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방의 거울 앞에 선 뒤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확인하기 시작했어.


검고 정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검은 바지와 가쿠란(学ラン)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펴져 있었고, 상의 맨 아래부터 목 부분까지 전부 고급스러운 금빛 단추 - 국화 무늬가 새겨져 있는 - 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자리에 잠겨 있었어. 검은 천으로 이루어진 교복은 깔끔하고 날카로운 선을 만들어내고 있었지. 학생들에게 착용하게 하는,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검은 망토도 더럽혀지지 않고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


“됐어. 옷은 다 입었고... 물건도 전부 다 챙겼는지 보자.”


흰 와이셔츠와 양말까지 빠짐없이 착용하고 단장까지 완벽히 마친 깔끔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뒤, 얀붕이는 방 한 구석에 놓인 검고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을 열어 챙길 물건들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시작했어.


“안내서, 필기구, 책, 손수건-”


‘쇼와 13년, 제 ——기 도쿄제국고등학교 입학식’ 이라 적힌 안내서와, 만년필과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필기구가 담긴 검은 가죽 필통, 여러 가지 책들과 자신의 흰 손수건과 기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전부 빠짐없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얀붕이는 가방을 닫고 왼손에 챙긴 뒤 방을 나왔어. 방의 문을 닫고 복도의 마루를 걸어 계단을 내려와 현관 앞까지 도착했지.


“지금이 8시 30분이니까 지금 출발하면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겠지.”


얀붕이는 신발장에서 검은 가죽 로퍼를 꺼내 신은 뒤, 바지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회중 시계를 꺼냈어. 은색으로 된 시계가 ‘4월 1일 오전 8시 30분’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집을 나와 현관문을 닫은 뒤 열쇠를 꺼내 잠궜어.


“정말 좋은 날씨구나.”


얀붕이는 집을 나와,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을 천천히 걸어가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렸어. 푸르고 투명한 하늘에는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바람이 살짝 불어와 얀붕이의 짧은 머리카락과 망토가 조금 흔들렸어.


너무나도 맑고 청명한 날씨를 한 오늘이라면 분명 기분이 좋아질 법도 했지만, 얀붕이는 날씨를 보고 그다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어. 그저 구름이 낀 어제까지의 칙칙한 날씨에서 맑고 청명한 하늘이 보이는 날씨로 바뀌었다는 변변찮은 생각만이 들 뿐이었지.


‘이제 이 문 앞에서 한 발짝만 넘어가면 내지인들이 사는 세상이야. 나 같은 조선인은 본래 있어서는 안 될 곳이지만...’


얀붕이는 마침내 대문 앞에 다다라 문의 손잡이를 잡으며 눈을 감았어. 오늘의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긴장감과 약간의 공포심이 섞인 감정을 느끼며 얀붕이는 앞으로 내지인들의 세상에서 조선인인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했지.


‘내가 조선인이라는 걸 알아챈다면 다들 날 멸시할 거야. 집 밖에서는 혼잣말로라도 조선어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돼. 어설프고 수준 낮게 연기를 했다간 금세 들켜 버리고 말 거야...’


얀붕이는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지 잘 알고 있었어. 내선일체(内鮮一体), 라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주장하고 화합을 강조하는 표어와 사람들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았으니까. ‘더럽고 미개하며 천박한 외지인’. 그것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조선인의 이미지였어.


그 더럽고 미개하며 천박한 외지인들의 언어인 조선어를 쓰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자신을 멸시하고 욕하며 돌을 던질 거야. 그 생각이 떠오르자 얀붕이는 살짝 몸서리쳤어. 자신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다시금 떠올랐지만 얀붕이는 애써 그 생각을 전부 정리했어.


‘그러니까 연기를 완벽하게 해야만 해. 모두를 속여넘길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하고 흠 없는 연기 말이야.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 아무리 공을 들여서 만든 탑이라도 약간의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난 죄를 짓는 것이 아니야. 모두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좋은 부분만 내보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걸?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갈 뿐이니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


들키지만 않으면 돼. 거짓말을 해도 들키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이 아니야. 얀붕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본래 치부를 감추고 좋은 부분만 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너무나도 보편적이니 얀붕이도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탑승할 뿐이라고 생각했지. 일본에 와서까지 모두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욕을 먹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일 테니까.


게다가 얀붕이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일본어로 읽었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이름 - 야나기 케이나츠 - 이라면 분명 사람들도 조선인이라는 걸 밝히지 않는 한 일본인이라고 여길 것이 확실했으니까. 얀붕이는 입학 신청서 - 시험에 합격한 뒤에 제출하는 것 - 를 썼을 때 이미 일본에 온 뒤였기에 거주지가 조선이라고 나올 일도 없었어. 


얀붕이는 일본에 도착했을 때부터 일본인인 것처럼 살아갈 거라고 다짐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선인인 자신은 모두에게 멸시받아야만 할 테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 부모에게 자라 일본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연기를 하면 미움을 사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갈 때까지 들키지 않고 일본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어.  


‘내가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난 일본인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미움받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얀붕이는 눈을 떴어. 고작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얀붕이는 자신이 오랫동안 시간을 지체한 듯한 불안감이 들어 시계를 확인했어.


“8시 30.. 31분.”


