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한다, 야! 맨 뒤에! 지팡이로 장난치지 마!” 오늘의 수업도 교수의 호통으로 시작되었다.


바닥에서 둥 둥 떠다니는 나이 든 교수의 두 발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놀랍게도, 이번 수업의 교수는 유령이다.


그래, 그 번개 흉터 나오는 소설의 교수처럼 말이야.


교실이 조용해지자 교수는 바로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자, 마법이란 무엇이냐! 철학적인 건 다 집어치우고 딱 개념부터 말해보자고. 우리가 원하는 걸 갖게 해주는 그것! 그게 지금 우리가 배우는 마법이다. 근데 지금 이 나라 돌아가는....”

난 두 귀를 닫았다. 3학년 대표로서 적절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저 쓸데 없는 정치 타령을 듣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한가하진 않았다.


내 뒤에서 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으니까.


두꺼운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한쪽으로 땋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수업을 들을 때만 잠시 쓰는 커다란 안경은 그녀의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리고 있었다.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적 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입학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1학년 대표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한 불운의 신입생.


근데 얜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 그러니까 이런 시간 조작 마법을 악용하는 지금 행정권 인사들의....”

좀 닥쳐요, 교수님. 난 지금 얘가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는지 알아야겠으니까.


난 조용히 지팡이를 휘둘러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해버렸다.


그리곤 몸을 살짝 틀어 이 아이가 있는 쪽으로 귀를 돌렸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반사광이 심해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이쪽을 쳐다본 것은 틀림없었다.


다급하게 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책에 고개를 파묻었으니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속삭이던 목소리는 한층 더 기어들어가 아예 들리지도 않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젠장, 저쪽을 보는 게 아니었는데. 궁금해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이 아이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도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다 소리가 커지려고 하면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소리를 죽였다.


덕분에 난 강의 내내 호기심에 온 몸이 활활 불타야만 했다.


“오늘 강의시간에 읽던 거, 그거 우리 교재 아니지?” 강의가 끝나고,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기 위해하나둘씩 빠져나갈 때, 난 돌직구를 던졌다.


“그거 뭐야?” 그러자 그녀는 무슨 죄라도 지은 듯 얼굴을 바닥에 파묻으며 입을 달싹거렸다.


고개를 숙이자 땋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가슴골 사이로....


난 눈을 돌렸다.


괜히 변태 취급 받아 경멸당하는 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 건 도M인 친구 놈에게서나 찾아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눈 앞의 여자가 내게 대답을 돌려줄 때까지 시선을 가운데로 돌리지 않았다.


“....술....대....책....” 뭐라고 말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똑바로 들을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뭐라고?” 난 몸을 앞으로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물론 눈길은 그 골짜기에 두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말이다.


“... 그, 금지된... 마법이.... 있대서.... 채, 책을 찾아보려고....” 반쯤 예상하고 있던 내용 중 하나였다.


흥미롭긴 하지만 재미없다. 차라리 성인용 소설이나 하나 읽고 있었으면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을텐데 말이야.


꼰대 같겠지만, 그래도 선배로서 경고는 해둬야겠지.


“그 책 도서관에서 몰래 빼온 거면 다시 돌려놔. 학교에서 금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난 최대한 무심한 눈빛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이런 상항에서 꼰대 소리를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면 귀찮은 듯한 표정이 최고다.


“서, 선배....!” 멍하니 두 팔을 늘어뜨리고 걸어가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왜?” 

“뭐, 뭐 하나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 해서....”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가 은근히 귀를 간지럽혔다.


고개를 숙인 탓에 안경 뒤로 보이는 숨겨진 얼굴은....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예뻤다. 그것도 엄청.


팬클럽이 만들어질 뻔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뻐서 얘를 안아들고 이 학교를 10바퀴 정도는 돌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나 금지된 마법들이 관련되어있는 거라면 더더욱.


“모르겠는게 있으면 4학년 선배들이나 교수님한테 여쭤보면 되잖아?” 난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계속 가까이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가는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이 애를 도와주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위험하구만. 얼굴이 무기라는게 실제로 통하는 말이었나.


“서, 선배... 보라머리 4학년 선배 좋아하시죠...?”

4학년 중에 보라색 머리는 딱 한명 뿐이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라이트 훅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난 빨개진 얼굴로 뭐라 반박해보려 했지만 별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요....” 이 녀석은 고개를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싸늘한 그 미소에 팔다리가 얼어붙는 기분이었지만 그 핑크빛 입술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버렸다.


