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미지를 자극하는 던전, 던전이 생겨난 이래 많은 인간들은 던전의 마력과 감응하여, 헌터라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는 자들이 됐다.

그들은 사람 하나 정도는 거뜬히 들며, 다른 사람이라면 일주일이나 갈 상처조차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나았으며, 그들이 가진 진면목은 스킬이라는 초능력과 가까운 능력에서 나왔다.


다만, 그것이 헌터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세상의 혼돈을 초래할 던전, 던전 안에서는 몬스터가 존재했고, 몬스터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던전 안에서 나와 세상을 거닐며,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그 중에선 나와 기연이가 있었다.


"백기연 헌터, 현재 대한민국에서 1위를 달리고 계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입장을!"


드르륵.


차의 문이 닫히고.

굳건한 갑옷을 입은 그녀가 갑옷을 풀며,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고했어."


앞좌석에서 운전을 도맡는, 그녀의 언니와도 같은 존재인 최나리 매니저.

그녀는 기연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수고는 무슨, 매번 하는 일인데 뭐…."

"어디로 갈…, 아 역시 걔 집으로?"

"응."

"근데, 너 조심해야 한다, 요즘 언론에선 눈 뜨기만 하면 네 얘기야, 괜히 잘못되면 안 돼."

"잘못은 무슨, 나는 내 일상 없어? 그리고 내가 무슨 연예인이야?"
"아니, 네가 아니라 그 애 말이야, 너랑 엮이는 일반인인 만큼 언론의 과한 관심을 받을 건 당연하잖아?"

"……."


어릴 적, 재해가 있었다.

던전이 나타난지 4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 대한민국에서 처음 던전으로 인한 재해가 일어났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기연이는 함께 휘말려 부모님과 친구들을 잃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것은 운 좋게 술래잡기를 하던 도중 지하실에서 숨어있었던 그녀와 나 뿐으로, 그 이후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녀가 헌터가 되기 전까지.


그녀가 헌터가 된 이후엔 우리의 인생에는 당연한 격차가 생겼다.

그녀가 그런 힘을 가져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였다.

일단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헌터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녀는 헌터로써 강할 뿐만 아닌 아름다고 예쁜 존재였다.

원래도 그녀와 친한 것이 안 믿길 수준이었지만, 그녀가 헌터가 되면서 더더욱 삶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다.


덜커덕.


"나 왔어."


그녀는 간단한 먹을 것을 사들고는 집으로 찾아왔다.

당연하다는 듯,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먹을 것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내 인사를 받기도 전에 옷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하고, 난 빠르게 침대 위에 쳐진 커튼을 펼쳤다.


"오늘 말이지? 던전 안에서~."


그녀는 내 집에 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작게는 던전 안에서 싸웠던 몬스터부터, 크게는 만났던 다른 헌터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말이야, 최근 들어서 기자들이─."

"그, 미안하지만."


그녀가 한창 말하고 있을 때, 나는 커튼 뒤에서 말을 시작했다.

한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나의 말.


"이제 내 집으로 오는 건 그만해줬으면 좋겠어."

"…왜?"


그녀의 얼떨떨한 물음과 함께, 내 마음속에 있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새어 나왔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 격차 사이에서 초라한 나를 발견할 때의 고통이나, 만약 그 고통을 이겨낼 지언정, 세간이 이 사실을 알아봤자 좋을 일이 없다는 것.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그래?"


그녀는 내 말을 전부 듣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기 시작하고.

눈물 흘리진 않았지만, 슬픈 눈을 한 채 빠르게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이내 이 행동조차 내가 하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를 잡진 않았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녀와 나의 연은 끊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아프고 가슴 한 켠이 고통으로 휘감기지만…, 이거면 된 것이다.


***


"컥!"


수많은 헌터들이 모인 자리, 그 자리에서 벌어지면 안 될 일 중 하나가 벌어졌다.


"끄으윽!"


한 남자가 파범벅으로 물들여져서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매끄러운 여자의 손에 멱살 잡혀서는 그대로 공중에 들렸다.


"머, 멈추세요!"


회장의 경비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고.

그런 그녀의 눈빛에 경직된 경비들은 그녀와 자신들 사이에 너무나도 깊은 심연의 골을 바라보는 격차를 느꼈다.


"이, 이게 무슨 행동이십니까, 국내 최정상의 헌터님께서."

"이 새끼가 나한테 먼저 성희롱을 했어, 그래서 팼는데 뭐 문제라도 있나?"


경비들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피떡이 돼서는 움직이진 못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들도 들었다 말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문제가 수습 되었다.


"요즘 왜 저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남자 문제?"

"쉿, 들릴라."


그런 숙덕거리는 소리에 그녀는 불쾌함을 표하며 자리를 박차 나왔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발걸음으로 그의 집으로 향하려던 자신의 몸을 알아차리고는 멈추었다.


"…."


자리에 숙여 앉는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툭 터트린다.

작은 눈물 방울 한 방울은 폭포수가 되어 흘러나왔다.


"이─, 이 나쁜…, 아니야 걔가 나쁜 게 아니야…."


마음을 추스르던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나빠, 그래 나쁘지? 나를 배신했어, 어릴 적엔 나를 지켜준다 하고선, 지켜주긴 커녕 나를 미뤄냈잖아?! 이건…, 그래 벌을 줘야 해, 나를 배신한 아이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어떤 벌? 어떤 벌이 합당할까?"


그녀의 눈이 점점 탁한 색을 띄고 있다.


"그래도 그는 날 사랑해서 배신한 건가? 아하하, 그러면 나도 그건 고려해줘야겠지?"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음~,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걸 위험하게 생각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곳으로 데려갈까?"


주변이 그녀의 감정에 따른 마력의 고조의 동요해서는 이내 콘크리트 바닥이 들리고, 막 자라나던 풀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며, 주변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래, 좋아, 그가 날 거부했다면, 반대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를 감싸주면 되는 거야, 우후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탁탁 털고는, 이제는 기쁜 듯한 얼굴을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길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집에 들어왔다.

이미 바뀌어버린 비밀번호는 탐탁치 않아한 채, 철문을 아기 손목 비틀듯 간단히 비틀어서 들어온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날 쓰러트려 침대에 눕혀서, 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죽 늘여 트린 채로, 그 생기 없는 눈으로 말했다.


"사랑해, 그러니까 너도 날 사랑해줘야지?"


탐욕스러운 그녀의 입술이 나의 목을 깨물었다.

송곳니가 따갑고 아프게 살을 파고 들어와 피를 흐르게 만들고.

그녀는 내 피를 맛있는 와인을 마시듯 마시고는 황홀경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일에 나는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녀는 헌터였다.

인간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내게 남은 것은 그녀에게 묶여선 개와 같이 복종되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