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다시 살아난 지금에 와서도 알 수 없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고백을 거절했을 뿐이다.

정하윤. 존나 잘나가는 여자다.

한때 나도 그녀를 흠모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면 차분해지게 된다.

물론 그녀는 외모처럼 인성 역시 출중했기에,

꽃뱀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친구들과의 내기로 거짓고백을 할 사람도 아니라는 것 역시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남학생이었고,

그녀가 착하다 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일진들까지 착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고백을 정중히 거절했다.

경찰이 우리집에 찾아온 건, 그날 저녁이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성추행? 내가? 왜? 누구를?

앞에서 위압적인 형사가 나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가족들이 있었다.

항상 나를 도와주고, 지칠 때 마다 기둥이 되어주던 부모님.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리는 한 살 차이나는 여동생 강지민.

옆집에 살며 어릴 적 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직장인 누나 백설아.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모두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을 터였는데,

이제는 나를 그저 혐오스럽게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자리를 떠나 나를 외면했다.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아버지는 경찰서를 떠났다.

경찰서를 떠나는 아버지는 뒤를 돌아 나를 한번 보시더니,

눈물 한 줄기를 흘리고는 다시 돌아섰다.

무언가, 내 마음속에서 금이 갔다.


지민이는 계속 손톱을 물어 뜯고 있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는 가시 돋힌 말을 쏟아냈다.


"가까이 오지마! 역겨운 새끼야!"

"너 같은.... 너같은 짐승새끼가 내 가족이라니...."

"지옥에나 떨어져서 뒈져버려!"


아까 느꼈던 금이 더 갈라졌다.


내 옆에 앉아있던 설아 누나가 일어났다.

누나의 손을 잡고 제발 믿어달라고 말했다.

무언가 크게 흔들리더니, 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나한테 손대지마 범죄자 새끼야."


무언가 마음속에서 무너지며, 난 칠흑속으로 빠졌다.


"....명확한 증거가 없으나......"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하여......"

'.....또한, 피고에게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처벌을 강력하게 원하는 바....."

".....본 법원은, 피고인 강우현에게 징역 15년 형을 선고한다."


형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교도소에 들어가고 약 1주일 후, 전염병이 교도소에 창궐하였고

이 나라는 성범죄자의 건강을 생각해주지는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있던건 회색 천장이 아니었다.

애초에 천장 따위는 없었다.

마치 소설의 한 장면 처럼, 나는 우주공간에 떠있었다.

그리고 나로부터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한 여인이 서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자 내 머릿속으로 어떠한 지식이 들어왔다.

눈앞이 환해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던 여인이었다.

여전히 무언가 측은한 미소였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앞에는 기자들이 즐비해 있었고,

내 주변에는 경찰관들이 달려드는 기자들을 막으려 분투하고 있었다.

분명 처음보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이것이 현실임을 어째서인지 알고 있었고,

무슨 상황인지도 알고 있었다.

나를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기자들을 보며,

나는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그러곤 이내 소매로 얼굴을 가린채 고개를 숙였고,

숨죽여 미친듯이 웃었다.

.

.

.

나는 그를 탐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뚱뚱했다.

뚱뚱한 여자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좋은 놀림거리였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어느날, 그가 나를 구원해줬다.

나를 놀리던 아이들과 싸웠다.

당연히 그는 졌고, 나를 향한 괴롭힘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그 이후, 나는 미친듯이 살을 뺐다.

살이 빠지자 수준급의 외모라는 평을 받았지만,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뻐지려했다.

중학생이 되자, 길거리 캐스팅도 받았다.

거절했다.

나는 그를 위해 예뻐지는 것이지, 다른 것들을 위해 나를 파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와 같은 중학교를 가지는 못했고, 그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순 없었으나

난 그것을 기회로 받아들였다.

중학교때 많은 걸 배웠다.

아름다움은 시기를 산다고.

나보다 못난 걸레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를 견제했다.

이것이 사는 방법이구나, 하고 나도 그들에게 맞받아쳤다.

구역질 나고 역겨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그를 위해 내 몸을 보존해놓은채, 남자들을 꼬셨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렇게 나는 처세술까지 배운채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곤 마치 운명같이, 고등학교에서 우린 만났다.


그는 나를 기억못했다. 

하지만 굳이 그에게 먼저 다가가서 기억을 돋구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 나는 '뚱뚱했던 왕따'가 아닌,

얀챈고 여신 정하윤으로 있어야만 했다.

나 스스로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을 때,

그에게 고백을 했다.

모든게 완벽했고, 계획에 차질따윈 없었다.

그는 평범했고, 그에게 여자가 꼬일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저버렸다.

본인이 평범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괘씸했다.

나는 그를 위해 내 모든걸 바칠 준비가 되었었는데.

그는 내 성의를 무시한것이 아니었다.

나를 배신한 것이었다.

배신자는, 벌을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위대하다.

