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데레 아내 길들이는 만화보고 삘 받아서 썼었는데 그 만화 갤이랑 같이 날아감 ㅋ



 


찰칵, 손에 묶인 수갑이 철컹거렸다.


하, 오늘도인가.


“일어났어?” 금속음을 들었는지 부엌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유림. 저 여자의 이름이다.


감금당한 주제에 내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일단은.... 여자친구라는 사이니까. 

“손목이 아팠다면 미안해, 헤헤.... 근데... 니가 자꾸.... 다른 여자랑 얘기를 하면.... 내가 이렇게 안 하고는 안심이 안 된단 말이야....” 유림이가 부끄러운 듯 두 볼을 붉혔다. 딸기색 입술이 오물오물거리며 그 사이로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어디 넣은건데?” 내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여자가 잠시 생각에 빠져 고개를 숙인 동안 그의 손은 침대 뒤편에 숨겨놓았던 열쇠를 낚아챘다.


“음.... 저녁에 준 커피에 넣었..... 에에에에엑! 그게 왜 있어! 반칙이잖아!” 그녀는 허둥지둥 내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한쪽 팔에 걸린 수갑을 풀어버린 후였다.


유림이가 달라붙었을 때 느껴진 그 압도적인 말랑함을 거부하긴 힘들었지만 이대로 묶였다가는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맨날 이 침대, 이 수갑으로 묶잖아.” 양 팔이 모두 자유로워지고 나자 난 수갑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자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채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귀엽기는.


“치사해....”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야, 최유림.” 내가 몸을 일으켰다.


“으, 응....?”

딱! 유림이가 고개를 들어올린 순간, 뽀얀 이마에 불꽃 딱밤이 작렬했다.


“악!” 그녀는 한 손으로 벌개진 이마를 연신 문지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왜 때려!” 울음은 이제 쏙 들어갔나.


“아침부터 묶여있었는데 당연히 때려야지.” 나는 발목에 찬 수갑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자면서 다리가 좀 흔들렸는지 발목이 살짝 부어있었다.


잘 때 움직이는 편은 아니었으니.....


“야!” 내가 순간 소리를 질렀다. 굳게 다문 입술 속에서 고함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마치 나태한 학생을 혼내는 엄한 선생님 같은 모습에 유림이는 자기도 모르게 얼어붙었다.


“너 또 콘돔 안 썼지.”

잠시 적막이 흘렀다. 유림이는 묘한 미소와 함께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빨리 대답해라?” 내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반쯤 내려다보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묵묵 부답이었다.


“하, 할 수 없지 뭐. 난 나한텐 솔직한 여자가 좋으니까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라도.....”

“안 썼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이어졌다.


몇 번을 써도 효과 하난 직빵이군. 부작용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하.....” 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땅이 꺼져라 내쉬는 한숨에 유림이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붙었다.


쓰읍, 작게 벌어진 입으로 공기가 들어왔다. 뒷골이 아파왔다. 부어오른 발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두통이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너 다음 주에 확인했을 때 두 줄이면 죽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시작도 평범하진 않았다.


1년 전이었나. 기억이 맞다면 5월 7일이었다.


퇴근길에 갑자기 음료수를 내밀던 아가씨를 본 날이.


“이, 이거 드세요!” 그녀는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려오는 주제에 당돌하게 소리쳤다. 기대에 찬 눈망울이 맑게 반짝거리는 모습이 아직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물론 그 뒤의 어설픈 모습도 잊을 수는 없었다.


“그, 말씀은 감사한데요.... 그쪽이 저한테 이걸 왜 주세요?”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미 따여있는 음료수 캔을 바라보았을 때 유림이는 자신의 기대와 180도 다른 상황에 멍하니 굳어버린 상태였다.


“그, 그, 그게요....! 피곤하시니까! 이거라도 드시면.... 좋아지실까 해서......” 되도 않는 철벽을 친 것은 아니었다. 그리 잘생긴 편은 아니요, 그렇다고 금수저도 아닌 나에게 갑작스럽게 달라붙는 것이, 그것도 이 정도 외모의 여성이 달라붙는 것이 이상했을 뿐이었다. 처음엔 무슨 종교 가입이라도 권유하려는 줄 알았다. 아니면 소매치기라던가.


가로등 불빛 아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어깨 위를 나풀거렸다. 중단발 사이로 얼핏 보이는 귀는 빨개져 터지기 직전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그쪽 드세요.” 나는 이렇게 말하곤 여자를 지나쳐버렸다. 괜히 예쁘다고 말을 들었다가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사이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아, 안돼요! 그, 그쪽이 드셔야 계, 계획이....” 여자는 이럴 주 몰랐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버려진 강아지의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이다.


큭, 정에 약하다면 약한 편이었다. 이런 절박하고 순수한 눈을 거부할 자신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알았어요, 마시면 되죠?’ 라고 말하려던 찰나, 여자의 마지막 말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예? 무슨 계획이요?”

“아, 아뇨! 계, 계획이라뇨! 그, 그런 건 아무것도 없어요!”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말투였다. 만약 도박을 했다면 첫날 파산했으려나.


“이상하잖아요. 갑자기 나타나서는 음료수를 들이밀지를 않나, 계획이니 뭐니 이상한 말만 하고. 혹시 나 알아요?” 종교 가입은 아닌 것이 분명해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난 난 고개를 살짝 들이밀며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나이는 28세, 생일은 11월 12일, 가족은 부모님에 누나 한명, 한국대학교 기계공학과, 집 주소는.....”

