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할 수 없어요."
"M4A1,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두개 쯤 정신병이나 고민을 안고 살아가. 그리고 그걸 제때 치료해주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는거지."
"그렇지만 저는... 인간이 아닌걸요."

민간군사업체 소속의 인형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지휘관은, 상당히'인간적'인 사람이였다.

감정적이지만 절제할 수 있으며, 이성적이지만 부드러웠고, 때로는 인형인 자신에게 성격 테스트를 보게 하거나, 그림치료같은 것을 시키고는 했다.

물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영역의 능력이였으니.

"잘 하네. 잘 그렸어."

"같이 영화라도 볼까? 공감과 이해는 작전 수행에 매우 중요하단다. 독서든 영화 시청이든, 최대한 많은 것을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지. 물론 공감과 이해에 치우쳐서 이성적 사고를 내버릴 필요는 없단다. 그것은 어리석어지는 지름길이니까."

"오랜만에 외식이나 하자. 좋은 레스토랑 알아뒀어. 저번에 사준 드레스 입고 오렴."

오류가 일어난 것 같았다.
어느새 마인드맵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인형이 있었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려 하는 인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충동이였다.

이것이 '감정'이며, '인간다운 것'이라는 걸 깨달을 때 까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웃으니까 이쁘다. 좀 웃어. 이쁜 얼굴 왜 무표정으로만 두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지휘관은 알까.
자신의 소대 밑에 있으며, 맨 처음부터 함께했던 인형이 불량품이라는 것을.

단 둘이서만 있던 소대가 아니라, 점점 다른 인형들로 북적여 가는 것이 '싫다'고 느낀다는 것에,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지, 어딘가 결함이 있는것은 아닌지, 점검을 해보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문제 없다는 것 뿐이였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다. 여전히 그의 비서관은 나였고, 가장 가까이 지내는 것도 나였다.

"안녕하십니까, 지휘관님. 잘 주무셨나요?"
"응. 보고할 거 있어?"

자고 일어난 첫 모습을 보며 커피나 차를 만드는 것도 나였고, 하루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불을 끄고 그의 방에서 나오는 것도 나였고, 모든 식사를 함께하는 것도 나였다.

가끔 다른 인형이 동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항상 나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이, 즐거웠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홀로, 그를 독점하고 싶다는, 질척이고 더러운, 검은색의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 같았다.

이것이 행복이고, 사랑이고, 집착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괜찮았다.
나는 항상 그와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너가 하고싶은 일을 해."

"지휘관님, 일어나셨나...요?"
"아, M4구나. 오늘은 HK416이 먼저 찾아와서, 그것좀 보느라 좀 빨리 일어났어. 잠깐 차나 마시러 갈까?"
"...네."

괜찮아.
그를 처음 보는 것은 놓쳤지만, 단 둘이서 티타임을 가졌잖아.

"아, 오늘은 외식좀 하고 올게. 저번에 AK-12, AN-94, RPK-16, AK-15랑 AKS-74U가 임무 성공한거 치하하는거야."
"대신 이따 자기전에 술한잔 하자고."

괜찮아.

"아...그...지휘관께서... 술이 약하신 모양이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지휘관은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쉬러 가시면 됩니다."
"그...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저 혼자 하겠습니다."

괜찮아

"서약.. 말씀이십니까?"
"그래. 사실 별 생각은 없었지만... 상부에서 하나가 내려왔거든. 기왕 받은거니 써먹어야겠지."

나겠지.
나일거야.
나여야만해.

"서약은 HK416이랑 하려고. 유탄을 잘 쏘는 아이가 필요해서 그래."

왜?

왜 내가 아닌거야?

왜?

아.
그래.

너가,
지휘관을,
속였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지.
나는 지휘관하고 맨 처음부터 함께했었는데, 그런 지휘관이 나를 배신할 리가 없잖아.

붙어있지 마. 그의 곁에 있을 것은 나 뿐이야.
그를 깨우는 것도, 보좌하는 것도, 티타임, 식사,  위로와 슬픔과 행복과 고통을 고융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나 뿐이야. 너같은 것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그의 삶도 죽음도, 모두.. 모두, 그의 모든것은, 모두 다.

"비서관을 바꾸려고 해. 너도 처음부터 계속 비서일 하느라 힘들었지? 며칠 쉬면서 회복기를 가져야 할 때가 온것 같아. 휴가라도 가는..."
"아뇨. 괜찮습니다."

"M4...? 밤에 무슨...일이야...?"
"지휘관, 부부가 되었으니, 첫날밤을 보내야겠죠..?"
"그건 또 무슨... 서약 반지는 분명..."
"아, 그건 처리했습니다. 곱게 안내주려 하길래... 그냥, 갈아버렸어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자마자 느껴지는 충족감과 행복함, 그와의 인연이 강화되는 것 같은, '감정'.

분명 이것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다.

"절대로 안 놔줄거야. 절대로, 절대로, 항상, 언제나, 당신은 내 것이야. 당신의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모두 나의 것이야. 육체와 정신과 영혼까지 모두, 나의, 나만의 것이야. 그 누구한테도 넘기지도, 보이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