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은 후텁지근했다. 



들리는 매미 소리와 내 눈을 뜨자마자 비추는 뜨거운 태양 

그리고 조금 갈증이 쌓인 계절은 내게 여름임을 알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숨을 들이키니.

특유의 비 냄새가 난다.

싱그러운 플러리 향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활짝 갠 하늘에서 햇살이 비쳤다.

전날의 폭우가 잠시 식혔을 뿐.

한 여름의 태양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리 곳곳은 뜨거운 태양 때문에 바짝 말라있었고, 

공원 여기저기에는 어제 비가 온 것을 떠올리게 하는 진흙탕 웅덩이가 남아있었다.


또 주변 공원에는 꽃들이 활짝 핀다.

노란색의 민들레가.

햇빛을 띄며.


부드럽게 불던 봄바람은 이제서야 사라짐에도.

꽃들은 여전히 피어나 땅 위를 장식한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맑고 맑아서, 

새들도 새로운 날씨를 느끼는지 노래하며 날아간다.


벚꽃이 점점 안보이고 햇빛 밖에 보이지 않은 계절.

굉장히 습하고 바다 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




나는 편한 추리닝으로 밖으로 나왔다.

낚시대를 챙기면서.


강물이 말라 버린 지류에서 나는 적당한 낚시터를 찾고 있었다.


태양은 아직도 나무에 걸려있었고,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모래톱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았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물 안 속을 드려다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여기에 앉아 낚시대를 꺼내고 있었다.


물고기가 잘 잡힐지도 모를 자리에 앉아 미끼를 끼우고 낚시대를 던졌다.



















잠시 후



-휘익


소리와 함께 낚시줄이 허공을 갈랐다.


미끼가 가라앉고 찌는 서서히 똑바로 세워졌다.

또 허탕을 치나 싶었는데.


바로 그 때, 찌가 움찔했다. 그런데 가라앉지 않고 약간 옆으로 기울었다.



아- 맞다.


잉어들은 이런 식으로 미끼를 무는 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덩치가 큰 잉어들이 그런 식으로 물었다.

작은 녀석은 찌를 수면 아래도 잡아 끌었다.


낚싯바늘에서 느끼기 전까지는 큰 잉어가 잡혔을 거라고 

섣불리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팽팽한 줄과 낚싯대의 끝에서 오는 움찔하는 느낌은 

내게 확신을 주었고


그 예상대로 내가 잡은 건 잉어였다.


망을 물 속으로 집어넣어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이제 낚시를 끝낸 나는 정리를 하고 나올 때였을 거다.


소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던 게.


언제부터 날 본 건지는 모르지만 소녀는 계속 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소름끼쳤다.


단순히 소녀가 날 바라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소름끼쳤다.


어느새 태양은 사라졌음에도 소녀는 모래톱에 서있는 날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돌 같은 체형에, 긴 검은 머리카락으로 서있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 남은 강 주변은 싸늘했다.

소녀 때문에 한 여름의 밤이 춥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나는 왔던 길로 돌아가려 소녀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다.


스쳐가며 본 소녀의 눈이,

내가 잘 못 본 거일 수도 있는데.


소녀의 눈동자에 비친 건.

공허함이었다.

단순한 내 착각이었을까.


아님 불안함이 만들어낸 착시였을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는 잔뜩 올라간 입꼬리와 상반되어 더욱 부각된 서글픈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이걸 내 착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자세하게 투명하게 다 소녀를 스쳐가며 봤는데.


날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처음 본, 초면인 그녀가 날 증오했다.

그런 생각들을 비추니 아침에 스쳐갔던 시장 쪽으로 왔다.


하지만 자꾸만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이 인기척을.


계속 모르는 척 앞만 보고 걸었는데.


인기척은 사라질 줄 몰랐고 계속 내 뒤를 밟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계속 느껴지는 인기척에 못 참고 돌아보니.


아까 그 소녀였다.

이름도 모르고 초면인 소녀가 날 따라왔다.


소녀는 내가 고개를 돌리니 놀란 듯.

근처에 있는 전봇대에 얼른 몸을 감췄다.

몸에 다 안 가려질 전봇대에 숨었다.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못 봤을 리는 없고 난 계속 전봇대만 바라봤다.


좀 시간이 지나서야 소녀는 얼굴을 보였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말을 걸었다.


"저.. 학생?"


"..."


"전봇대 뒤에 학생!"


이제서야 전봇대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고.


"아까 강가에서 본 학생이죠?"


"네!? 아, 아니요.."


아니, 맞았다.

아까 본 체형과 머리카락은 익숙했으며,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난 미리 꼬리를 자르려 생각했다.


"그럼 어디로 가시는 길이세요?"


"집으로.."


"그럼 어느 쪽으로 가세요?"


"그걸 제가 왜 알려줘요.."


"아.. 그럼 저는 여기로 갈게요."


"거, 거긴 제가 갈 곳인데."


아, 분명 길이 같아서는 아닐 거다.


나는 나만 다니는 골목길로 다닌다.

