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추워.”

“벌써 겨울이네요, 반즈 씨.”

“그러게. 올해 겨울은 꽤 추울 것 같네.”


나는 몸을 오슬오슬 떨며 말했다.


병원에 오고 벌써 200일 넘게 지났다.

여름은 가을이, 가을은 곧 겨울이 되었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또 새로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다녀왔어, 선생.”

“다녀왔습니다. 자, 여기요.”

“오오, 고마워.”


에르테가 들고 있던 가방을 선생한테 줬다.

내가 들고 와도 된다 그랬는데, 에르테는

약품은 자기만 취급할 수 있다며 고집부렸다.


“음! 전부 제대로 받은 것 같구나.”

“당연하죠.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야 우리 똑똑한 딸이지. 자자, 추운데

얼른 들어가서 몸이나 녹이자.”


우린 병원 안으로 들어가, 벽난로 앞에 앉았다.

흐으, 이 병원은 단열이 잘 안 돼서 그런지

안이나 밖이나 더럽게 추웠다.


“먹을 건 충분히 비축했겠지?”


내가 묻자,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환자들 몫까지 있지.”

“이 동네는 겨울마다 식량이 부족해서 난리가

나니까요. 작년엔 강도가 오기도 했어요.”

“그거 꽤 위험했겠는데. 어떻게 됐어?”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내쫓아버렸어요.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한데 어딜 감히

귀한 음식을 빼앗을 생각을 하냐면서요.”


그거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겠다.

목발에 붕대를 칭칭 감은 환자들이 밥을

빼앗길까 칼을 든 강도한테 덤비는 꼴이라.


“선생, 돈은 괜찮은 거야?”

“……하하하…….”


그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래, 이 병원은 항상 적자라 했던가.


‘내가 도와줘야한다.’


피에로로 활동하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은 돈을

모았다. 어디 가서 부자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돈만 가져올 수 있다면, 이 병원도 몇 년은

끄떡없을 것이다.


“돈 문제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자네가? 정말로?”

“옛날에 모아둔 돈이 좀 있거든.”


하지만 그걸 찾으려면 은신처로 가야 했다.


거기 위치는, 바이올렌스도 알고 있지만

벌써 200일 넘게 지났으니 아마 방치된 지

오래일 것이다.


“그걸 가져올게. 그 돈만 있으면 이 건물도

고치고, 약이랑 붕대도 더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소중한 돈 아닌가?”


선생이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 돈은, 피로 물든 더러운 돈이다.

살인을 한 대가로 받은 돈, 그러나 그 돈을

사람을 구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게 쓸 순 없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했고, 곧 눈이 올 것인지

찬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한 시간 정도면 돼. 금방 돌아올게.”

“그럼 알겠네. 저녁 식사해야 하니까 일찍

들어오고……무슨 말인지 알겠나?”

“알아, 안다고.”

“다녀오세요.”


나는 두 사람을 두고 병원을 나섰다.


‘은신처에 가는 것도 거의 반년만인가.’


은신처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나는 누가 알아볼까 옷과 목도리를 둘둘

메고 길을 따라 빈민가 중심가로 향했다.


이 빈민가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

광장 근처에 있는 중심가 거리.


보통 이런 곳에 은신처를 둘 거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그 인식의 틈을 노려 우리는

이곳 중심가에 은신처를 뒀다.


나는 버려진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고, 곰팡내가

아직도 났다. 부서진 가구가 온 사방에

흩어져있었고, 죽은 쥐새끼가 곳곳에 있었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나는 벽난로 안쪽에 손을 넣고 더듬거렸다.

턱, 레버를 당기자 바닥에 있던 비밀 문이

열렸다. 여기가 바로 은신처, 나의 집이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은신처 내부에 진입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바이올렌스가

내가 숨어있나 수색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금고는 그들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도……이제 올 일 없겠지.”


나는 잠깐 의자에 앉아 은신처를 훑어봤다.

방은 딱 두 개였다. 나의 방, 피에로의 방.

부엌이나 욕실, 화장실도 없고 어떻게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비좁았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요강을 써야 했고,

씻으려면 겨울에도 강에 가서 씻어야했다.

