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외모, 적당한 체격, 적당한 가정형편.

남들처럼 적당히 공부하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게임도 적당히 했음.

남들과 같이 평탄한 인생을 살던 얀붕이. 어느덧 고등학교에 입학.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반 친구들과 어색함 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고,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아이 얀순이 얘기가 나옴.

같은 학년에 그런 애가 있었나? 남자로서의 호기심에 친구들과 함께 얀순이 얼굴을 보러 감. 그리고 충격을 먹음.

늘씬한 팔다리와 큰 키, 인형같은 얼굴. 그 시절의 소년들이 그러하듯, 그 여자아이를 짝사랑하는 남자아이 1이 된 얀붕.

남들에게 딱히 꿇릴 것도 없으나, 그다지 내세울 것도 없었던 얀붕은 얀순이에게 다가갈 생각도 못했음.

왜냐하면 이전의 수많은 남자아이들, 자신의 친구들처럼 AT필드마냥 철벽칠게 뻔하기 때문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무런 사건 없이 2학년을 맞게 되고 얀순이와 같은 반이 되었음.

이런 우연이! 하고 기뻐했으나 일주일을 채 가지 못함. 조금 더 가까이서 얼굴을 보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하등 달라진 게 없었음.

그러던 어느 날, 얀순이와 친해질 적절한 계기가 얀붕이에게 주어짐.

바로 얀순이와 같은 동아리를 들어가게 된 것.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공부하는 얀순이는 도서부에 들어갔고, 얀순이와 한 마디라도 섞어보고 싶었던 바보병신 얀붕이는 그대로 얀순이 따라 도서부에 가입.

그리고 얀붕이는 얀순이와 함께 도서부 활동을 시작함. 물론 그래봤자 얀순이는 혼자 책 보거나 공부하고, 얀붕이는 혈기왕성한 10대 소년의 몸으로 뛰어놀지도 못하고 도서부에 갇혀서 책이나 읽고 있으니 죽을 맛. 얀순이는 당연히 자기 거들떠도 안 봄.

하지만 시험기간이 되가면서 도서실에 상주하는 인원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급우들이 내팽겨치고 가는 책들 정리하랴 새로 들어온 책들 분류하랴 도서부는 바쁘게 변했음.

얀순이의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저 많은 책들을 들고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얀붕은 의외로 얀순이가 터프한 완력의 소유자라는 것에 놀람.

문제는 얀순이가 다른 도서부원들의 도움도 거절하고 혼자 독고다이로 일을 하다가 발생.

옆에 책장에 올려놓은 책들의 무게가 얀순이 쪽으로 쏠리며 쓰러짐.

그 날도 멍하니 얀순이만 쳐다보던 얀붕은 번개같은 속도로 책장을 받아냄.

얀순이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얀붕은 찐따답게 어버버하다가 조심해 하고 넘어감.

얀순이는 그 날 책장을 받치던 얀붕의 모습을 떠올림.

얀붕은 스스로를 저평가하지만 사실 얀붕은 괜찮은 남자. 물론 얀붕이보다 잘난 남자가 접근해도 별 감흥은 없었지만.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 외모, 결코 작지 않은 키, 교우관계도 원활하며 공부를 열심히는 아니라도 꾸준히 하고 있어서 나름 상위권의 성적. 운동도 즐겨해서 몸도 보기좋은 얀붕이가 책장을 받치며 넓은 어깨와 등으로 얀순이의 심장을 때려버린 거임.

얼음같은 얀순이도 사람이야 사람. 정말 별 것 아닌 계기로 얀붕이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

얀붕이가 멍때리다 일처리 바보처럼 하면 지적하고, 알려주고, 대화도 하게 됨.

얀붕이는 얀순이와 나름 대화를 하게 되는 사이가 되서 기분이 좋아졌고, 얀순이를 더욱 잘 알게 되었음.

얀순이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못하는 게 없었음. 예상 못했던 건 입이 얼굴과 맞지 않게 험했다는 것.

얀순이가 얼음같았던 이유는 너무 예뻐서 자기 친구 짝남한테 고백받음. 그래서 중딩 시절에 따돌림당했다는 것.

그래서 공부에만 빡집중하고 지금같은 태도를 고수했다는 것임.

얀붕이는 얀순이와 친해지며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됨.

결국 얀순이에게 고백하는 얀붕. 얀순은 얀붕의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교제를 시작.

얀붕은 그렇게 좋아하던 얀순이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얀붕의 인간관계는 넓은 편이었음. 얀순이한텐 찐따처럼 굴었어도 친구도 많고 여사친도 존재.

허나 얀순이한테 인간관계라고는 얀붕이밖에 없는 수준인거임. 남사친은 커녕 동성친구도 없었음.

그래서 얀순이는 얀붕에게 집착하고 얀붕을 구속하기 시작.

얀붕이가 친구랑 노느라 연락을 못 하면 토라져서 얀붕이 곤란하게 만들고, 특히 여사친들이 얀붕이랑 웃고 떠드는 걸 보면 극대노해서 갑분싸를 일으키는 거임.

