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제 글을 보러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전편 : https://arca.live/b/yandere/9852516




용사(파논) 성녀(엘리사) 궁수(아르카) 암살자(아이샤) 마법사(이얀붕)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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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서 준 정보대로면 이 던전도 무난무난하게 공략 가능했을 것이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오우거들은 예상외로 난적이였다.




파논쪽을 보니 오우거 3마리한테 둘러 쌓여있었다.

너무 혼자 들어간 듯 보였다.

파논은 미쳐 돌아온 두 놈을 보지 못했는지 앞에 있는 놈의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파논이 당하면 엘리사가 바로 노려진다.

물론 엘리사가 바로 파논을 치료하겠지만, 그 잠깐 사이에 방어에 공백이 생긴다.




나는 황급히 오른쪽 놈의 눈을 조준했다.

아르카는 나를 살짝 보고는 바로 왼쪽에 있는 오우거를 노렸다.

오른쪽 놈은 살기를 느끼고 팔을 올려 가드해서 총알을 막았다.

이 놈들은 자기를 노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능이 높으면 이래서 문제다.

지능이라도 낮으면 자기를 노리는 느낌이 있어도 무시할텐데, 이놈들은 방어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까진 예상했다.




-슉-




-탕탕탕-




자신쪽으로 날아온 총알소리를 듣고 파논은 자신이 둘러 쌓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왼쪽에 있던 오우거는 아르카의 화살에 머리가 뚫려 쓰러졌고,

오른쪽 놈은 내가 쏜 총알을 막느라 파논을 공격할 수 없었다.

파논은 그 찰나의 기회를 틈타 앞의 놈을 밀치고 크게 도약해서 오른쪽 놈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나서 앞의 놈도 마저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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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던전 토벌은 전의 토벌들보다 훨씬 늦게 끝났다.

작전을 변경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려버렸다.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적당한 장소를 골라 야영을 하기로 했다.




텐트나 야영 장비 설치 같은 것들은 모두 내가 거들어서 했다.

저쪽 세계에 있을 때 자주 캠핑을 다녔고, 텐트라면 어디서 죽어라 쳐본 기억이 있었다.

고생하는 일행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우리는 모닥불을 중앙에 두고 둘러 앉았다.

사실 둘러 앉은 것 같지도 않았다.

엘리사와 아르카는 파논 옆에 양사이드로 앉았고,

아이샤는 내 옆에 기대어 앉았다.




"하 오늘은 조금 빡셌다. 그지?"




"그러게말야. 오우거는 멍청하다던데 누가 그런거야 도대체. 어느 놈인지는 몰라도 그 놈을 묶어다가 저기다가 던져 놨어야해."




아르카가 꼬치를 다 먹고 남은 꼬챙이로 이를 쑤시다가 바닥에 거칠게 꽂으면서 말했다.




"아르카. 그 묶어 던지면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거아냐? 잔인하네... 하긴 너답네 너다워~"




"오~ 얀붕이. 돌아왔구나~ 요즘 거의 농담을 안하더니... 그나저나 오늘 돌아온김에 너가 뒤지고 싶은가보구나."




"아르카... 얀붕이한테 손대면 아무리 너라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아이샤는 죽은 눈으로 아르카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르카도 지지 않는다는 듯 내려 보듯이 아이샤를 쳐다봤다.

아르카와 아이샤간에 불꽃 튀는 눈싸움이 벌어졌다.




든든하다 아이샤 파이팅!




"아르카가 화가 많이 났나보네요. 후훗."




"그럼! 파논이 위험해질 뻔했는데 화가 안나?"




"물론~ 파논이 죽더라도 제가 다시 살려내면 되니까요~"




"그 말 왠지 진심인거 같아서 더 무서워."




"어머. 저는 진심이라구요? 정신이 멀쩡할진 모르겠지만요. 아아... 그러면 파논이 더 말을 잘 들을테니 그 편이 더 좋을려나~ 후흣."




"그만해 엘리사 잘못했어..."




파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얀붕이 형도 오늘 고생했어. 그 때는 정말로 고마웠어."




"무슨... 나야말로 맨날 버스타는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뭐."




"...버스?"




"아아...그 뭐냐 맨날 혼자 업혀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에이 설마요. 여기있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안할껄요."