“잠깐! 잠깐! 잠깐!” 낯선 사람의 입에서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내 개인 정보에 나는 양손을 휘두르며 그녀를 제제할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이거 혹시 국정원이 보낸 암살자, 뭐 그런 건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밀을 북쪽으로 넘겼다던가..... 아니 애초에 그런 암살자가 이렇게 허당일리 없잖아!

“그쪽.... 방금 그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에요?” 나는 이제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모르는 건 없어요..... 헤헤....” 양손을 모으고 배시시 웃는 그 어리디 어린 모습에 나는 상대가 스토커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쪽이 좋아한다구요? 저를요? 왜요?” 귀여운 모습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일 뿐. 확실하게 짚을 건 짚어야 했다.


“저, 저번에.... 지하철에서.... 넘어질 뻔 한 거 잡아주셔서..... 그때부터 좋아했어요.... 히....” 스쳐지나간다는 말 취소. 빨개진 얼굴로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서도 사방으로 뿜어내는 해맑은 아우라에 나는 가드가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면, 그쪽이 그거 마셔봐요. 그럼 방금 했던 그..... 좋아한다는 말..... 고려 해볼테니까.” 젠장, 이런 낯부끄러운 말 하게 하지 말라고.


“으, 으으.....” 여자는 잠시 주먹을 질끈 쥐더니 눈을 딱 감고 음료수를 원샷 해버렸다.


뭐야, 아무 일 없는 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몸이 옆으로 탁 쓰러졌다.


“이런 미친! 이거 뭐 탄 거 맞잖아!” 앞으로 달려가 양팔로 몸을 받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코를 찧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가벼운 체구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혼자 사는 집에 여자를 데려갈 수도 없고....” 나는 머릿속의 늑대를 쫓아내려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 순간, 약에 취해 반쯤 풀려있는 얼굴이 귀엽게 웃어보이자 이 여자가 스토커란 사실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야?” 내가 말했다.


“불고기!” 유림이는 앞치마를 매고 이리저리 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치 새댁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결혼도 안 했고, 내가 얘한테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준 적도 없다는 사실만 잠시 넣어둔다면 말이다.


“여기 앉으세요~” 그녀가 때없는 미소로 활짝 웃으며 한쪽 의자를 빼자 난 자연스럽게 반대 쪽에 털썩 내려앉았다.


“최소한 콘돔은 쓰라니까.....” 자신이 마련해준 자리에 앉지 않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거칠게 불고기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치만..... 이건 자기랑 나 사이의 사랑의 결실이잖아....? 그리고... 아기가 생겨버리면 자기는 더 이상 도망도 못 갈 거고.....” 순식간에 맑던 그녀의 눈이 죽었다. 반사광이라곤 없는 눈동자엔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 것 같았다.


“자꾸 걱정하는데,” 난 몇 번을 봐도 아직 무서운 그 눈을 피해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돌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쉬운 편에 속했다. 

“난 너 밖에 없다고.”

펑! 하고 그녀의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목까지 새빨게진 그녀의 얼굴에 계란을 풀어놓으면 반숙 정도는 만들 수 있어보였다.


“가, 갑자기.... 그, 그렇게....”

“근데 난 불고기에 양배추 넣는 여자는 별로 안 좋아한다?”

“에, 에? 그, 그런게 어딨어.....” 다시 부풀어오른 두 볼은 볼수록 햄스터가 떠올랐다. 아기 고양이 같은 얼굴에, 강아지 눈망울, 삐진 모습은 햄스터라니.... 이게 진짜 반칙이잖아....


“아무튼, 다음엔 양배추 빼. 그리고 너, 또 회의 중일 때 전화 한 20통 걸었더라.” 난 무심하게 입으로 불고기를 가져갔다. 살짝 짜긴 했지만 처음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자, 자기가 안 받잖아.... 김 경리 그년이랑 같이 있었을 때.....” 저런, 이 얘기는 식사 끝나고 했어야 했는데.


아직 정리하지 않은 식칼을 옆에 놔두고 죽은 동태눈을 한 여자친구를 보고 있으면 고기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려하질 않았다.


이번엔 내 침이 바싹 마를 차례였다. 분명 난 김 경리랑 ‘커피?’ ‘콜’ 이 한 마디밖에 주고받은 적 없는데도 말이다.


“난 그년이 자꾸 자기 옆에 달라붙는 거 싫어.... 자긴 내 건데.... 절대..... 다른 여자한테는.....”

딱! 다시 한번 내 손가락이 소중한 내 목숨을 구했다.


딱밤을 얻어맞은 그녀는 다시 강아지 눈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어떤 여자한테 대쉬가 들어오든, 난 ‘죄송합니다만 저한텐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여자친구가 있어서요.’ 라고 말할 줄 안다고.”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이라는 수식어에 유림이는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근데 자꾸 그렇게 의심하고 구속하려 하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난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으, 응? 어디가....?”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니가 말한 대로, 김 경리랑 바람 피러 가려고.” 이렇게 말하곤 벽에 걸린 외투를 집어들었다.


강아지인지 개냥이인지 알 수 없는 여자친구가 울먹거리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


“거, 거짓말이지? 싫어! 싫어! 가지마아!” 팔에 달라붙어서는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럴 땐 어, 어떻게 말해야....” 난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내고 계속 구두를 신었다.


“미, 미안해애애애애!”



+ 다행히 테스트기는 한 줄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