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주의]


일단 이번 화에서는 고어주의를 붙였는데 이게 마피아물인 이상 고어가 높은 확률로 들어갈 거야.


타이틀에 매번 넣기는 좀 지저분해보이니까 이렇게 서두에서 따로 주의를 줄 거야.


==========


1화


번화가에서 떨어졌고 주택이 그렇게 몰리지 않은 거리에 있는 굳이 1층을 거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계단이 바깥에 있는 한 깔끔한 2층집의 2층.


띵동!


"네, 나가요!"


그 2층에서 사는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바로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검은 터번으로 가린 흑발의 가르마. 발달된 팔 근육에 터질듯한 하얀 프릴로 앞섬이 장식된 검은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느끼하면서도 각진 얼굴의 남자가 향긋한 냄새가 나는 포장용기를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봉쥬르~ 사쿠란Boy♂"

"아, 밴덤(Van Damme) 씨."

"겨울 특별메뉴를 연구하면서 Boy♂ 생각이 나서 가져와봤어."

"괜히 저 때문에-"


밴덤 씨는 그 특유의 느끼한 표정으로 손가락은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논 논 노~ 요리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손님이 요리를 만끽하며 행복해지는 그 순간이란다. Boy♂가 내 요리를 맛보고 행복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포상. 그러니 염려말고 마음껏 먹으려무나."

"아...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이 기묘한 남자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기묘했다.


----------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2월의 어느 날.


기껏 대학에 합격했지만 전산상의 오류로 갑자기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다급해져서는 캡슐호텔이라도 전전해야 하냐는 걱정과 함께 방을 찾던 때였다.

다행히도 어떤 외국인이 나와 룸 셰어링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답했지만 르 쁘띠 푸틴 (Le Petit Poutine)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긴장되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와인을 홀짝이던 타데우스 밴덤(Thadeus Van Damme) 씨와 처음으로 만났고 그가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긴장했다.


"아, 안녕하세요. 전에 연락드렸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라고 합니다."

"너 생일은?"

"아, 4월 22일입니다."

"황소자리구나. 나랑 같고 상성도 좋아. 얼굴은 귀엽고 눈 색도 마음에 들어. 하지만 옷걸이가 보석이라도 야니클루로 도배한 패션 센스만큼은 논 논 노~ 그래도 합격이야."


밴덤 씨는 내 몸을 훑어보면서 계약서류를 보여줬다. 기숙사와 비교해도 파격적으로 싼 가격이었고 거기에 내건 조건들 중 일부도 특이하면서도 간결했다.


1. 나는 2층, 밴덤 씨는 1층과 지하실을 쓴다. 서로의 허락 없이 서로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

2. 밴덤 씨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은 내가 집에 있어야 한다.

3. 시간이 빈다면 밴덤 씨의 요리를 평가해줄것.

4. 일주일에 이틀은 르 쁘티 푸틴에서 근무할 것. 급료는 따로 지불해줄 것임.


"어때, 사쿠란Boy♂?"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은 다음 서명했다. 사진과 설계도로 보여준 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고 방송에 필요한 방음처리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들이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일단 밴덤 씨의 독특한 캐릭터성에 눈이 팔려 별로 쓸데없는 것에 질문을 했다.


"근데 왜 저를 그렇게 부르시는 거죠?"

"하루키. 한자로 치면 봄나무 아니잖니. 일본에서 봄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하면 벚나무. 그러니 무슈 세리졔(Monsieur Cerisier), 벚꽃Boy♂, 그러니 Boy♂는 사쿠란Boy♂야."


어깨에 손이 얹혀지자 나는 무심코 움찔거렸지만 밴덤 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마렴 Boy♂~ 나는 나쁜 남자가 취향이니 말이야."


----------


"도브 드 포크. 프랑스식 돼지고기 찜이란다. 원래는 비프로 만드는 요리지만 이번에는 쇼가야키의 특색을-"

"어! 호모셰프!"


밴덤 씨가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도중 계단 아래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키, 실례잖아."

