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사쿠라 항공모함 다이호




"...님...주인님"


지독한 꿈을 꿨다

지금 가장 꾸고 싶지 않은 꿈

그러나가 지금 가장 많이 꾸어야 할 꿈

그녀에게 상처를 내 준 과거... 나의 방자함...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주...주인님!"


방구석에서 무릎을 움켜쥐고 울고 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나는...


"주인님!!"


"으앗!!"


갑자기 큰 소리로 황급힣 몸을 일으켰다

낯익은 실내에선 낯선 시리우스가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리우스?"


"좋은 아침입니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주인님의 영원한 비서함, 시리우스 입니다"


경례와 함께 대답하는 시리우스

요 근래의 화제란 비서함 뿐이여서 마음이 우울해졌다


"희한하게도 시리우스가 더 빨리 지휘관실에 왔어요

무슨 일 생겼나 하고 왔더니... 늦잠을 주무시고 계셨군요"


"정말이야!?"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늘 일어나는 시간보다, 수십 분 뒤에 일어난 것을 깨달았다

지휘관이라는 입장상 따로 지각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늦게 일하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다. 예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 알려졋다간, 이번에 만나는 그녀에게 이리저래 주의를 받을 것이다


"가위를 눌리시던데, 악몽이라도 꾸신 걸까요?"


"응? 으..응"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시리우스의 꿈이여서 그런지, 창피한 나머지 뭐라 말을 못하겠다


"저의 이름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면서, 도움을 청하셨죠"


"잠꼬대? 드...듣고 있엇던 거야?"


"네, 그만큼 오래 일어나지 않으신 걸요"


조금 민망하네

약간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 지, 그녀는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 시리우스, 항상 주인님 곁에 있을테니까요

비록 아무리 상처를 주신다 하더라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시리우스는 절대로... 비록, 당신이 손을 놓는다고 해도...

시리우스의 이 손만은 결코 당신과의 얽힌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주인님과 만났을 때부터, 죽을때까지 영원히 곁에 있겠다고 다짐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하며 시리우스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나에게 건네 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주인님의 선택은, 곧 시리우스의 선택

상처받지 마시고, 저의 탓을 하시기 바랍니다"


"...고마워"


그녀의 기분이 기쁘게 느껴지는 것은 옛날이 생각나서 일까

아니면 어제 건 직후라서 일까

어쨌든 그녀에게 응석부리고 있을 순 없다

나도 내 스스로를 가꾸며 일어서야지


"저는 며칠만 있으면, 비서함에서 내리는 몸

이 열쇠는 일시적으로 벨파스트 씨에게 맡겨 주세요"


"아 그러고보니, 맡겨야 했던 것도 까먹었군"


오늘처럼 늦잠을 잔 것도 그렇지만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시리우스에게 내 방의 열쇠를 건네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시적으로 비서함에서 내려가니

당연히 열쇠의 주인도 변하는 것이였다


열쇠를 책상에 놓으며, 발 밑을 바라보니

갈아입을 옷이 놓여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깨우면서 준비해 준 걸까?

이런 눈치가 있다는 점이 그녀의 장점이였다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는 것이였다


"그럼 시리우스는 먼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방에서 나와 경례를 했다


그리고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금 아쉬웠던 주인님"


...라는 농담조의 말투와 함께, 방에서 나갔다


아쉬운 주인님이라니...

그녀가 나를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도록

오늘도 힘내야 겠다




"지휘관님~ 당신의 다이호가 왔어요~"


달콤하고 어딘가 어리게 느껴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맵시있는 붉은 기모노를 잘 차려입은 다이호 였다


"다이호? 무슨 일이야?"


오늘도 정해진 예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했다


"제가 지휘관님을 모시는 것이 정해졌어요"


기쁜 듯, 두 손가락을 휘감으며, 두 팔로 가슴을 압박하는 그녀였다

너무 완만하고 개방적이였던 것이, 갑자기 비좁아져서 인지

그 부위는 금방이라도 기모노에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 장면을 피해, 책상의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복장 같은 것은 개인의 자유다

내가 참견할 권리는 없다

내 취미가 어느쪽이라고 하면, 말끝을 흐리겠지만...