음식은 바깥에 나가서 사먹곤 했는데,

피에로는 은신처 안에서 불 피우는 걸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일도 없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 위로 손을 뻗었다.

달칵! 숨겨진 줄을 당기자 책상 밑에 있던

비밀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쇠로 만든 금고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1, 2, 3, 4, 5.


나는 비밀번호를 누른 후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보석이나 종이 몇 장이 들어있었는데,

피에로는 현금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종이들은 바이올렌스에서 준 것으로,

필요시 현금과 교환할 수 있는 어음증이다.

이건 쓸 수 없다. 대신, 보석은 어디서든

팔 수 있으니 이거면 충분했다.


‘이 보석도 엄청나게 귀한 거니까.’


전부 팔면 한 사람이 10년은 일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을 돈이 생긴다.

이거라면 병원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될 터.


“좋은 곳에 쓸게.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나는 금고를 닫은 후, 은신처에서 나왔다.

이제 이 보석을 처분하면―


“드디어 잡았다.”

“뭐?”


그때, 놈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 완장은― 설마!


“바이올렌스.”

“니미럴 반년이나 찾아다녔다, 이 개자식아.”


왜 놈들이 여기에? 왜 바이올렌스의 갱이

여기 나타난 거지? 어디서 꼬리 잡힌 거야?


“날 어떻게―”

“네가 여기 들어오는 걸 봤지. 바이올렌스가

널 그냥 놔줄 거라고 생각했어? 엉?”


놈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숫자는 12명, 무장은 몽둥이와 단검 정도.

실력은 대단치 않을 것이다. 보면 안다.


“빌어먹을 반년이나 잠복해있었지. 네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여기 돌아와서 돈을

챙겨갈 거라고 했어. 솔직히 난 안 믿었는데!”

“그래? 뭐, 그냥 보내주는 편이 좋을 거야.

난 이제 사람 죽이는 짓은 그만뒀거든.”


하하하하! 놈들이 일제히 웃었다.


“피에로의 아들이? 네가? 개가 똥을 끊지!

이봐, 우리도 너랑 싸우고 싶진 않아……

그러니 그냥 얌전히 따라와. 바이올렌스는

널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아, 이해했어?”


날 죽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내가 피에로를 죽였다는 걸 알면서도?


“피에로를 죽인 건 그래, 분명 큰 잘못이지.

하지만 우리 주인님은 사소한 잘못보다

큰 쓰임새를 보는 분이잖아? 널 찾으면

그냥 곱게 데려오라고 하셨지.”

“날 다시 써먹을 생각이군…….”

“정확해.”


아직도 날 포기하지 않았던 건가.

그 긴 시간 날 찾아다니며, 또 나를 무기로 쓸

생각이었다고?


“좋아, 난 사람을 죽이진 않아.”

“그럼 그냥……?”

“아니. 그렇다고 때리지 않는 건 또 아니거든.”


나는 보석을 품속에 넣고 자세를 잡았다.


“날도 추우니까, 빠르게 끝내자고.”

“허. 얘들아! 저 새끼 족쳐!”


그 뒤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피 묻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쯧, 귀찮게 하기는.”

“으으…….”


역시 별것 아니다. 기세만 좋은 바보들 같으니.

그때, 놈들 대장이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 이 멍청한 놈…….”

“뭐?”

“바이올렌스가 빈민가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아직도 몰라? 응?”


이 새끼가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뺨을 후려쳤다.


“커윽!”

“대답 똑바로 해. 내가 요즘 약 챙겨 먹고

있긴 한데, 솔직히 효과가 영 별로거든?”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약으론

내 살육 본능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했다.


지금도 이것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을 위해 꾹 참고 있었다.


“바이올렌스에겐 눈이 많지, 우리가 여기서만

잠복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뭐라고?”

“우린 반년 동안 널 찾아다녔어.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이미 내 부하가

네 생존 사실을 보고하러 갔거든!”


……안 돼…….

안 돼, 그것만은. 내가 살아있다는 게 알려지면!

그 두 사람도, 병원도 위험해!


“이 개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히히히……너 진짜 좆된 거 알아? 으응?

