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자 일주일의 시작이고 초겨울의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자 내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진 작은 동네의 은행을 마지막 한탕으로 털어먹고 도망온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어이 형씨 서로 피 보지 말고 지나가라고"

아직 이 드넓은 땅은 국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고,이런 현실은 재주라곤 사람 죽이는 일밖에 몰르는 나도 꽤 배부르게 먹고 살도록 해주었지만
그건 지금 내 앞의 성질 더러워 보이는 마차 강도들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마차는 많이 털어봤지만..종교 마차가 돈이 되나?"

널부러진 시체들과 몇 구와 밧줄에 묶여 포댓자루를 쓰고 있는 여성이 입은 옷들은 소위 공부 좀 했다고 고상한 척 뻗대는 성직자라는 놈들이 입고 있는 옷이었다.

"신의 사랑이 꽤 짭짤하긴 하지만 보통 교회 예금함에 들어있지 마차에는 잘 없을 텐데"

나도 그 덕을 꽤 봤던 기억이 있기에 물었다.
보통은 으슥한 밤에 찾아가 총을 구경시켜주면 나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자네 말대로야 있는 거라곤 빵 쪼가리밖에 없더군, 이 숲에 처박혀 온종일 잠복하고 총알도 많이 썼는데"

두명의 강도 중 한 명이 포대를 쓴 여자의 가슴을 꽉 움켜쥐고는 '그래도 한나는 건졌지' 라고 덧붙이곤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의 입에서 두려움에 찬 작은 신음이 귀에 흘렀다

그 소리에 예전 기억이 스쳐 지나갔지만 며칠 전 은행에서 금고의 비밀번호를 위해 두개의 머리를 날린 내가 이 일이 잘못됐다며 끼어드는건 우스운 일이다.

"...뭐..재미 좀 보라고"

박차로 말에게 신호를 주자 말은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앞을 지나가자 그녀의 몸이 크게 움찔하며 몸짓만으로 알 수 있을 만큼 크게 동요했다.

"살려주세요!"

"시끄러워!"

마차를 등졌을 때 즈음 도움을 요청하는 단말마 뒤에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얼굴을 맞은 충격으로 벗겨진 포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발.."

가려진 얼굴이 들어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연한 금발의 긴 머리와 새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에 갸름한 턱 전형적인 미녀였지만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이 거리에서도 보였다.

여린 눈매 안 라일락 꽃의 색이 녹아있는 짙은 보랏빛의 눈동자가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아서'

"...이런"

너무나도 닮았다.
다른 부분이 있어도 희귀한색의 그 눈동자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마치 내 과거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았고,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 그 말마저도 그녀가 한 것만 같았다.

"..후.."

한숨을 푹 쉬고 말에서 내렸다.
안장에 걸린 장총은 꺼내려다 그만두고 허리춤에 달아둔 두개의 권총을 거머쥐었다.

"미안한데 친구들, 생각이 바뀌어서 말이야...다 남기고 얼른 꺼져 특별히 살려줄 테니"

등 뒤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험한 말에 강도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명은 칼 한 명은 기다란 장총 아마 어디선가 군인들이 쓰던 걸 훔치거나 주워온 듯 했다.
부싯돌도 물려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근본 없는 도적들답게 장전을 해두지도 않은 듯 했다.

"정신 나갔군"

"생명의 은인에게 그런 말 하면 쓰나"

장전이 돼 있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한쪽 총을 먼저 겨누었다.

"....."

"......"

서로의 숨소리가 들린 만큼의 정적이 잠시 흘렀다.
그녀의 상태가 궁금했지만 그 눈동자를 보면 집중이 깨질까 억지로 시선을 앞으로 처박았다.

"시발!"

총을 들고 있던 강도가 먼저 침묵을 깨더니 분한듯 나를 노려보며 항복의 표시로 손을 들자 옆의 동료도 한숨을 쉬곤 손을 들었다.

"이대로 뒤돌아 갈 테니 쏘지 말라고"

"잠깐"

"왜?"

"총은 두고가"

그대로 뒤를 돌아 가려 하기에 멈춰 세운 뒤 말하자 뭐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대충 욕인 것 같은 말을 쏟아내고 총을 바닥에 던지곤 숲 너머로 걸어갔다.

총을 홀스터에 매어두고 두고 간 총을 자세히 보자 역시 군대에서 쓰는 장비 특유의 각인이 세겨져있었다.
약탈이든 암시장 구매든 적어도 저 둘만으로 구하기는 힘든 물건이지만 이제는 내것이기에 총은 말에 실어두고 작은 칼을 꺼내 여성에게 다가갔다.

"신이시여..감사합니다.."

"아직 감사하긴 이른 것 같은데"

칼을 들고 그녀의 눈앞에서 살짝 흔들어 보이자 붉어진 그 눈이 크게 떠졌다.
먼저 시선을 마주친 주제에 막상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자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안심하는지 모르겠군..."

"보면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확신하는 그녀를 보자니 내 말문이 막혔다.
첫 번째 이유는 너무 순진해서, 두 번째 이유는 이런 말을 과거에도 들은 적이 있어서

"아가씨..그렇게 순진하게 살면"

"셀이라 부르시면 돼요"

"젠장! 물어본 적 없어!"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물어보지도 않은 이름을 밝히는 그녀를 보니 품고 다니는 독기가 풀리는 것 같아 불쾌했다.

"..돌아갈땐 조심해 나 같은 놈들이 널렸으니깐"

그녀의 밧줄을 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와 같이 있는 게 두려워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저기..."

돌아가려 하자 왼발에 강한 저항감이 느껴져 돌아보자 그녀는 나의 바지 밑단을 꽉 붙잡고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다리도 다치고 마차도 없어졌어요...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미안한데 아가씨..방금 내가"

"셀이에요, 그리고 괜찮아요"

또 다시 내 말을 끊어버리고 그녀는 싱긋 웃었다. 웃고 있는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혀있었다.

"잠시지만 보면 알 수 있어요..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깐'

해맑게 웃는 그녀가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보고 풀려가는 내 표정과 마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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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찍 쓰고 괜찮은 것 같아서 잡아봄 대충 17세기 정도의 가상의 나라 배경


아 제목 뭘로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