얀붕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질투가 심하네~ 하면서 넘어갔지만 가면 갈수록 어이가 없어져서 얀붕에게 남자가 되서 여자한테 잡혀사냐는 말을 함.

그래도 얀붕이는 사랑해서 넘어갔음.

이제 고 3이 되었음. 정신없이 롤 얘기만 주구장창하던 아이들이 줄고, 정신차리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

얀순이는 얀붕과 같은 대학을 가고싶었으나 얀순은 최상위권의 성적이고, 얀붕은 상위권의 성적.

그래서 얀순이는 자신과 같은 대학교를 가자며 얀붕이를 굴리며 공부시킴.

문제는 얀붕은 얀순과는 다르게 머리가 그리 좋지 못했음.

결국 얀순과 같은 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서얀대학교엔 떨어지고 얀세대에 붙음.

얀순이는 얀붕이와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얀붕이는 극구 말림. 너의 가치를 높이는 게 더 좋다며.

그렇게 대학교에서 갈려진 둘. 하지만 얀세대도 분명히 최상위권의 입결을 자랑하는 대학교. 객관적인 스펙은 얀순이가 더 우위긴 하지만 얀붕이 또한 명문대 재학에 괜찮은 얼굴과 몸을 보유한 알파메일. 대학교가 갈라지며 얀순이는 자신의 눈에서 벗어난 얀붕이가 자신에게 관심이 떨어질까 더욱 불안해져서 연락이 없으면 바로 자취방으로 쳐들어가고 여 동기랑 조별과제 때문에 얀톡이라도 했다하면 어플을 지워버리는 수준.

얀붕이의 동기들은 처음엔 학벌로 사귄 여친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친 쪽 학벌이 더 높아서 경악. 얀붕이를 엄청나게 부러워했음. 

미녀에게 집착당하는 건 모두의 꿈이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달랐음. 강의 도중에도 연락 받아주느라 집중도 못하고, 동기들과 시내에서 노는 것도 어려움. 동기들끼리 밥 먹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와서 잡아가는 거임. 특히 동기 중에 여자라도 섞여있으면 그날 밤에 창놈이니 뭐니 욕을 퍼부으며 소음 공해를 하는거임. 얀붕이는 주변관계가 파탄나기 시작.

얀붕이는 사랑했기에 집착을 다 받아줬으나 이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결국 얀순이와 헤어지기로 결심함.

그런데 자신이 얀순이를 떨어뜨리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각이 안 나오는 거임. 얀붕이가 헤어지자고 말하면 얀순이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로 집착할 지 무서운거임. 그래서 얀붕이는 스윗한 결론을 냄. 얀순이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자고.

주변인물들이 얀붕이를 조금 서먹할 뿐 얀붕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기에 여러 동기들, 선배들, 친구들과 상담함.

그 중 자칭 연애 고수라던 동기가 여자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싶다면 이게 직빵이라면서 방법을 알려줌.

얀붕이는 듣고 바로 그거였노하며 부랄을 탁침. 괴상망측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할 거라고 생각한 거임.

얀붕이는 그 다음 날, 자기 옆에 있는 얀순이에게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꼼꼼히 숨겨왔다며, 이제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며 입을 염.



"얀순아...실은 나 일베한다 이기야."



"???"



얀붕이는 당황하는 얀순이를 보며 속으로 짜릿함을 삼키고,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얀순이에게 떨리는 입을 열었음.



"많이 놀랐노? 좆걸레껌젖김치년얀순게이야, 그게 다가 아니다...루리웹 중갤 야갤 주갤 다 한다 이기야."



"얀붕아...지금 그게 무슨..."



"너같은 상폐쉰김치한녀한테 맞춰주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이기. 차라리 캐릭터 다키마쿠라가 낫지. 역시 3D는 로리가 답이었노..."



"...우리 잠깐 시간 좀 갖자."



(비)호감작을 시도한 지 30초도 안 되서 얀순이의 입에서 마침내 탭을 받아낸 얀붕, 2년의 연애를 연인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렇게 이상하게 끝냈다는 게 찝찝했지만 이제 얀순이의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꼈음. 이제 수업에도 집중할 수 있고, 친구들과 놀고,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고양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 날 바로 동기들과 술약속을 잡음. 동기들은 여자친구분 있는데 괜찮냐고 하지만, 얀붕은 이제 헤어졌으니까 괜찮다며 술자리에 낌.


항상 피곤해하던 얀붕이의 표정이 매우 밝아져 웃음이 만개함. 동기들은 정말로 헤어졌나보다...하고 넘어감.


새벽에 술로 떡이 되서 자취방으로 다시 돌아온 얀붕. 그리고 어째서인지 현관에 놓여있는 얀순의 신발.

소름이 돋고 모든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은 얀붕은 그 짧은 순간 술이 모조리 깨버린 듯한 착각을 함.



"...얀붕아. 왜 문자 안 봐?"



"네가...시간 좀 가지자며..."



"응. 잠깐 가지자 했잖아. 몇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아?"



