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드리운 밤. 모 대형 백화점


폐점하고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간. 이를 증명하듯 낮의 화려하고 밝은 백화점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는 어둠이 내려앉아 마치 야밤의 학교처럼 공포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최상층에서 한 층 아래, 일반인들은 발을 잘 들이지 않는 사무실용 공간


넓은 공간에 펼쳐져 정렬된 수많은 사무용 책상 중 하나. 그 아래에 한 남자가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 


더 안전하고 포근해 보이는 점포용 창고에 숨지 않은 것은 위치를 들켰을 때 쉬이 도망갈 수 없으리란 그의 계산 때문이었다. 사무실은 운만 따른다면 뒤편의 비상구로도 바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슬며시 휴대전화를 켜 시간을 확인한다. 3시 37분. 벌써 이곳에 숨은지도 2시간이 훌쩍 넘었다. 


최대한 몸을 접고 있었던지라 몸 이곳저곳이 뻐근하기도 하련만, 그의 공포는 그러한 고통마저 잊게 하였다.


작게 한숨소리를 내는 남자. 이제 두세시간만 버티면 그녀 또한 제풀에 꺾여 돌아가리라 생각하자 온몸에 힘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탁


그 순간, 스위치 눌리는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사무실이 순식간에 빛으로 채워졌다. 


안심하여 몸이 풀리고 있던지라 남자는 화들짝 놀랐으나 본능적으로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굳어버렸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남자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어떻게 알았지? 보통은 점포가 있는 아래에 숨을 것이라 생각할 텐데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난다. 


남자는 설마 한칸 한칸 다 뒤져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냉정과 침착을 유지하고자 했다. 다행히 그의 자리는 어중간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모서리 끝부터 보든, 중앙부터 보든 유예 시간은 있었다. 운이 좋다면 다른 책상을 뒤지는 사이 소리를 죽여 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또각 또각


경쾌한 구두소리. 그러나 남자에게는 두려운 저승사자의 불쾌한 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딱!


발소리가 사무실의 중앙에서 뚝 멈춘다. 마지막 발소리가 묘하게 절도 있고 부자연스럽게 큰 것은 분명 그녀가 그로 하여금 더욱 공포심을 갖길 원했기 때문이리라.


몸이 공포감에 부들부들 떨린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그녀에게 들리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로 요란하다.


머릿속에서는 제발 빨리 나가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동안 수천번은 더 되뇌었을 것이다.


“하아... 여기서 얀붕이 냄새가 나는데... ♡”


끈적하고 섹시한 목소리, 동시에 청아하고 상쾌한, 모순적이지만 어쨋든 아름다운 목소리이다. 


‘씨발 또라이새끼...’


남자는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녀가 빨리 나가기를 비는 것 뿐이었다.


“... 여기엔 없나보네...”


-또각 또각 또각...


불이 다시 꺼지고 발소리가 멀어져 간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남자.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그녀가 한 말이 귀에 밟힌다. 냄새가 난다니, 상식적으로 냄새만으로 사람의 위치를 구분하고 찾아오는 게 말이 되는가? 남자는 냄새가 많이 나는 편도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나오기 전에 샤워를 하고 온 참이었다.


남자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냄새가 나니 마니 하는 그런 시답잖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으므로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지금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남자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좁은 공간에 몸을 접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니 온 몸이 쑤시고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휘청거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리를 내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미약한 달빛에 힘을 빌려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비상구로 향하는 철문을 향한다. 계단으로 간 뒤에 어디로 갈 지는 아직 생각해 두지 않았지만 일단 사무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남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수 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안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무실이 이젠 호랑이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이제 바로 앞이다 서너 걸음만 더 뻗으면 멀게만 느껴지던 철문의 손잡이가 그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탁


맥없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사무실에 환한 불빛이 채워진다. 갑작스런 빛에 눈이 감긴다.


-또각......또각......또각......또각......


공포스러운 구두소리가 그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남자의 몸이 굳었다. 움직여야 한다. 도망가야 한다. 눈앞에 문이 있다. 분명 뛰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이고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원망스럽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이 남자에게 다가온다. 들리는 것은 발소리 뿐만이 아니다. 금속재질의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심장이 방망이질 하듯이 뛴다. 입고 있는 셔츠는 이미 땀에 흥건히 젖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불현듯 남자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어렸을 적의 추억. 산을 자주 타시던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얘야, 사람이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두려운 상대를 만나면 도망갈 수 있는 상황에도 도망갈 수가 없게 된단다. 몸이 굳어버려.”


“에이 그런게 어딨어, 선 채로 가위 눌리는 것도 아니고”


“선 채로 가위 눌린다라...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란다. 귀신, 도깨비가 아니더라도 큰 곰만 봐도 그런 경우가 있지. 분명히 도망가려면 도망 갈 수 있는데 공포심에 몸이 굳어버리는 게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허허, 어린 네게 이런 말을 해봤자 무엇하겠느냐, 초콜릿이라도 하나 먹을 테냐?”


지금 남자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다. 발소리가 계속 가까워져갔다. 이제 남자가 문만큼 남은 거리만큼 그녀가 남자에게 접근했다. 등뒤인데다 목까지 굳어버려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런듯한 느낌이 든다. 


그 순간, 굳어있던 남자의 몸이 풀렸다, 움직일 수 있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 남자의 뇌는 문을 연 이후의 계획을 모두 세웠다. 필시 이것이야말로 극한의 상황에 발휘되는 인간의 능력이리라. 남자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발을 뗐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남자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았다. 뒤통수에 큰 충격을 느끼며 남자는 바닥을 향해 맥없이 쓰러졌다.


이대로 잡힐 수는 없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고통을 참고 바들거리며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금방 팔에 힘이 풀려 몸이 다시 바닥에 붙어버렸다. 그렇게 해봤자 의미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앞으로 부들거리는 손을 뻗었다. 


제3자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추한 몸부림이었으며, 남자 자신에게는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고, 쓰러진 남자 옆에 쪼그려 앉아 얼굴에 미소를 달고 보고 있는 여자에게는 이마저도 너무나 귀여운 행동이었다.


“우리 귀여운 얀붕이... ♡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 누나가 죽을 때까지 귀여워해줄게♡ 하아... ♡”


그녀의 색기있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의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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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는 습작이랍시고 쓴 건데 이것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어서 글쓰기가 손에 안 잡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