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앞서서 제가 하고픈 사담 좀 하고 가겠습니다

롤은 사람의 인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게임입니다. 제가 소설을 쓸 때마다 롤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을 보며 창작의 열정을 얻습니다.

이딴 놈들도 장구벌레처럼 살겠다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브론즈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중심적이고 팀에 대한 존중은 전혀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군과 적들을 매우 자주 보아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설령 사과는 않더라도 개선의 태도를 보인다면 패배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는 남지 않을 겁니다.

실력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롤이지만, 적어도 아군을 원수처럼 물어뜯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좋은 말이지 않나요?


근데 전 사랑 못할 거 같아요.

롤에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냐

ㅅㅂ




이전 편 -네 원수를 사랑하라.txt [上]

https://arca.live/b/yandere/8138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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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고, 마법으로는 세계를 주무를 수 있었다. 

이전의 삶에서 나를 구속하던 용사의 피는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져, 나는 말그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계를 망가트렸다.

이전의 삶에서 나를 인간이 아닌 도구로만 취급하며 모욕을 일삼은 놈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여 세상에서 소멸시키고

이전의 삶에서 나를 사랑해주었으나 용사라는 이름에 가로막혀 결국은 멀어질 수밖에 없던 여인들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모든 걸 손에 넣고서도 잊을 수 없었다. 나를 제물로 바쳐 끔찍하게 살해하고 의식을 치루던 그 광신도들.

그 광신도들을 찾기 위해 이 세계를 쥐잡듯이 뒤져보았지만 그들은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을 향한 나의 복수심은 겁화처럼 타올라서, 내가 사랑했던 가족들 마저 집어삼키고

정신을 차려볼 땐 이미 내게 안식이란 허락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윤회의 저주, 림메라고 불리던 여인이 나의 영혼에 새긴 굴레였다. 

용사의 피라는 협소한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더 큰 감옥으로 나를 가둔 것에 불과한 꼴이었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복수심이라는 불길은 장작을 갈망하지만 이미 내 주변의 장작은 모두 타버린 후였다.

후회하고 절망하며 생각했다. 새로 시작하자. '치트' 를 이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나의 윤회가 시작됐다.


윤회의 저주를 이용해서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탄생한 나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불살라 버렸다.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깨달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딘가에 숨어있을 광신도들을 어떻게든 불태워버리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들의 흔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치트' 라는 능력을 사용해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내가 흩뿌리고 있는 지옥불이 그들을 불태우고 있으리라.

그렇지 않더라면, 나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수없이 윤회를 반복했다. 윤회를 할 때마다 나는 세상을 방황하며 광신도들로 의심되는 놈들이 있다면 모두 불태워 죽였다.

많은 이들이 모인 곳이면 찾아가서 불태웠고, 교회 같은 곳은 문답무용,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그 광신도들이 외우던 주문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태워버린다.

불타면서도 신을 부르짖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어리석음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광신도들을 찾을 수 없었다. '치트' 라는 무궁무진한 힘을 사용해 세상을 종횡했지만 코빼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매번 윤회를 할 때마다 광신도들의 의식 속에서 갈려나가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복수심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지만.

그 복수심이 향할 존재들은 세상에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미지로만 남아있어서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정말로 속에 쌓이고 쌓인 울화가 터지는 순간, '치트' 는 세계를 터져나오는 화산으로 뒤덮어서 멸망시켜 버렸다.


그렇게 또 윤회를 거듭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세상을 불태우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너무 위협적이어서, 지레 겁을 먹은 그들이 미지의 의식을 통해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렸다면?

그렇기에 내가 활개를 치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어쩐지 정말로 그럴 것만 같았다.

그래, 사냥도 똑같다. 너무 모습을 드러내면 사냥감은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겠지. 내게 부족한 것은 은밀함이었음을.


그래서 나는 적당히 강도를 조절해가면서 세상에 위협을 가하며 덤으로 서쪽에 자리잡은 마물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물들은 적당히 써먹기 좋았고, 두려움을 몰라서 마구잡이로 소모시켜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번식력도 좋아 금방 물량이 충원되었다.

나는 숨어있을 광신도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도록 적당히 위기감을 조성했고, 전선을 이루어 소강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식으로 세계에 위험이 감도는 시기가 광신도들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기였으니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몇 년이 지났을까. 아직도 광신도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어느 날, 갑작스레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젊은 여성이 블라우스를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림메였다.

나는 간만에 보게된 그녀의 모습이 반가웠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는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찡그린 얼굴을 보니 썩 마음에 드는군. 그리 생각하며 나는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여, 반갑구만."

"당신, 제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나요? 불쌍한 여자를 구원해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이전 윤회에서는 아주 멋대로 저지르셨더군요."

"뭐가 보여야 말이지. 네가 말한 그 '치트' 라는 걸로는 불쌍한 여자가 누군지 못 찾겠더라고."