"맞아. 저 너셕 크게 도움은 안되도 같이 다니면 재미는 있으니까."




"아르카... 그거 칭찬이지?"




아르카는 멋적게 나한테 엄지를 들어줬다.

아까까지 나를 죽인다니 뭐한다니 하던 녀석이 맞나 의심스럽다.

나도 이마를 부여잡고 썩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어줬다.




"얀붕아! 나도 오늘 열심히 했어! 칭찬해줘."




"그래그래. 오늘 열심히 했어~ 우리 콤비 꽤나 선전했지. 물론 아이샤가 거의 다 처리했지만."




나는 아이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줬다.

아이샤는 머리쓰다듬는걸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여유가 되면 자주 쓰다듬어주는 편이다.




"헤헤... 아니야 얀붕이가 잘 서포트해줘서 그런거야."




아이샤는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혹시 내가 갑자기 죽으면 그건 아마 심장마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이것도 기회인데 우리 얀붕이 형의 이야기나 들어볼까?"




"그러게요. 던전 공략만 하느라 한동안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네요."




"뭐 배도 부르고 이야깃거리가 필요하긴 하지."




그들은 내가 원래있던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있었던 원래 세계의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먹고 사는 이야기, 패션 이야기, 학교 이야기, 문화에 관련된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를 주로 해주었다.




"신기하네 신기해. 만약 그쪽 세계에 갈 수 만 있다면 한 번 가보고 싶은걸. 그 뭐냐 놀이동산? 같은 곳에도 가보고 싶고."




"저는 카페가 마음에 드네요~ 가만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건 정말 멋져요."




"나는 비행기를 타보고 싶어. 하늘을 난다니 꿈만 같은데?"




"나는 얀붕이네 집... 뭘 할 진 비밀... 히힛"


"혹시 모르니 나중에 집이 어딘지 알려줘. 알겠지?"




한 명의 대답이 이상하긴 했지만 다들 관심있게 들어줘서 좋았다.




"그나저나 그런 주위 이야기말고 나는 여기 오기 전 얀붕이의 여자 관계가 더 궁금한데?"




아르카가 은근슬쩍 아이샤를 쳐다보며 도발하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샤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얀붕이의 과거가 궁금해. 얀붕이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싶거든."




오히려 아이샤가 더 적극적이였다.




"그래 뭐 까짓거 다 말해줄게. 그런데 대단한 이야기는 없어."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나의 과거 여자 관계들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여자애한테 처음으로 고백하려다가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일이랑

고등학교 때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가 알고보니 내 절친을 좋아해서 내가 잘 이어줬던 일도 이야기 해주었다.




파논의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큭....형 너무 안타까운데. 큭큭...."




이 새끼 봐라?

지금 그게 너가 나한테 할말이냐.

아니지 잠깐만... 여긴 합법 하렘이잖아...




의문의 1패를 해버렸다.




"그리고 대학교 때... 아..."




분위기에 휩쓸려 쓸데없이 말하다가 기억해버렸다.

조금 기분이 씁슬해졌다.

마치 알약을 삼키려다가 혀 뿌리에 걸려서 쓴 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였다.

꽤 더러운 기분.




"대학교... 때...?"




내가 말을 흐리자 아이샤가 불안한 듯이 되물었다.




"대학교 때 나는 처음으로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났어."


"나한테 꽤 잘해줘서 나를 진짜 좋아해주는 줄 알았지."


"하지만 그게 아니였더라..."




나는 잠깐 말을 멈추고 크게 숨을 쉬었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엠티에서 서로 처음 만났어."


"처음에는 그냥 친구 사이였는데, 점점 갈수록 그 마음에서 조금씩 커지더라."


"우린 거의 연인같았어. 나는 알바하면서 조금씩 번 돈으로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해줬지."


"선물을 주는게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어느 날, 그녀가 나한테 키스를 해줬어. 고맙다면서 말이야. 순식간이였지만 그래도 그 때 나는 나쁘지 않았나봐."


"조금 행복했을까... 행복했겠지."


"그렇게 좋은 기억만 잔뜩 가지면 사귀게 될 줄 알았어."


"그때 그 날 그 말만 듣지 않았어도..."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해보려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날은 종강파티 날이였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잠깐 쉬러 밖에 나왔었어."


