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노예 시장에 팔린 저를 본 도련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를 구매했죠.


그 당시에 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의 유흥을 즐기기 위해 귀족들의 장난감이 되거나, 차디찬 노예 시장에서 그 누구의 선택을 받지도 않고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도련님에게 간택받았을 당시에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늘 말했듯. 이런 불충을 용서해주세요. 


과거를 떠올리면 첫 만남에서 제가 도련님을 보며 품었던 생각에 대해 늘 후회하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다른 귀족들과는 달랐습니다.


인간도 아닌. 반인 반수의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셨죠.


따뜻한 옷, 맛있는 음식, 편안한 잠자리.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에 저는 더 이상 겨울이 춥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도련님은 언제나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도련님은 다른 귀족들과는 달랐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우리 같은 노예 출신들에게 문자를 알려주고, 귀족들만 쓸 수 있는 마법을 알려주었죠.


어떻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지 않고 배부르게 살 수 있을까? 


마나를 쓰지 않더라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방법은 있는지, 가을에 추수한 식량을 온전히 보관할 수 있는 방법.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도련님은 수도의 귀족들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도련님이 제 주인이라서 행복했습니다.


네, 그 마음은 유라시아의 서기장이 된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행복했던 그 날의 시절을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매일 꿈을 꿀 만큼...마지막에는 항상 악몽으로 끝나지만.


불행은 정말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동방의 작은 섬나라에 우리의 함대가 괘멸당하고, 남방의 이교도에게 우리의 육군이 전멸당하고, 서방의 흡혈귀들에게 우리의 땅이 빼았기는 와중에도... 차르는 버러지같은 요승에게 의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게 없었죠.


참다 못한 민중이 거리에 나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해명을 해달라. 


차르는 얼굴을 비추기는 커녕, 납탄으로 자신이 돌봐야 할 모든것들을 전부 다 쳐죽였고.


혁명이 일어났죠.


도련님도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제국의 노예는 단결하라!


그 날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를 듣고... 저는 흥분했어요.


언제나 도련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귀족과 노예를 구분하지 않는...평등한 세상이 찾아온건 아닐까?


...그 날의 저는 순진했어요. ...또 용기가 없었어요.


지금이라면 말했을텐데.


좋아하고 있습니다. 제가...언제나 당신 곁에 있어줄게요.


하지만 그 날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단지 무너지는 제국을 바라보며 두려워 하는 도련님을 꼭...안아주면서...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죠.


...죄송해요. 도련님. 무서웠을텐데. 


위로는 하지 못할 망정, 음심을 품은 것에 대해서....


네, 미안해요. 근데...어쩔 수 없었어요. 누구나...그 상황에는 그렇게 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불경스러운 상상을 했던 저를 용서해줄수 있나요?


...지금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 바다 너머에는 합중국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종족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재능만 있으면 성공 할 수 있다고 하던데.


혁명이 터지는 즉시, 도련님을 데리고 합중국으로 이민을 갔으면 어땠을까?


이 자리에 오르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지금와서는 그런건 필요가 없어졌어요.


도련님은 저의 유일한 주인이며.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인데.


모든 인민은 평등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보다 더 '평등'한 인민도 필요한 법이잖아요.


도련님처럼.


도련님이 있어야 할 곳은 노동자들이 가득한 공장이 아니라, 제 곁이에요.


혁명이 터지고. 모든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설마 설마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살펴줬던 모든 사람들이 도련님에게 반기를 들거라고는...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요.


농사를 망쳐 굶주리고 있던 농노의 세금을 면제해준건 도련님이었고, 장돌뱅이의 아픈 아내를 치료해준것도 도련님이었어요. 글을 모르는 우리에게 문자를 가르쳐준 것도 도련님이었고. 언제나 재산을 털어 겨울에 입을 옷과 땔감을 빈민들에게 나눠준 것도 도련님이었는데.


-반봉건적 잔재를 떼려부셔야한다!


그런 말과 함께 어떻게 그들이 도련님의 저택에 처들어왔는지.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어요.


"...도련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걸 당신들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반 아저씨, 세르게이. 알렉산드라... 류마노프..."


은혜도 모르는 것들이 녹이 잔뜩 슨 농기구를 들고 도련님의 주택에 처들어오는 것을 저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성난 폭도들이 도련님을 해치지 않을까? 


다행히 저는 도련님을 찾을 수 있었고...저는 도련님과 무사히 폭도들의 손길을 벗어나.


수도 인근의 항구 도시까지 도착할 수 있었죠.


"...도련님은 먼저 외국에 가세요. 저는 폭도들이 자택을 불태우기전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겠습니다. 큰 주인님이 유품으로 남기신 오르골... 아끼시잖아요"


"...위험해. 이미 그 사람들이 전부 다 가져갔을거야. 이리 와. 나랑 같이 가자"


...그때 도련님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 저는 난생 처음 겪어 본 난리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했어요.


도련님을 먼저 떠나 보낸 뒤, 다시 자택에 도착했을때는...이미 폭도들이 모든것을 박살낸 이후였어요.


...도련님과 함께 걸어다니던 정원도...나에게 글자를 가르쳐 준 서재도,손수 음식을 해줬던 주방과 도련님이 언제나 주무시던 그 침실도 전부 다... 불타 없어졌죠.


내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했고 간직하고 싶었던 모든것이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도련님이 아끼시던 오르골도 있었죠.


지금은 세상을 떠난 큰 주인님이 도련님에게 남겨주신 유품. 


도련님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유품은 이름도 모를 폭도가 겨울을 버티기 위한 땔깜으로 쓰고 있었어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도련님은 언제나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제 눈에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로 보였어요.


