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세계 어떤 제국의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차에 탑승하는 한 여성 장교가 보인다. ]
그날 밤, 그에게 향하는 기차의 1등석에 앉아 다리를 꼰 뒤 세상을 다시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라보기 시작했다.
창문 밖 풍경속 풀과 나무, 스며드는 달빛 하나조차도 나에겐 모두 괴롭고 역겨운 것 이었다.
하지만 이런 염세주의적인 나에게도 하나의 낙관적인 햇빛 하나가 스며들었다.
내가 지금 보러가는 그이
그이가 나에게는 찬란한 햇빛이었다.
예전의 나 였다면 분명히 그런 햇빛조차 살이 타고 따갑다며 무시하고, 싫어하고, 혐오 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그를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처량해진다.
내가 오히려 비관적이게 된다.
그래, 난 오랜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다.
우리 조국은 전쟁중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우리 모두를 낭떠러지로 몰고가는 전쟁
난 거기서 공을 세웠다.
아버지의 가문은 대대손손 나라에 충성하는 기사였다.
여자라고 무시받을까 내 스스로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울고계신 어머니의 손수건을 뒤로 아버지의 차량을 타고 사관학교로 간 후 어느 덧 6년
많은 부하를 잃었다.
많은 동료를 불태웠다.
많은 사람이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이 지옥같은 화마는 쉽사리 꺼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연료가 부족하다는 듯 더욱 더 많은 땔감을 요구하고 있다.
난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혹독한 전선에서 흙탕물을 맞으며 이 나라를 위해 몇 보 전진했다.
이 몇 보 전진에,
내가 알던 라인하르트가 죽었다.
내가 알던 윙케가 죽었다.
내가 알던 바그퉁이 죽었다.
난 도대체 왜 죽지 않는거지?
전쟁에 나간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지 않은 것 에 감사하지만,
난 웃기게도 적의 납탄에 빨리 이 현상을 겨우 유지하는 것을 만족하며 생을 끝내고 싶다.
눈을 감고싶다.
적어도, 그 곳에선 총과 칼 을 들 필요가 없겠지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슬픔과 공포를 느끼는 것 도 무감각 해지고 손도 거친 사내의 손으로 굳어가며 마음도 차갑게 방치된 대포의 총열마냥 얼어갈 즈음
어느 날, 대뜸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한나."
"네 아버지."
"황제께서 플랑드르-데런 지역 영주의 아들과 주선을 맺어주셨더구나."
"예?"
갑작스런 주선에 얼음같은 내 마음도 살짝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 속 에서
"너 따위가 무슨 주선이야?"
"동료들이 생각나지 않아?"
라며 나를 옥죄어오자 이따금 돌아오는 온기는 곧 커다란 냉기에 잠식당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런 말 을 꺼낸 이유가 궁금해진 난 대뜸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황제께서 왜 그저그런 저에게 이런 주선자리를 내어 주신답니까?"
아버지는 권위높은 표정을 흐트리지 않으며,
"너 이번 조국전쟁에 플랑드르-데런 지역 점령에 가장 공이 들었던 것은 너도알고 나도 잘 알고있다."
"황제께서는 우리조국의 핏줄을 그 쪽과 연결시켜 점령을 확고히 할 생각이신 거 같더구나"
"너보다 2살 어린 친구이니 한번 만나보거라•••"
난 단지 나라의 장깃말에 불과하다.
특히 그런 장깃말을 움직이는 주체의 명령이라면 따를 수 밖에 없겠지.
라며 아버지에게 알았다는 말을 건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안내해주시죠."
나의 말에 아버지는 준비됬다는 듯 사람을 부르자 어떤 남성 한명이 등장하고 자리를 비워주시곤
"편안히 이야기 하려무나"
를 외치셨다.
그는 떨리는 표정으로 나의 맞은 편 자리에 착석했다.
당연하겠지,
적국의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자가 본인과 주선을 봐야 한다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을 것 이다.
근데,
웃겼다.
갑자기 모든 게 우스웠다.
떨리는 그가 무언가 웃기었다.
난 가슴 속 에 들리는 자책을 잠시 내려놓고 그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긴장하셨나요?"
"아..앗! 아닙니다.."
라며 애써 둘러대는 그를 보곤 더욱 더 관심이 생긴 나는 식탁에 놓여있는 흑장미가 든 병을 가져와
"이런 꽃.. 당신의 이런 인생에서 사랑하긴 했었나요?"
갑자기 이런 나의 의문스러운 질문에 다시 당황을 할 모습에 난 비웃을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네. 전 인생에서 이런 '흑장미'를 제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라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더니 낙관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런 대답을 하는 것 이 아니겠는가?
"흑장미의 꽃말 중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저에게 이런 꽃말은 인생에서 언젠가 만날 연인 이거니와 하던 도중, 당신을 만난 것 같네요."
난 마치 숙쓰러운 숙녀마냥 얼굴이 나도 모르게 빨개지기 시작했다.
냉기가 애써 다시 심장을 덮으려 했지만, 화마는 그런 생각을 봐줄 리 가 없는 것 같았다.
- 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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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