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심장을 찌르겠습니다 2화.

 

 

 

뒷골목 

 

정보상, 마약상, 매춘부 그리고 대부업자

 

해가 뜬 곳에서는 활동할 수 없는 자들이 살아가는 곳

 

말이 뒷골목이지 귀족들과 제국 고위 관료들의 더러운 취미의 근원지이기에

 

방대해진 규모는 현재는 황실조차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 제국의 귀족과 관료들조차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뒷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음산한 대저택

 

“끄아아아아아아악!”

 

듣는 이조차 그 고통을 느끼게 하는 비명이 저택에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자가 앉은 바닥은 검은색 피가 낭자했으며 

 

팔은 원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 있었다.

 

정작 그 광경을 만든 이의 반응은 시리도록 차가웠는데 말이다.

 

까마귀를 닮은 가면을 쓴 이는 손에 쥔 칼자루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하아. 팔가죽 좀 너덜너덜해진 정도로 한심하게 짝이 없구나.”

 

“그대가 스스로 하지 못하여 친히 가죽을 벗겨내 주었는데 

아무리 못 배워먹은 평민이라도 감사의 말 한마디 정도는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것은 광인의 말이었으나 금력도 권력도 있는 광인이었기에 

 

평민 남자는 그저 너덜너덜해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를 수 밖에는 없었다.

 

“빛도 값지 못하고 여를 만족시켜주지도 못하는 그대는 실로 버러지와 같구나.”

 

딱!

 

광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평민의 뒤에서 검을 찬 남자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타는 쓰레기다. 처리해라 아이크.”

 

“예.”

 

무심한 대화가 끝나자마자 아이크라 불린 남자는 평민의 목덜미를 잡고 말했다.

 

“가자.”

 

평민 남자는 작금의 대화가 자신의 처우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값을 수 있습니다! 한 달! 아니 3주만 더 주신다면!”

 

아이크는 주인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을 염려해 서둘러 남자를 문밖으로 끌어냈다.

 

평민은 끌려가기 전까지도 발악했다.

 

“당신! 후회할 거다! 5억이라고 5억! 내가 죽으면 받아낼 방법도 없을거다! 후회할 거라고!!!”

 

그 말을 듣는 광인은 평민이 방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웃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 여의 소원이니라.”

 

물론 그것은 조소일 뿐이었지만

 

그날 뒷골목의 한 대저택에서 5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그 날 저택의 광인은 다시 한번 ‘까마귀’의 악명을 제국 전체에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까마귀의 저택에 또 다른 광인이 나타났다.

 

황실 기사단 입단을 포기하고 모험자가 되어 닥치는 대로 의뢰를 수행한다.

 

의뢰를 마친 뒤에는 늘 피투성이임에도 다음날이 되면 아랑곳하지 않고 의뢰에 나선다.

 

모험자 역사상 최단 기간 A급 모험가이자 사람들이 부르길 광인

 

모험자 ‘한’이 까마귀 저택에 나타났다.

 

 

 

 

 

 

 

저택은 생각보다는 평범했다.

 

대부업자의 저택이라기에는 너무나 화려했고

 

살인자의 저택이라기에는 너무나 기품있었다.

 

이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까마귀의 방에 도착했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거라.”

 

사용인의 말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기품이 있으면서도 희미한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방

 

그리고 그 방에서 칠흑 같은 가면을 쓴 이가 앉아있었다.

 

까마귀는 들어온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상 위 서류만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없는 나는 먼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까마귀 님. 한이라고 합니다.”

 

“...........”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 까마귀는 말없이 가면 쓴 얼굴을 들어 나를 응시했다.

 

검은색 가면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름답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를 꿰뚫는 듯한 시선은 불쾌해야 할 텐데 

기묘한 압박감에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이 정도의 위엄이라면 소문대로 고위 귀족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

 

까마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약간 답답했지만 기다렸다. 여기서 갑은 저자니까.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까마귀는 무겁던 입을 열었다.

 

“자네는 ‘평범한’ 광인은 아니로군.”

 

그것이 까마귀가 나에게 한 첫마디였다.