"자기 가족을 숯덩이로 만들어놓고, 세계를 화덕으로 만들었던 주제에 그런 말이 나와요? 이미 어딘가에서 웰던처럼 바싹 구워졌을 걸요?"


웰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는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가, 세상을 불태우는 과정에 림메가 말하던 그녀도 죽었겠군.

이번이 몇번째 윤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해도 림메가 내어준 목적을 수행하는데 소홀하긴 했다.

하지만 내겐 아직까지 꺼지지 못한 복수심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를 찾는 것보다도 내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 우선일 정도로 말이다.


"난 아직 나를 죽인 광신도놈들을 찾지 못했어. 그 놈들을 죽이기 전까진... 내게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는 없다고."

"그래요, 당신 멋대로 살아봐요. 하지만 당신이 몇번이나 윤회를 거듭한대도 그 광신도라는 자들은 절대 찾지 못할 걸요."

"무슨 의미지?"

"곧 알게 되실 거에요. 이번엔 잘 좀 해보라구요. 참고로 힌트는 진작에 줬었죠? '네 원수를 사랑하라' 잊지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림메의 모습이 사라진다. 오리무중인 와중에 되도 않은 힌트만 다시 상기시켜준 그녀를 속으로 씹어보지만 변하는 건 없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말은 내뱉긴 쉽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행동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내게 원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당장 찢어죽여도 모자랄 광신도들부터 시작해서, 나를 멋대로 사지로 몰아넣은 왕국의 실권자들, 나를 배신한 동료들, 고향을 불태운 마족놈들.

손가락을 꼽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원수들. 림메는 이런 원수들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웃기는 소리지."


나는 내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 5명의 존재들을 바라보며 짧게 일축했다. 나름 장비를 갖추고 구색을 맞춘 모습들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추억에 감성적으로 젖어들 시간은 내게 필요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갖춘 그들을 보며 나는 묻는다.


"네 놈들은 누구지?"

"...네가 마왕이냐?"

"다짜고짜 들이닥쳐놓고 대답조차 하지 않는군. 대체 여기에 마왕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

"문답무용!"


그들의 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날쌘 여성, 귀와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호리호리하면서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자세를 보아 엘프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치트' 라는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내게 그녀의 일격은 통하지 않는다. 

거친 충격파와 함께 저 멀리 나가 떨어지는 엘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네 놈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죽음으로 보답해주지."

"..."


그들은 나의 무력과 위협에 신중함을 되찾았는지 잠깐 서로 눈치를 본다. 대충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는지 그들의 대표처럼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선다.

허나 그 대표라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용사?"

"그렇다. 나는 왕국에서 공인된 용사 유진이라고 한다. 모든 왕국을 대표해서 마왕으로 이름 붙여진 네 놈을 처단하기 위해 왔다."

"...운명의 장난이 이렇게나 짖궂을 줄 알았더라면 그냥 고집을 피워서라도 소멸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나는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 저주했던 먼 과거의 삶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야 말았다.

윤회의 저주라는 건 이런 이유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던 걸까. 그 진의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정말 고약한 장난질에 걸려들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유진, 나의 용사였을 적 이름. 세상이 칭송하고 찬양했던 그 이름. 저들의 정체가 비로소 확실해지는 순간, 나는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그래, 광신도는 숨어있던 게 아니었군..."


애초에 광신도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간대였을 줄이야. 이건 림메의 수작이었던 건가. 그녀가 불현듯 떠올랐지만 도저히 그녀는 아니었다.

이미 내가 이런 상황과 맞닥뜨릴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이 시간대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던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던 거였어.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고, 곧 내가 진실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직전이 되어서야 나타나서 진정한 목적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 것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유진... 그럼 저기 널브러진 엘프는 다이애나겠군. 그리고 네 놈 뒤에 서있는 남은 셋은 테오도르, 마일로스, 세일라 인가?"

"뭐...? 대체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 거지?"

"...'치트' 라고 해두지."


설명해줘봤자 시간 낭비다. 운명이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지금 모두 여기서 박살을 내주고 말 것이다!


"다들 내 뒤로 모여!"

"전부 죽어라!!"


나는 '치트' 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켰다. 오로지 파괴만을 바라고 구현했기에 위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건, 최소한 이 주변은 모두 존재자체가 말소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용사는 직감으로 내 기세가 변한 걸 눈치채고 대비한 모습이었지만 절대 이 힘을 벗어나거나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폭발의 기세는 사그라들었고 나 또한 '치트' 의 힘으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정도로 폭발의 위력은 상정 외였다.

주변이 황량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사라져있었다. 나 외에 어떤 존재도 물체도 없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구름이 개여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다가 어느 시점에서 시선이 멈추어 선다. 내 눈앞에 놓인 광경이 정녕 거짓이 아니란 말인가.


"크크, 용사의 힘이란거 '치트' 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구만."

"...대체 네 놈이 어떻게..."

"크흐흐흐..."


