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오랜만이다 다들! 이게 얼마 만이야? ”

 

 

“ 그러게.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건 얀붕이 결혼식 이후로 거의 5년 만인가? ”

 

 

“ 야 근데 오늘 얀붕이 걔도 온다며? ”

 

 

“ 뭐 진짜? 평소에 연락도 없던 얘가 무슨 일이래? ”

 

 

“ 걔 돈 빌리거나 보험 팔라고 나오는 거 아니야? ”

 

 

“ 그러게 좀 이상하긴 하네. 나도 걔 결혼식 이후로 한 번도 본적 없는데. ”

 

 

“ 에이 설마 얀붕이가 그럴 애냐.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나오는거겠지. ”

 

 

고등학교 친구들의 모임.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소통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모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얀붕이도 참석한다고 해서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 근데 얀붕이 얘도 좀 서운하네. 우리가 축의금으로 낸 돈이 얼만데 결혼식 끝나고 우리한테 연락을 한번 안 하냐. ”

 

 

“ 뭐 사연이 있겠지. 별거 아니면 오늘 술값은 얀붕이가 다 내게 하자고. ”

 

 

“ 오 좋은데! 얀붕이 이 새끼 별 이유라도 없기만 해봐라. ”

 

 

“ 근데 너 요즘 일은 어때? 이직했다며? ”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그런지 그동안 쌓인 회포를 푸느라 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쯤. 몸이 비쩍 마르고 얼굴에 생기 하나 없으며, 눈 밑으로는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앉은 사람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 사람 주위로는 뭔가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 같은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 야야. 저 사람 봐봐. 저거는 그냥 시체 아니냐? ”

 

 

“ 와 씹. 진짜 툭 치면 죽겠는데? 저 사람 뭐하는 사람 일까? ”

 

 

“ 저 사람 밥 먹을 때 숟가락은 들 수 있을까? ”

 

 

“ 저 사람 딸도 못 칠 듯 ㅋㅋㅋ ”

 

 

“ 딸치면 죽는거 아니노? ㅋㅋㅋㅋㅋㅋ ”

 

 

갑작스러운 걸어 다니는 시체의 등장에 우리 테이블은 외모 품평회가 일어났다. 모두가 남자를 비웃으며 헐뜯고 있는데. 송장이나 다름없었던 사람은 천천히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 야. 야. 우리가 하는 말 들었나 봐 어떡해. ”

 

 

“ 야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했어. 난 하지 말라고 했다? ”

 

 

“ 와 이 새끼가. 자기가 제일 크게 웃어 놓고는. ”

 

 

그 남자는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어느새 우리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힘없어 보이는 눈동자로 우리들 얼굴을 하나하나씩 살펴보았다.

 

 

“ 저어... 다 들으셨죠? 죄송해요... 제 친구가 좀 모자라서요... ”

 

 

“ 맞아요... 제 친구가 좀 많이 아파요... 죄송합니다. ”

 

 

( 또 내 탓으로 몰아가네 시발 새끼들이 )

 

 

우리는 통하지도 않을 거 같은 조잡한 해명을 했다. 차분하게 가만히 우리의 말을 듣던 그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를 모두 당황하게 했다.

 

 

“ 다들 오랜만이야. 내 결혼식 이후로 거의 5년만인가? ”

 

 

“ 뭐... 뭐? 너 설마 얀붕이야? ”

 

 

“ 니가 얀붕이라고? 말도 안돼. 그 건장하고 딴딴했던 헬창 얀붕이는 어디로 간 거야? ”

 

 

“ 얼굴 자세하게 보니까 살짝 얀붕이 얼굴이 보이긴 하네. 야 일단 여기 앉아봐봐. ”

 

 

우리가 5년 전에 기억하고 있던 얀붕이의 모습과 현재의 얀붕이의 모습이 아예 달라서, 처음에 가게로 들어온 얀붕이를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고.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자기가 얀붕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얀붕이를 일단 자리에 앉히고 우리는 취조 아닌 취조를 하기 시작했다.

 

 

“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뭐어... 많은 일이 있었지. ”

 

 

“ 연락은 왜 안 하는 거야? 우리 연락도 다 무시하고. ”

 

 

“ 나 핸드폰이 없어. ”

 

 

“ 뭐? 아니 요즘 세상에 핸드폰이 없다는 게 말이 돼? ”

 

 

“ 아내가 뺏어 갔어.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하게. ”

 

 

“ 뭐? 그럼 일은 어떻게 하는데? ”

 

 

“ 나 일 안 해. 아내가 벌어 다와. ”

 

 

“ 그럼 너는 집에서 뭐 하는데? ”

 

 

“ 아무것도 안 해... 아무것도.... ”

 

 

우리가 하는 질문에 얀붕이는 정말 이상한 답변만을 꺼냈다.

