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딸깍.


대낮임에도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의 단칸방.

추레한 차림의 남성이 무료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책상 한 켠에 아무렇게나 쌓인 원고지 뭉치는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고 있었으며

생기를 잃은 방은 마우스 소리가 심음보다도 더 규칙적으로 울려퍼지는 듯했다.


"오, 3억짜리 웹소설 공모전을 한다고? 어디 보자, 지원조건이..."


[ 얀챈피아 웹소설 공모전 모집요강 ]

주제: 모든 장르의 웹소설

지원조건: 공백 미포함 3000자 이상

예선 최소 20화 이상, 본선 최소 30화 이상 연재


"에라이. 나 같은 단편쟁이는 뭐 먹고 살라고! 짧은 글은 글도 아니다 이거지?"


갑자기 감정이 격해진 사내는 화풀이하듯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지만,

그가 처음부터 단편만 썼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장편도 집필했었으며,

그 때 받았던 상장들이 사내의 유일한 자랑이었다.


허나 누렇게 변색된 상장 용지처럼 그의 재능도 빛이 바랜 것일까,

이전의 필력은 어디 갔는지 변변찮은 글 한편 써내지 못하고 있었다.

밤을 여럿 지새며 글을 쓰던 시절의 열정도 감각도 무뎌진 지 오래,

그저 인터넷 커뮤니티에 짧막한 글만 끄적일 뿐이다.


"후... 얀챈에서 1화빌런 짓이나 하러 갈까."


예전만큼의 자신감을 잃은 사내는 장편 집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고,

자신을 단편쟁이라 지칭하며 자극적인 글을 써서 올리기를 반복했다.

1화만 써서 올린 뒤 유저들의 반응을 보며 자존감을 채우기를 반 년째,

그동안 글을 집필했던 짬이 있어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도 몇 번 타봤지만

이것이 스스로를 늪에 밀어넣는 짓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었다.


"하, 씨발. 이 짓거리 좀 그만해야 하는데..."


본인의 처지가 못내 안쓰러워진 사내는 담배를 피러 나가려 했으나,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요. 작가님! 이제 1화빌런 짓은 그만둘 때가 됐다구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아는 사람 중에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없고,

심지어 내 집이 어딘지 아는 여성은 더더욱 없었다.


"거 누구신지는 모르겠는데, 집 잘못 찾아왔수다!"


그냥 연초 좀 태우러 나가려던 것 뿐인데, 누군지 모를 사람이 문 앞을 가로막고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여대니 여간 재수 옴 붙은 날이 아니었다.

연초는 잠시 후에 피우기로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또다시 문 너머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슬슬 마우스 말고 펜을 잡으셔야 하지 않겠어요?"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미친년이 아까부터 지랄이네."


문 너머의 여성이 이윽고 글쟁이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자, 

사내는 저 미친 여자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겠노라며 문고리를 붙잡았다.


허나 그 뿐이었다.


사내가 몸을 부딪혀가며 문을 밀어냈지만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문고리는 돌아갔지만 열리는 일이 없었다.


"아니, 이런 씨... 이거 열어!"


"열어 주면 통조림이 아니죠?"


"하, 어이가 없네... 보통 통조림을 본인 집에 가둬서 하나?"


"익숙한 환경이 글 쓰기에는 가장 좋지 않나요?"


"좆까세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문이나 열어!"


"이 나라 경찰을 믿으세요?"


정곡을 찔렸다.


설령 진짜로 경찰이 왔다 해도 지금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하지?

'제가 인터넷 소설 작가인데, 커뮤에 글을 안 썼다고 제 집에 감금당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선택지다.

같은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운 상태.

외통수로구만, 이거...


"씨발, 내가 졌습니다! 거 도대체 뭔 글을 써달라고 사람을 여기 감금하신거요?"


"생각 같아서는 그동안 얀챈에 적었던 것들 전부 완결내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으니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이어서 써주시면 돼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그건 작가님이 찾아내셔야죠."


"아니 이 씨발년이 지금 장난하나!

내가 얀챈에 쓴 글이 몇 개인데, 그 중에 하나 얻어걸릴 때까지 글만 쓰라고?"


"운이 좋으면 첫 시도만에 끝날 수도 있겠죠?

물론 식사나 그 외에 필요하신 것들은 제가 전부 제공해드릴게요.

그러니 작가님은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이,


계 속  글 만  써 주 시 면  돼 요"


분명 문에 가로막혀 상대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백에 잠시 압도되었다.

어쩌다가 순도 120% 진짜배기 싸이코년에게 잘못 걸려서 이 꼴이 났을까.

괜히 심란해진 사내는 냉장고에서 반쯤 남은 술병을 까서 마셨다.


"내일부터 바빠지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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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설정


얀순: 얀붕의 대학 선배. 아카대 문예창작과 조교였으며,

작문 과제를 걷다가 얼핏 읽어본 얀붕의 문장에 푹 빠져버렸다.

허나 그 시점에서 얀붕은 이미 군휴학을 한 이후였고, 복학을 기다렸지만

얀붕은 얀챈에서 1화빌런 짓을 하고 있었기에 복학을 하지 않았다.

이내 이전 과제들까지 찾아서 읽다가 집착이 극에 달해 얀붕을 자택에 감금했다.


얀붕: 과거에는 나름 재능 있는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아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나,

우물 밖으로 나와 보니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여 도망치듯 군대를 갔고

전역 이후에도 인터넷에서 뻘글만 쓰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배웠던 것도,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모두 까먹어 버렸기에

얀순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