얀붕이가 시계를 꺼냈을 때, 시계는 8시 30분 59초에서 8시 31분으로 표시하는 시간을 바꾸었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뒤 얀붕이는 시계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대문을 열고 집을 나온 뒤 문을 열쇠로 잠근 뒤 문에 걸린 흰색의 문패를 봤지.


-  柳. ‘야나기’ 라고 읽는 그 한자를 보며 얀붕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어. 


「此の家の外で、此の内地で朝鮮人柳景夏って言う人は居ない。只、日本人の柳景夏だけが居るだけだ。」

‘이 집 밖에서, 이 내지에서 조선인 유경하 -柳景夏- 라는 사람은 없어. 그저 일본인 야나기 케이나츠- 柳景夏 - 만이 있을 뿐이야.’


얀붕이는 그 생각을 끝낸 직후 집 앞을 떠나 기품 있고 날카로운 흑색의 제복을 입은 채로 거리를 걸어 갔어. 떠들썩하고 활발한 거리를 걸어 가며 얀붕이는 탁류 같은 그 흐름에 휩쓸리며 섞이지 못하는, 언젠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지. 얀붕이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길 옆에 자라난 높은 벚나무를 보았어.


「儚いくで、寂しい。」

‘덧없고, 쓸쓸해.’


벚나무에는 하늘을 향해 복잡하게 뻗은 셀 수 없이 만은 나뭇가지에 한가득이, 붉고 흰 벚꽃이 만개한 채로 피어 있었어.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지. 마치 꽃들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붙은 채로 아름답게 피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것처럼 수려한 벚나무의 모습을 즐기고 있었지. 하지만 얀붕이는 미소 짓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浅茅原、主なき宿の桜花。心やすくや風に散るらん。。。』

“황량한 들판, 주인 없는 자리의 벚꽃. 마음 편히 바람에 지지 않으랴...”


얀붕이는 일본어로,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와카(和歌)를 조용히 읇조렸어. 헤이안 시대의 승려가 지었다고 하는 그 시는 아름답게 벚꽃이 만발한 오늘의 모습에 너무나도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말할 만한 시였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얀붕이는 오늘의 모습과 이 시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감각을 받았어. 


거리는 황량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활발하게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모두가 이 땅에서 태어나서 자란 주인들과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게다가-


「私の心は少しも楽くでは無い。」

‘내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아.’


자신은 그저 타인들처럼 살아 가고 있을 뿐이라고 합리화를 하는 자신의 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주제에 일본인이 되려고 한다며 주제 넘은 짓을 하고 있는 데다, 조선인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얀붕이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생각은 계속해서 얀붕이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어.


「此処で似合わ無いのは私一人だけだ。」

‘여기서 어울리지 않는 건 나 하나뿐이야.’


헤이안 시대의 승려가 지은 시에는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글로서 담겨 있었지만 얀붕이는 그곳에 섞일 수 없었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가지도, 가지가 살아나도록 물을 올리는 나무와 뿌리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중 어느 것도 될 수 없었지. 얀붕이는 그저,


『風に舞う桜の花のようなものだから。』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의 꽃잎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


그저, 바람에 흩날려 땅으로 떨어지는 벚꽃의 잎과도 같은 사람이었어. 사람들은 벚꽃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감상에 젖을 뿐 아무도 벚꽃이 죽는 것을 슬퍼하지 않으니까. 평생 나무에 붙어 피어난 채로 아름답게 나무와 함께 살아갈 수도 없고, 나무에 붙은 꽃봉오리와 함께 질 수도 없는 채로 바람에게 버려지듯이 흩날려 떨어지는, 너무나도 가엽지만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살 수 없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얀붕이는 딱히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었어. 이제 얀붕이는 일본인인 것처럼 연기를 할 것이라고 결심했으니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일본인이라고 말하며, 조선인인 자신의 치부를 남들처럼 가리며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연기는 연기일 뿐 연기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얀붕이는 알고 있었어. 얀붕이는 그저 이 분위기를 다른 사람들처럼 즐기려 노력하며 그 글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처럼 되고자 할 뿐이었지. 단지 마음 한구석에 남은 그 불편하고도 떠올리기 싫은 사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어. 아무리 기억을, 사실을 감추고 지우려 해도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本の暫の間だけ、他人達と同じ感情を感じる事が、少しでも私が他人達と付き合う事が出来たらー」

‘아주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내가 타인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조금만이라도 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얀붕이는 눈을 조용히 감고 생각했어. 시야가 새까만 어둠 속에 차단되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지. 그리고 그들과 같은 생각을 느끼기 위해, 조금만이라도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지워 나가기 시작했어


『其れ歩度嬉しい事は無いだろう。』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겠지.”


얀붕이는 마침내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어. 깊은 호수처럼 검고 푸른 색이 도는 눈동자에는 아름답게 벚꽃이 흩날리는 세상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 뒤 이제 얀붕이는 길을 걸어가며 벚꽃을 보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저 벚꽃이 덧없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했지만 지우려고 할 수록 생각은 더욱 더 선명하게 떠올라 결국 포기해 버리고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지.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껴 어울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얀붕이는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연기를 하며 이룰 수 없는 소원을 바라는 것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을 바라고 있는 덧없고 쓸쓸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어.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어딘가 덧없고 쓸쓸해 보이는 벚꽃이 만개한 4월 첫날의 거리를, 얀붕이는 남들의 모습을 연기하며 걸어가고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남들과는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로 얀붕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을 머릿속으로 연기할 뿐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