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pixiv.net/artworks/9178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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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옥탑방에는 짙은 물감과 독한 스프레이의 악취로 가득하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난장판이다. 페인트와 물감으로 가득한 작업실은 형광등에 의존해 내부를 비추고 있다.

 

작업실 안쪽에서 사이에서 강렬한 헤비메탈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문을 닫자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가 멈추고 형광등의 불빛이 사라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물감을 뒤집어쓴 사람이 나에게 안겨 왔다.

 

온몸이 물감과 페인트 얼룩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내가 입고 있던 하얀 티셔츠가 물감으로 더러워졌다.


자주 있던 일이지만 한숨을 멈출 수 없었다. 내 마음도 모르는지 나의 품에서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버스가 평소보다 늦었어.”

 

여서연. 어릴 적부터 함께 알던 소꿉친구이자 유명한 미술 작가다.

 

서연이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내 몸에 달라붙어 완강하게 버틴다.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고 나의 품 안에 코를 박는다.


나는 그대로 서연이를 매단 채로, 방 안에 가득한 커튼을 모두 걷어버렸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서연이는 움찔하더니 눈을 찡그리며 몸을 떨었다. 창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내가 몸으로 막았다.

 

“악취가 장난 아니야. 환기 좀 해.”

 

“나중에 해가 떨어지면...”

 

서연이의 말을 무시하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방 안에 가득했던 먼지들이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방 안에 역풍이 불자 서연이는 몸을 덜덜 떨면서 나에게 밀착한다. 얼른 방 한구석에 있는 담요를 꺼내 서연이에게 덮어주었다. 그제야 추위가 가시는지 떨림이 잦아들었다.


서연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기는 내 집인데...!”

 

“그래도 반 정도는 내 집이지.”

 

“돈은 다 갚았잖아.”

 

“어쨌든 내가 아니었으면 이 방은 못 구했을 텐데.”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가출해버린 서연이가 구할 수 있는 방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서도 옥탑방뿐이었다. 아무리 싼 값으로 들어온 옥탑방이라도 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목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에게 빌린 돈, 5백만 원으로 서연이는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작품이 여러 개 팔리고 개인전이 성공하면서 명실상부 손꼽히는 예술가가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결국, 노력이 결실을 맺고 내게 돈도 전부 갚았으니 잘된 일이다.


다만 서연이는 아직도 이 곳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번 수입이라면 이곳보다 더 좋은 작업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작업실을 고집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락카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굴러가고 있다.

 

“집에서 스프레이는 쓰지 마. 방독면을 써도 몸에 안 좋다고.”

 

“그래도 밖은 너무 추워...”

 

아무리 작품이 중요하다고 해도 서연이는 너무 과할 정도로 몸을 막 굴리는 기질이 있었다. 물감이나 페인트가 몸에 묻어도 신경 쓰지 않거나, 밤새도록 작업을 하고 기절하듯 잠에 들거나, 온종일 밥을 굶고 작업에 몰두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예전에는 돈이 된다는 이유로 막노동을 뛰거나 택배 상하차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도 서연이는 한 번도 다치지 않고 감기나 배탈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습관이라면 언제 몸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페인트도 정리 좀 하고. 바닥에 물감도 지우고. 이젤은 안 쓰면 치우고.”

 

“나중에... 나중에 할 거야.”

 

내 잔소리에도 서연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은 채로 나에게 붙어있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해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결국, 내가 먼저 청소를 시작했다.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럼 평생 함께 있어 줘.”

 

평생 함께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농담으로라도 싫다. 내가 아무리 서연이의 유일한 친구라고 해도 평생 뒷바라지만 해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일 바빠지면 이렇게 자주 못 와.”

 

“그럼 나중에 나랑 결혼하면 안 돼?”

 

“결혼은 무슨...”

 

“혹시 다른 여자 있어?”

 

서연이의 날카로운 눈빛이 스친다. 동공에는 어느새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끈적한 시선이 나에게 향하자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없어. 맨날 너 챙겨줘야 하는데 어떻게 여자를 만나.”

