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0원입니다."
"너무 비싼데?"
"담배가 4500원이구, 이 커피가 1200원. 그리고 이 빵이 1500원이에요."
"쯧쯧,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렇게 물가만 오르는지."
"하,하하...그러게요."

그래도 진상손님은 아니였던 모양인지, 카드를 뽑아 내미는 모습에 안도한다.
문밖으로 나가는 양복차림 손님에게 소리 높여 인사하고, 털썩 의자에 앉아 옆으로 치워뒀던 책을 꺼내들었다.

지긋지긋한 고시공부. 군대에서부터 시작된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걸 보면 너도 어지간히 집착 강한 녀석이구나, 정작 무생물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는 내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밤의 편의점은 은근히 사람이 적다.
물론 적다고는 해도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에, 새벽께 배송오는 상품들 체크에 틈날때마다 해줘야하는 청소까지 한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인가를 위해 쓸만한 자투리 시간은 나올 정도.

어쩌자고 대학도 안가고 바로 군대로 가버려선, 말뚝박겠다는 결심은 어디가고 전문하사 6개월만에 도망쳐버린 모자란 녀석이 바로 나. 지원해주시겠다는 부모님을 뜯어말리고 내 생활비는 내가 벌겠다며 이것저것 알바를 전전하다가 기껏 하는게 고시공부라니.

아마도 나랑 다르게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며 준비하는 고시생이 수만명은 될 터인데 과연 내가 붙을 수 있을까싶은 의심이 싹트지만 어쩔 수 있나. 지금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인데.

그 때쯤 점내에 틀어둔 배경음악이 익숙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또 시화네, 요 근래 새로운 곡이 안나오기는 하지만 그 인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반년 전 쯤 마지막으로 발매한 3집 앨범이 지금까지도 심심하면 음반차트에 올라오는걸 보면 팬층도 두터운 모양이고.

너라도 그렇게 성공해서 다행이다 싶어 피식 웃는다. 얼굴없는 가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는게 특권이라면 특권이겠지 뭐.

딸랑, 문가의 종이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서오세요!"
"...니가 뭐신데 어서오라마라야? 으이?"

젠장맞을.
얼굴 벌겋고 술냄새 풍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저렇더라.
얼굴 벌겋기만 한사람하고 술냄새만 풍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얌전한데 왜 둘이 합쳐지면 완전체가 되는걸까.

그 손님은 잠시 점내를 쓱 훑어보더니 술냄새를 뿜어내며 말했다.

"그거 어딨냐?"
"그거라는게 어떤 물건을 얘기하시는건가요?"
"그거! 숙취!"
"아, 숙취해소제...그건 저쪽 냉장고에..."
"가져와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귀아프다.
어차피 다른 손님도 없으니 가져다준다고 큰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다만, 제 몸도 못가누며 휘청거리는 사람에게서 눈을 떼도 되는걸까.

"임마 뭐하냐!"
"네, 지금 가져다 드릴게요."

일단 일어나면 생각하도록 하고, 냉장고에서 가장 잘나가는 숙취해소제 하나를 카운터로 들고온다.

"5천원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싸? 저 앞 가게에서 3천원인데!"
"편의점이니까요. 정가대로 받는거죠."
"이래서 장사 하겠냐?"

우리 지점은 낮에 워낙 잘되서 장사 잘 할거 같다.

"임마, 대답 안해?"
"아, 네. 그러네요."
"어린 자식이 싸가지없게...!"

목소리가 높아진 그 쯤이였다.
편의점의 문이 다시금 열리고,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점내로 걸어들어왔다.
검은 생머리를 틀어묶고 데님 남방에 청바지. 흔하디 흔한, 어떻게 보면 촌스러울지도 모르는 몰개성한 패션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 여자는 처음봤다.

시선이 내 쪽을 향하고, 챙아래로 들어난 입술이 샐쭉히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 아가씨. 몸매 좋은데! 어디 모델같은건가?!"

그 말에는 동감이지만, 여기서 손님들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피를 보는건 알바생인 나.
카운터에서 뛰쳐나가 손님 둘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손님, 저쪽 아래 편의점에 가면 같은게 천원 할인하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저리 안비켜? 나는 저짝 예쁜 아가씨랑 얘기하려는건데 시꺼먼 남자놈이 왜 가로막아?"
"하하, 약주가 과하신것 같은데 이만 자택으로 돌아가셔서 주무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꺼지라고!"

그렇게 말한 남자가 내 어깨를 퍽치며 밀어내고, 아차하는 사이에 여자손님에게 다가간다.
아뿔싸싶은 찰나에 고개를 돌린 순간이였다.

"으,으아아악!"

열려있는 편의점의 문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진상의 뒷모습.
밀쳐나며 시야에서 벗어난 그 찰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분명 취객 손님이 새로 들어온 여자손님한테 다가갔는데...?

"저기..."

내 생각을 끊은건 예의 손님의 목소리였다.
탁음 하나 없는 맑은 목소리. 그 매력적인 목소리에 알바생으로서의 직업정신을 되찾은 내가 응대했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방금 무슨 일 당하신건 아니죠?"
"네...갑자기 소리지르면서 뛰어나가더라고요."
"이상한 사람이였네요...어떤 물품을 찾으시나요?"

카운터로 돌아가며 그렇게 묻자,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기한이..."
"네? 유통기한이요? 혹시 사가신 물품에 문제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의 손가락이 모자 챙에 닿을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귀에 걸린 귀걸이가 눈에 익은 모양의 그것이라는 걸.

벗겨지는 모자, 그에 맞춰 출렁이는 검은 머리카락.
가에 가려져있던 유난히도 하얀 얼굴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진기한이! 오랜만이네!"
"...어? 응, 어?"

연화고등학교 34기 졸업생 이시화.
그 녀석이 내 앞에서 씩 웃고있었다.

누가봐도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