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양이 가면을 주웠다. 하굣길, 집으로 가던 도중 길가 풀숲에서 발견했다. 하얀색 배경에 붉은색, 금색으로 선을 그어 검은 수염을 마감한 모양새는 한눈에 봐도 보통물건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묘한 광채에 이끌려 그만 집까지 가면을 가져오고 말았다. 

 

방 책상에 놔두고 보니 우리 집이 비루해 보일 정도였다. 이리저리 가면을 돌려보고 확인했지만 그 어디에도 주인의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가면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적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주인 찾기는 진즉에 포기하고 나는 한 번 가면을 써봤다. 놀랍게도 가면은 내 얼굴에 딱 맞았다. 미간 사이 치수가 정확히 들어맞아 시야를 전혀 가리지 않았다. 그 기막힌 우연에 놀라워하던 도중 문득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면에 손을 뻗었지만 팔이 닿지 않았다. 시선도 낮아지고 몸도 가벼워진 게 이상해 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내가 고양이가 돼 있었다. 

 

소리를 질러보아도 야옹야옹하고 울기만 했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고심하던 중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살려달라고 외쳐봐도 고양이 울음소리로밖에 나오지 않았던 통에 어머니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녀석, 또 길고양이나 데려왔네.”

 

아니에요.

 

물론 그 소리는 애처로운 야옹 소리가 되어 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잡아서 대문 바깥에 내려놓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울어댔지만 어머니께선 ‘시끄러운 고양이네’ 이 한 마디로 무시하셨다.

 

돌연 집에서 내쫓긴 나는 대문 앞에서 떠나지 못하며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는 억울함과 괜히 이상한 거 주워 왔다는 후회가 마음속에 어지럽게 했다. 결국 지 풀에 나가떨어져 소리 지르는 것도 그만두었다. 만사가 귀찮았다. 얼른 이 고양이 가면을 벗고만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쓴 이상 어떤 힘으로 이 가면을 벗어버린단 말인가. 출처도 불분명한 고양이 가면이 요상한 힘을 부린 걸 어디로 가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절망은 끝없이 추락했다. 어쩌면 일평생 고양이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들쑤시고 다녔다. 

 

“고양이를 뒤집어썼구나.”

“네?”

 

그때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덩치가 큰 고양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냥 평범한 길고양이.”

 

장난치지 말라는 소리가 목까지 걸렸지만 꾀죄죄한 몰골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혹시 이 가면에 대해 아세요?”

“알고말고.”

 

자연스럽게 살랑거리는 꼬리. 이거다. 이 고양이의 도움만 있다면 나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인간으로 돌아가죠?”

“그건 몰라.”

“네?”

“그건 나의 주인님만이 알고 있지.”

“잠깐 아까 길고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옛날엔 아니었지.”

 

그럴 리가. 그렇다면 주인을 잃어버린 고양이의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너무 걱정 마. 주인이 있는 곳은 알고 있으니까.”

“정말요?”

“대신 인간으로 돌아가면 츄르 하나 사줘.”

“으흠, 거래감은 확실한 고양이시네요.”

“그게 나야.”

 

아무튼 츄르 하나 관계에 묶여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따라와 주인은 옆 동네에 살고 있어.”

“아, 네.”

 

담장 위로 점프해 사라져가는 그를 따라갔다. 그래도 나름 고양이라고 몸은 날아갈 거 같이 가벼웠다. 뒤뚱거리는 엉덩이에 살랑거리는 꼬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앞발이 리듬감 있었다.

 

평소 고양이들은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돼보니 신기했다. 꼼지락거리는 앞발바닥으로 돌바닥을 밟는 느낌도 신선했다. 

 

인간이 아닌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길이란 건 되게 무질서해 보여도 다 정돈돼 있었다. 예컨대 들쑥날쑥한 풀숲에도 다 고양이가 지나갈 만한 길들이 있었다. 이상한 냄새들도 났는데 그는 그것이 다른 고양이의 체취라는 걸 설명해주자 갑자기 소름 끼쳐 냄새 맡근 걸 그만두기도 했다. 

 

“저기요.”

“응?”

“그쪽은 누구길래 절 도와주세요?”

“나는 그 누구도 아냐. 너를 도와주는 건 빚이 있어서 그래.”

 

빚이라. 

 

난 누구에게 무언가 은혜를 준 적이 없다. 다만 적이 될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빚이니 뭐니해도 상황만 어지러울 뿐이었다.

 

“그 빚, 꼭 갚아야 해요?”

“뭐, 굳이 갚을 필요는 없지.”

“근데 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 말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그의 의지 같았다. 나 또한 더 이상 그의 신상을 캐묻지 않았다.

 

확실히 옆 동네까지 거리가 있었지만 그가 다니는 길로 다니니 거의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니 슬라이트 지붕으로 된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벽돌로 겹겹이 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집 뒤편, 뜯어진 철망 안으로 그는 뛰어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는 따라서 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다. 술과 담배 그리고 어지러운 약 냄새가 삼박자로 정신을 어지럽혔다. 

 

“이런...”

 

그는 방 한 켠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시체를 놔두고. 

 

“이게...”

“그래, 내 주인이지.”

 

딱 봐도 깡마른 팔뚝에 머리는 훌렁 벗겨진 노인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왔더니 죽어 있구만.”

 

이미 오래전에 죽은 듯 부패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바로 먹은 것들을 게워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 여기 네가 원하던 거.”

 

그 뒤 화장대 위에서 종이 한 장을 물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그 가면을 벗는 방법.”

 

나는 조심스럽게 앞발로 종이를 넘겼다. 그곳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가면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 그냥 돌려줄게요라고 말하면 된다.”

이리 쉬운걸 그렇게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니. 나는 마음속으로 작게 외쳤다. 

 

’돌려드리겠습니다.‘

 

눈을 떴을 땐 내 손발은 원래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에 눈이 갔다. 안 그래도 고생했을 시체에 나는 두 손 모아 명복을 빌어줬다.

 

그 뒤 112에 신고하고 안 사실로는 그 노인은 취미로 고양이 가면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과는 이별하고 고양이 한 마리 하고만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고양이를 한 번도 놓아주신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주인이 생전 남겨둔 통로로 집 안팎을 드나들 수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츄르를 사서 노인의 집으로 갔지만 그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 노인의 집 앞에 츄르를 두고 다시 한번 명복을 빌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