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뜨고, 자리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문 밖에 있는 사샤와 마주보는 구도가 되었다. 사샤는 웃으면서 나한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반찬을 막 집은 참인지라, 무언가 들려 있는 젓가락을 흔들 수는 없기에 우물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만을 끄덕여 주었다. 사샤는 그런 나를 보고서는 재미있다는 듯이 씨익 웃고서는 담배 연기를 뱉어 내었다. 그리고서는 방 안까지 들리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나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청소를 늦게 내려가기 위해서 좀 더 시간을 끌려는 것일지도.

 

 "미샤, 여자친구 있어?"

 

 "없어요."

 

 사샤는 귀에 손을 대고서는 상당히 과장된 표정으로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했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사샤에게 들리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방 안에서 크게 이야기하면,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민폐잖아.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두 손을 올려 X자를 만들어 대답하였다. 사샤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서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민재 결혼할 나이 지났다. 여자친구, 빨리빨리."

 

 나는 다시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주었다. 이건, 뭐 대화를 하려고 해도 한 쪽만 잘 들린다면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사샤는 양 팔을 등 뒤로 짚고서는, 담배를 마치 굴뚝처럼 세우고서는 그 자세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담배불 끝의 연기 뿐, 사샤는 그대로 앉아서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사샤의 구름 감상은 나와 형우가 밥을 다 먹은 그 시점에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변한 것은,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없어진 것 뿐. 형우는 식후연초는 불로장생이라는 격언을 실행하기 위해서, 담배를 꼬나물고서는 사샤 옆에 앉아서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 사샤 형.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요?"

 

 "하늘 본다."

 

 "그, 하늘 보는 건 알겠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냐구요."

 

 "고향 생각난다."

 

 "아, 그래요?"

 

 형우는 약간 멋적은 듯이 대답하고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는 형우의 말에 대답했다.

 

 "고향, 우즈베키스탄. 오블라... 아, 구름. 구름 없고, 하늘 맑다. 서울은 항상 흐렸다. 오늘은 하늘 맑아서 우즈베키스탄 생각 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번 여름에 몇 안되는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그 말을 들은 형우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잡티 없는 단 하나의 색깔이 세 사람의 시야 전부를 사로잡았다. 덧칠한 흔적도 없는, 파란색에 더 가까운 하늘색. 나를 위시한 세 남자들은 잠시 일을 가야 된다는 생각도 잊고서는, 아무것도 없는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샤는 약간 취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딸 지금 내년에 학교 끝난다. 그 때 간다고 말했는데 못 갈 것 같다. 시간 없다. 지배인 형님, 좋은 사람이지만, 그 때 힘들다고 했다."

 

 어떤 얘긴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샤와 까쨔는 부부다.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딸이 있는데, 한국에 돈을 벌러 부부가 같이 오긴 하였으나 아이는 모국에서 키우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은 친척집에서 자라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까지가 전에 직원 회식을 할 때 들은 이야기의 전부다. 까쨔는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려 하였으나, 혀 꼬부라진 소리로 러시아말을 섞으며 딸아이의 이름을 외치다 사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에서야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한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형우는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담뱃불을 바닥에 지져서 껐다. 그러고서는 조금 경직된 말투로 대답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형님 그러셨구나. 엄청 고향 돌아가고 싶으시겠네. 나는 재혁이가 불러서 그럼 먼저 내려가 있을게. 얘기 끝내고 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형우는 그 길로 계단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저 녀석은 참, 술먹은 때와 아닐 때가 정 반대다. 먹기 전에는 말이 많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 않는데, 술만 마시면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 된다. 그냥 껄끄러운 게 싫어서 그러는 걸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옥상에는 나와, 그리고 사샤 둘이서만 남아 있다. 사샤는 형우가 갔다는 사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 바쁘지만 한국이 좋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일이 없다. 그리고 돈 안 벌린다. 내 형, 숲에서 나무 베고 동물 잡아. 겨우 가족들 밥 먹는다. 나하고 까쨔, 형, 형 부인, 딸 모두 돈 보내준다."

 

 아무래도 사샤는 자기가 이야기한 것에 스스로 빠져드는 스타일인가 보다. 처음에 이야기 할 때 까지만 해도 유쾌했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어서, 황급히 주제를 돌리려 말을 꺼냈다.

