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렸을 때 부터 판을 두고 벌이는 모든 종류의 수 싸움을 좋아했다. 그에게 장기는 한()과 초()가 궁 안에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는 공성전이었고, 바둑은 그 자체로 반상 위의 전쟁이었다. 노인은 젊었을 때 부터 계속해서 바둑과 장기를 즐겼다.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많이 판 위에 돌을 올렸음에도 사실 노인의 실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손에서 놓은 돌 하나, 말 하나가 이루어 내는 흐름이 좋았다. 가끔씩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수를 두고, 그것을 즐겼다. 물론 그것이 패착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는 승패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 생각하며,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어느 덧 그의 인생도 60대를 지나, 바둑으로 말하자면 계가를 해야 될 시기가 왔다. 일평생 즐기던 바둑과 장기도 요새는 조금 멀리 하고 있었다. 세월이 한 장 한 장 겹쳐감에, 그간 두어왔던 기보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중복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수를 찾지 못하는 반복은,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취미 생활에서도 흥미를 갖지 못하고 적적해 하는 노인을 안쓰럽게 여겨, 그의 가족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노인을 찾아왔다. 하릴없이 지내고 있던 노인에게 나름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 중 어느 날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노인의 손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체스 두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방에서 분명 예전에 비슷한 것을 보았던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체스를 보여주었다.

 

 으레 새로운 것을 접하는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노인도 처음에는 이게 뭐냐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손자의 설명을 하나 하나 들으면서, 노인은 어렴풋이 체스가 갖고 있는 다른 방향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그 방향성에 관심이 가는 지를 깊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어느 새 노인은 손자와 체스를 두고 있었다.

 

 흑백으로 나눠진 64개의 칸 위에 선택의 기로들이 쏟아진다. 노인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얀색 기물들을 골라내, 각자가 위치해야 할 곳에 배치한다. 폰은 두 번째 줄에, 룩은 양쪽 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왕을 중앙 오른쪽 칸에. 정해진 것은 정해진 자리에. 자신의 순서는 상대방 다음. 그리고 상대방의 순서는 나의 다음. 정사각형의 판 위의 절대적인 법칙. 노인은 이미 바둑과 장기에서 그 진리를 인정했다. 이것은 지켜야 될 법이나 명령 같은 것이 아니라,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 이 나무판 위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첫 수가 떨어졌다. 체스를 말 그대로 서양의 장기라고 생각한 노인은 차()길 빼듯이 오른쪽 제일 끝 폰을 두 칸 앞으로 전진시켰다. 나름 학교에서 친구들과 배우면서 정석이라고 배운 게 있는 손자는 할아버지한테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 킹 앞의 폰을 빼셔야 되요’ 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어 버렸다.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외우기만 했을 뿐, 그 뒤의 상황을 할아버지가 질문하면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노인은 그 간의 경험에서 끝 폰을 움직인 것이 잘못된 수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장기에서는 졸() 한번의 움직임에 차의 길이 바로 열린다. 그리고 상대 진영 안의 공간이 넓기 때문에, 충분히 상대방에게 생각을 강요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체스에서는 폰을 움직인다손 치더라도 룩이 나가기 위해서는 두 번을 움직여야 하며, 안에서 날뛸 공간도 전무하다. 노인은 속으로 혀를 차며 다음 수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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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언제 25,000 자 제한 생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