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프론트에서 말한 말마따나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형우는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고, 카트를 두고 왔던 11층 계단에서 담배를 피면서 계단에서 쉬고 있었다. 형우는 나를 보자마자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채근했다.

 

 "사샤 형님은 이미 내려 왔드만, 넌 왜 이리 늦어?"

 

 "아, 미안. 화장실 갔다 오느라."

 

 '동거인이 외계인 여자 아이인데, 사실 이 녀석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오늘 백화점에서 옷을 샀는데 그걸 보여주려고 우리 모텔 옥상으로 날아서 왔다 라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형우는 그 사실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리돌이 처음 왔을 때, 분명 형우한테 얼결에 지각 핑계로 리돌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녀석은 그 말이 내가 지어낸 거짓 변명거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별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던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 모텔 안에서 가장 성적인 농담을 즐겨 하는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싫어할 리가. 아니나 다를까, 형우는 혀를 끌끌 차며 나와 내 엉덩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거, 여자친구 없다고 외롭다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받아주고 그러면 안돼. 너무 해대서 조절이 안 되니까 화장실에서 오래 있고 그러는 거 아냐, 지금."

 

 뭐, 이런 식이지. 나는 알았노라 대충대충 대답하고서는 아까 지배인이 말했던 사항을 확인해 보았다.

 

 "야, 근데 너 아까 내려가서 피자 먹고 왔냐?"

 

 "어. 아까 무전기로 불렀는데 너 안 내려 왔었잖아. 그래서 전화하려고 그랬는데 만수형이 자기가 부른다고 그래서 따로 얘기 안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지금이라도 좀 쉬어 둬야 한 번에 몰아닥칠 객실의 폭풍에 대비할 수가 있다. 지금 이렇게 쉬는 시간이 오래 간다는 의미는, 손님들이 한 번에 빠진다는 얘기다. 아마 이제 곧 있으면 객실 콜이 쏟아질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이라도 좀 오래 쉬어 두는 것이 낫다.

 

 <C팀, C팀, 4층입니다. 4층>

 

 "자, 이제 시작인가!"

 

 형우는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일어났다. 계단청소를 한 지가 상당히 오래 되었기에, 형우의 슬리퍼가 계단에 착지함과 동시에 상당량의 먼지구름이 계단을 잠식했다.  

 에취

 

 어디선가 작은 재채기소리가 들렸고, 형우는 그 소리를 듣고서는 구수한 한반도 본토 발음으로 영어식 관용구를 구사했다. 

 

 "갓 블레스 유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품새가, 내가 재채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뭐야, 이 녀석이 재채기 한 거 아니었어?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형우를 쳐다 보았지만, 형우는 그런 내 모습은 본체만체 하며 복도에 있는 카트 손잡이를 잡고서는 엘리베이터로 밀어 붙였다. 

 

 


 저녁을 먹고 난 직후. 모텔 청소에서 가장 바쁜 시각.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노라면 생각나는 노래 가사가 하나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분명히 객실 종류는 스탠다드, 디럭스, 스위트 이렇게 세 개이고 객실의 모양도 다양한 편이지만, 하도 많이 보다 보니까 그게 그거 같아보이고 분명히 아까 청소한 방 같은데 또 다시 와 있는 것 같고 그렇다. 정신을 놓고 일하다 보면, 어느 샌가 11시가 되어 있는 마법의 공간. 
 하지만 아무리 같은 방들을 청소한다 하더라도, 객실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개성은 열 팀이면 열 팀 모두 다르다. 쓰레기통을 삼점슛 연습장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물고기의 후예인지 침실바닥까지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커플도 있었고, 침대커버와 이불보를 물이 가득 찬 욕조 안에 쑤셔넣고 도망친 애들은 아직까지도 안주 대용 이야기거리로 쓰이고 있다. 어쨌든 이런 개성 넘치는 방의 모양새들이, 내가 같은 시간축을 반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지금 치우는 방만 해도 그렇다. 마스터키를 키홀더에 꽂자 마자, 방 바닥에 널부저려 있는 것은 아름다운 닭뼈의 향연들이었다. 아마 치킨을 시켜 먹고서는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가, 뭐 다리가 엉켰는지 뭐가 엉켰는지 하여 엎어진 모양이다. 양념이 엎어져 방바닥에 침식하였고, 얼마나 세게 엎었으면 침대보에까지 다 튄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상관이 없다. 치워 두면 괜찮은데, 가끔씩 이걸 아예 치우지도 않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금.

 

 "손도 발도 없는데 그 짓거리는 어떻게들 하고 가는지 몰라."

 

 옆에서는 형우의 넋두리가 한숨처럼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 말이 그렇다. 아니, 침대 옆이 이렇게 지저분한데 할 생각이 드는걸까? 불 꺼 두면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냥 넘어가는 건가? 하여튼 여느 때처럼 쓰레기 정리는 내가 하고, 형우는 빠른 손놀림으로 오염된 침대보 및 수건들을 정리하여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쓰레기 모아서 버리고, 바닥에 닦을 것 있으면 닦아 놓고, 욕실 안에 물기 제거하고, 다시 물품을 채워 놓으면 끝. 