나는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 건지. 공교롭고 너무 공교로워서 실성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치트' 가 그것을 막는다.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마다 발휘되는 힘에 의해 나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받아들이기 싫은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 네 놈이 어째서 용사의 힘을 쓰는 거냐! 마왕!"

"그래, 이게 용사의 힘이다 이거로군.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주문을 외우고, 세상을 호령하게 만드는 힘."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치트' 라는 힘이 있다면 어째서 림메 본인이 이를 해결하지 않는 건지 말이다.

윤회를 거듭하면서 희미해지긴 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해답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다니. 정녕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치트' 라는 게, 용사의 힘이었다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힘이었기에 그녀가 '치트' 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일깨워줬을 뿐인던 건가?

도무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이었으나, 이미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사용할 수 없던 용사의 힘.

그게 바로 '치트' 의 정체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그때 이 힘을 사용하지 못했지...?"


진실이 밝혀지면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떠오르는 말은 림메의 한마디였다.

'곧 알게 되실 거에요.'

그래,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모든 진실을 알 수 있겠지. 나는 주먹을 꼭 쥐고 힘을 모았다. 내게는 윤회의 저주가 있다.

저 용사가 나를 베어서 넘어뜨리더라도, 나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다시 돌아와서 과거의 나를 넘어트릴 것이다.


"무엇을 중얼거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왕! 용사 유진의 이름을 걸고 네 놈을 이 자리에서 베어주겠다!"

"...그래, 와라!"


내가 바라던 진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내 앞을 막아서는 과거를 향해 달려든다.

찬란하게 빛나는 용사의 검과 검게 물든 마왕의 주먹이 맞부딪히고, 곧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힘과 힘의 충돌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황량해졌던 주변 풍경이 이제는 황량을 넘어 황폐화되어 간다.


처음은 주먹이 부서졌다. 뼈의 잔해조차도 남기지 못했다. 그대로 몸이 반으로 조각났다.

윤회해서 다시 맞부딪혔다. 이번엔 팔이 부러져서 꺾여버렸다. 그 엄청난 고통에 소리를 내지르기도 전에 목이 베어졌다.

다시 윤회해서 맞부딪힌다. 주변의 사물을 뭉쳐서 검처럼 만들어 융화시킨 마검으로 서로의 검이 교차되었지만 결국 베어지는 것은 나였다.

그렇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돌아가서 과거의 나와 싸운다. 윤회를 거듭할 수록 싸움의 시간은 길어져 간다.


얼마나 윤회를 했는지 수를 잊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용사의 검을 꺾었다. 하지만 용사는 곧바로 기운을 뿜어 내 몸을 꿰뚫었다.

다시 윤회했다. 용사의 검을 꺾고 곧바로 쏘아지는 용사의 힘을 마검으로 막아낸다. 마검이 부러지고 우리는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용사의 힘와 '치트' 는 똑같은 힘이라지만 어째선지 용사의 힘이 더욱 강하다고 느껴진 것은 착각일까. 순식간에 온몸을 가격당해 고깃덩이가 된다.

다시 돌아와서 이번엔 최대한 마검으로 싸우는 시간을 늘렸다. 용사의 검이 부서지는 순간, 나의 마검은 활용도가 늘어갔다.


싸움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마검을 쥐고 있는 내가 유리해졌다. 하지만 용사에만 집중했던 것이 나의 패착이었다.

과거의 동료들, 지금은 나의 적이 된 테오도르, 마일로스, 세일라, 다이애나가 용사에게 자신들의 힘을 전이시켜 준 것이었다.

처음으로 "어째서"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너로서는 알 수 없겠지, 동료들과 함께 넘어온 시련들, 그와 함께 깊어져가는 우애를."

"...어째서냐... 너희들은, 너희들은 나를 배신했으면서..."


어째서 지금의 용사는 자신들의 힘을 넘겨주면서 까지 희생하려는 거냐. 하지만 그에 대한 질문을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동료들의 힘을 넘겨받은 과거의 내가 내지른 일격으로, 나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해버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진정으로 윤회의 저주를 저주했다.


"어째서 너만 축복받는 거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째서 나는 세상에 배신당해야만 한 거냐...!"

"...미쳐버렸군."


내 의지를 거스르고 다시 윤회를 거듭했으나, 전의를 잃은 내게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 나는 그렇게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용사에게 살해당했다.

세상의 모든 악의가 나를 향한 게 아닐까, 그리 여겨질 정도로 나는 모든 것이 저주스러웠다.

지금도 눈앞에서 당당하게 검을 쥐고 있는 '용사 유진' 은 동료와 세상의 응원과 축복 속에서 나를 베어내기 위해 달려드는데

어째서 내 뒤에는 누구도 없는 거냐. 어째서 나는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한 거냐.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거야.


"왜 나만..."


난 원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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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마워!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다음 편에서 부탁할게.

다음 편에서 보자!


참고로 얀데레 요소가 어딨냐고 묻는다면... 이제 얀데레가 되고 있다고만 얘기할 게

얀데레가 꼭 굳이 여자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