어쨌든 오늘도 가장 중요한 서류와 그렇지 않은 서류로

나누는 것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그래, 이제 막 시작했다

시리우스가 깨워준 지 수십 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상했다


"사쿠라에 가는 것은 오후부터일텐데?"


오늘은 사쿠라의 리더인 나가토와 의논을 할 예정

훈련의 일정과 사쿠라에 트러블을 없는 가를 확인하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미팅과도 같은 것이였다


사쿠라와 철혈의 리더는 진영과 한 몸이란 생각으로 행동을 하는 곳이였다

그러니까, 고집이 세긴 하지만 잘 대해주는 엘리자베스처럼

만나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 있는 그런 함선이 아닌


그들의 존재가 곧 진영의 존재니

만날 수 있을 때마다 정기적으로 미팅 날짜를 정해 만나기로 하고 있었다


나를 함대의 대장으로서 정중한 대우를 해주고 있어

일부러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마중까지 준비해 주는 극진한 환영을 해주는 그녀들에 응해

내가 이곳의 수장으로서 재차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계기였다


그것이 오늘

사쿠라의 리더, 나가토를 만나러 갈 예정이였다

그런데...


빨랐다

너무 빨랐다

마중을 온다고 해도 너무 빠른 것이였다

더구나, 시곘바늘은 아직 이곳에 온지, 반 바퀴도 채 안돌았는데 말이다


"다이호는 사랑하는 지휘관님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어요"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었고

그러기는 커녕 방에 들어가, 문을 세게 닫는 다이호였다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다는 의사표시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하지만..."


"게다가 지휘관님, 비서함이 오늘 없다고 해서

저, 다이호가 지휘관님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에요"


"어떻게 아는 거야!?"


나도 모르게 놀란 나머지, 손을 멈추고 말았다


오늘부터 시리우스는 벨파스트에게 비서함 업무를 가르친다...는 거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벨파스트에게 비서함 업무를 가르침받는 훈련이였다

슬픈 이야기지만, 벨파스트가 시리우스에게 비서함 업무를

가르치는 일 따위는 전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에게는 방금 이 자리에서 설명과 부탁을 했다

그야말로 다이호가 찾아오기 몇 분 전의 일이였다


그래, 이걸 아는 건 날 포함한 3명 뿐이다

엘리자베스 역시, 벨파스트가 인수인계 받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지휘관실에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런데 왜 눈 앞의 그녀는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후훗, 다이호는 전부 알고 있는 걸요~

왜냐면 다이호의 눈에 비치는 건, 지휘관님 뿐이니까요~"


어째선지 부끄러운 듯이 대답하는 그녀

이 대답의 어딘가에 부끄러운 것이 있을까


"지휘관의 이런저런 부끄러운 일까지,

다이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답니다~ 짠~"


"...그, 그렇군"


어디부터 따져야 할까

나를 감시하거나 도청했다는 건가

묻고 싶은 것은 굴뚝 같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파고 들고 싶지 않았던 것은

분명 어딘가에 깊은 어둠이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였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듯이 가벼운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지금은 사쿠라에는 못 가

아직 일이 남아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다이호, 저런 무능한 아이들과는 다른

지휘관님의 소중한 함선인 다이호가 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탁상에 쌓인 서류를 집어 들춰보았다


아이들이란 표현은, 벨파스트 또한 들어가 있다는 거겠지

다이호의 아까 발언을 보면, 벨파스트가 일시적으로 비서함이 된걸

알고 있을 테니, 뭐 숨길 것은 아니다. 차라리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벨파스트를 무능하다고 하다니... 굉장한 아이야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사쿠라와 로얄은 진영이 달랐다

그렇다고 양측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였다

양 진영간 함선들의 사이는 보통이였고

진영이 다르다고, 서로를 노려볼 일 따윈 없었다

어짜피 같은 함대의 동료니까 말이엿다


화기애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어느 진영이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훗, 다이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가득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녀는 서류 더미들을 조금 가져가서, 소파 앞 테이블로 가져갔다

시험삼아 다이호가 가져간 서류를 보았다

음... 저건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군

책임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나에게 밀려 들어온 일...


