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도쿄, 일본.


검은색 고급 아우디 세단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창문은 짙은 검은색으로 코팅이 돼서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고 일본의 차답지 않게 운전석이 차의 왼쪽에 있었지.


뒷자리의 한가운데에는 갓 18세가 된, 얌전한 밤색 단발머리와 안경 뒤의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동유럽계 피가 섞인 미녀가 불편한 듯 앉아있었어. 기본적인 화장만 했고 순한 눈매에 너무 갸름하지도 둥글지도 않은 귀여운 얼굴, 그리고 160cm 근처인 작은 키와 대비되게 얼굴을 파묻기 딱 좋은 가슴은 처진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며 하얀 스웨터 너머로 그 자태를 뽐냈어.


그리고 소녀와 동승한 모두는 말끔한 검은 양복을 차려입었지. 그녀의 오른편에 앉아있는 백인은 통통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으레 지니는 특유의 인자함은 결여된 인상을 지녔고 정수리가 벗겨진 희끗해지는 회색 머리카락과 풍성한 콧수염을 지녔어.


반대로 소녀의 왼편에 앉아있는 동양계 치고는 피부가 좀 흰 남자는 우락부락하지는 않지만 근육이 탄탄하게 형성된 발달된 몸을 갖췄어. 검은 머리카락은 정성스럽게 빗어넘겼고 말끔하게 면도한 남자의 얼굴은 험악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인상을 쓰지 않아도 사악한 인상을 풍겼지.


대머리 남자처럼 운전수와 조수석에 앉은 남자들은 전부 백인이었어. 침묵이 맴돌던 차에서 동양인 남자가 처음으로 소녀에게 뭔가를 주면서 러시아어로 말했어.


"Юми. Возьми это."


Юми라고 불린 소녀는 은으로 만들어진 장미꽃 모양의 수수한 헤어핀을 받았어.


"이건 마마의..."

"Да. Это был мой первый подарок ей и ее драгоценной заколке для волос. 언젠가는 너에게 주고 싶었지만, 지금보다 나은 순간은 없을 것 같구나."


Юми는 말 없이 꽃 장식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어. 어릴 적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고 어머니가 기억 속에서 늘 차고 있던 헤어핀을 받았으니 감정이 북받쳤지.


"이건 나보다 언니들이나-"

"모두 네가 가지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단다. 한 번 차보려무나."


Юми는 그녀의 방향에서 오른쪽 옆머리에 핀을 꽂았어. 신호를 기다리던 운전수가 미러를 조정해 Юми가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조절했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장미꽃은 조금 촌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잘 어울렸어.


"어울리는구나. 정말이지 너는 눈부터 네 어머니를 쏙 빼닮았단다."


올백머리의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은지 얼마 안 가 그들을 태운 차는 정문에 [미시마 대학]이라고 적힌 캠퍼스로 진입했어. 차가 정문을 지나자 방금 전까지 신중하게 말을 하던 올백머리의 남자는 일본어로 말을 했어.


귀찮다고 패스트푸드만 먹지 말고 건강한 음식을 많이 챙겨먹어라,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밤을 새서 하지는 말아라, 어두워지면 무조건 대로 주변으로만 다녀라, 너는 순진하니 이상한 남자가 꼬이지 않게 조심해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 등등.


그가 주절주절거리던 걱정들은 기숙사 건물 앞에서 멈추는 차와 함께 멈췄어. 통통한 남자와 운전석의 남자가 먼저 내려 주변을 살피고 조수석의 남자가 트렁크에서 짐을 빼내는 동안 올백머리의 남자는 내려서 Юм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줬어. 그리고 Юми가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올백머리의 남자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남겼어.


"약속했던 대로, 패밀리는 네 학창생활에 참견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돈은 갑자기 사라질 수 있고 친구들은 언제나 널 배신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가족은 영원하단다."




------




Юми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차는 출발했어. 캠퍼스를 떠나는 차 안에서 올백머리의 남자는 계속 기숙사의 방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지.


"내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하, 자식한테 못 이긴다는 말이 뒷세계 사람한테도 맞는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냐, 블라드?"


통통한 남자에게 블라드라고 불린 올백머리의 남자는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어.


"뭐라고 반박할 수 없겠군. 특히 여자아이니까 말이야. 너도 네 자식들한테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나, 발레리?"

"아니. 나나 레프는 털복숭이 아들놈들밖에 없으니 말이야. 좀 엄격한 경향이 없지않아 있었지."

"하긴 그 녀석들은 언제나 너처럼 성질머리 더러웠지."

"나처럼? 이 놈이!"


블라드와 발레리는 낄낄거리면서 허물없이 농담거리를 주고받다가도 어느 순간 정색하며 말할 정도의 진중함도 갖췄어.


"발레리, 하지만 세르게이를 Юми의 보호자로 맡기는 게 좋은 결정이었을까?"

"이미 Юми 몰래 결정한 것 아니냐. 우리랑 레프랑 셋이서 고민하다 결정한 걸 왜 또 고민하나?"


그들은 Юми에게는 사생활에 참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몰래 세르게이를 그녀의 비밀 보호자로 도쿄에 뒀어. 아무리 Юми가 블라드가 일반인 시절에만 쓰던 옛 성을 쓰면서 입학했다 해도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그녀를 해치려 할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 녀석은 지금까지-"

"알지. 카테리나가 죽은 후부터는 뭐든 어정쩡하게만 해냈지. 하지만 그 전에는 일처리도 똑부러지게 잘 했잖아."

"세르게이가 네 형제라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고?"

"당연히 아니지. 내가 인정에 약하단 말은 들었지만 공사 구분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잖냐. 하지만 다시 중책을 맡기기 전에 몸부터 풀게 해 줘야지. 그리고 세르게이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녀석이 적들의 어그로는 덜 끄니까."

"......"

"그리고 카테리나한테 진심으로 충성했던 녀석이 그녀의 딸아이를 위험하게 할까."


블라드는 세르게이에게 Юми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의 신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겼어. Юми가 미시마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패밀리 내부에서도 극비인 만큼 그녀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도쿄의 일반 조직원들은 그녀가 도쿄에 있는것조차 모를 예정이었어.


"걱정은 마라, 블라드! 내가 Юми의 대부잖냐! 나도 세르게이를 보좌할 부하들을 보냈으니 나도 간접적으로 Юми의 보호자인 게지."


겉으로는 내색해도 여전히 불안해하던 블라드는 길가를 걷던 어떤 남학생을 눈여겨봤어.


남자치고는 작은 167cm의 키. 

검고 정돈된 더벅머리에 푸른빛이 아주 살짝 감도는 청회색 눈동자.

남자답다고 할 수는 없는 곱상한 얼굴.

싸구려 야니클루 옷만 입었지만 의외로 코디 하나만큼은 제대로 맞춘 남학생.


"왜 그러냐, 블라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기분 탓이겠지."


블라드는 그런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기억에서 지웠어.


======


저번부터 쓴다고 벼르던 마피아 얘기야. 이번화는 일부러 러시아어를 번역 없이 섞었지만 번역기를 돌리는 건 추천하지 않을게.


그리고 이건 패밀리의 성 목록이야.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주면 그걸 패밀리의 성으로 쓸거야.


페도로프

크보스토프

카잔스카야

세르듀코프

스투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