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썩, 여자의 팔이 병원 침대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얼굴에 올려진 베게엔 거친 몸부림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 이제야 죽었네요.” 침대 옆의 여자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불빛이 여자의 몸을 비췄다.

 

길게 늘어진 새까만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발군의 몸매, 밝게 빛나는 눈.

 

볼에 묻어있는 피만 아니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제 손으로 죽이려 했는데 멋대로 교통사고나 당하고 말이에요. 덕분에 선배가 당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잖아.” 마지막 말을 하는 여자의 눈은 차가울 정도로 딱딱하게 죽어있었다.

 

“그러게 제가 선배 옆은 마음대로 쳐다보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시체 아래로 배게를 놓으며 정리를 끝낸 여자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병실을 나갔다.

 

잠시 후, 병실에 전기가 들어오며 의사들이 달려왔을 땐 이미 침대 위의 시체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선배!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시죠?” 여자는 ‘선배’ 라고 부른 남자의 팔을 안으며 찰싹 달라붙었다.

 

“오늘은 야간 알바가....”

 

“그건 걱정 말아요! 오늘 대타 뛸 일 없을 테니까, 헤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색과 분홍 그 사이에서 차분하게 내려앉은 입술이 남자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때 하나 없는 깨끗한 웃음에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 근데 그 전에 같이 사는 사람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잠깐 전화 좀 하고 와도 될까?” 남자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여자는 미소와 함께 남자를 놓아주었다.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자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녀의 코에 들어온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도 여자 냄새.’ 요즘 선배의 살 냄새엔 이상한 냄새가 끼어 있었다.

 

늘 맡던 냄새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달콤한 버터의 향기가 나는 선배의 몸에 또 어떤 해충이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여자가 밤마다 불쌍한 선배한테 접근하는 게 틀림없어. 선배가 위험해. 그 해충 년 때문에!” 여자의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 안쪽에서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오늘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나지막하게 반복하던 여자는 남자가 돌아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띄웠다.

 

 

 

 

 

“선배! 저 쪽에 저희 집 있는데, 잠깐 들렀다 가면 안돼요?”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손가락으로 도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헤헤, 두고 온 화장품이 있는 것 같아서요.... 잠깐 화장만 고치고 올게요!” 차가 서자마자 여자는 멋대로 선배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아파트의 현관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앞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곳곳에 붙여 놓은 거울로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는 손끝으로 거울 속 남자를 어루만졌다.

 

‘저렇게 잘생겼으니 벌레가 꼬이는 게 당연하지. 뭐 그래도 이젠 괜찮아! 오늘만 지나면, 그래, 오늘만 지나면, 선배는 내 거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선배, 눈 감은 모습도 멋져...!” 여자의 폰 화면엔 자동차 블랙박스가 비추는 화면이 그대로 떠 있었다.

 

화면 속의 남자는 여자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잠시 눈을 붙이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피로가 매일같이 달라붙는 여자 때문이었지만 여자는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무언가가 남자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여자는 들뜬 마음을 힘겹게 가라앉히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벽과 창문에 붙어있는 방음판과 군데군데 놓인 카메라가 위협적으로 여자를 에워쌌다. 여자는 그 카메라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갑과 재갈이 연결되어있는 침대 기둥, 못으로 고정해 놓은 다리가 삐걱이며 기괴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것들은 독특한 취향으로 봐줄 수 있다지만, 벽 한쪽을 뒤덮은 선배의 사진은 도무지 일반인들로서는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중 선명하게 찍힌 사진들에는 입술 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

 

“에... 가방이랑 약이 어디 있더라....?” 여자는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서랍을 뒤졌다. 한쪽에 가지런히 접어둔 커다락 플라스틱 가방이 하얀 약병 아래 놓여있었다.

 

“해충도 죽이고, 선배만 데려오면, 이제 아무도 선배를 못 넘볼 거야!” 여자는 장미밭에 놓인 듯 황홀한 표정으로 달아오른 두 볼에 손바닥을 붙였다.

 

 

 

 

 

 

“선배, 많이 기다리셨어요?” 여자가 차에 타자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기어를 높였다.

 

“선배! 선배~!” 여자가 선배를 부르자 남자는 잠시 옆을 돌아보았다.

 

“선배는 왜 자꾸 옆에 벌레들이 달라붙게 두는 거에요? 정말, 그런 것들은 빨리 떨쳐내면 편하잖아요.” 여자의 두 눈엔 애정이 잔뜩 담겨있었다.

 

“응?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별 거 아니에요. 이제부턴 제가 지켜드릴 테니깐!” 여자가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숨기려 애를 쓰며 가슴 사이에 낀 안전벨트를 밖으로 빼냈다.