이게 천사의 미소라는 건가?

“어제 그 선배 생각하시면서 혼자 하신 거.... 선배가 알면 어떻게 될까요?”

천사는 무슨, 악마의 미소였어.


“그걸 어떻게 말할 건데? 갑자기 모르는 후배가 달려와서는 저 사람이 자기 생각하면서 딸쳤다고 하면 퍽이나 믿어주겠다.” 난 이렇게 말하곤 그녀를 튕겨버렸다.


이런 협박에 당하는 건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증거라면 여기 있어요.”

뭐라고?

나는 고개를 획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여기요.” 그녀의 지팡이 위에는 내가 선배 사진을 띄워놓고 열심히 오른 손을 놀리고 있는 모습이 둥둥 떠있었다. 

“니가 그걸 어떻게....”

기억마법, 자신이 보았던 것을 그대로 구현해 남들에게 보여주는 마법이다. 기억이 조작되지 않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도 없지.


분명 2학년 과정일텐데....


“책에서 봤어요. 한번 보면 따라할 수 있거든요.”

당혹감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게 그녀가 점점 다가왔다.


“선배가 어떻게 손을 움직였는지도 따라할 수 있고요.” 귓가에 속삭여진 이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쩌면.... 더 기분 좋을지도 모르죠...” 숨이 가득 섞인 그녀의 말이 계속해서 귀 안을 파고들었다.


“원하는게 뭔데?”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이거면 됐지?” 난 마법진에 마지막 룬 문자를 새겨넣고는 분필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수고하셨어요, 선배.” 그녀는 문이 잘 잠겼는지 한번 확인 해보고는 마법진을 향해 서서히 발을 옮겼다.


“도대체 원하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흑마법은 안 하는게 나을 거야.” 손을 탁탁 털자 분필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순진한 대답이었다.


“그거야 흑마법은....”

“흑마법도, 마법도, 전부 자기가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잖아요...”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전 상관 없어요.” 빛이라곤 반사되지 않는 이 섬뜩한 눈동자에서,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여기로 오시겠어요?” 그녀는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아기처럼 깨끗한 피부에 가볍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손가락까지.


손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후후, 이번에도 약이 잘 듣나보네요?” 머리가 점점 멍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터널 속에서 메아리 치는 것만 같았다.


여기 앉아요.


난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가 내민 의자에 몸을 앉혔다.


이제 몸에 힘을 빼고....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거에요.


조금씩, 조금씩, 아주 깊숙한 곳까지.


무서워할 거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게 해드릴게요.


내 벨트가 풀리고, 속옷의 고무줄이 허벅지를 따라 내려갔다.


그녀의 손이 닿자 마자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며 나도 모르게 허리가 뒤로 휘어버렸다.


마치 정신과 감각을 조종당하는 듯, 한쪽을 만지는 것 만으로도 다른 쪽이 화끈거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발끝이 제멋대로 움찔거리며 몸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요, 선배.


다른 년들이 더럽힌 만큼, 매번 제가 깨끗하게 해드리고 있으니까.


끈적하게 감겨오는 점막과 딱딱해진 살갗의 만남, 그리고 점점 더 아득한 곳까지 떨어져내리는 나의 의식.


온 몸이 무거워지면서도 다시 아래쪽부터 붕 떠오르는 알 수 없는 느낌에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렸다.


꿈 속에서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내 위에 있다는 흐릿한 사실 하나 뿐이었다.





“이번에도 6번이 끝이시네요” 연희는 자신의 허벅지를 따라 흐르는 진한 액체를 손 끝에 묻혀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쾅! 갑작스럽게 뒤에서 문이 열렸다.


“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지팡이를 들고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시계를 보는 걸 잊어버렸네....” 살짝 기울어진 그녀의 머리는 죽은 동태 눈과 함께 어우러져 한층 더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죽어도 당신한테는 안 넘겨줄 거야.” 그녀는 지팡이의 끝을 바닥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선배, 내일도 즐겁게 지내봐요.”

마법진이 빠르게 타오르며 형용할 수 없는 푸른 불꽃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이건 도대체...!”

쾅!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닥에서는 텅 빈 의자와 함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수업 시작한다, 야! 맨 뒤에! 지팡이로 장난치지 마!” 바닥에서 둥 둥 떠다니는 나이 든 교수의 두 발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이번엔 어떤 플레이로 즐겨볼까요?’ 그녀가 두꺼운 책 뒤로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