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확인했다."


"누구인지 알 수 있겠어?"


"아미야, 니어, 안젤리나, 첸이다. 다들, 몸에서 피냄새가 난다."


생화학무기의 피해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엑시아, 스카디는?"


"아직 아무런 응답을 안 하고 있어. 오늘은 분명 외출하는 날이 아닐텐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점점 좋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실버애쉬,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 줘."


"알겠다, 맹우여."


"그래서 저 녀석들, 박사를 버린 녀석들인데 어쩔거야?"


머리가 아파왔다.


과연 저들은 내게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


공포심보다도 호기심이 앞섰다.


"지마, 여차하면 지켜줄 수 있지?"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집어치워. 무슨 일이 있어도 박사는 지켜낼 테니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말하지 마."


지마의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말이 너무나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가자. 레드, 지마."


"박사의 말, 따른다."


"마음 약해지면 팰 거니까 그렇게 알아."



***



검은 구름이 끼어있었던 하늘은 끝내 비를 내렸고, 우산을 들고 나온 우리들과 달리 그녀들은 흠뻑 젖은 채로 서 있었다.


"아미야, 그리고 첸……"


손목이 검붉게 물든 첸과, 이미 눈에 생기가 차갑게 죽어버린 아미야가 그저 아무런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박, 사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면목없다. 너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새겨버리고 말았다……"


모래만 가득한 바닥에다 무릎을 꿇고서 흐느꼈다.


"사죄를 받고 싶어서 온 거라면, 조용히 돌아가. 나는 너희에게 할 말 같은 거 없어."


"박사님,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 곁에서 떠나지 말아줘……!"


냉정하게 매도해도, 그녀들은 물러날 기미를 보잊 않았다.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미 그녀는 망가져있었던 걸까.


그때,


"귀찮다는 거 못 들었냐? 좀 어지간히 하라고."


지마가 아미야와 첸을 혐오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마 씨, 이건 당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왜? 지금 박사는 에덴의 총책임자고, 무엇보다 박사를 내쫓은 건 로도스 아일랜드잖아?"


"곰녀,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라……!"


첸이 적소를 꺼내도, 지마는 첸의 앞까지 다가가서 눈을 부릅 뜨고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질러놓고 이제와서 후회한다니, 이게 무슨 기간한정 개그 이벤트인 줄 알아? 그때 박사가 싫었으면 피해다녔으면 됐잖아. 있는대로 전부 괴롭혀놓고 손목에 칼집이라도 그으면 용서받을 줄 알았냐?"


"이…… 야만적인 *용문 욕*가!!!!"


첸의 칼에 베이기 직전인 지마를 향해 뛰어갔지만,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그때,


"파도의 만가."


풀투성이의 필드에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몰아친 덕에, 첸의 시선과 칼은 지마에게서 멀어졌다.


"이 바닷물, 역시……!"


"지긋지긋하네."


이내 다시 잠잠해진 바닷물투성이의 땅바닥 너머로, 검고 흰 무늬의 전투복장을 한 여전사가 걸어나왔다.


"스카디!"


"미안, 박사. 좀 늦어졌어."


스카디가 모습을 드러내자, 첸은 지마가 독설을 했을 때보다 더욱 심하게 분노한 얼굴로 그녀에게 어금니를 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항상 내 방해를……!!"


"웨이옌우의 오른팔, 첸이였나?"


첸이 칼을 고쳐잡고 달려들었지만, 스카디의 거대한 대검에 그녀의 두 검은 가로막혀 버렸다.


"박사, 보다시피 이렇게 위험한 녀석들이야. 조치를 취해주지 않겠어?"


"아, 알겠어! 엑시아, 첸을 향해 사격을 허락할게! 지마는 니어를 저지해 줘!"


"알겠어, 박사!"


"그 말을 기다렸다고, 박사!"


긴장된다.


내 손짓과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목숨이 걸려있는 것이 다시금 실감되었다.


"박사님, 저희도 움직여도 되나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목소리.


"그래. 레드는 지마를 엄호하고, 블루포이즌은 엑시아와 함께 아미야에게 사격을 가해줘."


"레드, 이해했다."


"알겠어요."


기쁠 리가 없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순간, 누구던 상관없이 피를 흘리게 된다.


"모스티마, 들리지?"


"응, 잘 들려."


"질서와 시간의 열쇠를 개방시켜."


"알겠어. 화력은 중간 정도로 충분하겠지?"


그런데도,


피가 끓어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큭, 감히 심판을……!"


"레드, 니어 막는다."


"계속 붙잡아, 늑대! 이 자식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여기서 막아야 해!"


지마의 저돌적인 돌격과 레드의 기습으로 니어는 손발이 묶인 채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밖에 안돼?"


"스, 카디!!!!"


스카디의 괴력에 첸은 노골적으로 밀리고 있다.


"아미야, 중력장은 이게 최대야……"


"으윽, 이대로 가면 전부 쓰러져버릴 텐데……"


아미야는 아츠를 나누어서 엑시아와 총탄을 격추시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총탄을 느리게 하는 안젤리나의 중력장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 시간이야."


