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야. 왜 여기있어."

차갑기 그지없는 내 질문에도 유라는 답하지않고 웅크린채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훌쩍이다가 내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갈려하자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고선 말했다.


"미안..해.."

아까 그녀는 분명 자기일에 왜 참견하냐고 내게 따졌었다. 

어찌보면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린 내 잘못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라해야하나? 술때문에 그런가? 유라에게 별로 사과하고 싶지않았다. 


"아까는 신경쓰지말라며? 오늘부터 신경안쓸게."


다소 신경질적이라고 할수있는 대답이 들리자마자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기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혼날때 우는것처럼 유라는 울기시작했다. 


"진짜..진..짜 미안해.."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고 하지않던가.

단호했던 나의 태도도 유라의 눈물앞에서 점점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곱고 예쁜 그녀가 우는 모습이 내가 가슴이 절로 아파질정도로 애틋하고 서글펐다. 


결국 난 유라의 엎에 살그머니 앉아 그녀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 자존심을 버린채 그녀에게 사과하기로 했다.


"아니야..내가 더 미안하지.."


"흐..흐윽..흑.."


"괜히 껴서 너한테까지 불똥튀게만든건 진짜 미안해.. 하지만 너한테 그런다니까 난 참을수가 없더라." 

아까 천사의 몫에서 술을 너무 쎈걸 들이켰는지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않을 오글거리는 멘트들을 뱉고있었다. 


"너 보는앞에서 너 욕하는것도  괘씸해죽겠는데 물건도 제대로 안팔고 말이야."


"그치만..난 죄인의 후손인걸..? 천년이 지나도 나한테 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건 달라지지않아.."

울먹이면서 제 감정을 전부 담아내지 못하는 유라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아마 이 사태가 하루이틀 가던 일은 아니겠지.


"예전에는 나를 아예 손님으로 받지도 않았었어..디어 헌터에서도 날 손님으로 받아주질 않았고. 내가 예전에도 말해줬잖아? 길가다가 토마토도 맞아봤다고. 하지만 나는 그려려니 했어. 왜냐고? 나는 죄인의 후예니까. 저 사람들이 나한테 저러는건 어떻게보면 당연한거야. 하지만..하지만..."


"가끔은 너무 힘들더라..정말..흐윽..정말 너무 힘들더라..: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한 유라는 그동안의 서러웠던 감정들이 북받쳐오르는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진정할수있게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처럼 그녀의 등을 계속 토닥여주었다. 


"아까말이야..너가 나대신에 그 아저씨한테 화내줬을때 사실은 기뻤어.. 엠버는 좋은 친구지만 그녀는 쉽게 화를 못내거든.. 누군가가 나를 위해 화를 내줬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

사실 너가 나한테 말걸어줄때마다 뭔가 따듯한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 거의 아무도 나한테 그렇기 대해준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너한테도 피해갈까봐 너무나도 무서워서.. 나때문에 너도 나처럼 될까봐 무서워서 일부러 그렇게 화냈던거야.."


푸른 머리의 소녀가 울음을 그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전부 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다. 

얼굴에 작은 홍조를 띄우며 마치 사랑고백과도 같았던 그녀의 솔직한 마음에 온 감정이 누그러졌다. 


"유라."


"응..?"


나는 말없이 그녀를 껴안았다.

내 팔을 그녀에게 두르자 그녀또한 양팔로 나를 안았다.

그리곤 두번다시 놓치지않겠다는듯 꽉 하고 안았다. 


"고마워..유라..고마워.."


"...헤헤.."

그녀는 이제 조금 진정이 됐는지 조그마한 미소를 보였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몬드의 밤은 그렇게 점점 깊어갔다.

*****

동이 트자, 나의 몸은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오랜기간 훈련된 전쟁의 감각때문인지, 아침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곤 대야에 냉수를 받아 세수를하며 어제 일에대하여 생각했다. 


"...난 참을수가 없더라..."


어제 한 주옥같은 멘트들이 하나하나 생각날때마다 얼굴이 확 빨개지는걸 느낄수있었다. 거기에 애초에 그녀는 나 때문에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니. 이거 원 영락없이 쓰레기 확정이다. 


아침 현자타임을 가지고 아침을 먹으러 얼마전에 받은 옷을 입고선 로비로 내려갔다. 오늘도 영락없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하늘색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허나 그녀의 얼굴보기가 꽤나 부끄러웠던지라 그녀의 자리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게되었다. 


스프하나를 받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아무생각없이 한숟갈 두숟갈씩 먹다가 누군가가 옆에서 콕콕 찌르는 느낌이어서 순간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나는 화들짝 놀라지않을수가 없었다.


"아 시ㅂ..깜짝아.."


"잘잤어?"

방금전의 내 욕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렸는지 태연한 얼굴로 내게 안부를 묻는 유라였다.


"잘잤지. 근데 올라가서 다시자야해. 모험가 길드말고 다른 일 하기로했거든."


"무슨일?"

유라는 호가심이 가득한 눈망울로 내게 물었다.