 

“그것도 그러네.”

 

다시 안도하는 표정으로 돌아온 서연이는 나의 품에서 냄새를 맡는다. 더럽게 뭐 하는 짓인가 했더니 갑자기 서연이는 내 옷을 물고 빨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호통을 치려고 했지만, 서연이는 곧바로 입을 때고 웃는다.

 

“오늘따라 이상한 냄새가 나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갑자기 왜 옷을 입으로 빨고 그래. 더럽게.”

 

태연한 척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 뜨끔했다. 몇 시간 전,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온 참이다

 

며칠 전, 지인의 소개로 소개팅을 나가게 됐다. 그곳에서 상대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좋은 분위기로 소개팅이 끝났고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만남을 가지고 온 참이다.

 

‘서연이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서연이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안다. 나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서연이를 평생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문제는 서연이가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면 서연이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확실한 사실은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혹시 이상한 여자 생기게 되면 꼭 알려줘. 그럼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도대체 어떻게 해준단 말인가. 하지만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서연이의 어두운 마음을 차마 들여다볼 용기는 들지 않았다. 결국, 오늘도 나는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그리고 있었어?”

 

나의 말에 서연이는 곧장 나를 끌고 작업실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도화지에는 화려한 색깔들이 질서정연하게 작품을 이루고 있었다. 한 남녀가 침대에 누워있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여자는 한 손으로 칼을 감추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멍하니 여성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제목은 ‘영원한 사랑’이야.”

 

“이게 사랑이라고? 칼로 찌르는 게?”

 

나의 말에 서연이는 어두운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음침하게 웃는 버릇을 고치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좀체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는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서연이는 자신의 작품에 설명을 달지 않는다. 직접 설명해야 하는 작품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작품이라고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어쨌든 그림 자체는 잘 그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서연이의 작품은 상당한 액수로 팔릴 정도로 유명하다. 고작 일반인인 내가 작품에 토를 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림 감상을 끝내고 나머지 정리를 마쳤다. 장롱을 열어 적당한 옷가지를 찾아 서연이에게 주었다. 물감이 잔뜩 묻은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나에게서 옷을 받자마자 서연이는 곧장 옷을 벗어 던졌다.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이라 나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간 다음에 갈아입어! 갑자기 옷을 벗으면 어떻게 해!”

 

“보고 싶으면 봐도 괜찮은데...”

 

서둘러 문을 열고 집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다 본 사이라지만 성인이 돼서 알몸을 본 적은 드물었다.

 

‘그렇다고 안 본 건 아니지만...’

 

서연이는 옷을 금방 갈아입었는지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하얀 와이셔츠만 입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의는 여전히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그대로 하얀 와이셔츠 위로 속옷이 비쳐 보인다. 깜짝 놀라 문을 닫으려 했지만, 서연이는 나의 손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바지부터 입어!”

 

“싫어. 불편해.”

 

그러더니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 아무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을 밖에서 보여줄 수는 없었다. 서둘러 서연이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나 없을 때 이러고 다니지 마.”

 

서연이는 나의 말에 기쁜지 환하게 웃는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안 보여줄 거야. 너만 빼고.”

 

그런 말을 하며 서연이는 하얀 와이셔츠를 살짝 들어 올린다. 곧바로 손을 내려버렸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이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도 밤새지 말고 일찍 자. 몸 상한다.”

 

“자고 가면 안 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저렇게 좁은 곳에서 어떻게 둘이서 자.”

 

“괜찮아. 침구도 준비했어.”

 

서연이는 장롱을 열어 침구를 꺼냈다. 베개는 두 개인데 이불은 하나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멀쩡한 집 놔두고 내가 왜 여기서 자.”

 

“괜찮아. 여자도 없잖아. 그러니까 나랑 같이 자도 괜찮아.”