 

 

 

 

 

삐비빅,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너.... 그걸 어떻게....”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돌아봤다.

 

“제가 말했잖아요, 선배에 대해 모르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커다랗게 뜬 눈에 비치는 선배의 얼굴이 어딘가 일그러져 보였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요? 빨리 들어가요!” 여자는 문을 열고 남자의 집 안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갔다.

 

안에서 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여자 화장품 냄새. 선배의 집에 해충이 달라 붙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오랜 시간 동안이나.

 

‘벌레한테 잡혀 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역시 내가 구해줘야겠어.’

 

여자는 신발을 벗자마자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특별히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렸다. 여자는 그 머리카락을 집어 들곤 한번에 뚝 끊어버렸다.

 

“선배~! 우리 맥주 마셔요, 맥주!” 여자는 남자의 팔에 달라붙어 커다란 가슴을 들이밀며 남자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선배는 잠시 앉아 계세요! 제가 준비할게요!” 여자는 집 주인인 자신이 준비해야 한다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맥주 두 캔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달칵, 병의 뚜껑을 열고 주사기의 피스톤을 당기자 약이 주사기의 유리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맥주 캔 입구에 바늘을 꽂고 피스톤을 밀자 좁은 틈을 파고 든 바늘에서 수면제가 한 방울 씩 뚝 뚝 떨어졌다.

 

“선배~ 준비 됐습니다~!” 여자가 소파에 앉아있던 선배를 불렀다.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맥주 캔을 땄다. 치익, 시원한 소리와 함께 수면제가 섞인 맥주 거품이 위로 올라왔다.

 

선배의 입이 거품에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는 남자의 입술에서 도저히 눈을 떼질 못 했다.

 

점점 더,

 

점점 더,

 

남자의 입이 수면제에 가까워졌다.

 

꿀꺽, 남자의 목이 움직였다.

 

‘드디어 마셨어! 이제 완전히 내거야! 내거라구! 절대! 절대! 그런 벌레같은 년들한테 상처받지 않게 내가 구해줄 거야!’ 여자는 흥분으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캔을 내려놓기 전 까지는.

 

“이상한 여우 한 마리가 우리 자기 옆에 달라붙어있네?” 에코백에 들어있던 칼이 어느새 그녀의 목 아래 들려있었다.

 

“우리 자기 오른팔 주름이 계속 이상하게 구겨져 있지 뭐야~? 더러운 냄새도 나고 말이지~” 선배의 몸에서 나던 그 냄새. 그 년이었다.

 

“저번에 주제도 모르고 우리 자기 옆으로 다가오려는 애가 있길래 쫓아내볼까 해서 차로 들이받아줬는데, 다시 찾아가니 죽어있더라구~?” 칼의 번뜩이는 날이 점점 목에 가까워졌다.

 

“그거 너지?” 칼이 목에 닿자 빨간 피가 목에서 주륵 흘러내렸다.


“우리 자기한테 달라붙는 벌레들은 내가 숨 쉬는 것까지 전부 지켜보고 있었거든. 아, 맞아! 너한테 이 약 처방해준 의사는 다시는 의사 일 못 하게 만들어 놨으니까 아마 이런 일이 또 생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있잖아.....” 여자가 칼을 세웠다. 뾰족한 칼 끝이 목의 상처를 향했다.

 

“이 남자는 내거야, 아무한테도 안 주는 내 거라고....!” 서걱, 목에 칼이 꽂혔다. 사방으로 피가 튀어나오며 뒤에 있던 여자의 흰 옷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도! 우리 사이에! 못 끼어들어.....! 알아...?” 여자는 미친 듯이 목을 찔렀다. 마치 그동안 자신의 남자를 건드린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털썩, 여자의 몸이 의자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저항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후- 이제야 죽었네.” 의자 옆의 여자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온 불빛이 여자의 몸을 비췄다.

 

길게 늘어진 새까만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발군의 몸매, 밝게 빛나는 눈.

 

볼에 묻어있는 피만 아니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자기야~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자기를 밖으로 풀어줬는데~ 그러니까 자꾸 이런 벌레들이 꼬이네~?” 여자는 점점 남자에게 다가왔다.

 

찰칵, 남자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남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풀지 못할 단단한 수갑이었다.

 

“이렇게 벌레들이 꼬이는데도 못 쳐낸 자기가 잘못한 거니까~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평생 같이 사는 거야, 알겠지?” 차르륵, 수갑이 점점 남자의 손을 조여왔다.

 

“평, 생.” 여자가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