 

 <C팀, 4층 끝나면 5층이요. 5층>

 

 청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전이 날아온다. 사실 이제 대실을 한 타임 더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놓고, 숙박을 준비해야 될 시간이다. 평일에는 시간이 좀 다르지만 주말에는 10시부터 숙박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청소팀은 그 때까지는 들어왔다 나왔다 하는 손님들에 맞춰서 방을 계속 치워줘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대략 한 방당 세 타임 정도는 돌아간다고 생각 하는 것이 맞다. 신속하면 신속할 수록 더 수익이 짭짤하기 때문에, 왠만한 지배인들은 주말에는 청소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야, 나 먼저 올라간다."

 

 형우는 지금 이제 객실 바닥 청소를 모두 끝내고, 물기를 닦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내 어깨를 툭 한대 치고서는, 새로 갈아낄 린넨들을 들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자신의 일인 침대 베팅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몫인 비품 채우는 일까지 다 끝내 놓은 채로. 확실히 짬이 되니까, 빠르긴 빠르다. 물론 이 방 같이 욕 나오게 더러운 경우에는 당연히 내 일이 늦게 끝나는 것이 맞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도 형우가 더 먼저 끝나서 내 일을 돕는다. 그러면서 일도 정확하게 하니, 지배인이 좋아할 수 밖에.
 뭐, 저 녀석은 저 녀석이고, 나도 일단 일을 빨리 끝내야 퇴근도 조금이라도 더 일찍 한다. 아무리 부득부득 객실에 사람을 우겨넣으려고 해도, 물리적인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 빨리 하면 빨리 끝나는 것은 일반적인 업무의 상식이다. 뭐, 대한민국에는 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지만 말이다. 하여튼 나는 손의 속도를 올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입으로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지속했다. 변기를 부여잡고 한 곡 띄워 드립니다. 

 

 "신비이~로운 너으에 모스읍~ 나에게는 사라~앙 인그어얼~"

 

 이건 비밀인데, 나는 음치다. 그래도 노래 부르는 건 좋아해서, 이렇게 일하거나, 아니면 무언가일탈이 필요할 때 아무도 없으면 혼자 신명나라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어차피 누가 듣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멋대로 음정박자를 다 바꿔 버린다. 어차피 각 잡고 불러도 못 부르는데 뭐 어때. 덕분에 누군가라도 들으면, 도저히 노래라고 여겨지지 않는 괴이한 타령이 되어 버리고 만다.

 

 키킥

 

 바깥쪽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뭐야, 형우 녀석이 객실 문을 열어두고 갔나? 나는 잠시 손놀림 입놀림을 멈추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객실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어디선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아마 이 층에 객실을 지정받았는데, 지나가다 내 노래를 듣고 그렇게 들어간게 아닌가 싶다. 사실이면 참으로 얼굴팔릴 일이지만, 뭐 어때. 어차피 손님들이 내가 누군지는 모를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객실 내선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고 받아 보니, 지배인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야, 민재야. 너가 지금 401호 들어갔냐?'

 

 '아뇨, 지금 402호 청소하고 있는데요. 왜요?'

 

 '이상하다. 거기 객실 방금 전에 손님들이 프론트에 키 주고 나간 방인데, 나올 때는 문을 열어 두고 있었거든. 그런데 방금 닫혔어. 그래서 난 니가 402호 청소하고 그쪽으로 바로 들어간 줄 알았는데, 보니까 402호에 아직 키가 꽂혀 있네? 그래서 물어본 거야.'


 '다른 손님들이 나가면서 닫아둔 거 아니에요?'

 

 '어쨌든 알았다. 형우 5층이지? 그거 끝나면 바로 5층 갔다가 다시 4층 하면 돼. 4층 곧 다 빠진다. 죽 하면 될거야.'

 

 '네.'

 

 어차피 이제 이 방 청소도 거의 다 끝났다. 일단 다 젖어서 쓸 수 없는 수건은 뒤에 놓고, 깨끗한 수건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내면 된다. 그리고서 나오면서 욕실용 슬리퍼를 원위치 시켜 두고, 치약, 칫솔, 빗 등이 제자리에 위치해 있는지를 확인하면 끝. 형우가 하는 베팅까지 합쳐서, 한 방에서 모든 과정이 늦어도 10분 안에 이루어 져야 프론트에서 독촉이 들어오지 않는다. 주말에 그렇다는 말이고, 형우 말로는 평일에는 그래도 좀 괜찮다는데 나는 평일일이 아니니 잘 모르겠고. 어쨌든 이렇게 또 한 방이 끝났다. 방 안의 쓰레기를 모아 둔 봉투를 카트 옆에 큰 쓰레기봉투에 몰아넣고, 다 쓴 수건들은 복도 안에 몰아넣는 린넨 두는 곳에 갖다 두고, 5층으로 올라간다. 끝나는 시간까지 어차피 계속될 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서. 그나저나, 401호는 또 누가 열어둔 거야? 아까 제대로 안 닫힌 거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나와 형우를 보고서는, 프론트를 보고 있던 재혁이가 마치 조폭들 하는 것처럼 90도로 인사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형우를 보고서. 전에 지배인한테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 녀석, 생각보다 군기를 빡세게 잡는다고 한다. 나야 동갑내기니까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하지만.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