"지휘관님의 확인이 필요한 일은 다이호가 물어볼테니까

지휘관님은 중요한 서류만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선별을 계속하며, 말하는 다이호


...그렇군, 비서함이 이런 식으로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인가

감탄을 감추지 못한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말을 해버렸다


대범한 어조로 말하는 다이호라지만

의외로 뒷바라지가 잘 되고, 손재주도 좋았다

부탁만 하면 분명 기대한 일을 잘 처리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자, 시리우스에 비해 조금 어둡고 붉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입꼬리는 왜 그런지는 몰라도 싱글벙글해 보였다


"아, 사랑스러워라"


"뭐!?"


너무나 당돌한 말과 함께, 다이호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기세를 꺾지 못한 채, 내 의자를 잡고 바닥에 기기 시작했다

딱딱한 바닥이고 뭐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채

굉장한 기세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언제나 봐도 사랑스러워요

책상의 앉은 그 모습... 정말로 귀엽고 멋져요

다이호는 지휘관님이 먹을거라면, 당장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에요~

정말로 계속 다이호의 옆에 있다면

지휘관님을 아무 불편없이 모셔드릴 수 있을텐데

왜 그 로열 메이드를 비서함에 쓰는지, 다이호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함선들보다, 이 다이호가 지휘관님을 더 사랑하는데~

다이호야말로 지휘관님의 최고, 최애 파트너야"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할 일을 확실하게 하는 함선

그것이 바로 재주많은 함선 다이호였다

단지, 지금 그 함선이 나의 양 다리위에 다리를 올리고

손으로 내 손목을 가볍게 잡으며, 내 움직임을 봉하고

온몸으를 내 위에 받치면서 속삭이고 있으니 왠지 부담스러워 지는 것이였다


내 가슴 위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느낌도

나의 의식을 빼앗는 데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이호는 의외로 키가 컸다

나란히 서면, 내 머리 끝이, 그녀의 어깨 정도 였다

그리고 남녀차이를 고려해서, 내가 힘이 더 셀거라고 생각했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해도, 그녀에겐 아무 영향이 없었다

...무력한 자신이 싫어졌다


"애쓰는 모습이 귀여워요. 와~"


다이호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애완동물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만둬, 진짜 울고 싶어지니까 말야


"지휘관님, 왜 이 다이호가 아니라

다른 함선을 비서함으로 둔 건가요?

시리우스는 지휘관님의 첫 함선이라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포기했는데~

왜 다음은 이 다이호를 뽑지 않으신 거죠?

왜 다이호를 뽑지 않은 거에요?"


큰일 났다.

이 상황도 그렇지만, 그녀의 동안인 얼굴이 점점 험상궃고

달콤하고 앳된 목소리도 낮은 목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붙잡힌 손에 들어오는 힘이 크게 커지는 것 또한

내 살과 뼈가 위급상황임을 크게 알리고 있었다


다이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게 집작했던 구석이 있었다


"이 후끈거림... 그리고 이 설레임...

드디어 만났어요 지휘관님!

이 다이호, 미숙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기쁜 듯이 웃으면서 껴안으려다가 제지당하던

그녀가 이 함대에 오자마자, 내뱉은 말이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안겨 버렸고

곧바로 시리우스가 놓아줬던 것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우스가 없네...


...아니, 없어도 어떻게든 해야 해

더 이상 시리우스에게 걱정을 늘리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녀답게,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나 또한 자랑스러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뭐든 해내고 싶어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좋은 냄새가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에서 났다


"다이호"


"지휘관님 옆에는 다이호면 충분해요

다이호만의 특별한 자리

다른 누군가가 앉는 것도, 만지는 것도 허용하지 않아요

다 부숴버리고 싶어요

다이호의 상냥한 지휘관님이 조금 허락한다고 우쭐한 나머지

다이호의 자리를 배회하는 해충들...