모스티마의 시간조종이 시작되는 종소리가 에덴과 로도스 아일랜드 사이에 울려퍼졌다.


"제기랄, 떠돌이 산크타 녀석인……!"


"배가 비었어."


몸에서 났다가는 죽을 지도 모르는 소리와 함께 첸은 질척한 흙 위로 쓰러지고 이내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이다, 레드!"


"빠르게, 처리한다……!"


니어 쪽도, 지마와 레드 덕분에 가볍게 제압되었다.


"꺄아악!!"


"안젤, 꺄악……!"


약한 마비독이 묻은 고무탄을 맞은 아미야와 안젤리나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박사, 상황은 어때?"


"상황 종료야. 엑시아, 전부 철수하라고 전해줘."


"알겠어."


회신이 끊기고 얼마 뒤, 지마와 레드를 시작으로 전장에 투입됐던 오퍼레이터들이 하나둘씩 다시 에덴으로 돌아왔다.


"엑시아, 저기 쓰러진 로도스 아일랜드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내버려 둬. 이렇게까지 전력 차이가 있다고 느꼈으면 물러나겠지."


과연 그녀들은 이번 한 번으로 물러날까?


그 답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니,


광기로 물든 그녀들이 더이상 우리의 일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멀리 도망쳐야겠지.



***



눈을 떠 보니, 우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기절해 있었던 듯 했다.


"으극…… 아미야, 첸, 안젤리나…… 일어나라."


"니어, 씨……"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자,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은 다름아닌 분열이었다.


"첸 씨, 그때 조금만 더 버티지 그러셨어요."


"뭐?"


"시간이 조금만 더 충분했다면 제가 전부 처리할 수 있었는데……"


"다들 그만해, 어차피 져버린 걸 따져서 뭐해?"


불화라는 것은, 너무나도 빨리 퍼져나가는 전염병같다.


"참견하지 마세요, 안젤리나 양."


"아미야, 네 탓은 없는 줄 아나? 네가 지원사격을 해줬으면 내가 못 버틸 이유가 없었지 않았나?"


"뭐라고요……?"


"다들, 싸우지 말라니까!"


아아,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걸까?


"다 닥쳐!!!"


시끄러워 죽겠다.


"……난 당분간 혼자 있고 싶군. 필요할 때가 있으면 그때만 나를 불러라."


"니어 씨……?"


박사의 목소리가 그리워.


"다들 싸우든지 알아서 하도록."


패배한 우리를 감싸고 따뜻하게 대해준 그가, 너무나도 그립다.


"그리고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서 말해두지."


우리는 어째서 깨닫지 못했던 걸까.


"아미야. 너와 박사, 켈시 선생님께서 같이 세운 로도스 아일랜드는 죽었다.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해."


만약 내가 조금만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이런 비극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우리들, 아니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의문과 후회를 품고 발을 돌렸다.



***



우리들의 승전보는 테라 온 곳에 퍼져나갔다.


이미 목적을 잃어버린 채로 변질된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습은 리유니온보다도 더한 악으로 묘사되었다.


어째서, 로도스 아일랜드기 이렇게까지 몰락해버린 걸까.


"[로도스 아일랜드와 에덴의 충돌, 거대한 요새가 드디어 무너지는가?]라니, 만화 제목같아서 재밌네."


"하하…… 덕분에 나는 불편해서 죽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직도 걔네들을 동정하는 거야? 박사도 마음이 무르네. 아니, 연민이 많다고 해야하나?"


아침부터 내 방에 와서 커피를 타 달라는 모스티마는 웃으며 이번 주 신문을 읽고 있었다.


"어제는 수고했어. 모스티마가 아니었다면 이번 전투는 이기지 못했을거야."


"난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감사인사는 지마나 엑시아들에게 해 줘."


"그래도, 이번 일로 보답하고 싶은데."


탁상 위에 올려놓은 커피가 하얀 김을 내뿜었다.


향긋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으니, 설탕의 단 맛이 혀를 옭아매는 듯했다.


"보답, 이라……"


"내 가능범위에선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박사,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뭐든지 들어준다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어느샌가 신문을 접고 소악마같은 미소를 지은 모스티마는 나가는 문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우리, 술래잡기나 한번 할까?"


그리고 나가기 전에, 손에 있는 무언가를 흔들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잠, 그거 내 열쇠 아냐!?"


"제한시간은 10분, 열심히 따라잡아 봐."


"모스티마, 잠깐!!"


이후에, 지친 몸을 끌고 소파에 앉았을 때 신문의 글자가 푸른색으로 '좋아해, 박사.' 라고 덧칠되어서 쓰인 글을 보고 얼굴을 붉힌 건 얼마 안 되는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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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하다

맨날 오는 슬럼프랑 시험이 겹쳐버리는 바람에 겨우 짬내가지고 써 왔다

다른 후회믈 보면 진짜 다들 인간 대가리에서 생각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잔혹하게 쓰던데

나는 필력이 딸려서 그게 될 지 모르겠다