...제 손을 통해 뻗어나간 얼음 화살이 역겨운 폭도의 가슴팍을 관통했고, 피를 흘리며 차가운 시체를 봤을때는. 


신기할정도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냥, 반 쯤 불타버렸지만. 외국으로 가지고 가면 오르골을 수리할 수 있는 장인도 있겠지.


단지 그뿐.


불타버린 오르골을 들고, 다시 항구에 도착했을때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제 눈 앞에 펼쳐졌죠.


저는 아직도 기억해요.


도련님이 타신 로마노프함이... 활활 불타, 차디찬 겨울 바다 아래로 잠기는 모습을... 


그리고, 그걸 보며 미친듯이 웃고있는 빈민들의 모습.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 단지, 환경이 잘못되서 악하게 행동할뿐이지.


도련님은 언제나 저에게 그렇게 말했죠.


도련님은  저같은것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지만, 저는 그 말에 대해서 만큼은 동의를 할 수 없어요.


인간, 수인, 엘프, 흡혈귀, 오크. 


지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전부 다 악하게 태어났고,차르의 권위가 무너지면 지금처럼 억눌러왔던 본성을 터트리며 야수처럼 행동하겠죠.


이를 억누르고 통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으면, 저들은 길 잃은 양떼들처럼 광야를 돌아다닐뿐이에요.


저들에게 필요한건 도련님처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강철의 심장와 얼음의 피를 가진 냉혹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도련님을 따라 죽겠다. 


하지만...저는 그 날 죽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나까지 죽으면 도련님을 기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


이슬처럼 사라질 목숨을 조금...더 유용한 곳에 쓰고 싶었어요.


...도련님은 좋은분이에요.


도련님은 늘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원했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을 원했잖아요.


그래, 따지고 보면 저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런 일을 저지른것이겠지요? 


...두려움에 떨면서도, 도련님이 제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저는 도련님을 언제나 존경하고, 따르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대신 도련님의 꿈을 이뤄드릴게요.


파괴만 일 삼는 저 폭도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지도자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 저는 이 사람들 위에 올라서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원하던 그 세상을 만들어볼게요.


그게, 제가 도련님을 기리는 방법이니까.


.....


그 뒤로 수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여서. 저는 연방 최고 서기장의 자리에 올랐어요.


지금의 제 모습을 도련님이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잘했다고...하지는 않을거에요.


도련님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꼈으니까.


저를 백정이라고 욕해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늘 그렇듯. 썩은 감자를 내버려두면 곁에 있던 멀쩡한 감자도 전부 다 썩어버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이 정도는 이해해주세요.


무능한 관료, 부패해버린 군인, 태업하는 노동자, 불온한 사상을 가진 지식인. 


...그런 작자들을 전부 형장으로 보낼때마다 우리의 연방은 강성해졌어요.


네, 도련님과 저의 연방이죠.


필요한만큼 생산하고, 필요한만큼 가져간다. 


도련님과 저의 연방에서는 낭비는 눈 씻고 찾을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이 집과 밥, 그리고 옷을 무상으로 배분받아요.


예전에 도련님이 빈민들에게 물건을 나눠줬던것처럼. 연방의 모든 시민들도 물건을 배급 받아요.


...헌데, 이런 도련님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서방의 흡혈귀들이 있어요.


네.


그 가증스러운 것들이 또 전쟁을 일으켰어요.


도련님과 저의 군대는 흡혈귀들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지만. 그게 영원할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저들은 6주만에 플로렌스를 멸망시켰고. 머지않아 피가 뚝뚝 흐르는 이빨을 저희에게 돌리겠죠.


...헌데, 도련님은 왜 거기에 계십니까?


왜. 플로렌스의 바벨탑에서 흡혈귀들의 총통과 같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까?


저는 처음에 그걸 봤을 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외모도...키도...목소리도... 조금 성숙해졌을 뿐, 바뀐게 없었어요.


내가 모르는 쌍둥이 형제라도 있었던걸까..?


의심이 들어서, 비밀 경찰을 통해 정보를 조사했습니다.


...그 날 바벨탑에서 있었던 사람은 도련님이었습니다.


저는...태어나서 처음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하녀 된 자로써, 주인의 생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까?


...심지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결혼까지 하셨더라구요.


이종족을 상대로 절멸수용소를 세워버린 미친 흡혈귀 새끼랑... 결혼까지...?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충실한 동무들이 사실 관계를 파악해줬기 때문에, 저는 금방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도련님은 잠시 기억 상실에 걸렸었고, 지금은 완전히 기억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흡혈귀 새끼들이 저지르는 모든 일을 알고 있고,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언제나 올곧고 바른 성품을 가진 도련님은 그러지마라. 


비굴할 정도로 박쥐에게 메달리지만... 쳐죽여도 모자랄 년은 더러운 독니를 도련님에게 꽂아넣었다.


...역겨운 미약이 도련님의 깨끗한 몸을 더럽히고, 쓰레기 같은 개잡년이 도련님의 위에 올라타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던 그 고운 손가락이 역겨운 짐승의 아가리에 들어가고,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 감히 파고들지도 못한도련님의 가슴팍에 머리를 마구잡이로 비비고... 소중히 간직해야할 도련님의 모든것을 게걸스럽게 처먹는 모습을 저는 더 이상 못 보겠어요.


기다리세요.


도련님.


...늦었지만 이 불충한 하녀가 도련님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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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하녀와 미약 야스를 일삼는 흡혈귀가 치고 받는 내용...써줘!!!


내가 불판 닦아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