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좋아하지?"


아뇨 싫어하는데요.


나는 세상에서 카레가 제일 싫다. 일단 생긴 것 부터가 노란색인게 마음에 안든다고 해야하나.

꼭 설사같이 생겼잖아. 어떻게 음식이 노란색일수가 있는지 원..


게다가 우리가 먹는 카레라이스라는게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왔고, 또 그 영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게 지금의 카레라이스 아닌가?

그야말로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비인도적인 음식.


그게 바로 카레라이스지.


뭐 그런 이유 말고도 씹는 맛이 없다고 해야할지, 좀 뭉글뭉글한 건더기의 식감이 마음에 안드는것도 있다.

그 느낌으로 개인적으로 나는 말아먹는 음식도 싫어한다.


자고로 음식은 딱딱하고 아삭아삭한 씹는 맛이 있어야한다는게 내 지론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물고,뜯고,씹고, 맛보고 즐기고 아싸 조타 이가탄!


"왜 그러니?"


"잘 먹겠습니다."


내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예진이 나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이 세계의 한아름은 카레라이스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나보다.

아니 어떻게 카레라이스를 좋아할 수 있는거지? 이것봐 딱 누리끼리한게 있는 식욕도 싹 달아나게 할만한 그런 비쥬얼이잖아.


꼬르륵-


배에서 뭐라도 들여보내달라고 자꾸만 내게 신호를 보낸다.

예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퍼서 내게 가져다 주었다.


밥이 보랏빛이었다. 밥 군데군데에 보라색 콩이 박혀져 있었다.

콩밥이라니- 비인도적인 식단이었다.


감방의 죄수들에게나 먹이는 그런 콩밥을 나에게 가져다 준걸 보아서, 이 세계의 한아름은 모르긴 몰라도 어떤 죄를 지어서 가택감금을 당한게 분명했다.


아니면 아무거나 줘도 잘 먹는 SSSS급 누렁이일 수도 있고.


"맛있게 먹어"


냄비에 있는 카레를 국자로 떠서 내 밥그릇에 붓기 시작하는 예진,

이 세계의 식단은 정말로 최악이나 다름 없었다.


똥같이 생긴 카레라이스에 죄수에게나 주는 콩밥이라니 원래 세계였다면 거들떠도 안볼 그런 음식물 폐기물 둘이 합쳐져서 환상의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비주얼은 마치 군대의 짬통. 그래 이건 군대의 짬통이나 다름 없었다.


전쟁 포로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 아 그래도 우리가 포로긴 한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라고 말이 나와도 할말이 없을 그런 음식-

콩밥 카레라이스라니- 이런건 누렁이도 안먹을것 같은데...


"...맛있게 먹을게요.."


숟가락으로 카레라이스를 대충 비비기 시작한다. 보랏빛 밥에 노란색 카레라이스가 비벼지기 시작한다.


갓 만들어서 그런지 따끈따근한 김이 밥그릇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왜 이렇게 똥같이 보일까?


그래도 이 세계의 카레라이스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삼성이나 LG가 MH니 DJ로 바뀐것처럼 이 세계의 카레라이스도 내가 아는 카레라이스랑 

다른 맛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 비벼진 카레라이스를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밀어 넣었다.


시발- 왜 이런건 원래 세계랑 똑같은건데...


콩밥과 카레라이스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내 미각 세포를 거침없이 유린하였다.


마치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콩고의 원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수탈하고 괴롭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야말로 비 인도적인 맛이었다. 더러운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음식이 내 혓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맛있니?"


"...네 맛있어요..."


내 양심은 오늘 죽었다.


내 앞의 예진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미친년, 여기서 내가 만약에 음식이 맛없다니 뭐니 투정을 부리면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는 며느리도 모르고 장모님도 모르는 일이다.


아아- 그러고보니 에도시대의 가톨릭 신자들을 붙잡는 방법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로 한복판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가져다놓고 발로 즈려밟는 사람들만 목숨을 살려주고, 발로 즈려밟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결처형을 한다고 했었나?


왠지 모르게 에도 시대의 사람과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건 단순히 내 착각인것일까?