왜 지휘관님은 이들을 말리지 않으시는 거죠?

지휘관님이 이대로 다이호에게 심술을 부리신다면...

전부 다 부숴버릴 거에요~

다이호와 지휘관님 사이에 잇는 것 전부

다이호가 망가뜨릴 거에요~"


"다이호!"


"지휘관님의 순결도, 몸도, 그 피 한 방울 조차 다이호의 것인데...

다이호와 지휘관님의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 방해되지 않나요?

방해되죠?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휘관님, 다이호께 방해되는 해충 구제를 빨리 명하여 주십시오"


"...다이호!!"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녀를 어떻게 이 세계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녀는 잠시 입을 멈춘 채, 어두운 눈동자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다이호의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시리우스도, 벨파스트도, 다른 함선들도 열심히 하고 있어

모두 동료니까, 부순다던가 구제라던가.... 그만두자, 난 그런거 싫어"


"지휘관님이 다이호를 싫어하신다?

거짓말이죠...?"


"다이호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야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싫을 뿐이야, 다이호는 좋아해"


"...다이호를 좋아하신다구요?"


"좋아해"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식은 땀이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 불쾌감이 사라지자, 나도 안도감에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시리우스가 없으면 안돼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한껏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마음속은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군요

지휘관님은 무척이나 다이호를 좋아해서, 저도 모르게 심술을 부렸던 거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이호는 지휘관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있으니 말이까요~

후후후후후후, 지휘관님도 나이에 맞지 않게 심술을 부리다니"


만연의 미소를 보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납득 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입가를 숨기기 위해, 손을 옮기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 손이 개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둔해지는 통증이 아직 있었기 때문에, 떼인 감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자유로워진 감각 또한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손을 내 목에 포개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두었다간, 다이호는 지친 나머지

다른 얘들에게 화풀이를 하러 갈 테니까요, 지휘관님"


그 말을 다 전하고, 흡족해진 모양인지

흐뭇하게 웃으며, 책상 옆에 서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그녀의 경우는 나나 시리우스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일까


........


아니, 오랜만에 만나서 그 동안 서운했던 울분이 폭발했던 걸꺼야

그래,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면 좀 더 침착해 질 것을...


그렇게 얼버무리는 생각을 늘어놓더니

얼마 전, 화제에 올랐던 다른 함선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들 역시 다이호와 비슷한 존재들이였다


......힘내자


다들 열심히 하는 걸

모두와 더 관계를 맺어간다면, 분명 이런 식으로 감정을 폭발시키진 않을거야

폭발하기 전에... 억제시키기만 하면 돼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의자를 고쳐 앉는 나였다


"자, 지휘관님~ 다이호와 함께 일 마무리 하시죠~"


더 이상 뭐라고 말할 기력조차 없던 나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서류 선별을 재개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다이호와 사쿠라의 기숙사에 찾아갔다

그곳엔 나무를 중심으로 한 큰 건물이 있었고

화(和, 와)를 강조한 글자가 크게 써져 있었다


예정보다 기숙사에 일찍 올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그만큼 다이호가 열심히 해준 결과였다

역시 비서함의 존재는 크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자, 만연에 웃음을 띠며 답례한 것은

그녀가 가진 본래의 상냥한 면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엔 조금 과격하다고는 해도

잘 대해주면, 확실히 잘 해주는 그런 좋은 아이

오늘도 내 말을 잘 듣고, 잘 도와줬을 정도야

속마음은 착하구나









거기까지는 좋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눈 앞에는


검은 장발과 하얀 단발

검은색 속옷과 흰색 속옷

검은 꼬리와 흰 꼬리

검은 짐승 귀와 흰 짐승 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귀와 꼬리를 가늘게 흔드는 두 함선과

그 옆에서 내 팔에 두 손을 얹으며 도발 같은 말을 하는 다이호

그렇게 하늘에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오늘만 몇 번째가 될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