돼서야 이제는 이 연인 행세도 끝이 날 거란 걸 직감했다. 친구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 홀연히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때의 너의 표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그런 거다. 바보 같으면서도 그걸 받아들이며 세상에 대해 잊을 수 있겠지. 너도 결국은 떡갈나무 아래 빈 묘지에 묻힐 운명이었을 거야. 내 친구가 없었다면 더 일찍 찾아왔겠지. 


오늘도 빈 터에 바람만 나부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