"겍! 우자이(짜증나는) 마드모아젤!"

"타카가와거든요!"


타카가와 유키. 은발 트윈테일에 파란 눈이라는 일본인답지 않은 색의 조합. 146cm라는 중학생한테도 밀리는 키에 그 반동으로 가슴이 어지간한 그라비아 배우도 씹어먹을 정도로 큰 발랄한 20살 소녀.


어릴적 고아가 되고 유산도 친척집에 빼앗긴 채 학대받던 나를 구해준 은인의 딸이자 내 소꿉친구다.


유키는 킁킁거리며 밴덤 씨의 요리의 냄새를 맡았다.


"니쿠쟈가!"

"도브 드 포크! 흥! 내가 Boy♂를 봐서라도 참아야지!"


말은 화내는 말투지만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밴덤 씨는 둘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자리를 비워줬고 나는 유키를 집안으로 들였다.


"나 없는 사이에 이상한 짓 당하지는 않았지?"

"너는 왜 내 엉덩이에 대고 말을 하냐."


----------


유키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서 있던 앉아있던 차가운 음료는 무조건 허리에 손을 얹고 들이킨다. 그건 맥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는 맥주도 몬도 아저씨랑 똑같이 마시네."

"크하! 맛있는 음식이랑 차가운 술을 들이키면 이게 바로 섹스지! 아, 아다하루는 아다라서 모르지!"


내 성이랑 이름을 살짝 비틀어서 성 경험이 없는 나를 놀려먹는 게 유키를 대충 무시하는 게 주된 패턴이었지만 그 날은 왠지 뭔가 받아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했다면 어쩔 건데."


그 순간 유키의 눈이 변했다. 늘 웃고 떠들면서 반짝이던 푸른 눈이 빛을 빨아들이는 심해처럼 탁해졌고 공허한 표정으로 나를 몇 분간 말 없이 응시했다.


눈동자에 미동조차 없이 나를 바라보는 유키는 부담스러웠기에 나는 얼마 못 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했고 그러자 그녀는 다시 깔깔거렸다. 


"역시 할 리가 없지."


유키는 테이블에 눌린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고압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줘도 못 먹은 아다하루 주제에 할 리가 없지."


나는 그게 어떤 걸 뜻하는지 알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고 유키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클래스메이트가 내 가방 속에 몰래 집어넣은 에로 동인지를 집에 와서야 발견한 걸 계기로 나는 유키와 처음으로 섹스를 할 뻔했었다.


나도 유키도 달아올랐지만 마지막에는 내가 거부했었다.


나를 거둬주신 분들에게 이미 민폐를 끼쳤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약 이렇게 연인이 되었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나쁘게 헤어지고 서로를 멀리하게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때부터였다. 얌전했던 유키가 늘 하이텐션을 유지하고 나를 아다하루라는 멸칭같은 별칭으로 부르게 된 게. 그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동정이면 내 의사는 따지지 않고 날 따먹어버리겠다는 엄포와 함께 나를 따라 편입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는 저녁식사를 이어갔고 얼마 안가 유키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


몸집도 작고 술에도 약하면서도 유키는 굳이 나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간이 발달해서 "드워프"라는 별명이 따로 붙을 정도로 술이 센 바람에 늘 유키가 먼저 곯아떨어지고 뒷정리는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지.


----------


그리고 유키는 새벽에 일어났어. 눈을 뜨니 그녀는 침대 위에 있었고 하루키는 바닥에 따로 이불을 펴서 잠들었지. 옷매무새를 다듬은 유키는 하루키가 끝까지 그녀한테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했어.


슬그머니 침대에서 하루키의 뒤로 기어내려온 유키는 하루키의 등을 쓰다듬으며 옷 너머로 느껴지는 자국들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훑었어. 아무리 저게 뭐냐고 물어도 아빠는 한 마디 말도 안 했기에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교토의 친척집에서 얻은 상처라는 것만 짐작했지.