"아니..."



이게 뭔 개소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모든 신경이 곤두선 얀붕은 지금 얀순이에게 개겼다간 ㅈ될것같다는 느낌을 받음.

그래서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으나 얀붕이는 술로 떡이 된 몸, 휘청대며 다리가 풀림.

술이 모두 깬 것 같다는 생각은 공포로 몸이 얼어붙으며 떠오른 일시적인 착각에 지나지 않았음.

얀순이는 다리가 풀린 얀붕이를 끌고가 방구석에 앉힘.



"얀붕아...왜 거짓말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내가 언제 거짓말..."



"왜 일베같은거 한다고 거짓말했냐고."



서슬퍼런 얀순의 눈을 마주친 얀붕은 순간 쫄았으나, 얀붕은 술이 깨지 않아서 돌아버린건지 얀순의 뒤이어 터져나오는 말에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처럼 이미 다 들킨 비호감작을 다시 시도함.



"하하하...거짓말? 내가 언제 거짓말했다고 이러노?"



"풉...."



얀순이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 했다. 그러나 얀붕이는 술로 대가리가 맛이 간 건지 속사포처럼, 기세좋게 망언을 쏟아냄



"지금 어디서 일게이가 말하는데 너같은 김치년이 웃노? 역시 주적인 한녀는 삼일한 멸녀가 답이다 이기야!" 



"얀붕아. 일베 몇 렙이야?"



얀순이가 입을 연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얀붕은 일베를 실제론 하지 않는 터라 레벨이 있는지도 몰랐음.

그래도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라는 생각으로 얀붕이는 게임을 생각하며 적절한 레벨을 대답함.



"....70렙"



"푸하하하하!!"



망했다.



"얀붕아...내가 너를 봐온 게 하루 이틀이야? 일베니 중갤이니 주갤이니...내가 아는 너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나랑 헤어지고 싶었어? 그래서 그런 되도 않는 구라를 치는거야?"



"얀순아...나는..."



"입닥쳐 씨발놈아. 니가 왜 그러나 생각해봤거든? 근데 니가 얀톡으로 다 말해주더라?"



"...내 얀톡?"



"여기."



얀순이의 저 반응을 보아하니...모두 들켰다. 얀순이가 내민 화면은 내 얀톡이었다.

동기에게 술먹자고 보낸 얀톡, 괜찮냐는 동기에 물음에 헤어졌으니 이제 상관없다는 얀톡.

그리고...자칭 연애 고수 동기에게 너의 방법이 통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얀톡.

내 얀톡을 어떻게 얀순이가 본 거지? 라는 생각은 얀순이가 보여준 화면이 답해주었다.

pc 얀톡. 얀순이 노트북에 연동된거다. 이런 바보같은...



"얀붕아...날 속이고 싶었으면 각잡고 반년은 썼어야지.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야 누가 믿어주겠어?"



얀순이랑 다르게 얀붕이는 허술했음. 얀붕이는 얀순이를 속여넘기려 했으나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결과가 나옴.

김대기처럼 적절한 인생을 살아온 얀붕이는, 지나의 노래처럼 탑 걸인 얀순이를 속일 재치를 발휘할 수 없었음.

물론 얀붕이가 남을 속여본 적도 생각도 없는 바른생활 사나이였기에 얀순이가 속아줄래도 속아줄 수가 없었던 걸지도 모름.



"날 두고 다른 사람이랑 놀 생각이나 하는 이 창놈근성을 어떻게 해줘야하나..."



"아니...그게..."



"그리고 얀붕아...아까 뭐라고? 껌젖? 걸레? 확인해볼래 이 씨발창놈아?"



"어어...오지마라"



-



얀붕이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왔다. MT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떡이 되도록 즐겁게 마시더니, 거짓말처럼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

얀붕이는 강의 중에 계속 졸았고, 항상 초췌한 얼굴이었다. 걱정되어 말을 거니 술자리는 못 간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자친구분의 집착이 더욱 심해진걸까...

1개월 뒤 얀붕이는 휴학계를 제출했다. 어어 얀붕이 점마 왜 휴학하노?

바로 얀붕이에게 물어보았지만 얀붕이는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자기는 괜찮다며 사정이 있어 당분간 쉰다고 했다.


1학년을 마치고 동기들은 대부분 군대를 갔다. 면제가 뜨지 않는 이상 모두 공익으로라도 끌려가야했다.

나도 입대를 앞두고 놀고 있는 시기였는데, 오랜만에 얀붕이가 생각나 연락해보니 얀붕이는 상근으로 군복무 중이라 말해주었다.

어떻게 대학생이 상근으로 간 거냐고, 혹시 장군의 아들 뭐 그런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얀붕이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장군의 아들은 아니고, 그냥 아들을 낳았다고.


여자친구분...이제는 아내분에게 잡혀사는 얀붕이가 좀 안쓰럽기도 했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얀붕이는 이게 어딜 봐서 행복해보이냐며 역정을 냈지만, 기만질도 이런 기만질이 없을 것이다. 쌍놈의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