 

 

“ 돈은 마누라가 번다고 치고... 진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야 인마! 마누라가 돈 벌어다 주면 너는 집에서 살림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밥이라도 해! ”

 

 

“ 밥 차리는 것도 못하게 해. 위험하다고. 내가 다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데. ”

 

 

우리는 얀붕이가 어떤 생활을 하는 건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 야 근데 너 피부가 진짜 새하얗다. 관리받아? ”

 

 

“ 나 햇빛을 안 받아서 그래. 집 밖으로도 안 나가. ”

 

 

“ 안 나간다고? 그럼 뭐 필요해서 물건 사러 갈 때는 어떻게 하는데? ”

 

 

“ 아내가 내가 필요한 건 다 구해다 줘. ”

 

 

우리는 이걸 부러워해야 하나 생각했다.

 

 

“ 아예 밖에 안 나가는 거야? 왜? ”

 

 

“ 아내가 못 나가게 해. ”

 

 

얀붕이가 집 밖으로도 못 나간다는 말에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으나, 다른 친구 한명이 말을 꺼내며 그 침묵을 깨버렸다.

 

 

“ 아니!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그런 거 보다 이게 더 궁금해. 너 원래 그 근육질 몸은 어디로 간 거야? 아니, 사람 몸집이 반의반으로 줄었어! 이게 가능해? ”

 

 

“ 지금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데. 보충제도 먹고 단백질도 꾸준히 섭취하고 있는데, 마누라 때문에 근육이 하나도 붙지 않네. 하하. ”

 

 

우리는 얀붕이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설마 집에서 뭔가 당하고 있나? 사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비쩍 마른 몸에 생기 하나 없는 얼굴. 또 자세히 보니 팔에는 뭔가 거뭇거뭇하게 멍 자국 같은 것도 보였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얀붕이를 떠보았다.

 

 

“ 그으... 결혼 생활은 어때? ”

 

 

“ 너무너무 행복해. ”

 

 

“ 뭐? ”

 

 

“ 아니!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하고! 사람들이랑 연락도 못 하게 하고! 일도 못 하게 하고! 그렇다고 집안에서도 뭐 하는 것도 아니고! 너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거야? 너 결혼 잘못한 거 같은데? ”

 

 

“ 그게 좋아서 결혼 한 건데? ”

 

 

“ 뭐? ”

 

 

“ 나는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이런 생활이 너무너무 좋아. 지금 내 아내를 하루라도 더 빨리 만나지 않은 게 후회된다니까? ”

 

 

“ 얀순이는 어디서나 나를 지켜봐 주면서 나한테 무한한 관심을 주고 있어. 요즘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게 죄책감이 든다니까? ”

 

 

“ 너희들 솔직히 내가 부럽지? 내가 너무 부러워서 나랑 얀순이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그러는 거지? ”

 

 

우리는 정말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얘가 얀붕이가 맞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얀붕이랑은 너무 달랐다. 5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이긴 하지만, 5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나? 우리가 알던 얀붕이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 얀붕이의 손목시계 알람이 울렸다.

 

 

“ 어 애들아. 나 이제 가봐야 해. 약속했던 외출 시간이 다 지났어. ”

 

 

“ 아니 벌써? 우리 본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

 

 

“ 얼굴 한 번씩 봤으면 됐지 뭐. 오늘 재밌었다. 아!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다들 오랜만이라 반가웠어. ”

 

 

“ 잠깐만 얀붕아! 우리 또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거야? ”

 

 

“ 음... 10년 뒤려나? 나 진짜 빨리 가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얀순이가 화낼 거야. 진짜 간다! ”

 

 

얀붕이는 그렇게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 얀붕이 저놈 저거 왜 저렇게 된 거냐? ”

 

 

“ 그러게... 아니,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진다고? ”

 

 

“ 뭐 그래도 술값은 다 내고 갔네. 나는 만족! ”

 

 

“ 이 새끼는 대가리에 술밖에 안 들었나. 근데 얀붕이는 진짜 도움 같은 게 필요한 거 아니야? ”

 

 

“ 그치만 괜히 신고했다가 별일 아니면 어떻게 하려고... ”

 

 

“ 뭐... 본인은 행복한 거 같은데 그러면 된 거 아닐까.... ”

 

 

우리는 더 마셔보려고 했지만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해산했다.

 

 

대체 얀붕이는 어떤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