"그리고 그녀와 같은과 선배가 같이 있는 걸 봤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 같길래 호기심에 몰래 가까이 다가가서 들었어."


"차라리 그 때 들어서 다행인 것 같아."


"그 둘은 이미 사귀고 있었고, 간단히 말해 나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어."


"어쩐지 영화표 두장이나 연극 티켓 두장 등을 사달라 하는 일들이 많더라."


"친구랑 간다더니. 친구는 맞았네 남자친구."


"그 다음 날 나는 그녀와 연락을 끊기로 했어."


"사귀는 사이도 아니였는데 멋대로 착각하고 멋대로 좋아하고 멋대로 연락도 끊었지."


"그리고 군대라는 곳으로 도망갔어."


"아무한테도 말 못했어. 말해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게 뻔할텐데."


"그 뒤로부터는 이용당하는거에 진절머리가 났지. 뭐 그 뿐이야."


"그래서 처음에 아이샤가 나한테 호감을 표할 때 사실 조금 의심했어. 어떻게 단시간만에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하면서 말이야."


"뭐 지금은 다 잘 됐지만."




잠깐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건 아이샤였다.




"그럼. 얀붕이의 첫키스는 내가 아닌거야?"




"미안... 그래도 너는 내 첫 여자친구인걸?"




"배신자... 나는 내 모든 처음을 너에게 줬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누가 내 머릿속에다가 물음표핑을 계속 찍어대는 느낌이였다.

나는 최대한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잘 타파하고,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에 또 고민했다.




"아이샤. 내 첫키스가 너가 아닌건 미안해.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


"너에게 있어서는 처음이 중요해 마지막이 중요해?"




"당연히 나에게 있어선 얀붕이의 모든 처음이 중요해. 당연히 내 것이여야 했을텐데..."


"얀붕이의 첫키스를 그런 쓰레기같은 년이 빼앗아 가다니... 용서못해..."




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대충 알겠다.

그래도 그녀가 너무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샤. 그 때 일은 나도 이제 별로 개의치 않아. 지금 내 곁에 있는건 너인걸."


"솔직히 말해 나는 너가 내 마지막 사람이였으면 좋겠어."


"내가 너의 첫 키스가 아니였어도, 내가 너의 첫 상대가 아니였어도, 내가 너의 첫 사랑이 아니였어도, 나는 너를 좋아했을거야."


"저 모든 사실을 알고 돌아간다해도 나는 너에게 똑같이 대했을거야."


"그런데 아이샤는 아닌가보네... 내가 싫어진걸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아니야! 얀붕이가 싫어진게 아니야! 그저 그 년한테 뺏긴게 아쉬울 뿐이였어."


"미안해.미안해. 나는 그저 얀붕이의 모든게 가지고 싶었을 뿐이야. 미안해. 싫어하지 말아줘."




"다 가져가도 되는데, 그런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쓰진 말라는거지."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인걸. 어쩌면 다행인 것 같아."


"그녀가 그렇게 나를 이용해서 둘이 서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아이샤, 너한테 내 온전한 마음을 다 줄 수 있잖아."


"그녀보다 아이샤, 너가 지금 내 인생에 있어서는 더 큰 존재인걸 알아줬으면 해."




아이샤의 눈에 잠시 하트가 보인건 기분탓일까.

너무 만화를 많이 봤었나보다.




"응...미안해... 그야 그렇지, 그런 년보단 내가 얀붕이의 인생에 더 큰 존재일테니까. 그치?"




"그래그래. 내 맘 이해해줬구나. 착하다 착해."




나는 아이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거 완전 이야기만 끝나면 쓰다듬어 주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우웩... 토나온다 토나와. 어떻게 저런 오글거리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거지."




아르카가 헛구역질을하는 연기를 하며 나를 놀렸다.




"처음이 아니여도 마지막이면 좋겠다... 정말로 로맨틱하시네요 얀붕씨는...후흣"




"형 근데 너무 오글거려서 조금 그랬어."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글거렸다.

다만 아이샤한테는 잘 먹힌 것 같으니 성공이라 생각한다.

아이샤는 내 팔에 얼굴을 계속 비비적대며 '히히'만 반복하고 있다.

점점 그녀를 잘 다루게(?)되는 듯 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며 모닥불 앞에서의 밤은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