 

서연이는 나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그제야 나는 숨겨진 말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순히 하룻밤을 자고 가라는 뜻이 아니다. 서연이를 억지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의외로 힘이 강했다.

 

“너라면 괜찮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니까 괜찮은 거야.”

 

그래도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서연이의 말에 넘어가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연이는 여전히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 이제 돈도 많이 벌었어. 너랑 같이 살 수도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 돼? 너는 내가 싫어?”

 

“아니, 싫다는 뜻이 아니라...”

 

“그럼 내가 어디가 부족해? 어디가 부족해서 나랑 같이 자는 게 싫다는 거야?”

 

서연이와 대화하면 할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서연이도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귓가가 빨개지고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이토록 완강하게 고집을 피운 적은 없었다.

 

“애초에 너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럼, 오늘부터 나랑 사귀자.”

 

“너무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해도,”

 

“그럼 도대체 언제 해야 하는데?”

 

서연이는 나의 옷깃을 붙잡은 그대로 나에게 안긴다.

 

“매번 내가 먼저 다가가는데도 왜 자꾸 밀어내는 거야?”

 

지금까지 나는 서연이의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동안 서연이의 마음은 계속해서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버렸다.

 

“너도 알잖아.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나를 받아주지 않는 거야...? 그러면서 왜 싫다고 말하지도 않는 거야?”

 

“아니야. 나는 그저...”

 

“지금까지 작업실 안 옮긴 것도 너 때문이야. 너랑 같이 살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서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너만 좋다고 하면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이제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서연이는 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백을 받아줄 수 없었다. 나는 서연이를 사랑하지 않았고 억지로 사랑하는 척을 해줄 수도 없었다.

 

“놔.”

 

서연이을 밀쳐버렸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연이는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왜... 왜...”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시선을 똑바로 맞출 수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당분간은 바빠서 못 올 것 같아.”

 

결국, 나는 도망치듯 서둘러 방에서 빠져나왔다. 쫓아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한 채로 계단을 내려왔다.

 




 

 

[저번에는 미안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없을까? 괜찮다면 오늘 우리 집으로 와줘. 시간은 언제든지 괜찮아. 문은 열어 놓을게. 답장 기다릴게.]

 

그 일이 일어난 지 어느새 이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방금 전, 서연이에게 문자를 받았다. 이주일동안 마음을 졸이고 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다행이다.’

 

이주일 동안 고민을 수십 번을 넘게 했다. 서연이에게 먼저 사과해야 할까, 연락한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동안 결국 서연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서연이는 평생 함께하고 싶은 친구다. 비록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서연이는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자 친구다.

 

[지금 바로 갈게.]

 

서연이에게 답장을 보내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전에는 자주 보던 서연이를 보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이 가득했다. 찾아가자마자 바로 사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시간은 어느새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었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 서연이의 옥탑방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서연이가 나왔다. 예상과는 다르게 서연이는 말끔한 모습으로 있었다. 아니, 옷차림만 단정하다. 서연이는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퀭한 눈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초췌해져 있었고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산발이다. 서연이의 몰골을 보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느낄 수 있었다.

 

“왔구나...”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한다.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서연이에게 사과하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서연이는 나의 손을 붙잡고 집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문을 닫았다.

 

“서연아. 저기...”

 

“아무 말 하지 말아줘.”

 

서연이 웃고 있었다. 당장 쓰러질 것처럼 야윈 몰골에서도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작업실로 끌어들인다.

 

형광등조차 꺼진 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 사이로 미약한 신음이 들려온다. 나와 서연이의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옥탑방에는 으스스한 기운이 가득하다. 등골에서 땀이 흐른다. 서연이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한층 섬뜩하게 다가왔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사실 너를 위해서 준비한 작품이 있거든.”

 

“작품?”

 

“응. 이주일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강제로 작업실 중앙의 의자에 앉게 한다. 앞에는 커다란 커튼으로 가려진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는 앞에 있는 것도 형태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서연아. 도대체 뭘 준비한 거야?”