감히 바이올렌스를 배신하고도 멀쩡히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크아아아아!!”


콰직! 나는 놈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죽진 않았다. 하지만 당분간 못 일어날 것이다.


“에르테, 선생!!”


돌아가야 한다, 당장.

지금 당장 두 사람을 피난시켜야 해!


나는 병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밤이 됐다.


‘병원은, 아니. 아직 괜찮을 거야. 괜찮아!’


너무 늦지만 않으면 된다.

그들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을 대피시킨다.

병원은? 보석을 챙겼으니 그 돈으로 다른

도시에 가서 다시 병원을 세우면 된다.


그러니까,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아직 괜찮을 거야.


“에르테!”


병원 앞에, 환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싸운 흔적이 보였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철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뛰어갔다.

고함,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렸다. 벌써 병원에 들어온 건가!


‘두 사람만이라도 대피시켜야 해!’


쾅!! 병원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안에 쌓인

환자들이 시체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반즈 씨!!”


그때, 나는 에르테를 붙잡은 놈을 보았다.

바이올렌스의 개새끼.


“허, 드디어 왔―”


쨍그랑! 나는 발차기를 날려 놈을 창문

밖으로 날려버렸다.


“에르테, 다친 곳은!?”

“괜찮아요! 근데 이 사람들, 대체 뭐에요!?

느닷없이 와선 당신을 내놓으라고―”

“일단 나중에! 선생은, 네 아빠는!?”


그때, 나는 창밖으로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놈들이 선생을 둘러싸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힘껏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사람을 놔!!”

“바, 반즈 군―”


아.


칼이, 선생의 배에―


“……너희는…….”

“커억…….”


선생이 쓰러졌고, 나는 멈춰 버렸다.


너희는 왜 나를 놓아주지 않는 거냐.

나는 너희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단지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째서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

왜……?


“너희는, 전부.”


나는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너희 때문이다.

전부, 너희 잘못이다.

이건 전부 너희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모조리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우워어어어어어어―!!”


나는 바로 앞에 달려든 놈의 배를 꿰뚫었다.


“컥!?”

“뒈져!!”


콰드득―!! 놈의 몸이 반으로 찢겨나갔다.


전부 필요 없어.

나는 결국 살인자다.

그러니 지금부턴 내 방식대로 하겠어.


이 쓰레기들만 없으면 되는 거야!!


“안 돼, 반즈―”

“우오오오오오―!!”

“힉!? 이, 이 새끼 뭐야!? 사람을 맨손으로!?”


콰드득! 콰직! 

나는 붙잡는 놈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팔을 뽑고, 얼굴 가죽을 찢고, 배를 꿰뚫었다.


“히이익!? 괴, 괴물― 괴물이다!”

“으아아아아! 도망쳐, 도망치라고!”

“저 새끼 죽여! 빨리 모이라고, 새끼들아!”


놈들이 나를 포위했다.


그래도 상관없어.

오히려 잘됐다.

죽일 수 있는 놈들이 이렇게 많으니까.

내가 모조리 죽여 버리면 돼.

내 앞을 막는 것들은, 행복을 망치는 것들도.


“전부 뒈져버려!!”

“저 새끼 죽여!!”


콰아앙!! 갱의 머리가 폭발하듯 으깨졌다.


“하하하하하!!”

“으억, 케흑!”

“미친, 사람을 맨손으로 터뜨렸어!”

“저런 걸 어떻게 죽이라고!”


나는 놈의 팔을 뽑아, 그걸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 다음 다리를 잡고 그걸 몽둥이처럼 휘둘러

다음 놈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래, 참을 필요 없어.

전부 이것들이 잘못한 거니까.

이래야만 소중한 걸 지킬 수 있다면.

괴물이 되더라도, 아무 상관 없어.

전부 죽여버리는 거야.

내 손으로, 내가 전부 지키겠어.


이번에야말로 지키겠다고.


“반즈 군, 멈춰!!”

“크아아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그것이 내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


“컥.”

“아, 아아.”


선생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내가, 내가 한 건가? 내가? 왜? 

언제부터 내가 칼을 들고 있었지?

