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일주일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환상의 나라.


그 왕국의 공주님과 시간을 보내는 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유치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꿈속에서도 내 의식이 이어지고, 꿈의 내용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점이다.


오히려 꿈보다는 환각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



꿈을 꾼 첫날은 신기했다.


이런 감각은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이튿날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전날와 연결되는 꿈은 꾸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흗날은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흘간 같은 꿈을 꾸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나흗날은 무서웠다.


나흘 동안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흘간 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건 다 찾아본 것 같다.


일단 내 증상과 가장 비슷하며 믿을 만한 건 '자각몽'인 것 같다.


자각몽이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챈 상태에서 꾸는 꿈을 뜻한다나, 뭐라나.


최소한 내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건 전부 오컬트나 종교에 관련된 것이어서 굳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내가 종교인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비과학적인 것에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는 고집이었을까.



그래도 사흘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밤을 지새운 날에는 공주가 화를 내었다.


어디로 갔었냐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자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봤자 전부 내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졌겠지만.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자 공주는 기뻐했다.


그렇게나 자신을 보고 싶었냐고 말하고는 평소보다 많이 붙어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는 심해졌다.



솔직히 그런 공주가 점점 귀여워져서 차라리 영원히 잠만 자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그 꿈은 점점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수면 시간은 터무니없이 늘어났고 깨어있을 때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졌다.


틈만 나면 나도 모르는 새에 졸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빨리 이 증상을 치료해야 했다.



병원에도 가봤지만 약봉지 하나 들고오는 게 끝이었고, 지인한테 물어봐도 가서 잠이나 자라는 잔소리만 들었다.


점점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간신히 현관에 들어오자ㅡ




"안녕?"

"그래, 안녕."


"표정이 어두워."

"너 같으면 웃을 수 있겠어?"


"웃어야 해, 나랑 함께 있잖아!"


"밖에서 고개 숙이고 다니느라 수고했어."


"싫은 소리 듣는거 참느라 힘들었지?"


"그러니까 내가 있어줄게."


"오늘은 뭐하고 싶어?"

"날 깨워줘."


"그건 안 돼."

"전에 뭐든 다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거짓말이야?"


"여기에 있어줄때만 그렇게 해준다는 거였잖아!"



공주가 울먹거렸다.


나보고 웃으라면서 비명이나 지르고, 내 무의식 속에 저런 이기심이 잠들어있다는 사실은 내게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너, 너..."


"내, 내가 널 나쁘게 대했으면 좋겠어?"

"지금도 충분히 나쁜 걸. 사람 한 명을 꿈속에 가둔 것부터 그렇잖아."


"난 그저 너랑 같이..."

"됐어."



시선을 피했다.


주위에는 짙은 풀잎들이 큼직하게 자라있었고, 그 너머에는 이상하게 꺾인 성이 있었다.


나는 지금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공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렇게 둘러보니 이곳이 꿈속인지도 까먹어버릴 것 같았다.


순수한 걸까, 바보 같은 걸까.



"아무튼 그러니까 돌려보내ㅡ"


커흑.


강렬한 충격과 함께 눈이 떠졌다.


벌써 새벽 두 시였다.


현관에 엎어진 채로 잠들어서 가슴팍이 따가웠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외부 자극에 의해 깨어난 건가, 아니면 공주가 날 돌려보내준 것인가.


아무래도 좋았다.



창밖에는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언제나 화창하던 꿈속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역시 이곳이 내게 어울린다.


따듯한 그곳보다는 아무도 없는 시큼한 단칸방이 더 익숙하니까.


그런데도 기분이 이상했다.


꿈에서 덜 깬걸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날부터 꿈을 안 꾸기 시작했다.


잠을 자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변해버린 수면 시간을 조정하느라 약간 애먹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었으니 만족한다.


내 일상은 돌아왔다.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정말로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는 점이 걸리기는 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



그날 방청소를 하게 되었다.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어째선지 하고 싶어졌다.


몇 년 만에 열어본 벽장 속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이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공주가 왕자를 만나고 행복해진다는 평범한 내용이다.


예전에는 꽤 재미있게 읽어서 보관했던 것이 지금에야 세상빛을 다시 본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이 내 한줄평이다.



다음 날, 정신이 몽롱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공기 속에서 헤엄치는 팔다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이었다.


밖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하늘은 유래없이 선명했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어릴 적 내가 꿈꿔왔던 세상이 아닌가.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집에서 책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를 맞았음에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이끌린 듯 책더미에서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공주가 왕자를 찾아내어 영원히 함께하는 내용이었다.


왕자는 공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주의 계략으로 성에 갇힌 왕자는 공주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며 자신을 변호했다.


원래 내용이 이랬던가.


곧장이라도 토할 것 같아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데ㅡ




다시 눈을 뜨니 호숫가가 보였다.


그 너머에는 뒤틀린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고 중력을 거스르는 성이 보였다.



"오랜만이야."

"누구야?"


"기억 안 나?"



아, 그래.


저번에 동화책에서 보았다.


어릴 적 좋아했던 등장인물.



"나랑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넌 그런 기색도 없구나."

"무슨 소리야."


"전에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이 부셨는데 그 빛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니."

"넌 자아가 없잖아. 내 상상 아니야?"


"그러면 네 상상을 보고 있는 기분이 어때?"


"얼마나 고된 일을 겪었길래 상상을 마주하고 있는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거짓말쟁이."



저 넓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현실과 꿈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애초에, 난 지금 깨어있는 걸까?


그것조차도 구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이곳이 현실이라고 믿는 편이 나았다.



"저번엔 화내서 미안해, 이제부턴 나랑 같이 있자. 내가 널 다시 빛나게 만들어줄 수 있어."


"공주야."

"그건 내 이름이 아니잖아."


"내 진짜 이름을 불러줘."



공주의 진짜 이름.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적 있다.


하지만 기억할 수 없었다.


희미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나는 공주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기억 못 하는 구나."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외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작았던 너는 기억하던데.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런 건 외우고 다녔어야지."



공주가 훌쩍였다.



"그럼 앞으로도 공주라고 불러. 내 이름은 마지막에 가르쳐줄게."


"꿈속에선 꿈꿀 수 없으니까, 내가 항상 함께할 수 있어."


"바깥의 일 같은 건 잊어버리고 여기서 나랑 지내자."



여전히 선명한 하늘은 오히려 눈이 부셨다.


꿈 속에 영원히 갇혀살 수 있다면, 그 차가운 단칸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식물들이 나를 비웃었다.






이틀에 짧은 글 하나정도는 쓰려고 하는데

글이 너무 안 써져서 생각나는 건 아무거나 쓰고있다

이러면 좋은 거 하나 정도는 얻어걸리지 않을까


해석은 하얀 글씨로 썼으니 밑줄부터 드래그하면 보여


주인공이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의 공주가 주인공의 마음에 살고 있음

힘든 일 있는 것 같아서 꿈으로 초대하니까 주인공이 싫어함

공주는 반강제로 주인공을 재움

중간에 공주가 주인공을 꿈에서 내보낸 척 했지만 거기도 꿈속임

주인공은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고 공주랑 같이 꿈속에 머물기로 함


공주가 단순한 주인공의 망상인지, 아니면 진짜 존재하는지는 맘대로 생각해줘


근데 이렇게 해도 다크모드로 보면 다 보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