난 당황스러웠다. 뜬금없이 나 술집에서 일해! 라고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참 난감했다.


"그냥 호송? 이라고해야하나? 밤중에 마물들때문에 고생한다더라고. 그래서 당분간은 걔네 때려잡으면서 돈벌게."


"흐응 그렇구나..? 그러면 다치지않게 조심해야해..? 무슨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얘기하고. 알겠지?"

유라는 내가 걱정된다는듯 잔소리를 하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도 다시 올라가 강제로 잠에 들기 시작했다.


****

한참을 자고 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시간은 한 낮이었지만 어제의 잡화점 아저씨랑 싸운것 때문에 몬드에서 무언갈 하기 정말로 애매해졌다. 


가만히 방에만 있으면 정말 지루해서 미쳐버릴거같아 대충 옷가지 한개만 줏어입고 숙소바깥으로 나왔다. 

한낮의 몬드의 거리. 

 지금은 모험가들이 한참 일하고있는 시간인지라 사람은 꽤 없는편에 속했다. 


새벽까지 기다리는동안 할게없어 나는 몬드의 거리를 배회하기로 했다. 디어 헌터에서 토스트를 하나 뽑아먹고 기념품 가게에서 보석도 구경하고 그리곤 할게 없어 분수대에서 분수가 나오는 장면이나 감상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에 들뻔한 찰나

"아저씨!"

까무잡잡하고 어깨에 조그마한 흉터가 있는 소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 나?"

갑작스레 나를 부르는 소년에게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못햤다.

"네! 다름이 아니라.."

소년의 이름은 베넷.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그건 바로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베니'모험단을 도와달라고.


모험가 길드에선 서로를 돕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 '모험단'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모험단' 이라는 시스템에는 최소 3~4명의 모험가들이 필요한데 베니 모험단은 베넷의 악운 체질로 인해 단원들이 전부 떠나 모험단이 없어질뻔했다고 한다. 캐서린씨가 어찌저찌 잘봐줘서 편제는 유지되지만 

성과가 나오질 않는다면 모험단이 해체될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내게 부탁한다고 하는것이다.


"근데 말이야..다른 모험가들도 많은데 왜 나한테 부탁하는거니?"


"아저씨는 강하잖아요! 지금이야 뭐 죄인을 감싸니 뭐니하지만 모험가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츄츄족 캠프하나를 단신으로 때려잡고 드래곤 스파인에서도 츄츄족 서리왕의 목을 딸정도로 강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너의 악운체질을 견딜수있을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거니..?"


"아니요. 저도 아저씨처럼 되고싶어서요..저도 아저씨처럼 쎄지고 싶어요."

녀석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갑자기 진지해지며 열정에 타오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녀석에게서 마치 어렸을적의 내 모습을 보았다. 돌바닥에 내리꽂혀도, 팔이하나 부러져도 꿋꿋이 일어서서 덤비던 그 소년이 보였다.


"그럼 아저씨는 이따 밤에 할일이 있거든? 그때까지만 내가 널 도와줄게. 어때?"

그러자 녀석의 인상이 확펴지더니 모험가길드로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갔다. 


베넷과 나는 모험가 길드로 가서 등록절차를 마치고선 장비를 챙기고선 성 밖으로 나왔다. 

자신만만하게 나를 데리고 나온 베넷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뭐할거야, 단장?"

단장이라는 소리에 어깨가 하늘을 뚫을거같았는지 녀석은 신난다는듯 말했다. 


"오늘은 서풍 매의 사당에 갈거에요. 예전에 단원들이랑 함께 왔을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로이가 식중독에 걸려서 금방돌아가버렸지 뭐에요.하하.."

녀석은 멋쩍은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서풍 매의 사당'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아니 이 문뒤에 뭐가 또 있어?"


"네! 이 안에서 마물들이 활동한다고 해요. 자세한건 저도잘 모르겠네요."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문을 열어제끼더니 갑자기 섬광이 내 눈을덮치며 그 안으로 난 빨려들어갔다.


그러자 몬드와는 다른 이상한 미지의 광경이 펼쳐졌다. 

건물들은 부서져있었고 그 잔해들만 남아 그 기반을 지키고 있을뿐이다.


"그러면 여기있는 마물들을 처치하고 안전하다는 보고서를 써서 내면된다는거지?"


"네 맞아요. 딱 알고 계시네요."


"그럼 더 지체할게 있나? 어서 가자."

녀석은 오랜만에 동료와의 모험인듯 이 어둡고 으스스한 곳을 신난다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저 문은 어떻게 여니?"


"그건 아마 저어기 있는 장치랑 저어어어기 있는 장치를 활성화하셔야 여실수있을거에요. 우선 저깄는 마물들부터 처치하고 보죠." 


나와 베넷은 서로 나눠져서 마물들을 처치하러 갔다.

마물들은 항상 내가 처치하던 츄츄족들 이었던지라 그들을 처리하는데에 얼마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내 담당구역 장치를 활성화하고 베넷녀석이 잘하는지 구경하러 갔다.