 

“저번에 있었던 일 기억하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고민했다. 정말 내가 한 행동이 옳았던 건가. 차라리 서연이를 안아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했어. 너를 위한 선물이야.”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고 커튼이 내려간다. 서연이가 말한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

 

여자가 있었다. 일주일 전, 연락이 끊겨버린 나의 데이트 상대가 의자에 묶여있었다. 몸이 축 늘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은 뜨고 있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선물이 마음에 들어...?”

 

“너 무슨 짓을 한...!”

 

일어나려는 순간, 전기가 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동시에 목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어느새 내 머리는 바닥에 닿아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목이 졸린다. 서연이의 손에는 전기충격기가 들려있었다.

 

“미안해.”

 

이번에는 옆구리에 충격기가 닿는다. 바닥에 꼬꾸라지고 주변의 물건들이 무너진다. 커다란 페인트통이 다리에 떨어졌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나왔다.

 

“미안해. 미안해. 많이 아프지...?”

 

서연이는 여전히 전기충격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살벌한 전기 소리가 다시 들린다. 배에 전기가 오른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덮친다.

 

“네가 아니면... 네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평생 같이 있고 싶은데 이런 방법이 아니면... 너는 나를 버릴 거니까...”

 

팔목이 붙들린다.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또다시 전기충격기가 다가온다. 팔목에 전기가 오르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어느새 손목과 발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서연이는 나를 침대로 끌고 갔다. 손발이 묶이고 그대로 드러누운 채로 사지가 결박당했다.

 

“제발... 그만...!!”

 

남아 있는 힘을 쥐어 짜내어 소리를 질렀다. 서연이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로 나의 복부 위로 올라탔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서연이는 온몸으로 나를 짓누른다. 그대로 억지로 입을 맞춘다.

 

억지로 입을 벌려지고 혀가 들어온다. 이빨을 세우려고 해도 억지로 입이 벌려진다.


한참 동안 입술을 탐하던 서연이는 침을 내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억지로 삼키게 만든다. 그리고 귓가에 다가와 속삭인다.

 

“사랑해. 죽을 만큼 사랑해... 저런 년에게 주고 싶지 않아.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평생 내 옆에만 두고 싶어...”

 

동시에 숨이 막힌다. 서연이는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숨소리와 심장 소리는 점점 거칠어진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남은 것은 서연이의 뒤로 보이는 한 작품이다.

 

영원한 사랑이라고 했던가. 지금 내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말했지...? 이상한 여자가 다가오면 말해달라고. 그런데 왜 말을 안 한 거야...? 나를 버리고 저 년이랑 붙어살려고 했던 거지...?”

 

“제... 제발...”

 

목에서 느껴지던 압박이 사라진다. 숨 가쁘게 호흡하며 공기를 찾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지가 결박당한 상태다.


서연이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나의 옷을 찢어버린다. 마침내 웃옷이 전부 벗겨지자 나의 복부를 깨물기 시작한다.

 

“이런 짓도 전부 저 개년이랑 같이하려고 했지...? 혹시 이미 한 거야...? 나 몰래 만나서 물고 빨고 할 짓도 다 한 거야...?”

 

갈비뼈 위로 이빨이 세워진다. 살갗이 물어뜯기는 고통은 끔찍했다.

 

“아니야...! 아무 짓도 안 했어...!”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야...!”

 

맹세코 서연이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닌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 괜찮아. 준비는 다 끝났어. 새로운 집도 알아봤고 나머지는 저년만 갖다 버리고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어. 그러니까...”

 

팔에 따끔한 감각이 느껴진다. 주사기가 팔뚝에 꽂힌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감각이 몸에 올라온다. 몸이 뜨거워지고 본능을 주체하기 어려워진다.

 

서연이는 옷을 벗어 던졌다. 이미 속옷은 입지도 않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나신이 눈앞에 나타나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수많은 고통이 사라지고 오로지 쾌락을 위한 욕구만이 머리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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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두운 내용으로 써보고 싶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