"아름아 울어? 왜 울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아뇨... 카레라이스가 너무 맛있어요"


난 왜 이 세계에 온것일까?


진짜 내가 시발 무슨 잘못을 했다고- 교회도 안가고 절도 안가고 성당도 안가는 완벽한 무신론자라서 그런걸까?

시발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건지... 내가 시발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하나 개새끼야


너는 시발 님자를 붙일 자격도 없어 좆만한 씹새끼야, 니가 어떻게 하나님이야 시발 하나지 

시발 좆같이 맛없네 개씹좆...


대체... 시발 내가 니 한테 뭘 잘못했는데....


"원한다면... 더 줄수도 있어"


"아니요, 괜찮아요. 이것만 먹어도 배부를것 같아요"


왜 나에게 이런 여자가 붙은 것일까? 수틀리면 바로 배때기에 칼이나 휘두르는 저런 미친년이 왜 내게 집착하는 것일까?


더 이상은 못살아- 내 몸에 GPS라도 달린것처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만 알고나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이곳에서 도망쳐주겠다.


정조역전 세계에서 마음껏 여자들을 독식하는 삶을 살아주겠다.


아이티 진흙쿠키도 시발 이것보다는 맛있겠네-

억지로 눈을 감고 콩밥 카레라이스를 꾸역꾸역 입에 때려박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먹으니까 좀 그런대로 입에 때려박을만한것 같기도 하고, 아아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건 눈물인가..?

방울방울 떨어져내려간 눈물이 카레라이스에 떨어져서 짭조름한 맛을 더 해주고 있었다.


먹을만하다는게 아니라 안그래도 좆같이 먹기 싫어진 음식이 몇배는 더 먹기 좆같아졌다. 이 말이다.

그래도 천리길도 한걸음이라고, 한 숟갈씩 떠 먹으니 어느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다 비어진 내 밥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있는 예진을 바라보니, 그녀는 내가 콩밥 카레라이스를 다 먹은게 무척이나 대견스러운듯 손바닥을 맞붙인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이런 음식은 만들어주지 말란 레후---


무섭다, 두렵다. 대체 그녀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할지 나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와의 만남은 두 번 다 최악이었다.


비인간적인 칼부림, 그리고 회귀 그리고 또 한번의 비인간적인 칼부림- 대체 이 세계의 한아름은 수 틀리면 바로 칼부터 휘두르고 보는 미친년이랑 어떻게 살아온것일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름아, 이제 뭐 할거니?"


"조금 쉬고 싶어요"


진짜, 정말 나는 쉬고 싶었다. 가뜩이나 고된 노동으로 피곤에 절여있는 상태에서 꼴에 음식이라고 카레라이스를 위에 때려넣으니 포만감이 몰려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그러고보니 예진이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2층에 내 방이 있다고 말을 한게 생각이 났다.

이 세계의 한아름이 대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 나는 내 방을 한번 둘러보기로 마음 먹었다.


"저기,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일단 제 방에서 쉬고 있을게요"


"그래 좀 피곤해보이는구나, 방에 들어가서 푹 쉬고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2층 계단을 올라갔다. 한아름의 방을 찾는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2층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보이는 방의 문에 '아름이 방'이라고 적혀진 나무 이름표가 걸려 있는게 보여서 나는 그 방문을 열어 보았다.


씨발-


머리가 아프다. 너무 지끈거린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내 손발이 파르르하고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는 내가 이 세계에 온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남녀의 성별이 역전된 정조역전의 세계, 남자와 여자의 취향이 완전히 반전된 세계인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핑크빛으로 도배된 벽지, 그리고 디지니 월드에서나 보일법한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커튼이나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왠만한 어린애 덩치만한 커다란 곰인형과 범고래 인형이 내 침대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져 있었고, 


책장에는 마르세유의 장미같은 순정만화책이 꽂혀져 있었다. 


시발 내 나이 몇인데... 감수성이 폭팔할 사춘기 소녀도 이러고 다니지는 않겠다.


으으.... 순간 머리 속에서 내가 저 커다란 인형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하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떠올려보았다.

방금 먹은 카레가 위로 올라올것 같은 그런 메스꺼움이 느껴진다.


설마 옷같은거도 레이스가 달린 뭐 그런 옷들은 아니겠지? 