 

인간의 목소리라기에는 차갑고 무미건조한 목소리 성녀의 목소리와는 딴판이다.

 

‘그녀’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되물었다.

 

“광인 말입니까?”

 

“그래 광인. 그거 아는가? 이 뒷골목에서도 나에게 오는 이는 극히 드물지.”

 

“도박에 미쳤거나 여자에 미쳤거나 재물에 미쳤거나 권력에 미쳤거나.”

 

“모두 광인이지만 흔해 빠진 광인이라네. 평범한 광인이지.”

 

“하지만 자네는 그런 이들은 아닌 것 같은걸?”

 

그녀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워 나는 다시 되물었다.

 

“전 도박도 여자도 재물도 권력도 관심 없습니다. 그런 제가 광인이라는 말입니까?”

 

내 말을 들은 까마귀의 가면 속에서 희미한 웃음이 들렸다.

 

“그렇기에 ‘평범한’ 광인이 아니라는 것이지.”

 

“자네도 내 소문은 익히 들었겠지? 나에게 오는 이는 광인일 수밖에 없다네.”

 

“틀린가?”

 

“.........”

 

까마귀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반박할 수도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일은 실로 광인의 행위였기에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까마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 심각해질 것 없네. 한.”

 

“광인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네.”

 

까마귀는 내게로 다가와 단도를 내밀었다.

 

“자네는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 주겠나?”

 

단도의 날은 시퍼렇게 벼려져 있었다. 

 

저것으로 신체의 어디를 베어내고 찔러도 깔끔하게 잘리고 관통될 것이다.

 

“찌르면 되겠습니까?”

 

태연한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까마귀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래! 찔러보거라!”

 

“어디로 하겠느냐?”

 

“아내와 딸은 잃고 도박에 빠진 남자는 손가락 5마디를 자르고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창녀에게 사랑에 빠진 무능한 기사는 자신의 팔을 배어 내고 받은 10억을 창녀에게 바쳤지.”

 

“재물에 미친 상인은 양다리를 찌르고 불구가 되었음에도 손에 쥔 20억을 보며 웃으며 

나갔지.”

 

까마귀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찬란한 금빛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광기였다.

 

내가 지금껏 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광기

 

문뜩 엘렌이 생각났다. 칠흑의 머리를 흩날리며 내게 미소짓던 그녀가 생각났다.

 

분영 그녀라면 내가 할 이 선택을 필사적으로 말렸겠지

 

하지만 엘렌 불치병에 걸려 누워있는 네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만약 성녀라면 내가 할 이 선택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 가녀린 팔로 날 껴안으며 날 위해 기도하고 울어 줄 것이다.

 

성녀님 당신은 상냥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상냥함 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눈앞에 보이는 순수한 광기 오직 그뿐이다.

 

상념과 다짐을 마친 나는 눈앞의 광인에게 고했다.

 

“저는.....”

 

“제 심장을 찌르겠습니다.”

 

“뭐라..?”

 

내 말에 당황한 까마귀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푸욱!

 

벼려진 단도가 내 심장을 막힘없이 관통했고

 

“커헉!”

 

내 피가 만들어낸 웅덩이에서 창백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는 내 모습과

 

타인의 광기를 목격한 까마귀의 놀란 듯한 눈동자가 비쳤다.

 

 

 

 






후우 소설 쓰는 거 쉽지 않네요.

사실 첫 화 올리고 다시 제 소설 읽어보니까

많이 별로인 거 같았는데 그래도 많이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번 화는 한의 배경 설명 엘렌과 성녀 위주였다면

이번 화는 까마귀의 등장 화로 세팅했습니다.


까마귀의 광기와 거기에 밀리지 않는 주인공의 은은한 광기가 느껴졌으면 좋겠네요


사실 원래는 심장이 아니라 양물을 자르는 스토리로 주인공을 좀 더 미친놈처럼 쓰고 싶었는데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개그스러워 질 것 같아서 심장으로 하게 됐습니다.


다음화는 까마귀와 한의 이야기를 좀 더 풀어쓰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