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읽게 된다면, 당신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 정신나간 괴물로부터요.
내가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기 전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 이름은 박호연입니다.

국제방위연합 아시아 섹터 방위군 육군 82사단 56연대... 였지만 이젠 부대마저 없어졌으니 이건 논외로 하죠.

아무튼,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3년 전이었어요. 운석우가 폭발해서 지구 곳곳에 그 파편이 낙하한 일, 아마 당신도 알 겁니다. 러시아에서 예전에 있던 일처럼요. 물론 러시아 때는 안전했지만... 3년 전의 그 일은 아니었죠.

일과 후에 뉴스 속보를 보는데, 미국에서 NASA 연구팀이 파편을 수거하는 도중 파편에서 이상한 연분홍색 젤리 같은 물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물질은 파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살아있는 듯 요동치더니 갑자기 접촉한 연구원을 집어삼키더군요. 그 불쌍한 사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방호복채로 삼켜졌습니다. 곧이어 그... 젤리 같은 것은 몸집이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했죠.

속보는 끊겼지만, 며칠 후부터 제가 있던 부대는 모든 외출, 외박 및 휴가가 통제되고, 영내엔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괴물이 나타났다, 고요. 주변 모든 것을 유기물, 무기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자신과 동화시키는 그런 괴물이요.

아마도 그 운석에서 나온 것인가 싶-]

그때다. 뒤에서 소름끼치도록 곱디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호연-아, 뭐, 해? 버려두긴 혼자. 싫어."

호연은 쓰던 쪽지를 몰래 숨겼다.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이브의 목소리였다.

"별거 아냐. 일기를 쓰고 있었을 뿐이야."

"일-기? 보고 싶어."

쪽지를 보고 나서 혹시라도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저 녀석이 또 오해하는 날엔 그땐 손가락이 녹아내리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다. 이미 왼손의 손가락은 이브에 의해 모두 한번씩 녹아버렸다가 그녀가 다시 만들어 붙여 준 것이었다.

그녀 육체의 일부를 떼서 말이다. 손가락을 붙여주며 이브는 온 몸에서 자신의 분체를 뿜어내며 행복에 겨워했다. 자신의 일부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이의 부속지가 되어 부분적으로나마 한 몸이 되었다는 건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순간이었으니까.

미친년...

"일기는, 원래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거야. 사람들은 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고."

"그-렇구나. 같이, 놀자."

호연은 이상하리만치 쉽게 납득하는 이브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고는 몸을 살짝 떨었다. 어딘지도 모를 이 점액질 동굴 안에서, 그는 벌써 5년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그녀의 몸이었다. 그녀는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자신의 몸에 흡수시켰고, 그 결과는 바로 눈 앞의 동굴이었다.

"호연-아, 사랑해. 오늘도, 놀자. 나, 좋아. 네가."

"..."

"싫.어...?"

이브의 눈이 잠시 생기 하나 없는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동굴 전체가 요동치며 약산성의 액체가 바닥에서 새어나왔다. 발이 따끔거린다. 호연은 기겁하며 싫지 않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호연이.는 날 사랑해. 나도. 사랑-해."

2m를 훌쩍 넘는 키의 이브는 호연을 끌어안고 다짜고짜 깊게 입을 맞추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고 일부분만이 멀쩡한 몸뚱이밖에 남지 않은-호연에겐 이브의 모든 행위가 너무나도 역겨웠지만-
이브가 너무나도 무서워 그녀의 요구대로 이브 자신만을 바라보는 운명의 상대 노릇을 억지로 할 뿐이었다.

"나, 나도... 사랑해, 이브..."

절망감에 타는 듯한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억지로 행복한 미소를 짓는 호연은 오늘이 며칠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반복되는 그녀와의 스킨십 후에는 시간감각마저 뒤틀려 버렸으니까.

"하아... 호연이. 내 거."

호연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을 뒤적여 자결용으로 남겨 뒀던 독약 캡슐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브가 그의 몸 위에 엎드려 자신의 일부를 입에서 토해내서는 먹이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그만...그마안..."

"호연이. 먹어. 그럼 살아. 영원히."

"시, 싫-"

그러자 이브는 우악스럽게 호연의 입을 벌리게 하고는 다시금 입을 맞추었다. 이브의 입에서 나온 젤리 같은 것들이 호연의 입을 타고 그대로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감과 동시에 호연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이 저주받은 곳에서 벗어나는 데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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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챈와서 처음 써보는 단편이다.

여기와서 많은 사람들이 쓴 작품들 보면서 행복해하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