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얀붕이의 친구들에게


"얀붕이는 어떤 아이야?"


라고 물어보면

열이면 아홉은


"자고 있어요. 그래서 잘 몰라요."


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똑똑하고 착해요."


라고 하겠지.




얀붕이에겐 기면증이 있었다.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잠들고

잠들 때와 깰 때는 수면마비가 와서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는 동안의 얀붕이는 굉장히 이성적이었다.



혼자서 밥을 챙겨먹을 때는 '언제 잠들지 모르니까' 가스레인지나 칼을 사용한 요리는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커피포트가 전부였다.

혼자서 공부를 할 때는 '언제 잠들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 남들의 이상으로 노력했다.

혼자서 운동을 할 때는 '언제 잠들어도 괜찮도록'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 방에서 할 수 있는, 사고가 적은 것들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얀붕이는 평소처럼 수업을 듣다가


"얀붕아, 이거 나와서 풀어봐."


라는 말에 나가려다가


탈력발작이 와서 순간 무릎을 꿇고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꿈 속에서

같은 반에 있는 얀순이와 마주쳤다.


"... 어?"


"... 응?"


얀순이에게는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하필 선생님의 수업 때 졸던 얀순이는 잠에 빠져들어가버린 얀붕이의 꿈에 들어가버렸다.


"... 꿈... 인가?"


"어... 어어?"


얀순이는 당황했다.

꿈 속에서 이리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얀붕이도 당황했다.

얀순이는 수업 태도가 엉망이라 맨날 잠만 자는 것만 알았다.

자기 꿈 속에서 얀순이가 나올 이유가 없는데 왜 나온건가 하고 당황할 뿐이었다.



"너... 뭐야?"


"... 너는 뭔데?"


꿈에서도 서로를 만나서 얼떨떨했을 때

그래서 잠에서 깨어, 자기가 침입한 꿈을 기억하는 얀붕이를 추궁하는 얀순이에게 

그리고 잠에서 깨어, 얀순이에게 추궁을 받는 얀붕이도 '아, 얘는 내 꿈에 나왔던 걸 기억하고 있구나' 라는 눈치를 채서


서로는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그래서, 넌 잠든 사람의 꿈에 간섭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얀붕이가 희망을 발견하고, 조금은 다급하게 물었다.


"응,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얀붕이의 기면증은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제대로 따라가는 얀붕이의 모습을 보며

대체 왜 다급해하는건지

수면장애가 없는 자신보다도 더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는 얀붕이가 대체 왜 자기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건지


궁금한 얀순이가 물었다.


"그러면... 나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대신, 나도 너 소원 하나 들어줄게."



소원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꿈 속에서

얀붕이는 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도마 위에 대파를 얹어서 채썰고

라면 위에 계란 하나 까넣고 썬 파를 들이붓고


"아아, 이 맛이구나..."


하고 행복하게 웃었다.



다음 소원도 간단했다.


"이런거... 해 본 적 없어서..."


아무도 없는 빈 롤러코스터에

혼자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나게 즐겼다.



얀붕이는 그저

기면증 때문에 남들은 즐겨도 자신이 즐기지 못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맛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건 못 해줘."


얀순이가 단호하게 잘랐다.


"아아~ 왜애애~"


"내가 할 수 있는건, 내가 경험을 해 본 것 뿐이야."


얀붕이의 소원은 간단했다.

입맞춤


그리고 얀순이는 그런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얀붕이 역시 드라마나 책에서만 봤던 것이었다.



"어차피 꿈 속인데... 하긴, 못 해본 거라면 못 해주겠구나."


꿈에서 깨고 난 후

얀붕이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얀순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해 줄 수 있어."


그리고


얀붕이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약간 긴 시간이 지나고

얀순이는 웃으며 말했다.


"너도 내 소원 들어준댔었지?"



얀순이는 그저 좋았다.


이제까지 자기가 다른 사람들 꿈 속에 들어가면

아무도 자신을 몰라줬다.


공부는 어렵고 친구도 만들기 힘들고 학교 생활도 지루했고

다른 사람 꿈 속에 들어가서 뭘 하더라도 자길 기억해주지 못해 지루했다.