선생, 날 막으려고 했던 건가? 안 돼, 아니야.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서, 서, 선생.”

“바― 반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제야 나는 눈을 떴다.


내 주위에 남은 건 시체뿐이었다.

환자도, 놈들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내가 죽인 것이다.


“선생! 아니야, 아니야! 이러려고, 한 게.”

“쿨럭, 쿨럭!”


내가 선생을 찔렀어.

내가 선생을 찔러버렸어.

내가 선생을 죽여버렸어.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지키려고 한 것뿐이야.

난, 내가 그럴 리 없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제발 깨라, 제발. 제발! 안 돼, 이런 건.


“아니야!!”


나는 선생을 품에 안았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지켜주려고, 지키려고 한 것뿐인데.

내가 선생을 지켜줘야 했는데.


“반즈― 괜찮아. 울지 말게, 괜찮아…….”

“우오오오오오……!!”

“자네 잘못이 아니야…….”


그가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왜, 왜 나를 원망해주지 않는 거야.

전부 내 잘못이었는데.

이건 전부, 내 탓인데……!


“쭉……같이 있고……싶었는데.”

“선생, 가지 마. 여기 있어, 제발. 제발!”

“에르테……부탁……내 딸…….”


그가 내게 약지를 내밀었다.

약속…….

이게 선생과 나의, 마지막 약속.


“지켜……에르테……마지막…….”


나는 약지를 끼워, 그에게 약속했다.


“약속할게. 내가, 내가 에르테를 지킬게.”

“고마…….”


그가 미소 지은 뒤―

내게 고개 돌렸다.


“아빠?”

“…….”

“반즈 씨, 이게 다 어떻게……아빠? 아빠!?”


에르테가 달려와, 선생을 껴안았다.


“아빠!! 아니야, 제발! 눈 떠, 눈을 떠요!”

“나는…….”

“피가 안 멈춰, 지혈. 지혈해야 해, 빨리!”


에르테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선생의

목을 짓눌렀다.


“반즈 씨! 아무나, 아무나 좋으니까 수녀나

성직자를 불러주세요! 힐링, 그래! 힐링만

쓰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그러니까!”

“미안해.”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미안해, 에르테. 미안해, 미안해…….”

“포기하지 마요. 아직 괜찮아요, 네?”

“너무 늦었어…….”

“아니라고요!! 힐링만, 힐링만 쓰면 돼!

그럼 아빠도 눈을 뜰 거라고요, 네!?”


나는 내 두 손을 보았다.

소중한 것을 모조리 부숴버린 내 손을.

살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손을.


“아빠……눈을 떠, 제발……안 돼…….”

“에르테.”

“나한테서 손 떼, 씨발!!”


에르테가 내 손을 뿌리쳤다.


“왜!? 왜 아빠가 죽어야 했던 거예요?!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아빠가!! 왜!?”

“……나 때문이야…….”


전부 내 잘못이다.

이건 전부, 내 잘못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고.

소중한 것마저, 내 손으로 부쉈다.


<평생 싸우고, 죽, 이고, 그러다 죽, 는다.>

<우리, 는 이렇, 게 살 수, 밖에 없, 으니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목소리가 되어 내게 속삭였다.


<너는 나와 똑같으니까.>


결국, 당신이 옳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부서지고 망가진다.

지키고자 했던 것은, 내가 전부 부숴버렸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건 나였다.


나는.


―괴물이다.


“…….”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나는 울부짖는 너를 뒤로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끝내야만 했다.


진작 너희를 모조리 죽였어야 했는데.

아예 뿌리를 뽑아버렸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었다.


“바이올렌스.”


내가 돌아오길 바란 거냐?

내가 사람을 죽이길 원하는 거냐?

그래, 소원대로 해주마.


지금부터는 전쟁이다.


“오늘, 바이올렌스는 끝난다.”


나는 어둠을 향해 나아갔다.


멸문의 밤은, 지금부터였다.














반즈 최악의 기억과 후회, 그리고 멸문의 밤의 진실이 이제야 나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을 자기 손으로 부숴버린 반즈...

그야말로 시궁창 같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