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음...."


베이루트에 도착하고 나서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항구로 이동하기 위해 '블랑 페니시앙(백색 페니키아인)'이라는 별명의 숙소 주인이자 '원로원' 의원의 차를 빌려서 항구로 가다가 길이 막혀서 30시간 동안 안 잔 상태의 내가 이 틈을 타 눈을 붙이겠다고 한 것이 방금 같은데, 그동안 내가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독일로 떠나왔을 때의 꿈을 꾸더니 정신을 차려보니까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벌써 도착했습니까?"


옆에 있던 붉은색 머리와 노란색 눈을 가진 중년 남성에게 도착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라프.(Graf, 독일어로 백작.) 가시죠, 이미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헤어(Herr) 우비차. 라빈 씨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죠."

각자의 무기와 여러가지 장비가 든 군장을 매고 지프차에서 내려 협력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밝히는 강렬한 지중해의 햇빛을 머금은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가지 선적 화물들과 컨테이너들이 가득한 회색빛 항구를 걸어갔다. 

페니키아인들부터 프랑스인들까지 동양과 아랍, 유럽의 숨결이 골고루 담긴 매혹적인 도시에서 아저씨 네 명끼리 '지중해의 사파이어'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온 것이라면 우리가 방탄조끼와 헬멧, 권총과 야간투시경, 그리고 그래플링 훅과 낙하산 등의 장비가 담긴 군장을 들고 올 게 아니라 좋은 양복과 여행용 가방, 10만 달러의 돈을 들고 왔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왔다. 


"도대체 왜 그쪽 나라 국방부는 임마누엘에게 줄 병력이 없다고 한 건지 모르겠군요."


칙칙한 독일인 네 명이 밝다 못해 눈을 빛으로 찌르는 베이루트의 해안을 걸어가는 것이 어이가 없어서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관광지도 아닌데 궐련 하나를 손가락에 끼워 연기를 마시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냐는 식으로 나서고 싶지만, 나와 우비차 씨는 흡연자인 반면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빌헬름 레너(Wilhelm Lehner)'와 영국 해병대에서 복무하다 건너 온 '헨리 크레퍼트(Henry Chrefert)'는 담배를 싫어하기도 하고, 공공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군장을 매고 걸어갔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나서 수습하는 게 가장 우선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IDF(이스라엘군)에서 1개 중대라도 제공할 정도도 안 될 정도로 쑥대밭인 것 같습니다."


"뭐, 지휘관으로서 본다면 어찌되었든 모사드(이스라엘의 대외정보기관)에서 두둑하게 돈을 챙겨주고 그쪽 비밀계좌를 마음대로 털어가라고 해서 좋긴한데... 자기 나라와 관련된 일에 굳이 이 독일인 히트맨들을 데려오는 것보다 자기 나라 군대나 첩보팀으로 직접 압송해오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아마도 그 정보를 가져온 것이 모사드 내 꼴통이라 국장이 보기 싫어서 용병을 쓰라고 돈만 던져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걸은지 6분이나 되었는데 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크레퍼트의 질문에 레너가 핸드폰을 꺼내 배의 정보가 담긴 사진을 보았다.


"배 이름이 '롤란트(Roland)'인데.... 저거인가?"


레너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거대한 남색 배의 선수(船首)에 'ROLAND'라 이름이 박힌 것을 보고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아랍인 한 명과 유대인 한 명의 모습으로 사실이 되었다.


"샬롬, 로이츠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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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폰의 메모장에 글을 썼을 때는 분량이 많아 보였는데, 이렇게 쓰니까 꽤 적네요... 재밌게 보셨다면 개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