유키는 하루키를 처음으로 본 날을 떠올렸어. 아빠가 오늘부터 가족이라며 데려온 남자아이는 상처투성이에 머리는 엉망이고 빼빼말랐고 키는 그녀보다도 작았지.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역전됐지만 유키는 그녀보다도 작고 어두웠던 하루키를 누나처럼 살펴주겠다고 다짐했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키의 성격은 밝아졌고 유키는 어느샌가 하루키에게 애정을 품게 됐어. 하지만 하루키의 마음 속에 남은 상처는 아물어가도 아직 그가 유키를 솔직하게 사랑하게 만들 정도로 아물지는 않았지.


그래서 유키는 기다려주기로 했어. 하루키가 스스로 그의 두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


비닐로 몸을 감싼 밴덤은 비닐로 포장된 르 쁘티 푸틴의 지하실에서 중식도를 갈고 있었어.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마찬가지로 비닐이 덧씌워진 도축 테이블 위에는 방금 숨이 끊어져서 아직도 목에서 피를 꿀렁거리는 한구레가 있었지. 그리고 지하실의 한구석에는 재갈이 물리고 손발은 고기 분쇄용 망치로 작살이 나 반항도 못하는 두 명의 한구레가 바들바들 떨면서 울고 있었지.


"Boys♂, 이거 알고 있니? 나는 말이지, Косатская Братва(코사츠카야 브라츠바)의 간부란다. 쉽게 말하자면 너희들은 코사츠카야 패밀리의 간부가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패악질을 끼친 거란다."


밴덤은 그렇게 말하며 방금 죽인 한구레를 비닐에 나눠 담기 위해 토막내기 시작했어.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발골하는 작업은 요리사로서의 밴덤에게 익숙했고 사람을 토막내는 작업은 마피아로서의 밴덤에게 익숙했어.


"내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있게 드셔주시는 손님들께는 만에 하나라도 실례가 있어서는 안 돼. 하지만 너희들은 내가 보호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님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내 레스토랑에 벌레를 풀어놓으려 했지."


한 명을 비닐에 나눠 포장한 밴덤은 바로 다음 한구레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간 다음 도축 테이블 위에 얹었어.


"그건 나, 바딤 리보비치 크보스토프 (Вадим Лвович Кхвостов - Vadim Lvovich Khvostov)의 명예를 직접적으로 실추시키는 행위야. 그래서 내가 손수 너희들을 처형하는 것이기도 하고."


팍. 팍. 중식도가 몸통에 박히면서 피가 튀었고 도축 테이블에 올려진 한구레의 작살난 발은 사시나무 떨듯이 움찔거렸어. 마지막 생존자는 그걸 보면서 후회했어. 왜냐하면 그가 이 프랑스 레스토랑에 보호세를 걷으러 가자고 다른 멤버들을 선동했었거든.


그들이 삥뜯으려고 한 레스토랑의 소유자가 하필이면 러시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피아 가문 중 하나인 크보스토프 패밀리인줄도 모르고 말이야. 지금 눈 앞에서 토막나버리고 레스토랑의 종업원 등으로 위장한 바딤의 부하들에게 돼지 사료로 가공당할 운명을 같이 할거라는 생각에 마지막 생존자는 오줌을 지리면서 벌벌 떨었어.


하지만 그 마지막 한구레를 끌고 간 바딤은 바로 그를 토막내는 대신 그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도축 테이블의 높이를 낮췄어.


"Boy♂는 지금 당장 죽이기에는 아까워보이네. 얼굴만은 사쿠란Boy♂랑 닮았잖아~"


지하실에서는 바지를 벗기고 벗는 소리가 들렸어. 그 뒤로는 찰박거리는 소리만이 들렸고 그 후에는 단말마와 빠작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들이 났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끝나고 바딤이 비밀 도축실 밖으로 나왔어.


한껏 개운해진 표정이 된 바딤은 방금 그가 디저트로 먹고 죽인 한구레를 토막낸 비닐봉지들을 들고 나왔고 부하들이 따라 들어가 나머지 봉지들을 들고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