녀석은 의외로 잘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총공격을 시작하지!"

녀석이 갑자기 뛰어올라 땅을 내리찍더니 그 영역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불타기 시작했다. 녀석은 괜찮은듯 보였지만 내가 안괜찮을뻔했다. 


내가 그 순간에 방패로 반응하지못했다면 아마..나도 저기 츄츄족들처럼 통닭구이가 됐을거다. 


"오메..시벌..깜짝 놀랐잖아.."


"괜찮으세요?"

녀석은 걱정되는 눈으로 내게 물었다.


"암. 괜찮고 말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않는단다."

말은 그렇게했지만 폭발적인 녀석의 원소폭발에 나 또한 당황해버렸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의외로 베넷은 잘싸웠고 나 또한 베넷녀석덕에 연계해서 더 빨리 마물들을 때려잡을수있었다. 그렇게 계속 비경을 거닐다가 마침내 비경의 끝이라고 할수있는 부분에 도달하였다. 


허나 그곳에는 지금까지봤던 마물들과는 사뭇 다르게생긴 마물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가면을쓰고 지팡이를 든 자그마한 마법사같이 생긴 마물과 그 주위에 츄츄족이 지키고 있었다. 


"저 녀석은 심연 메이지인데 너무 성가셔요. 제가 여기까진 어떻게 어떻게 왔는데 제 원소공격으로는 저녀석의 보호박을 깰수가 없어요.."

베넷은 아까와는 다르게 자신감을 사뭇 잃은듯해보였다.


"그럼 너가 저놈들을 맡아. 저 이상하게 생긴 가면쟁이는 내가 죽일테니까. 알겠지?"


"네..!"


마물들은 우리를 이제서야 쳐다봤는지 우리한테 달려오기 시작했고, 베넷이 츄츄족들을 맡고있을때 나는 도약하여 저 심연 메이지의 머리를 작살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한 막같은게 놈을 둘러싸더니 놈은 공중에 둥둥 뜬상태로 날 도발하듯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팡이를 빙빙돌리더니 사방에서 불을 뿜는 가면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내 뒤에있던 가면을 부수고 방패로 뿜어져 나오는 불을 막았다.  


그러자 놈은 지팡이로 내게 불덩이를 쏘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 공격도 내 방패에 막혔지만 내가 녀석을 저 방어막 안에서 빼올 방법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에있던 츄츄족이 내게 슬라임을 던져서 난 저 멀리로 튕겨져 나갔다.


그 심연 메이지는 슬슬 나를 향해 달려오는데 내 창은 저 멀리에 떨어져있다. 물론 마법으로 다시 불러올수는 있지만 그 안에 녀석에게 살해당하는게 더 빨랐다. 


그러자 나는 이판사판으로 예전에 전쟁때 썼던 단검하나를 꺼내들어 녀석의 보호막에 그대로 갖다찍었다. 단검의 물결모양대로 보호막을 보기좋게 뚫고들어갔고 녀석은 당황했는지 그대로 원소충전을 멈췄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난 마법으로 창을 물러와 심연 메이지의 가슴을 정확히 뚫어내었고 이윽고 들려오는 배넷의 폭발소리 이후에 이 비경은 고요해졌다.


"다 끝난거 맞겠지..?"


"네..그런거 같네요.."

그리곤 녀석들의 시체에서 전리품들을 하나씩 떼가고선 이 주변을 더 정찰하다가 보물상자 몇개를 발견했다. 보물상자엔 꽤나 많은 모라가 들어있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생활비는 걱정 안해도될지도..?하는 생각과 함께 비경을 나왔다.


"정말 재밌었어요! 오랜만에 동료랑 같이 모험을하니 정말 재밌었어요. 동료가 안다친거도 처음이고요."


"그래그래. 나도 재밌었다."

난 기뻐서 방방뛰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모르게 흐뭇해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 전리품을 제출하고 보고서를 올린뒤 마물퇴치에관한 보수를 받았다. 

보수를 받고는 아무생각없이 녀석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제 뭐하실거에요?"


"나? 이제 저녁먹고 잠깐 돌아댕기다가 일하러가야하는데?"


"그럼 내일도 이렇게 같이 다니실수있나요?"


"아마도 가능할껄?"

녀석과 함께 디어헌터에 들려 버섯꼬치를 하나씩 물면서 거리를 걸었다. 이렇게보니 어린 동생이 생긴거같아 뭐랄까..마치 내 제자를 기르는 기분이었다.

***

녀석과 헤어지고 저녁을 좀 챙겨먹고, 기사단 내에있는 도서관에서 시간좀 때우다보니 어느새 다이루크씨와 만날 시간이 되었다. 


약속시간까지 1시간정도 남자, 보고있던 소설책을 내려놓고 다운 와이너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서쪽으로 계속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창풍 고지대의 으리으리한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앞에 다다르자 그 웅장한 자태에 압도되어버려 문을 되게 소심하게 두들기고 들어갔다.


그리곤 그곳엔 나의 고용주, 다이루크씨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