그런데 얀붕이는

발작적인 수면 증세를 어떻게든 이용해보려고

자각몽을 배운 뒤


꿈 속에서 미리 외워둔 수학 공식으로 직접 수학 문제를 만들었다가 풀어보거나

그 날 배운 것을 직접 노트에 적어서 자신이 뭘 기억하는지 복습하거나

아니면 그 날 맛있게 먹었던 것을 한번 더 먹거나


쏠쏠하게 자신의 병조차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얀순이와 친해진 이후에는

얀순이의 공부를 도와주거나

놀이동산 같은 곳을 같이 가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꿈 속을 정말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곧 얀순이는 꿈 속에서의 자유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타인의 꿈에 간섭하는 자기 초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엔 뭘 해 볼까?' 하던 얀순이는

같은 반 다른 여자애가

얀붕이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



"... 방금 걔 뭐야?"


"아, 그 금수저 걔. 외국 여행 갔다온다길래, 고디바 초콜릿 하나 부탁했었거든. 내가 쟤 도와준 것도 몇 번 있으니까 쟤도 오케이 하던데?"


얀붕이는 그냥 '내가 도움을 줬던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얀순이는 '나는 얘 아니면 안 되는데, 얘는 나 아니라도 새로운 경험을 한다.' 라고 느꼈다.


얀붕이와 친해지기 전, 혼자였던 우울한 기억과 함께

열등감이 폭발했다.



얀붕이의 음식에 수면제를 탔다.


더 오래 꿈 속에 있으면, 더 오래 자신과만 보낼 수 있으니까.


얀붕이의 주변에 언제나 있었다.


얀붕이가 수면발작으로 쓰러지거나, 수면마비로 고생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그 자리를 메꿔주기 위해서.



얀붕이는 서서히 이상함을 느꼈다.

잠이 많아져도 너무 많아졌다.


그나마 얀순이 덕분에 수업 진도는 따라잡고 있었다.

그나마 얀순이 덕분에 쓰러져도 몸 걱정은 안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얀순이 덕분에 주변 상황은 바로바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 그런데

원래 얀순이에게 이렇게 의존해야 했었던가?



"있잖아, 나 다른 학교로 전학 갈까봐."


얀붕이의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이 말을 던지고,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봐야 한다.

적어도, 상대가 이성적이라면 어찌되었건 자기가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꾸 너한테 민폐 끼치는 것도 미안하고, 그래서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리려고..."


상대가 이성적이라면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얀순이는

'지금 얘를 놔 버리면 다신 잡을 수 없다' 는 생각에 온 몸이 지배당했다.


"가지 마."


그리고 얀순이는

순간적으로 공간에 밧줄을 만들어

얀붕이를 옭아매었다.


"아... 이거 꿈 속이었지."


얀붕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뱉으며 상황을 살폈다.

이제까지 잠이 는 것이 얀순이 탓이 맞구나

얘는 나에게 집착을 하고 있구나

그 정도는 단숨에 읽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괜찮아? 내가 잠에서 깨면, 널 다신 안 보려고 할 건데."


최대한, 상대가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을 안 이상, 지고 들어가는 협상은 할 수 없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하... 실험해 봤는데, 난 자는 사람이 아니라, 기절한 사람의 꿈 속에도 들어갈 수 있더라고."


"...어?"


"고디바 초콜릿 줬던 걔. 순간 목 졸라서 기절시키고 꿈 속에 들어가봤어. 할 수 있더라. 걔는 꿈 속에서 어떤 꼴을 당했으려나..."


허세가 반, 사실이 반이다.

얀순이는 절대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은 꿈에서 실체화시킬 수 없다.


즉, 얀순이가 당해보지 않은 건, 다른 사람에게 가할 수 없다.


"협박하지 마. 너는 아무리 그래도..."


"뭐, 강간 정도는 할 수 있어. 네가 자는 동안, 내가 네 몸을 가만 뒀을까?"


얀붕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위험을 제대로 인식했다.

상대는 제정신이 아니며, 자신은 기면증이라는 병에 얽매인 이상, 얀순이를 이길 수 없다.


"진정해. 일단..."


"일단? 아니, 너 잠들었을 때, 내가 너에게 뭘 했는지 여기서 차근차근 알려줄게."



얀붕이는 다신 잠에서 깨지 못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입원 후 쭉 누워있어야 했고


그 옆에선 얀순이가 늘 행복한 표정으로 얀붕이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다.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