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이 말로 차마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으음..!"


 몸을 뒤척이다 그만 잠에서 깨어버렸다.


"........."


 지휘관이 무심코 이불을 머리 위로 덮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마치 지휘관은 자는 척을 하는 것마냥 몸을 뒤척인다. 어떻게든 다시 잠에 들고 싶어하는 몸짓 같았다.


 나이 열다섯의 어린 지휘관. 그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는 방에 놓인 매트리스와 이불이 너무 크게 느껴질 정도로 몸집이 작은 아이였다. 그러나 그가 저렇게 싫은 티를 내는 것은 겨우 그런 투정 따위로서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눈을 뜨기 싫은 게 아니다. 눈을 뜨고 그 앞에 펼쳐질 광경들이 그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잠에 들 때마다 그는 내일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그것이 부질없는 헛짓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면서.


"하아."


 부질없는 헛짓. 그래,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눈을 감았다 뜨면 다음날은 오게 돼있으니까.

 결국 지휘관이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눈가를 비비는 그의 손이 고사리처럼 여리고 가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에 도색도 안 된 회백색 콘크리트 벽이 둘러싸여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한다. 애초에 포로 격리용 수감실로 만들어진 방이니 더 꾸며놓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 '포로 격리용' 공간에 지휘관은 한 명의 '포로'로서 홀로 격리되어 있다. 수감실이라지만 바닥에는 탁자와 의자 두 개에 매트리스 하나만 깔려 있고 콘크리트 벽에는 창문도 없이 문 하나가 달렸을 뿐으로 얼핏 보면 그냥 창고에 불과했다. 여러 명을 한 곳에 수감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기에 한 사람이 숙식할 장소로는 넓을지 모르나 한 사람이 하루종일 봐야 할 광경으로 기준을 바꿔놓는다면 그것은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적어도 묶어두지는 않으니 다행인가. 지휘관은 수감실 안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연약한 지휘관의 몸으로 전술인형의 힘을 이겨낼 리가 없으니 굳이 그를 꽁꽁 묶어놓을 필요까지는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가 묶여있지 않는 편을 그녀들도 더 좋아하는 것 같고.


 달그닥 소리가 들리며 알루미늄으로 된 화장실 문이 열린다. 말끔히 씻고 난 뒤에도 지휘관의 얼굴은 전혀 상쾌하지 않다.

 화장실 문의 반대쪽, 바깥과 연결된 육중한 철문 앞으로 걸어가면 거기에는 이미 새벽 일찍부터 그의 작은 몸집에 맞는 지휘관 제복이 놓여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저 깔끔히 다려진 붉은 빛 제복은 그에게 어서 입으라는 듯 곱게 개인 채로 문앞에 전달되어 있었다.


 마치 놀리는 것 같았다. 본명을 알지 못해 자신을 "지휘관."이라고 부르는 것 외에 지휘관 대우라고는 이제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그녀들이 자기가 입을 옷만큼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제복이란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 자신에게 제복을 입혀 놓고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고약한 취미라도 있는 것일까?


 문앞에 서 있던 지휘관이 끝내 제복을 주워들었다.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지금의 지휘관은 그녀들이 가져다 준 옷밖에는 입을 것이 없었다. 지금 입은 이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그녀들 앞에 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의자에 앉아 잠옷 바지를 제복 바지로 갈아입으려는데 웬 천장 쪽에서 위잉 하는 소리가 났다.


"........"


 CCTV.


 저놈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지휘관이 곱게 개어져 있던 제복을 아무렇게나 옆구리에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CCTV를 지켜보고 있을 인형의 눈을 보듯 카메라 렌즈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제복과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제복은 순순히 입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이건 그의 자존심 문제였다.





 옷을 갈아입고 몇 분이 지났는지 지휘관은 감이 오지 않았다.


 수감실 안에는 시계가 없다. 그것은 그녀들이 없앤 것이 아니라 지휘관 자신이 수감실 설계 과정에서 빼놓은 것이다. 포로나 인질은 시간 관념을 잊고 있는 것이 다루기에 더 편하다는 이유로.

 물론 그것도 다 자신이 그 '포로'가 되기 전의 이야기다.


 이 순간 그가 유일하게 셀 수 있는 것은 자고 일어나는 걸 반복하며 무의식적으로 세고 있는 감금일수 뿐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느낌 상 아침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팀 리더들과 아침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휘관의 일과는 따로 있었다.



 육중한 문이 철커덕 열리며 듣기 싫은 쇳소리를 냈다.



"후후~ 지.휘.관~~"


 자신을 향한 그 요염한 목소리를 듣자 지휘관이 고개를 문 반대편 벽으로 돌리며 눈가를 찌푸렸다.




 DSR-50.

 오늘은 하필 그녀인가.


"착하게 잘 있었을까, 우리 지휘관~?"


 자신의 특정 부위를 자랑하듯 그녀가 유난히 매혹적인 걸음걸이로 지휘관 앞에 다가와 섰다.

 같이 들고 온 것도 꽤 많았다. 한손에 든 여행가방은 무슨 물건이 그리 담겼는지 바닥 부분이 불룩해 겉으로 봐도 무거워 보였고, 탁자 위에 올려놓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담긴 비닐 봉지는 아마도 지휘관과 그녀의 아침 식사일 것이었다.


"내 차례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후훗."


"......."


 여기 감금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그런 식이었다. 오전에는 어떤 인형이, 오후에는 또다른 인형이 이 수감실로 들어와 지휘관과 함께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혼자 이 콘크리트 감옥에 갇힌 자기 지휘관을 보고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저마다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던 인형들의 면면을 지휘관은 기억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은 DSR-50에게 그 차례가 온 모양이었다.


"지휘관… 얘기 다 들었어. 다른 리더 인형들한테 지독하게 괴롭힘 당했다며?"


 항상 말에 장난기가 끼어 있던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가 꽤나 자애로웠다.


 지휘관에게 느낌이 섰다. 저것은 그녀의 말이 아니다.

 마치 무엇인가를 연기하는 것 같은 어감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참… 우리 불쌍한 지휘관, 어떡하면 좋을까…?"


 작은 동물을 보는 듯한 말과 함께 DSR-50이 그의 작달막한 몸을 껴안았다.


"읍…!"


"괜찮아, 괜찮아. 옳지…."


 앉은 채로 그녀에게 안겨서인지 DSR-50의 진한 여성의 감각이 한껏 끼얹혀지며 지휘관의 촉각과 후각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확실히 자애가 아니었다.


"지휘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는데. 그렇지? 힘들어도 계속 바쁘게 일하고, 가끔은 무리도 하면서…. 근데 팀 리더라는 녀석들이 그런 건 하나도 몰라주고 말이야. 참 나쁘기도 하지."


 지휘관은 대답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어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얼굴을 파묻은 그녀의 감촉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DSR-50이 손을 들어 몸을 천천히 쓰다듬는 것이 지휘관의 등에서 느껴졌다.


 기를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지휘관이 그렇게 원했던 건 진하고 포근한 엄마의 사랑, 그것뿐이었을 텐데. 그렇지?"


 지휘관의 감촉을 마음껏 맛보고 난 DSR-50이 마침내 포옹을 풀었다.

 이번에는 자애로운 엄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것을 올려다보며 이제는 지휘관도 확신이 생겼다.


 그녀가 이제 무엇을 하려는지 지휘관은 깨닫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 방에 들어오는 인형들이 꼭 빼먹지 않고 말하는 것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의미는 모두가 똑같았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엄마가 되어 줄게?"



 지휘관은 자기가 저 말을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 바꿔서 연재 시작함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