물론 다른 사람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2개월 동안 본 바로는 그 골목길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길이었다.


틀림없이 이 소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날 계속 따라오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럼 저는 반대쪽으로 갈게요."


"어...어.."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소녀는 머뭇거렸다.


"..네."


반대로 가면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

오늘 편하게 씻고 눕기에는 글러 먹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니 힘든 나를 반기는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가 난다.


뭔가 이상하다.


나 혼자 사는 집에 누군가 있다.


가족도 없는 내가.

친척도 없는 내가.

친구도 없는 내가.


누군가를 집에 들여보냈을 리는 없다.


그럼 누군가. 


지금 내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지금 집에 오자 반찬 뚜껑을 여는 사람은 누굴까.


지금,


지금. 


날 보며 웃는 사람은 누구지?


"밥 먹어!"


아, 그래. 아까 본 소녀다.

날 증오하며 본 소녀다.


뭐지?


의아함에 나는 오래전 기억을 되새겨봤다.

되새겨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낡고 낡은 책처럼.

빈 갈피에 보인 색은 누렇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둠에 가려진, 땅에 묻어진, 바다에 잠겨진 것처럼.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


한 발짝 움직이기가 두렵다.

두려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집 바닥이 너무나 차가웠다.

수 십개의 바늘들을 밟은 듯이.


너무나 생생했다.


"..누, 아 그.. 그래."


그녀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생각한 나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걸어갔다.



진수성찬이다.


푸짐하게 준비된 음식은 먹음직스러웠다.

 

내 집은 진수성찬을 차릴 정도로 돈에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저 많은 재료가 냉장고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나를 위해 재료까지 사와 밥을 차린 거다.


지금 있는 상황을 도둑이나 강도로 대입해봐도.

시간만 흐를 뿐.

여길 벗어날 길이란 없었다.


나는 식탁에 앉음과 동시에 하얗게 질러버렸다.

애초에 식탁이 있는 거부터 이상했다.


내 집엔 식탁이 없었다.

있었던 적도 없었고.


이런 가죽으로 된 의자 또한 없었다.


집을 잘 못 들어왔나 싶으면서도 

저기 벽에 걸린 사진이 여기가 내 집이라고 밝혀주고 있었다.

내가 간직하고 소중한 가족이랑 찍은 사진이.


"-보~ 여보!"


나는 결혼한 적 없다.

나는 프로포즈를 한 적 없다.

나는 여자친구가 없다.


본능과 이성이 싸우고 있다.


그냥 같이 지내자고.


아니,


빨리 누구냐고 말하라고.


이 소름 끼치는 상황을.

이 모를 소녀와 저녁을.

이 풀리지 않은 의문을.


결국 궁금증과 함께 이성이 이겨버렸다.


"누구..세요?"


본능을 무시하고 말해버렸다.


해명이 필요한 거 같았다.


지금 이 상황 설명이 필요했다.

변명이 아닌 사실을 듣고 싶었다.


이 모든 게 정당한지 타당한지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소녀에게 묻고 싶었다.


이 말을 들은 소녀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로.

이 밤이 물들인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날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고장난 로봇 장난감처럼 고개를 살짝 꺾은 채.


소녀는 희열에 가득 찬 웃음과 함께 어째서 인지 

잔뜩 분노를 짓 씹은 듯.

서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 몰라서 물어본 거야..? ..진짜로 몰라? 몰라? 몰라?"


"..."


"오빠가 나 도와줬잖아. 보육원에서 교복 살 돈이 없어 못 들어갈 뻔할 날. 오빠가 도와줬잖아."




















아, 그래.


성인이 되기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우리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돈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꾸준히 보육원에 기부를 해왔다.


계속 해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보육원은 더 이상 운영해나가기가 힘들었다.


시발련들이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다 썼는지 금방 사라졌다.

그리 큰 보육원이 아니었는데.

그 적지 않은 돈이 빨리 타 들어갔다.


분명 보육원 원장님은 아니고 그 옆에 굽실거리는 아줌마였을 거다.


나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보육원에 갔다.

직접 가서 기부 받을 학생에게 가서.


이야기를 듣고 교복비와 간식비를 주었다.

그리곤 이번에 돈이 아닌 간식으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너무 기뻤다.


내 도움으로 사람이 웃게 할 수도 있구나.

매일 기부했다면서 어린 아이처럼 웃고 있는 부모님을 잊을 수 없다.



그럼, 내가 교복비를 내준 애가 저 소녀라고?


저렇게나 자랐다고?


그런데 왜 따라온 거지.


어떻게 내가 사는 곳을 알았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었다.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소녀의 행동이.

날 더더욱 무섭게 만들고 있었다.


소녀는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이제 아시겠어요? 오빠? 오빠는 절 구원해 준 거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절. 혜성처럼 나타나서 절 안아준 거라고요."


그의 향한 소녀의 사랑은 뻔한 분홍색이 아니라 붉은 빨간색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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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는 아침에 나와보니 살아있어 라면에 넣어 먹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