축 쳐진 살들을 출렁거리며 말도 안되는 궤변들을 쏟아내는 그것들 이었지만,

그것들 만큼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나의 눈물은 모두를 울렸으며, 분노케 했다.

그는 금세 매장되었고, 심판을 받았다.

그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난 웃었다.

미친듯이 혼자서 웃으며,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난 울고 있었다.

그의 사진을 안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핸드폰에 뜬 알람을 보자 정신을 차렸다.


'님들 범죄자새끼 드디어 구속됬다'

'뉴스로 봤음 하윤아 축하한다'


"......"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 아니었으면 절대로 못 이뤄냈을꺼야'


아마 그때 정신을 놨을지도 모르겠다.

.

.

.

오빠!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이라고 한다. 

엄마도, 아빠도, 맘마도 아닌

오빠.

그가 좋았고, 그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가족간의 사랑이었다.

나를 항상 보물처럼 대해주는 그가 좋았다.

주위에서 오빠들이나 언니들이 자기를 괴롭힌다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더더욱 오빠가 좋았다.

이것이 이성간의 사랑으로 변한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어떤 사건이 시발점이 되진 않았다.

차곡차곡 쌓아올려지던 것이 드디어 한계를 넘었다고 해야하려나.

어느새 나는 화장실에서 오빠의 속옷으로 자위를 하고 있었고,

오빠가 쓴 수저와 그릇을 핥는 것으로 설거지를 대신했다.

집에서 TV를 볼떄면 항상 오빠 옆에서 TV를 봤고,

천둥번개가 칠때면 오빠 옆에서 자곤 했다.

그런 오빠는 한 번도 나에게 귀찮다는 듯이 행동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서도, 우리 사이는 계속되었다.


뉴스에 하윤이 언니가 나오고 있었다.

애초에 이 지역에서 유명한 언니였고,

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중 한명이었다.

언니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경찰이 집에 찾아와 오빠를 데려갔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역겨웠다.

저딴 것이 내 오빠라니.

저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우리 가족이라니.

내가 저런 범죄자 새끼의 향을 느끼고,

저런 성범죄자 새끼의 타액을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 스스럼 없이 굴었던것도,

나의 몸을 탐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도와달라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딴 것이 내 오빠였다니.

역거웠다.

.

.

.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을 다녔지만,

돈은 부족하지 않아서 제대로 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외로웠다.

더 작은 집으로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려도,

부모님은 억지를 부려서 아파트에 날 넣었다.

5인 가족이 살법한 아파트는, 

나의 공허함을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먼저 다가온건 우현이였다.


쓰레기를 버리려 가던 도중, 발목을 접질러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놀이터에서 놀던 우현이가 쪼르르 달려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눈나.... 마니 아파요...?"

"119 불러야해요...?"


내가 그곳에서 받은 첫 호의였다.


그 이후로 나는 우현이네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착하신 분이였고,

지민이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건,

우현이였다.


 우현이가 그렇게도 귀여울 수 없었다.

항상 나한테 눈나, 눈나 거리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는 우현이를 볼때면,

귀여우서 참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손톱을 물었다.

그리곤 방에 들어가서 미친듯이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보다 몇살은 어린 아이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스스로가 더러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현이였으니깐.


우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쉽게도 옛날의 귀여운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남성적인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우현이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때면,

친구들은 항상 그저 평범한 남고생 아니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고생 따위가 아니었다.

강우현, 나의 사랑하는 옆집 동생이었다.


그런게 그 우현이가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렀다.

참으로 더러웠다.

나는 원래 범죄자는 타고났다는 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과거가 스쳐지나가며,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상상이 시작되었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은채 계속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자,

내 안에서 사랑하는 옆집 동생 우현이는 사라졌다.

그저 성폭행범 강모군이었다.

.

.

.

.

내가 집에 들어오자, 제일 먼저 보인것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무릎을 꿇으시며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슬펐다.

그저 오해를 한번 했을 뿐인데.

부모님은 분명 나를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하셨다.

교도소에 있을 당시 간수를 통해 부모님이 탄원서를 꾸준히 작성하셨음을 들었다.

주위에선 범죄자의 부모라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역시나 나의 부모님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보답해야할 존재였다.


부모님이 눈물을 한바탕 쏟고 진정되자, 

나는 잠시 내방에 가겠다고 말을 하곤 일어섰다.

그러자, 방에서 지민이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난 들을 필요가 없다.

그녀를 지나쳐서 내 방으로 간 뒤,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은 뒤 문을 걸어잠근다.

핸드폰을 보니 두 사람에게서부터 연락이 와있었다.


[정하윤]

우현아 내가 정말 미안해 제발 용서해줘 내가 정........


[설아 누나]

우현아 톡 읽으면 제발 답장좀 해줘 미안해 정말 미.....


내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그녀들을, 부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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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쓰는 장편.

3화 내지 2화로 끝낼 예정

노트북 밧데리 충전시키기 귀찮으니까 지금 그냥 이렇게만 쓰고 잘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