진짜 조금의 농담도 없이 옷장에 핑크빛 레이스가 달린 옷들이 있고, 앞으로 그런 옷들을 입는다고 하면 거짓말 안하고 저 열린 창문으로 과감하게 도망칠 각오가 있었다.


...물론 뭐 말이 그렇다는거지, 칼에 맞아 죽기는 싫으니 꾸역꾸역 입기야 하겠지만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옷장을 열어보았다. 다행히도 내 걱정과는 달리 핑크빛 레이스가 달린 공주님같은 옷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옷 취향은 나랑 비슷한지 옷장에는 평범한 후드집업이나, 오버핏 맨투멘- 청바지와 면바지같은게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고, 옷장의 한 구석에는 속옷이 곱게 잘 접혀져 있었다.


그래도 옷은 뭐 평범하게 입고 다니네, 속옷도 뭐 이 정도면 무난하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중에 하얀색 바탕에 하늘색 세로 줄무늬가 새겨진 잠옷을 발견했다.


옷감이 부드럽고, 매끈한게.... 모르기는 몰라도 꽤나 값이 나갈것 같은 그런 잠옷을 챙긴 나는 갈아입을 속옷 한벌을 챙겼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찝찝한 상태에서 잠을 자는건 힘들어서, 씻고 자고 싶었다.


그거 말고 따로 챙길게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던 중, 나는 내 방에 문 하나가 더 달려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방 하나 치고는 넓은 방과 핑크핑크한 인테리어에 넋을 놓았던 터라 문의 존재를 이제 눈치 챈 나는 그 방문도 한번 열어보았다.


문이 열러진 곳에는...


"화장실이네"


커다란 욕조에 세면대, 비데까지 모조리 달려있는 화장실. 핑크핑크한 방과는 달리 화장실은 새하얀 타일로 마감이 되어있었다.

..빨래통까지 있네. 뭐 빨래하고 싶은것들은 여기다가 담아놓으면 되는건가..?


세면대의 물을 한번 틀어보니 차가운 물과 뜨거운이 아주 잘 나왔고, 칫솔이나 치약, 바디워시, 샴푸, 린스도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들어와서 씻기만 하면 되는 완벽한 설비.


대충 샤워나 하고 자야겠다.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나 지갑 같은것들을 전부 침대 위에 집어 던지고 나는 옷을 벗었다.

한 밤 동안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옷은 땀으로 가득했다.


분명 택배를 하고나서.. 제대로 몸도 씻지도 못한체 계속해서 돌아다녔으니 땀범벅이 되는건 당연지사..


어...?


뭔가 이상한데?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왜 땀으로 범벅이 되지? 이거 나 아니잖아...? 나 빙의한거 아니야? 

근데 왜 그런거지? 아침 8시 출근 시간에 이렇게 땀이 범벅 될정도로 바쁘게 움직일 이유가 있나...?


한아름,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피곤하다. 머리가 복잡하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정말 일단 조금 쉬고 싶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좁혀졌다. 다리에 힘이 살짝 풀려 나도 모르게 화장실의 벽면에 몸을 기댄체 숨을 골랐다.

숨을 한번 깊게 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니, 조금 상태가 나아진것 같다.


일단 씻고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자.


샤워기를 틀고, 쏟아지는 물 줄기 속에서 찝찝한 땀과 먼지를 씻어내려갔다. 

이런 부잣집은 사용하는 물도 다른걸까? ... 그냥 뭐 착각이겠지


샴푸를 짜내 머리를 감고, 바디워시로 몸을 씻어내려갔다. 나는 그렇게 샤워를 오랫동안 하는 유형이 아니라서 한 10분? 15분 정도 샤워를 한 후에 방금 가지고 온 잠옷과 속옷으로 옷을 갈아입인 후


몸을 닦은 수건과 지금까지 입은 옷가지들을 전부 다 빨래 바구니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다른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말린 후,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푹신푹신한 침대의 느낌이 기분 좋다. 내 머리 위에 하늘하늘 움직이는 핑크빛 레이스를 잠시 바라보며, 나는 내가 이 집에 오면서 알게 된 사실들을 머리 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는 개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바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