 

 "형, 어떻게 들리실 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딸 두고 오신 거,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한국에서 얼마나 애들 키우는게 힘든데요. 동생들 보면 학원 보낸다, 어디 과외를 한다 애들조차 쉴 틈이 없다니까요. 차라리 조금이라도 마음편하게 지내는게 따님한테도 도움이 될 거에요."

 

 내 말은 진심이다. 난 아무리 해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게 내 자식녀석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애들한테 사회는 1등만이 살아남는 세계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부터 주입시킨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런닝머신 위에 던져진 것 처럼,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라는 사회성을 기르는 요람에서, 과정을 제외한 그 결과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그들이 푸는 문제집과 같이. 내가 어떻게 이렇게 단정짓냐고? 대학생 때 저학년 애들을 상대로 과외를 해 보았기 때문에 안다. 왠만한 부모들은 모두 극성이고, 다른 집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따라하고 봐야 속이 풀린다. 물론 내가 몇몇 부모들만 보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고 들었던 것 역시, 내가 겪은 것과 그닥 다르지는 않았다. 

 왠지 얘기를 하고 나니 내가 답답해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서는 사샤를 다시 쳐다 보았다.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는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지만, 조금 그의 얼굴이 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마워, 미샤. 그래도 딸 보고 싶다."

 

 내 예상대로 어느 정도 기분은 풀린 것 같다. 나는 아까와는 다른, 안도감에서 나오는 한숨을 한 번 내뱉었다. 그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이제 일하러 갈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내려가죠. 까쨔도, 형우도 지금 밑에서 기다리는 것 같던데. 아직 프론트에서 부른 것 같지는 않지만."

 

 "잠깐 기다려 봐, 미샤. 저거 봐라. 우즈베키스탄에, 저런 큰 새 많다. 아까 말한 대로, 내 형, 아호트닉, 한국말로 뭐더라... 어쨌든, 저런 새 잡으면 비싸게 팔린다."

 

 그렇게 이야기하고서는 사샤는 손가락으로 하늘 모처를 가리켰다. 그 곳에는 온통 한 가지 색깔이었던 하늘 한 중앙에, 약간 앵무새같은 빨간 빛깔의 새가 한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날아 다니는 게 특이하다. 무슨 서부시대 습격받은 역마차를 선회하는 독수리마냥, 계속해서 이 모텔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활강하듯 날개를 쭉 피고 있는데, 전혀 날갯짓을 하지 않는 품새가 날개 같지는 않고, 뭐랄까... 치마? 그래, 치마에 가깝다. 저 모습은. 그리고 잠시 모텔로 가까이 날아오는 모양을 보니, 빨간 색깔 가운데 머리 쪽만 다르게 하얀 터럭이...


 ...잠깐.

 

 언제나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선다. 나는 엄청나게 부산스럽게, 사샤의 주의를 흐트리려 핸드폰까지 동원해가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 형! 지금 형우가 내려오라네요?!"

 

 갑자기 안 되는 연기를 하려니까 목소리 톤 이 붕 떠버렸다. 느닷없는 고음에 사샤는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날 쳐다보며 되물었다.

 

 "내려오라고?"

 

 "네! 지금 문자 왔는데, 글쎄 방이 한 다섯 개는 밀려 있대요! 아이고, 빨리 가봐야 겠네! 자, 저도 화장실 갔다가 빨리 내려갈 테니까, 어서 내려가 보세요. 까쨔가 기다린대요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이야기가 먹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급박한 연기다. 상황도 급박하고, 연기력도 급박하다. 나는 관용구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샤의 등을 떠밀어 옥상에서 내려갈 것을 촉구하였고,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한 사샤는 그만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려 버렸다.

 

 "미샤, 미샤, 나 담배..."

 

 

 

 "담배, 거 몸에도 좋지 않은 걸 왜 자꾸 피려고 그러실까? 급하다니깐요?! 자자, 빨리 내려가요 어서. 저도 갈게요 빨리!"

 

 2호선 신도림역 출근시간에 전철에 사람 집어넣듯, 꾸역꾸역 사샤를 옥상 내려가는 계단으로 밀어넣고, 잽싸게 식당 안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주방이모는 아까 일을 끝마치고 내려간 듯 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서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제발 내 예상이 틀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