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때가 지금일까

커피를 잔뜩 마셔서 심장은 벌렁거리고 누우면 속이 울렁이는데, 눈꺼풀은 감기려고 하면서도 정작 정신은 눈을 뜨라고 다그치고,
생각은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막상 머리는 멍한것이 마치 꿈 속에서 걷다가 다리를 헛딛여 추락하다 깜짝 놀라 깨어났지만 이내 다시 졸음을 이기지 못해 두어시간 더 자버리는 듯 하다.

밤에만 그런게 아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엑셀을 켜고, 논문을 펼쳐놓고, 데이터프로그램도 세팅해 놓고, 피피티까지 열어놨건만, 막상 논문 앞에서는 알 수 없는 외국어의 나열만 멍하니 바라보고, 저 수식에 알 수 없는 기호는 해독할 생각일랑 접어두고 그저 바라만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눈은 시려오고 어께와 목은 어느새 거북이자세인지라 뻐근해와 고쳐잡으면 겸사겸사 허리의 시큰함이 덮쳐오니, 에이 오늘도 텃네 텃어 하면서 커피나 한잔 뽑아들고 폰을 켜서 10분만 들여다 보다가 결국 하루를 다 보내버리는데, 정작 내일 주간회의임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 진행된 사항은 하나 없으니 이번주도 또 똑같은 그래프를 크기만 조절해서 또 보여드리고 또 한소리 듣겠구나 나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며 우울하고 신세한탄스런 노래를 배경삼아 운전하다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 벌써 집에오니, 그래도 앉아있느라 지친 허리를 쉬어주고자 불도 안끄고 잠시 누웠건만 어느새 밤이 다 지난 다음날 아침이랴, 이게 번아웃에 브레인포그가 아니면 무었이겠나 하면서도 막상 정신과에서는 2주 뒤에나 오라 자신들의 바쁨을 어필하니,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아싸에 몸만 커버리고 책임감은 잃어버린 어른이 되지 못한 법정 성인은 소비만 하며 자원이나 축내는 생활을 언제쯤 청산하고 급료에 맞는 생산을 만들어내며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늘도 자기혐오에 매몰되어 폰질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취미생활이 좋은것이냐 하면,
유튜브가 취미라도 생산적인 채널이면 좋겠건만, 마냥 게임이랑 10분 20분짜리 영양가없는 스낵컬쳐만 취급하는데, 정신에도 좋지 않은 인스턴트만 취한다.
밥도 매일 라면만 먹으면 당연히 몸이 탈나는 만큼 채소와 건강한 요리를 먹어줘야 하는데, 매일매일 정신에 컵라면과 김지튀김만 먹여주니 성할리 있나.
그럼에도 마치 당분중독자마냥 밀가루와 과자만 우적이며 집어먹고, 알콜중독자마냥 밥 먹을 돈을 막걸리를 퍼마셔대며 쌀을 먹으니 똑같다고 자위해대는 만큼, 필히 이는 정신적인 중독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끔 누리면 오히려 약이 되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문화들이건만, 너무 그 강렬함에 중독되어 몸과 마음을 해쳐버렸다.

돌이켜보면, 기회는 조금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도 재작년에는 덜 망쳤었다. 새로운 환경과 직무스트레스임에도 막상 집에서는 소설 몇편과 시 몇수 나름 만족스럽게 써내면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자아실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올해는 어떤가, 아마 작년 말의 큰 실패가 문제였나? 아니, 성공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성공을 환경의 좋음으로 돌리고, 실패는 철저하게 내 탓으로 돌리라 하였으니, 그 실패들과 불화, 손해 역시 내 게으름과 안일함 탓이렸다. 그걸 고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이 또한 결코 좋음이란 없으렸다.

타지의 발전된 기업에서 나름 업계 탑의 부품이 되어 일했다는 점에 기대어 가족과 주위에 떵떵대어 지냈으니, 돌아와서도 그 꺼져가는 후광이나 뿌려대며 허무하게 쌓여버린 거품낀 경력과 선임이라는 직책만이 공허하고, 정작 물어보면 속에 든 것은 없으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낡아버려 탄력 잃은 스프링만이 있을 뿐이었다.

옛날의 겉멋만 잔뜩 낀 얄팍한 통찰도 결국 동나버려 이제는 새로운 말을 하고 싶어도 다 이미 한 말을 고장난 테잎처럼 반복할 뿐이니, 그저 거대한 벽 속에 빛바래버린 하찮고 작은 하나의 벽돌에 지나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올해 나는 업무와 취미 모두 생산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절대적으로 보자면 아직 젊고 어리니, 지금의 밑바닥 기분을 잠시 느끼고 다시 반등하면 되겠지만, 애초에 나는 중산층의 부족하지 않은 삶을 누려온 만큼 진짜 밑바닥의 처절함을 모르는 사람들에 비해 그 추진력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현대의 정신의학은 누구나 나약한 소리를 해도 된다고 하지만, 말이나 좋지!
당연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서민도 아니고, 곱상하게 자라면서 재물이 넉넉한 재벌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낄 데 없이 당연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봐라, 또 나의 실패를 이야기하면서 주변 환경이나 탓하지 않은가. 나는 결코 성공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갈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나 하려 타자기를 잡아보자면, 또 머릿속에는 안개가 가득 끼었는데 무엇이 가능하랴.
분명 손가락은 신나게 달리고 싶어 근질거리나, 머릿속엔 말로 어지질 못하니, 브레인포그, 서킷브레이크, 망상, 공세종말, 번아웃 등등 키워드만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고 문장과 표현으로 이어지질 못한다.
다행히 오늘은 기차여행과 카페인, 자동기술의 힘을 빌어 이렇게 나열이라도 성공했으니, 지난 일년의 공백을 겨우 메꿀만한 산문이 될 수 있었는데, 언제나 사글어버린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래 작가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일하는 직업이니, 뭐가 되든 앉아서 진득히 달라붙어야 작문이 가능하건만, 지금의 군것질에 중독되고, 현생에서조차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정신으로는 쓸데없이 높아져버린 눈을 만족시킬 문예를 펼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

그래도 소스는 많고, 아직 취향은 놓질 못해 다행인가.
여전히 환상향이라는 덧없이 아름다우며 잔혹한 별천지를 바라보는 눈은 맑고, 새롭게 내 마음을 달래주는 현실과 공상을 넘나드는 아이돌의 모습에 아직 힘을 얻고 있으며, 이제 슬슬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전자구름과 방정식과 격자구조의 세계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여전히 나는 책상물림 서생으로 문장이나 적어대며 헛소리나 늘어놓는 이 활동이 마음에 든다.

단지 이들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이 감상을 전하고 싶건만, 막상 적어낼 말이 없다.
내가 지금 얼떤 기분인지 막상 정확히 규정하기란 불가하고, 그저 이를 늘어놓아 독자가 추측하게 내 의무를 방기했으니, 자연히 주변사람들도 뭐가 문제인지 원인을 모르니 개선할 방도도 찾질 못하고 이렇게 일년 가까이 끌어왔다.

할 말은 있을진데, 막상 적을 말이 없으니, 어쩌면 잠수복 속의 나비 역시 이러했을까, 아니면 그저 핑계나 돌리는 몸만 큰 꼬맹이의 투정부림에 지나지 않을까.



수필 전작
인간심리에 간섭하고자 하는 문화규범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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